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8화 — 첫 겨울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첫눈은 전쟁을 모른 척 내렸다.
아스터 베이의 검게 그을린 항만에도.
하버 리치의 파손된 저장탱크에도.
웨스트미어 밭에도.
브라운필드 임시검문소에도.
같은 흰색이었다.
11월 29일.
전쟁이 시작된 지 몇 주.
노스리버의 첫 겨울비상계획이 발동됐다.
◆노아 프라이스의 편의점에서는 생수보다 난방패치가 먼저 팔렸다.
“한 사람당 네 개.”
이제 그는 배급규칙을 읽는 데 익숙했다.
손님도 익숙해졌다.
처음처럼 모든 제한에 화를 내진 않았다.
대신 더 구체적으로 따졌다.
“왜 네 개예요?”
“오늘 공급량 기준.”
“내일은?”
“오전 8시 갱신.”
“지역난방 들어오면?”
“구매제한 풀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답이 많았다.
그게 안정이라는 건지, 사람들이 위기에 익숙해진 것뿐인지는 노아도 몰랐다.
◆아스터 베이 북부.
Mina Rhee의 수술날.
몇 주 미뤄졌던 심장수술.
마라가 수술 전 마지막 확인을 했다.
“무섭니?”
미나가 말했다.
“조금.”
“좋아.”
“왜요?”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잖아.”
미나의 아버지 다니엘이 웃지 못했다.
“재료 다 있는 거 맞죠?”
마라가 말했다.
“네.”
“전력?”
“독립망.”
“또 경보 뜨면?”
“수술 계속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질문을 멈췄다.
전쟁 전에는 보호자가 수술 성공률만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전력과 물류까지 물었다.
수술실 문이 닫혔다.
◆웨스트미어.
헬렌 워드는 첫눈이 싫었다.
밭이 쉬는 계절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휴식이었다.
올해는 계산이었다.
비료 얼마나 남았나.
종자비축.
난방연료.
봄까지 트럭부품.
아들 엘리가 창고문을 닫았다.
“도시에서 종자비축 보호등급 승인됐대.”
헬렌이 말했다.
“진짜?”
“농업대표 동의 없이는 해제 못 한대.”
“전쟁 더 심해지면?”
“지역의회 긴급승인 필요.”
헬렌은 사일로를 봤다.
“그래도 뺏어갈 수도 있겠네.”
“법은 그렇지.”
“그럼 왜 좋아해?”
엘리가 웃었다.
“전에는 버튼 하나였잖아. 이제는 세 명은 설득해야 돼.”
완벽한 보호는 아니었다.
그래도 문 앞에 자물쇠가 하나 더 생겼다.
◆노스리버 비상조정평의회는 7일 자동실효 시한을 이미 한 번 맞았다.
하버 리치 청문 직후 지역의회가 임시 연장법을 통과시켰다.
기간.
30일.
권한은 오히려 줄었다.
대규모 대피.
광역배급 등급.
군과 민간의 공동작전.
이 세 가지는 조정자 단독결정 금지.
관련기관 3분의 2와 지역의회 비상위원 승인 필요.
새 조정자.
클라라 렌.
노스리버 행정부 부책임자.
에이드리언보다 스물여섯 살 많고, 그보다 말이 적었다.
그녀는 취임 첫날 말했다.
“내가 케인보다 잘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기자가 물었다.
“그럼 왜 맡으셨습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짧은 답.
사람들은 그걸 좋아했다.
에이드리언은 공식 자문위원이었다.
결재권 없음.
처음 며칠은 이상했다.
그다음에는 조금 익숙해졌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12월 첫 주.
가장 큰 문제는 난방이었다.
연료수입 감소.
전력 불안.
지역난방망 손상.
사무엘 오카포가 제안했다.
“건물별 온도를 똑같이 유지하려 하지 맙시다.”
우선순위.
병원.
요양시설.
영유아 공동주거.
일반주거.
비어 있는 상업건물.
낮 시간 사무실.
마라가 말했다.
“고령자 주택을 일반주거로 넣으면 안 됩니다.”
사회복지국이 데이터를 가져왔다.
독거고령자.
만성질환.
가정산소.
이번에는 처음부터 의료와 복지를 같이 넣었다.
9화의 전력표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았다.
◆아스터 베이에서는 ‘Warm Room’이 생겼다.
난방이 안정된 학교체육관.
도서관.
지역회관.
집이 추운 사람은 낮 동안 와 있을 수 있었다.
첫날, 노아의 편의점 앞 학교에도 열렸다.
그는 점심시간에 들어가봤다.
아이.
노인.
재택근무자.
충전기를 꽂은 사람.
뜨거운 차를 마시는 사람.
전쟁 전 같으면 서로 만날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벽에는 안내문.
이 시설은 배급등급과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31화 때 배급표로 난리가 난 뒤 일부 서비스는 아예 등급을 보지 않게 바뀌었다.
과거의 실수가 조금 다른 규칙으로 남았다.
◆12월 6일.
미나 리의 수술 성공.
마라는 다니엘에게 말했다.
“지금은 안정적입니다.”
다니엘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감사합니다.”
“수술팀한테 하세요.”
“다 포함해서요.”
미나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병실 장비는 남부 마이크로그리드 백업에 연결돼 있었다.
수술재료 일부는 라이프라인으로 왔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위기근로자 가족돌봄 덕분에 출근했다.
한 아이가 수술받는 데 수십 개의 선이 연결돼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소식을 마라의 짧은 메시지로 받았다.
Mina surgery successful.
그는 답했다.
Good.
쓰고 보니 너무 짧아 한 줄을 더 붙였다.
정말 다행입니다.
마라는 웃는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처음이었다.
◆첫눈은 이틀 만에 녹았다.
그다음 눈은 더 많이 왔다.
라이프라인은 멈추지 않았다.
느려졌다.
열차가 40분 늦고, 트럭이 돌아가고, 바지선은 일부 중단됐다.
그래도 다음 날 다시 움직였다.
리아가 예전에 말했던 기준.
한 번 되는 건 시스템이 아니다.
문제 뒤에도 다시 돌아가야 시스템이다.
겨울 첫 주가 끝날 때, 라이프라인의 평균 일일수송량은
5,480톤.
처음 1,600톤 목표보다 세 배가 넘었다.
12월 8일.
난방연료 부족지역에서 첫 자발적 공동난방이 시작됐다.
아파트 한 동은 빈 세대 난방을 완전히 끄고 거주세대를 두 구역으로 모았다.
사람들은 불평했다.
낯선 이웃과 복도에서 자주 마주쳐야 했고, 아이들은 밤에도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들었다.
대신 건물 전체 연료사용량은 23% 줄었다.
사회복지국은 그 방식을 다른 단지에 강제로 적용하지 않았다.
선택지로만 공개했다.
며칠 뒤 열두 곳이 따라 했다.
한 곳은 실패했다.
주민갈등 때문에 중단.
정책보고에는 성공사례 열두 곳과 실패사례 한 곳이 같이 들어갔다.
클라라가 말했다.
“실패한 곳도 남겨두세요.”
“왜요?”
“다른 단지가 같은 조건이면 따라 하지 말아야 하니까.”
전쟁 중에도 실패는 숨길 정보가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줄 데이터였다.
겨울 첫 주가 끝날 때, 라이프라인의 평균 일일수송량은
5,480톤.
처음 1,600톤 목표보다 세 배가 넘었다.
노아는 저녁에 가게 셔터를 내리며 점장에게 말했다.
“요즘은 물건 들어와도 아무도 박수 안 쳐요.”
점장이 웃었다.
“그게 좋은 거야.”
“왜요?”
“당연해졌다는 거잖아.”
노아는 잠깐 생각했다.
전쟁 전에는 빵이 오는 걸 아무도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 다시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었다.
한편 웨스트미어에서는 헬렌이 겨울용 종자창고 온도를 직접 확인했다.
도시와 농촌 모두 오늘을 버티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제 더 어려운 일은 봄까지 남기는 것이었다.
첫 겨울 비상계획에는 눈이 더 오면 학교체육관을 숙소로 바꾸는 안도 들어 있었다.
노아는 그 안내문을 보며 몇 주 전 그곳이 그냥 체육관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같은 건물이 수업장, 대피소, 난방실, 임시숙소가 됐다.
도시는 새로운 건물보다 기존 공간의 다른 쓰임으로 먼저 버티고 있었다.
사무엘은 난방계획 옆에 봄철 전력복구 예상도까지 붙였다.
리아는 제설차량 연료를 따로 빼뒀다.
마라는 겨울철 호흡기 환자 증가치를 반영했다.
위기는 계절이 바뀐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형태만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다음 달의 문제를 동시에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이제는 그 숫자가 특별한 성공이 아니라 내일도 유지해야 할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