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84화 — 사십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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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와 에이드리언의 첫 데이트가 언제였는지는 나중에 둘도 의견이 달랐다.
마라는 2086년 아버지 장례 뒤 저녁이라고 했다.
에이드리언은 그건 데이트가 아니라고 했다.
“업무 얘기 20분 금지였잖아요.”
“그게 데이트 아니면 뭔데?”
“식사.”
“둘이?”
“네.”
“업무 말고?”
“…네.”
“데이트네.”
논쟁은 그 뒤로도 끝나지 않았다.
◆2087년 11월.
아스터 베이.
저녁 8시.
그날 약속을 잡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마라는 야간수술.
에이드리언은 캐스케이드 회의.
한 번은 공습경보.
한 번은 그냥 둘 다 너무 피곤해서 취소.
마라가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이러다 내년에 먹겠다.
에이드리언.
일정 우선순위를 높이겠습니다.
마라.
데이트를 프로젝트처럼 관리하지 마.
그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결국.
알겠습니다. 그냥 목요일.
마라.
그게 낫네.
둘은 정말로 일정을 잡아 식당에 갔다.
이번 규칙.
업무 얘기 40분 금지.
마라가 타이머를 켰다.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진짜 켭니까?”
“당신 못 믿어서.”
“저도 이제 위임 잘합니다.”
“일을 위임하는 거랑 말 안 하는 건 다르지.”
◆첫 3분.
날씨.
식당음악.
메뉴.
4분째.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오늘 회랑—”
마라가 손을 들었다.
“실격.”
“회랑이라고만 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잖아.”
타이머.
36분 남음.
에이드리언은 메뉴를 진지하게 봤다.
“이거 먹어본 적 있습니까?”
“전쟁 전에는.”
“맛있어요?”
“평범해.”
“그럼 왜 시켜요?”
“평범한 거 먹고 싶어서.”
그 답이 마음에 들었다.
◆둘은 어릴 때 이야기를 했다.
마라는 백 살 넘은 자기 할머니가 아직도 자기를 ‘애’라고 부른다고 했다.
에이드리언은 아버지가 전구를 일부러 자기가 갈게 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 메모 아직 갖고 있어?”
“네.”
“어디?”
“집.”
“박물관 안 보냈네.”
“당신이 말렸잖아요.”
“잘했네.”
◆15분.
에이드리언은 마라가 좋아하는 음악을 몰랐고, 마라는 에이드리언이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걸 처음 알았다.
“왜?”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여서.”
마라가 웃기 시작했다.
“진짜 당신답다.”
“뭐가요?”
“공포영화에서까지 의사결정 품질을 봐?”
“문이 있는데 왜 지하실로 내려갑니까?”
“그래서 영화지.”
“나오면 안 됩니까?”
마라는 웃다가 눈물을 닦았다.
“당신이랑 공포영화 꼭 봐야겠다.”
◆28분.
이번엔 마라가 실수했다.
“병원에서 오늘—”
에이드리언이 손을 들었다.
“실격.”
마라가 시계를 봤다.
“이제 12분인데.”
“규칙은 규칙입니다.”
“얄밉네.”
처음으로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조금 쉬워졌다.
◆타이머 종료.
마라가 말했다.
“이제 일 얘기해도 돼.”
에이드리언은 잠깐 생각했다.
“별로 안 하고 싶습니다.”
마라가 눈을 좁혔다.
“아픈가?”
“왜요?”
“당신이?”
“아닙니다.”
둘 다 웃었다.
◆둘은 식당을 나가기 전 다음 약속 얘기를 했다.
마라가 말했다.
“다음엔 영화.”
“공포영화만 아니면.”
“공포영화.”
“왜 굳이?”
“당신이 지하실 내려가는 사람들 보면서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고 싶어서.”
“그건 고문 아닙니까?”
“데이트.”
에이드리언은 두 단어의 차이를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마라는 그 표정을 보고 또 웃었다.
식당 밖.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자 셋.
“케인 조정자.”
“엘리스 박사.”
“두 분 개인적인 관계입니까?”
마라의 표정이 즉시 굳었다.
에이드리언은 공개브리핑 때처럼 답하려 했다.
마라가 먼저 말했다.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기자.
“공직 이해충돌 가능성 때문에—”
그 말에는 근거가 있었다.
마라는 의료분과 핵심인물.
에이드리언은 연속성조정청 수장.
둘이 관계라면 정책 이해충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진은 이미 퍼졌다.
둘이 식당을 나오는 장면.
손을 잡지도 않았다.
키스도 없었다.
그냥 같은 문으로 나왔다.
그런데 온라인은 그 빈칸을 알아서 채웠다.
누군가는 결혼설.
누군가는 의료정책 특혜설.
누군가는 Mara가 Organizer의 ‘실세’라는 말을 만들었다.
마라는 그 단어에서 화가 났다.
“내가 200년 공부해도 누구 여자친구로 설명할 사람들이네.”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기사 대응할까요?”
“아니.”
잠깐.
“이해충돌만 제대로 공개해.”
그녀는 자기 경력을 사생활 방어를 위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택도 존중했다.
다음 날 노아미가 먼저 연락했다.
“제가 기사 쓰기 전에 묻겠습니다.”
마라.
“당신도?”
“사생활 자체는 안 씁니다.”
“그럼?”
“이해충돌 규칙.”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공개하면 되지 않습니까?”
마라가 그를 봤다.
“뭘 어디까지?”
문제가 생겼다.
공직자는 모든 사적관계를 공개해야 하나?
친구.
가족.
연인.
동료.
어디부터?
◆에블린이 규칙을 가져왔다.
관계 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해관계를 신고.
마라와 에이드리언.
의료정책에서 직접 이해충돌 가능.
따라서 마라 소속기관·분과 관련 예산·인사·계약안건에서는 에이드리언 단독결정 금지.
이미 대부분 단독결정이 아니었다.
마라 역시 에이드리언 개인 관련 의료·보상 의사결정이 생기면 회피.
에블린은 둘에게 이해충돌 신고서를 따로 설명했다.
“연애를 신고하는 문서 아닙니다.”
마라가 말했다.
“다행이네요.”
“공적 결정이 사적관계 때문에 흐려질 수 있는 부분만 신고합니다.”
에이드리언.
“의료분과 전체?”
“아니요. Mara 개인 소속기관, 직접 계약, 인사, 보상처럼 구체적 이해관계.”
마라가 물었다.
“내가 회의에서 의견 내는 것도 제한?”
“그건 전문역할.”
“좋아요.”
둘은 동시에 안도했다.
사적관계를 보호한다고 전문성을 지울 필요도 없었고, 전문가라는 이유로 사적관계를 없는 것처럼 할 필요도 없었다.
관계세부.
비공개.
공개되는 것.
Potential personal conflict disclosed. Recusal rules active.
노아미가 말했다.
“이 정도면 됩니다.”
마라.
“기사 제목은?”
“‘조정청 이해충돌 규칙 확대’.”
“우리 이름?”
“본문에 최소한.”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노아미가 웃었다.
“제가 로맨스 기자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인터넷은 달랐다.
사진.
추측.
밈.
Organizer Organized a Date
에이드리언이 화면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마라는 크게 웃었다.
“이건 저장해야겠다.”
“왜요?”
“역사자료.”
“모리스랑 똑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은 관계를 공개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업무 금지시간 60분.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너무 깁니다.”
마라.
“지난번에 40분 넘겼잖아.”
“훈련된 겁니다.”
“그럼 60분.”
“45.”
“60.”
“50.”
마라가 웃었다.
“좋아.”
협상은 이상하게 익숙했다.
◆첫 60분 약속은 다음 주 실제로 지켰다.
공포영화.
마라는 영화보다 옆자리 에이드리언을 더 많이 봤다.
살인범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휴대단말을 놓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그가 제일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왜 저걸 두고 가.”
“쫓기잖아.”
“비상연락수단입니다.”
“영화야.”
마라가 웃었다.
둘이 영화관을 나왔을 때 아무 기자도 없었다.
그날은 그 사실이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에이드리언은 일정표에 새 반복일정을 넣었다.
Dinner — Mara
자동으로 업무일정 우선순위 아래로 밀리지 않게 보호시간을 설정했다.
그걸 보고 잠깐 웃었다.
마라는 같은 날 자기 일정에도 반복항목을 넣었다.
Dinner — Adrian
에이드리언이 그걸 우연히 보고 말했다.
“당신도 프로젝트처럼 관리하네요.”
“시끄러워.”
“제가 맞았죠?”
“다음 주 취소한다.”
“죄송합니다.”
둘은 웃었다.
공개규칙은 필요했다.
하지만 관계 자체는 규칙보다 조금 덜 정확해도 됐다.
자기 삶에도
중단하면 안 되는 라인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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