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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77화 — 서부 변전소

디 오거나이저 · 77 / 31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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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전투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뉴스 속보도 뜨지 않았다.

2086년 6월 19일.

오전 4시 37분.

서부 철도전력 복구 3구역.

노후 변전소.

재연결 시험.

보호계전기 이상.

차단기 하나가 명령보다 늦게 열렸다.

0.8초.

그 짧은 시간에 아크 플래시가 발생했다.

에이드리언이 연락을 받은 것은 오전 5시 12분.

발신.

노스리버 공공안전망.

“에이드리언 케인 씨?”

“네.”

“서부 3구역 변전사고 관련 가족연락입니다.”

그 순간 어떤 말이 뒤에 올지 알았다.

사람은 이상했다.

듣기 전에도 안다.

그런데 듣지 않으면 아직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아버지입니까?”

상대가 잠깐 침묵했다.

“네.”

병원.

마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병원은 자기 소속이 아니었지만 응급의료망으로 보고가 들어왔다.

에이드리언이 도착했을 때 마라가 복도에 있었다.

“왜 여기 있어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당신 혼자 올 것 같아서.”

그는 그 말에 고맙다고 하지 못했다.

“상태는요?”

마라는 의사 얼굴로 돌아갔다.

“심한 전기화상. 심정지 두 번. 이송 중 첫 번째, 응급실에서 두 번째.”

“지금은?”

마라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아버지는 오전 5시 41분 사망선고.

전쟁 사망자가 아니었다.

군사공격도 아니었다.

사보타주 징후도 없었다.

복구작업 중 산업재해.

그 사실이 에이드리언을 더 화나게 했다.

세상은 전쟁 중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평범한 사고로 죽었다.

어머니는 영상통화로 먼저 연결됐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적어도 화면에서는.

“어디야?”

“병원.”

“얼굴 봤어?”

“아직.”

“봐.”

에이드리언이 멈췄다.

“왜요?”

“안 보면 나중에 후회해.”

그 말이 너무 단순해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작업복과 개인물품은 작은 회색 상자 하나에 들어 있었다.

손목공구.

구형 절연장갑.

작업증.

반쯤 먹다 남은 민트사탕.

그리고 종이 메모.

에이드리언은 유서 같은 걸 기대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아니었다.

메모에는 다음 교대조에게 남긴 작업사항만 적혀 있었다.

3번 패널 접점 재확인. 서부선 부하 올리기 전 냉각팬 진동 체크.

마지막까지 다음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종이를 오래 봤다.

마라는 옆에서 말했다.

“가져갈래요?”

“네.”

“나중에 박물관 기증 같은 거 하지 말고.”

그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왜요?”

“아버지 물건이잖아.”

그 말 때문에 메모가 갑자기 역사자료가 아니라 가족물건으로 돌아왔다.

영안실.

아버지 얼굴은 생각보다 평온하지 않았다.

화상 때문에 일부는 가려져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손을 봤다.

어릴 때 기억나는 손.

전력기술자.

철도변전소.

늘 기름냄새가 조금 나던 손.

장갑 흔적.

그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라는 문 밖에서 기다렸다.

에이드리언이 나왔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했다.

“0.8초랍니다.”

“네.”

“차단기.”

“들었습니다.”

“0.8초.”

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드리언은 벽을 봤다.

“우리가 모든 걸 초 단위로 기록하잖아요.”

“응.”

“0.8초 때문에.”

말이 끝나지 않았다.

마라는 기다렸다.

“이런 것도 시스템 문제입니까?”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일부는.”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조사해야죠.”

“또 조사.”

“네.”

마라가 말했다.

“당신 지금 답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가 그녀를 봤다.

“무슨 뜻입니까?”

“화낼 사람 찾는 것 같아.”

그 말이 맞아서 에이드리언은 화를 낼 수 없었다.

사고조사.

리아가 직접 참여했다.

철도전력계통.

보호계전기.

정비이력.

작업허가.

인력피로.

부품대체.

첫 보고.

차단기 자체는 검사통과.

문제는 구형 보호계전기와 새 마이크로그리드 동기화 모듈의 예외상태 조합.

각각은 정상.

같이 쓸 때 특정 조건에서 지연.

매뉴얼에 없었다.

작업팀은 왜 시험했는가.

서부 철도전력 안정화를 위해.

누가 강요했나.

아무도.

일정압박은 있었나.

있었다.

라이프라인 수송량 증가.

재건공사.

여름 피크.

하지만 작업중지 권한도 있었다.

아버지는 팀장에게 시험 계속 의견을 냈다.

본인 선택도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보고서를 읽다가 그 문장에서 멈췄다.

누군가 한 명에게 화를 내기 어려웠다.

장례.

작게 하려 했다.

실패했다.

철도전력 직원.

공공보건 직원.

정부사람.

리아.

오르테가.

토머스.

아이작.

노아미는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에이드리언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모리스는 뒤쪽에 섰다.

마라는 가족석 근처.

추도사에서 에이드리언은 공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가 전쟁복구의 영웅이었다는 말도.

인프라를 지켰다는 말도.

대신 말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전구 하나 나가면 제가 갈아보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조금 웃었다.

“제가 망가뜨리면 그때 와서 고쳤습니다.”

그는 잠깐 멈췄다.

“왜 처음부터 아버지가 안 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기억.

아버지 대답.

네가 할 수 있는 걸

내가 계속 하면

너는 평생 못 한다.

에이드리언은 숨을 골랐다.

“요즘 그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 이상은 못 했다.

장례 뒤 마라와 둘이 걸었다.

비가 조금 내렸다.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저한테 마지막으로 쉬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똑같이 답했죠?”

“네.”

“가족답네요.”

에이드리언이 웃다가 갑자기 울었다.

정말 갑자기.

말도 없이.

그는 고개를 숙였다.

마라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울지 말라고도.

그냥 옆에 있었다.

몇 분.

아니, 더 길었을 수도 있다.

에이드리언이 겨우 말했다.

“미안합니다.”

“뭐가?”

“이런 거 보여서.”

마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말 다시 하면 화낼 거야.”

그는 코로 숨을 들이켰다.

“왜요?”

“당신 사람인 거 내가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 말에 다시 눈물이 났다.

이번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장례 다음 날 에이드리언은 출근하려 했다.

마라가 병원 앞에서 막았다.

“어디 가?”

“오리슨.”

“왜?”

“재건회의 둘째 날입니다.”

“다른 사람이 진행할 수 있어.”

“이미 일정이—”

“에이드리언.”

마라가 이름을 천천히 불렀다.

“당신 아버지 어제 죽었어.”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루 빠진다고 지역 재건이 무너지면 지난 3년 동안 당신이 뭘 만든 거야?”

아버지 추도사에서 했던 말이 그대로 돌아왔다.

네가 할 수 있는 걸 내가 계속 하면 너는 평생 못 한다.

에이드리언은 결국 회의에 가지 않았다.

리아가 대신 진행했다.

토머스와 에블린이 분과를 맡았다.

회의는 끝났다.

결정도 났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 사실이 슬프면서도 조금 안심됐다.

한 달 뒤 서부 변전사고 최종보고.

개인과실 단독원인 없음.

설계·통합시험 부족.

구형·신형 시스템 상호작용.

일정압박.

현장위험정보 부족.

개선.

혼합세대 전력설비 통합시험 의무.

작업팀 독립중지권 강화.

사고데이터 공개.

에이드리언은 보고서에 특별한 문장을 넣지 않았다.

아버지 이름도 정책근거로 반복하지 않았다.

사망자는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 마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 먹었습니까?

답.

아직.

같이 먹을까요?

몇 분 답이 없었다.

에이드리언은 괜히 단말을 세 번 확인했다.

마침내.

네. 오늘은 업무 얘기 30분 금지.

그가 답했다.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라.

그럼 20분.

그 약속 자체가 둘 사이의 작은 변화였다.

작지만 분명했다.

처음으로

둘은 회의가 아니라 서로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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