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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88화 — 0.8초 이후

디 오거나이저 · 88 / 31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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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은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때,

에이드리언은 그 사고와 같은 종류의 경보를 다시 받았다.

2088년 10월.

캐스케이드–노스리버 전력연결 4구역.

구형 보호계전기.

신형 분산전력 동기화.

예외상태 발생.

차단명령 지연.

예상.

0.6초.

과거라면 사고 뒤에 알았을 값.

이번에는 시험 전에 시스템이 멈췄다.

INTERGENERATIONAL PROTECTION CONFLICT — AUTO HOLD

현장기사가 말했다.

“전원 차단됐습니다.”

“사고?”

“없습니다.”

“왜 멈췄죠?”

화면에 원인.

혼합세대 보호모듈 충돌.

서부 변전사고 이후 의무화된 통합시험 규칙이 잡아냈다.

리아가 보고서를 에이드리언에게 보냈다.

제목.

Near Miss Prevented.

그는 파일을 한동안 열지 못했다.

열면 아버지가 죽은 사고가 정책성과표처럼 보일까 봐.

결국 열었다.

기술내용.

시험조건.

자동정지.

예상 위험.

사상자 0.

설비손상 0.

작업지연 5시간.

현장팀은 불평했다.

“너무 민감합니다.”

“이 정도 충돌마다 멈추면 재연결 속도 안 나옵니다.”

철도전력 담당자는 말했다.

“작년에도 27번 멈췄습니다.”

그중 실제 위험으로 확인된 건 4건.

오경보 23.

효율이 나빴다.

그런데 오늘은 그 4건 중 하나였다.

사고 2년 동안 개선조치가 실제로 얼마나 적용됐는지 처음으로 공개감사가 열렸다.

혼합설비 통합시험.

82% 적용.

독립중지권.

규정상 100%.

실제 사용사례.

41건.

중지요청 뒤 불이익 신고.

3건.

리아의 표정이 굳었다.

“불이익?”

현장노동자 대표가 말했다.

“근무평가에 ‘과도한 보수성’이라고 적힌 경우.”

규정은 있었지만 문화가 따라오지 못한 곳이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보고를 보고 아버지 사고 뒤 만든 제도가 문서만으로 끝났을 가능성을 처음 마주했다.

세 건 모두 재조사.

평가 삭제 또는 수정.

관리자 재교육.

중지권을 만든 것과 사람이 실제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건 다른 일이었다.

사고개선의 다른 후유증도 있었다.

정비시간 증가.

부품비 상승.

공사 지연.

일부 지역언론은 ‘과잉안전 규제가 복구를 늦춘다’고 비판했다.

토머스가 비용을 계산했다.

통합시험 규정으로 늘어난 연간비용.

상당.

대신 지난 18개월간 치명적 혼합설비 사고.

0.

인과관계를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비용만 보고 없애기도 어려웠다.

에이드리언은 공개자료에서

“사고 0은 규정 덕분”이라는 표현을 빼달라고 했다.

“왜요?”

“모르는 걸 안다고 하면 나중에 진짜 평가가 어렵습니다.”

좋은 정책도 과장해 칭찬하면 다음 수정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안전위원회.

노동자 대표가 말했다.

“자동정지 기준 낮추지 마세요.”

운영자.

“지연 누적이 커요.”

노동자.

“지연은 살아 있는 사람이 고칩니다.”

운영자.

“전력 지연으로 병원·철도도 위험합니다.”

또 충돌.

안전은 무조건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 멈추다 다른 시스템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에이드리언은 이 회의에서 발언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 사고 때문에 자기 판단이 과도하게 보수적일 수 있었다.

에블린에게 미리 말했다.

“이 안건 회피하겠습니다.”

“왜?”

“개인 이해관계.”

“법적 이해충돌은 아닙니다.”

“판단편향은 있을 수 있습니다.”

에블린이 잠깐 그를 봤다.

“좋은 회피네요.”

회의는 사무엘 오카포와 현장노동자, 운영자 중심으로 진행됐다.

결론.

자동정지는 유지.

대신 오경보를 줄이기 위해 시험단계를 둘로 나눔.

저위험 시뮬레이션.

현장 저출력시험.

전체부하 연결.

각 단계에서 중지권.

그리고 작업자 개인이 ‘이상하다’고 느끼면 징계 없이 중지 요청 가능.

아버지 사고보고의 독립중지권 강화가 실제 제도가 됐다.

엘리가 근무하던 팀의 관리자도 감사청문에 나왔다.

“처음엔 화났습니다.”

“왜요?”

“일정이 다섯 시간 밀렸으니까요.”

“징계하려 했습니까?”

관리자는 잠깐 침묵했다.

“평가에 한 줄 적으려 했습니다.”

“실제로?”

“안 적었습니다.”

“왜?”

“베어링 깨진 거 보고.”

노동자대표가 말했다.

“결과가 틀렸으면 적었겠네요.”

관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중지권이 결과적으로 맞았을 때만 보호된다면 사람은 진짜 불확실한 순간에는 못 누른다.

새 규칙.

중지 판단은 결과가 아니라 당시 합리적 근거로 평가.

사후결과가 판단자의 권리를 거꾸로 결정하지 않게.

엘리는 중지버튼을 누른 뒤 5분 동안 후회했다고 했다.

“틀렸으면요?”

감사관이 물었다.

“다들 나 때문에 다섯 시간 늦는 거잖아요.”

“그래도 눌렀고.”

“소리가 이상했으니까.”

“규정 알고 있었습니까?”

“알죠.”

“그럼 왜 후회?”

엘리가 웃었다.

“규정이 대신 욕먹어주진 않잖아요.”

회의장에 웃음이 났다가 곧 조용해졌다.

그게 제도의 남은 과제였다.

권리를 주는 것.

그리고 그 권리를 쓴 사람을 혼자 남겨두지 않는 것.

현장기사 엘리 워드가 이 제도를 사용한 첫 사람 중 하나였다.

37화에서 철도야드 경계선 문제로 조사받았던 그 사람.

이제 정식 전력·철도 통합정비사.

시험 중 진동값이 이상했다.

시스템은 허용범위.

엘리는 멈췄다.

관리자가 물었다.

“근거?”

“소리가 다릅니다.”

“센서는 정상.”

“그래도.”

옛날 같으면 경험이라는 말로 무시됐을 수도 있다.

새 규칙.

중지.

점검.

베어링 결함.

실제.

리아가 에이드리언에게 말했다.

“당신 아버지 사고 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멈춘다고 불평했잖아요.”

“네.”

“오늘은 사람 때문에 멈춰서 살았습니다.”

에이드리언은 그 문장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아버지 이름 넣지 마세요.”

“안 넣습니다.”

리아가 말했다.

“그냥 당신한테 말한 거예요.”

그게 고마웠다.

저녁.

에이드리언은 집에서 아버지의 종이 메모를 꺼냈다.

3번 패널 접점 재확인. 서부선 부하 올리기 전 냉각팬 진동 체크.

‘진동 체크.’

오늘 엘리도 센서보다 소리를 먼저 들었다.

에이드리언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종이를 다시 접어 넣었다.

마라가 저녁에 왔다.

이제 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로 집을 오갔다.

마라가 물었다.

“오늘 괜찮아?”

“네.”

“거짓말.”

“조금.”

그는 오늘 보고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비슷한 사고가 날 뻔했는데 멈췄습니다.”

마라는 이해했다.

“좋은 소식이네.”

“네.”

“기분은?”

“좋아야 하는데.”

“꼭?”

에이드리언은 생각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규칙으로 바뀐 건 좋은 일.

그렇다고 죽음이 필요했다는 뜻은 아니다.

둘은 별개였다.

“안 좋은 일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마라가 말했다.

“그 정도면 돼.”

표준채택식에는 에이드리언이 가지 않았다.

대신 현장노동자 대표와 전력기술자들이 설명했다.

노아미가 물었다.

“케인 조정자 아버지 사고에서 시작된 규정인데 왜 본인은 안 왔습니까?”

리아가 답했다.

“그 사고가 한 가족 이야기가 되면 다른 현장사람들이 자기 규정이라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에이드리언도 그 판단에 동의했다.

아버지 죽음이 영구한 상징이 되는 것보다

이름 없이 작동하는 규칙이 되는 편이 더 맞았다.

다음 주 혼합세대 전력설비 통합시험 표준이 Open Corridor Network 전체에 채택됐다.

지역마다 설비는 달랐다.

구형.

신형.

회사제.

공공제.

모두 같은 장비로 바꾸지는 않았다.

대신 연결 전에 상호작용을 시험하는 규칙만 공유했다.

개선위원회는 새 지표를 만들었다.

STOP WITHOUT PENALTY

중지권 요청 건수.

실제 위험 발견률.

불이익 신고.

재개시간.

안전만 보는 것도, 속도만 보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멈출 수 있고 다시 움직일 수도 있어야 했다.

리아가 말했다.

“당신 아버지 사고에서 결국 또 라인 이야기 나오네요.”

에이드리언은 메모를 접었다.

“아버지는 그런 거 싫어했을 겁니다.”

“뭘?”

“자기 이름 붙이는 거.”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표준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0.8초.

아버지를 죽인 시간.

2년 뒤 0.6초가 누군가를 죽이지 못했다.

에이드리언은 그걸 승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만 같은 종류의 사고가

두 번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데려가지는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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