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2화 —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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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리언의 사임서는 세 문장이었다.
하버 리치 대피결정의 최종 조정책임자로서
노스리버 비상조정평의회 조정자직에서 사임합니다.
업무공백을 막기 위해
규정된 승계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최소한의 인수인계를 수행하겠습니다.
세 번째 문장을 쓰고 지웠다.
다시 썼다.
지웠다.
결국 두 문장만 남겼다.
◆오전 7시 20분.
에블린이 사임서를 읽었다.
“받을 수 있습니다.”
에이드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출하겠습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
“뭡니까?”
“왜 사임합니까?”
“289명이 죽었습니다.”
“그건 결과.”
에블린이 말했다.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제가 최종결정했습니다.”
“그것도 사실.”
“그럼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에이드리언의 표정이 굳었다.
“왜요?”
에블린은 사임서를 탁자에 놓았다.
“책임지고 떠나는 것과 결과가 너무 괴로워서 떠나는 건 다릅니다.”
“둘 다일 수 있죠.”
“맞습니다.”
에블린이 말했다.
“그래서 구분하자는 겁니다.”
◆오전 8시.
긴급 평의회.
에이드리언이 사임의사를 밝혔다.
리아가 가장 먼저 말했다.
“반대.”
“이유는?”
“지금 당신 바꾸면 오늘 모든 안건이 또 당신 후임한테 올라갑니다.”
토머스.
“시장도 흔들립니다.”
에이드리언이 얼굴을 찌푸렸다.
“시장 때문에 제가 남아야 합니까?”
“그 이유 하나는 아닙니다.”
마라는 말이 없었다.
오르테가도.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두 분은요?”
오르테가가 말했다.
“사임할 권리는 있습니다.”
“찬성입니까?”
“그건 다릅니다.”
“무슨 뜻이죠?”
“군에서 작전실패 뒤 지휘관 교체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오르테가는 손을 모았다.
“반대로 실패 직후 교체하면 조사가 아니라 희생양 만들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를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뇨.”
“그럼?”
“책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오르테가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더 조사받아야 합니다.”
◆마라가 말했다.
“저는 지금 사임 반대.”
에이드리언이 그녀를 봤다.
“왜요?”
“당신이 필요해서가 아니에요.”
“그럼?”
“당신이 나가면 사람들이 이걸 결론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제가 잘못했다는 결론?”
“혹은 당신만 잘못했다는 결론.”
마라는 냉정했다.
“둘 다 아직 모릅니다.”
에이드리언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압니다.”
“뭘?”
“Full Evacuation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알아.”
“안 했고.”
“알아.”
“사람이 죽었습니다.”
마라가 말했다.
“그것도 알아.”
그녀는 조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서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내일 청문에서 말하세요.”
“그리고 나서?”
“그다음 사임하든 말든 결정해.”
◆에블린이 절차를 정리했다.
사임서는 유효.
다만 에이드리언이 제출시점을 공개청문 직후로 지정할 수 있음.
현재 24시간 임기는 오전 9시 종료.
재신임투표는 예정대로.
재신임되더라도 사임권 소멸 안 함.
토머스가 말했다.
“절차가 복잡하네요.”
에블린.
“권력은 복잡하게 끝나는 게 안전합니다.”
◆오전 9시.
재신임 투표.
찬성 6.
반대 2.
기권 3.
전날보다 크게 떨어졌다.
그래도 과반.
에이드리언은 24시간 더 조정자였다.
노아미가 방송에서 말했다.
“사임의사를 밝힌 조정자가 다시 재신임됐습니다.”
앵커가 물었다.
“모순 아닙니까?”
“평의회는 오늘 업무를 맡겼고, 케인 조정자는 청문 뒤 사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노아미가 말했다.
“아직 결론이 안 났다고.”
◆오전 10시 30분.
피해자 가족 대표가 평의회에 면담을 요청했다.
대표는 소피아 나일이 아니었다.
4번 대피소에서 배우자를 잃은 제이미 코르.
그는 서류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사임하신다면서요.”
“청문 뒤 제출할 생각입니다.”
제이미가 물었다.
“왜요?”
에이드리언은 어제부터 계속 들은 질문에 같은 답을 하려다 멈췄다.
“제가 최종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제이미가 말했다.
“그럼 사임하면 끝입니까?”
“아닙니다.”
“당신은 다른 직장 가고, 우린 끝?”
“그런 뜻 아닙니다.”
“근데 그렇게 보이잖아요.”
제이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감옥 가야 한다는 말 하는 거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우리 구역을 남겼냐는 거예요.”
“내일 공개청문에서—”
“방송으로 말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요.”
에이드리언은 숨을 골랐다.
◆그는 하버 리치 지도와 당시 자료를 열었다.
공격확률.
대피시간.
라이프라인 영향.
대피소 등급.
하나씩 설명했다.
제이미는 중간에 두 번 질문했다.
“그럼 물은 끊길 수도 있었던 거네요.”
“네.”
“근데 결국 물은 안 끊겼죠.”
“결과적으로는.”
“그리고 우리 쪽은 터졌고.”
“네.”
“당시엔 몰랐다.”
“네.”
제이미는 오래 말이 없었다.
“설명은 이해합니다.”
에이드리언이 그를 봤다.
제이미가 말했다.
“납득은 안 됩니다.”
그 차이를 에이드리언은 받아들였다.
“네.”
◆제이미가 일어섰다.
문 앞에서 멈췄다.
“내일 청문에서 사임 얘기부터 하지 마세요.”
“왜요?”
“그건 당신 얘기잖아요.”
그는 가방을 들었다.
“먼저 우리 얘기부터 해요.”
문이 닫혔다.
에이드리언은 사임서를 다시 열었다.
두 문장.
너무 짧아 보였다.
사임은 책임의 끝이 아니라 책임을 어떻게 계속 질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제출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오후 4시.
사임소식이 공개되자 시민반응은 예상보다 더 갈렸다.
‘당연히 나가야 한다.’
‘도망친다.’
‘지금 바꾸면 더 위험하다.’
‘사람 죽었는데 자리 지키나.’
서로 모순되는 비판이 동시에 올라왔다.
노아미가 방송에서 말했다.
“사임은 책임의 증거일 수도, 책임회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청문이 중요합니다.”
노아의 편의점에서도 손님들이 싸웠다.
“289명 죽었으면 끝이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럼 누가 들어가?”
“다른 사람.”
“누구?”
첫 사람이 대답하지 못했다.
노아는 계산하면서 들었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바꾸는 문제를 축구감독 바꾸듯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일 아침 배급차량은 누가 조정할지 실제 답이 필요했다.
◆저녁 7시.
에이드리언은 조정자 집무실에서 자기 계정의 권한목록을 열었다.
전력 한시명령.
라이프라인 조정.
비상계약 승인.
공공안전 충돌조정.
하나씩 후임계정으로 이전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권력은 버튼 하나로 생기지 않았다.
수십 개의 접근권한과 서명키, 회의초대, 보고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이리스가 말했다.
“이전패키지 만들어두겠습니다.”
“다음 조정자도 이렇게 사임하기 쉽게.”
“그 말은 이상하네요.”
“필요합니다.”
권력을 시작하는 도구보다 끝내는 도구를 먼저 준비하는 일.
에블린이 좋아할 것 같았다.
에이드리언은 사임서를 다시 열었다.
두 문장.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
새벽 1시.
그는 결국 집무실 소파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하버 리치 4번 대피소의 음성기록이 자꾸 떠올랐다.
‘현재 명령은 현 위치 대기입니다.’
자기가 직접 말한 문장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기 결정에서 내려간 문장이었다.
에이드리언은 단말을 뒤집어 놓았다.
몇 분 뒤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기록을 열지 않았다.
청문자료 목록만 확인했다.
자기에게 불리한 기록이 빠졌는지 세 번 확인한 뒤, 네 번째 열려고 손을 멈췄다.
모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가 없으면 아침이 안 오는 것처럼 굴지 말라.
그는 화면을 껐다.
그는 알람을 오전 5시 30분으로 맞췄다.
청문이 있는 날에도 첫 라이프라인 편성은 움직여야 했다.
사임서는 그대로 열어뒀다.
닫으면 도망치는 것 같았고, 제출하면 너무 빨리 끝내는 것 같았다.
내일 청문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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