ORIGINAL FICTION
제99화 — 열두 시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2091년 1월 3일.
오전 11시 58분.
아스터 베이 중앙역.
조너스 리드는 화물열차를 세워놓고 시계를 보고 있었다.
정전 발효까지 2분.
철도는 멈출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조금 느려졌다.
◆노아의 편의점.
아샤가 계산대를 봤다.
손님 셋.
빵.
우유.
커피.
뉴스화면 아래 카운트다운.
01:42.
한 손님이 말했다.
“진짜 끝나는 거야?”
노아.
“정전입니다.”
“전쟁 끝 아니야?”
“거의?”
아샤가 말했다.
“그 말 하지 마.”
둘 다 웃었다.
◆중앙의료원.
미나 리는 이제 학생이었다.
심장수술 뒤 정기검진.
다니엘이 말했다.
“12시 되면 전쟁 끝난대.”
마라가 고쳤다.
“공격중단협정 발효.”
미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끝난 거 아니에요?”
마라는 잠깐 생각했다.
“오늘부터 덜 죽는 건 맞아.”
아이에게는 그 정도로 설명했다.
◆웨스트미어.
헬렌 워드는 겨울밭을 보고 있었다.
엘리와 같이.
카운트다운은 트랙터 화면에 작게 떴다.
헬렌이 말했다.
“전쟁 끝나면 비료 싸질까?”
엘리.
“엄마는 이런 날에도 그 생각?”
“농사는 기다려주냐.”
둘 다 화면을 봤다.
00:58.
◆하버 리치.
4번 대피소 자리.
기념벽.
제이미 코르가 배우자 이름 앞에 꽃을 놓았다.
주변에는 정전행사도, 카메라도 없었다.
그가 원하지 않았다.
00:44.
제이미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켈런 야드.
사라 미로는 주민위원 회의 중이었다.
의제.
학교예산.
정전발효 30초 전에도 싸우고 있었다.
엘레나가 말했다.
“잠깐만.”
회의가 멈췄다.
모두 화면을 봤다.
00:21.
◆브라운필드.
놀런 피어스는 옛 자경대본부였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지금은 지역행정청.
벽에 총기거치대가 있던 흔적은 남아 있었다.
00:15.
◆모리스는 정전 10분 전 에이드리언에게 커피를 하나 건넸다.
“이번엔 내가 샀다.”
“왜요?”
“첫날에도 커피 있었잖아.”
“기억납니까?”
“147살에 그 정도도 기억 못 하면 은퇴해야지.”
“이미 두 번 은퇴하셨잖아요.”
“그래서 세 번째 준비 중.”
둘이 웃었다.
모리스는 시계를 봤다.
“이번엔 17분 오차 없겠지?”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없기를 바랍니다.”
“역사적 순간치고 자신감이 없네.”
“배웠습니다.”
그게 둘 사이에서 칭찬처럼 들렸다.
Open Corridor 운영센터.
리아.
아이리스.
토머스.
에블린.
오르테가.
그리고 에이드리언.
마라는 병원.
모리스는 뒤쪽 의자.
아무도 연설하지 않았다.
대형화면.
모든 전선.
WHITE.
일부 RED 경고점.
불발탄.
고립무장세력.
사고.
완벽하지 않았다.
00:10.
◆에이드리언은 2083년 첫날을 떠올렸다.
17분.
사라진 배.
의료필터 180개.
항구.
곡물열차.
핵무기.
하버 리치.
아버지.
회랑.
휴전.
모든 게 한꺼번에 떠오르진 않았다.
이상하게 첫 곡물열차 시간만 기억났다.
06:40.
아침은 와야 했으니까.
◆12:00.
정전협정 발효.
어떤 거대한 소리도 없었다.
폭발도.
종도.
화면 문구만 바뀌었다.
ARMISTICE IN EFFECT
사람들이 숨을 내쉬었다.
몇 명은 울었다.
토머스는 안경을 벗었다.
리아는 화면에서 열차시간표를 봤다.
아이리스는 통신오류가 없는지 확인했다.
오르테가는 군망을 계속 봤다.
직업은 역사적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2시 정각 캐스케이드 동부의 한 농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밭에 서서 멀리 포성이 안 들리는지 들었다.
1분.
2분.
없었다.
그제야 트랙터 시동을 걸었다.
하퍼 검문소에서는 다리우스가 군 우선표지 하나를 떼었다.
켈런 야드에서는 엘레나가 비상경비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
Transit Residence에서는 귀환버스가 예정대로 출발했다.
정전의 순간은 한 화면이 아니라 수천 개의 작은 행동으로 퍼졌다.
12:03.
서부전선 총성 1건.
모두 얼었다.
보고.
훈련되지 않은 민병대원이 경고사격.
부상 없음.
현지부대 즉시 무장해제.
휴전 유지.
12:07.
동부.
지뢰폭발.
차량 1대 손상.
신규공격 아님.
12:11.
중부.
통신두절.
16분 뒤 복구.
정전은 첫 11분부터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깨지지 않았다.
◆노아의 편의점에서는 정오를 지나도 손님이 물건을 샀다.
누군가 샴페인 비슷한 무알코올 음료를 들었다.
“축하해야지.”
아샤가 물었다.
“뭘요?”
“오늘.”
계산.
그게 전부.
◆조너스는 12시 14분에 열차를 다시 움직였다.
신호.
초록.
화물.
재건용 강재.
전쟁물자가 아니었다.
그는 부기관사에게 말했다.
“이게 낫네.”
“뭐가요?”
“사람 죽일 거 아닌 거 싣는 거.”
열차는 천천히 역을 빠져나갔다.
◆중앙의료원.
12시 30분.
응급실은 여전히 바빴다.
교통사고.
심부전.
겨울낙상.
전쟁이 멈춰도 사람은 계속 아팠다.
마라는 그게 좋았다.
적어도 평범한 이유들이 다시 많아졌다.
◆오후 2시.
에이드리언과 마라는 짧게 만났다.
병원 카페.
마라가 말했다.
“끝났네.”
에이드리언.
“정전입니다.”
마라가 그를 쳐다봤다.
“오늘만큼은 그냥 끝났다고 해.”
그는 잠깐 멈췄다.
“끝났습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오후 3시 40분.
MV Cressida가 아스터 베이 외항에 들어왔다.
8년 전, 항법망이 사라진 첫날 도시가 위치를 잃었던 그 배.
전쟁 동안 여러 차례 항로와 선주가 바뀌었고, 구호·부품 수송에 쓰였다.
오늘 화물.
재건용 정수막.
의료필터.
철도제어 부품.
항만관제 직원이 말했다.
“크레시다 입항 확인.”
에이드리언은 보고를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화에서 180세트를 급히 보냈던 산소정제막이 떠올랐다.
크레시다는 결국 그때도 침몰하지 않았다.
그레이헤이븐으로 우회해 화물을 다른 철도와 바지선으로 넘겼고, 몇 주 뒤 일부가 아스터 베이에 들어왔다.
너무 많은 일이 생겨 그 사실은 당시 뉴스 한 줄로 끝났었다.
오늘은 같은 배가 전쟁이 끝나는 날 돌아왔다.
항만에서는 박수도 행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 선석을 배정했다.
그게 더 좋았다.
사라졌던 배가 다시 평범한 입항선이 되었다.
오후 5시.
전국 곳곳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정부행사.
지역행사.
자발적 모임.
어떤 곳은 아무것도 안 했다.
사망자를 생각해서.
또 어떤 곳은 음악을 틀었다.
둘 다 맞았다.
◆하버 리치 기념벽에는 그날 밤 촛불이 많이 놓였다.
제이미 코르는 정전행사에는 가지 않았지만 기념벽에는 오래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말했다.
“끝났네요.”
제이미는 잠깐 생각했다.
“전쟁은.”
“그럼?”
“우리 쪽은 아직 할 게 있죠.”
조사.
보상.
재건.
기억.
정전은 슬픔까지 종료시키는 날짜가 아니었다.
그래도 더 새로운 이름이 벽에 늘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는 날짜였다.
밤.
에이드리언은 집에 돌아왔다.
마라가 먼저 와 있었다.
둘은 뉴스도 끄고 저녁을 먹었다.
업무금지시간.
오늘은 타이머를 안 켰다.
한참 뒤 마라가 물었다.
“내일 뭐 해?”
에이드리언은 자동으로 일정표를 떠올렸다.
재건회의.
전략보관 전환.
귀환.
채권.
그런데 입 밖에는 다른 말이 나왔다.
“늦게 일어날까?”
마라가 웃었다.
“그거 좋네.”
◆2091년 1월 3일.
전쟁은 한 문서로 해결되지 않았다.
영토도.
책임도.
포로도.
전략무기도.
난민도.
아무것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오 이후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속도는
분명히 줄었다.
그날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날 자정까지도 협정은 유지됐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정전은 유지됐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