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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8화 — 의사

디 오거나이저 · 28 / 31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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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엘리스는 사람이 언제 죽는지는 의사가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죽을 가능성이 언제 커지는지는 숫자로 볼 수 있었다.

오전 8시.

중앙의료원 응급실.

대피오경보 이후 낙상환자는 줄었다.

대신 다른 환자가 늘었다.

투석 중단.

인슐린 보관 실패.

가정산소 장치 배터리 고갈.

정기치료를 미룬 사람들.

전쟁이 길어질수록 총과 폭발이 아닌 이유로 병원이 찼다.

마라는 에이드리언에게 직접 오라고 했다.

“이거 보세요.”

마라가 환자목록을 띄웠다.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응급환자 수가 늘었네요.”

“왜 늘었는지 보세요.”

그가 항목을 읽었다.

지연.

중단.

이동불가.

의약품 부족.

“우리 정책 때문에 생긴 것도 있네요.”

“네.”

마라는 숨기지 않았다.

“당신이 전력을 잘못 줘서가 아니고, 군이 길을 막아서도 아니고, 병원이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럼?”

“시스템이 ‘응급 아닌 것’을 계속 뒤로 미뤘어요.”

선택진료.

정기투석.

재활.

예방치료.

평소에는 하루 미뤄도 되는 일.

그 하루가 사흘이 되고, 일주일이 되면 응급이 됐다.

“우선순위표를 바꿔야 합니다.”

마라가 말했다.

“생명직결과 비생명직결 두 칸으로 나누면 안 돼요.”

에이드리언은 화면을 봤다.

자신이 좋아하던 방식이었다.

중요.

덜 중요.

먼저.

나중.

마라가 말했다.

“나중으로 미룬 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이 아팠다.

마라는 그를 병동으로 데려갔다.

“저 사람.”

창가에 앉은 남자.

백열여덟.

평소라면 주 3회 투석.

교통문제로 두 번 미뤘다.

“오늘 응급투석 들어갑니다.”

“원래 응급환자가 아니었군요.”

“일주일 전에는.”

다음.

젊은 여성.

자가면역 치료제 배송 지연.

“이 사람도?”

“처음엔 48시간 미뤄도 괜찮았습니다.”

다음.

아이.

심장수술 일정 연기.

“저 아이는 아직 안정입니다.”

“그럼 왜 보여줍니까?”

“안정일 때 봐두라고요.”

마라가 말했다.

“응급실로 내려온 뒤 보면 늦으니까.”

에이드리언은 아이를 봤다.

화면에서는 한 줄이었다.

DELAYABLE

현장에서는 얼굴이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마라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수술 언제 가능합니까?”

마라가 말했다.

“현재 계획은 48시간 안입니다.”

“어제는 72시간이라고 했잖아요.”

“상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나빠졌습니까?”

“조금.”

아버지는 에이드리언을 봤다.

“이분은?”

“물류 쪽.”

마라가 짧게 말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그럼 수술재료 오는 거 이분이 하는 겁니까?”

에이드리언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마라가 대신 말했다.

“여러 사람이 합니다.”

그 답이 맞았다.

오전 10시.

비상조정협약 회의.

마라는 의료서비스를 세 단계로 다시 나눴다.

즉시 지금 멈추면 사망 또는 비가역 손상.

누적위험 오늘은 버티지만 지연이 쌓이면 응급화.

연기가능 일정 기간 안전하게 미룰 수 있음.

리아가 말했다.

“철도도 비슷하게 할 수 있겠네요.”

정비.

지금 안 하면 탈선.

며칠 미뤄도 됨.

장기적으로 미루면 시스템 붕괴.

수도도.

전력도.

에이드리언은 표를 봤다.

의료 하나에서 나온 분류가 다른 시스템으로 퍼지고 있었다.

토머스가 말했다.

“금융도 됩니다.”

리아가 웃었다.

“돈에도 응급실이 있어요?”

“결제망 중단은 즉시. 기업 유동성은 누적위험. 장기채권은 연기가능.”

“진짜 있네.”

아이리스가 말했다.

“통신은 더 명확합니다. 소방망 즉시, 일반데이터 누적, 대용량 미디어 연기가능.”

오르테가.

“군도 장비정비를 그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마라가 주변을 봤다.

“이걸 공통규칙으로 쓰려면 하나 더.”

“뭐죠?”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생명직결’이라는 단어 너무 쉽게 쓰지 마세요.”

“왜요?”

“모든 기관이 자기 일이 생명직결이라고 하기 시작합니다.”

리아가 웃었다.

“철도는 실제로 그렇긴 한데.”

“병원도 실제로 그렇습니다.”

마라가 받아쳤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법무직원이 말했다.

“비가역성, 시간한계, 대체가능성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에이드리언이 메모했다.

비가역.

시간.

대체.

단순한 ‘중요도’보다 훨씬 나았다.

점심.

에이드리언이 병원을 나가려는데 아까의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멈췄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가 기차 보내는 사람이에요?”

에이드리언이 당황했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

“아빠.”

옆의 아버지가 민망한 얼굴을 했다.

“제가 잘못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물었다.

“제 수술 것도 기차로 와요?”

마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이드리언도 정확히 몰랐다.

“일부는 올 수도 있어.”

“그럼 기차 안 늦게 해주세요.”

그는 몇 초 뒤에야 대답했다.

“여러 사람이 안 늦게 하려고 하고 있어.”

아이에게는 별로 멋있는 답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장 정확했다.

병원을 나가기 전 마라는 에이드리언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데려갔다.

“왜 계단입니까?”

“엘리베이터 전력 아끼는 중.”

“제가 한 결정 때문입니까?”

“부분적으로.”

몇 층 내려가자 에이드리언이 숨을 조금 거칠게 쉬었다.

마라가 말했다.

“이게 누적위험이에요.”

“계단이요?”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데 계속 쌓이죠. 직원 피로, 환자 이동, 장비운반. 그러다 어디선가 사고 납니다.”

그는 난간을 잡은 자기 손을 봤다.

정책표에는 ‘엘리베이터 사용감축’ 한 줄이었다.

현장에서는 하루 수천 번의 계단이 됐다.

1층에 도착했을 때 마라는 시설팀에 일부 화물엘리베이터 운행을 복구하라고 지시했다.

“전력 더 먹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알아. 대신 사람 덜 망가져.”

밖으로 나오자 마라가 말했다.

“표만 보지 말라는 거.”

“알겠습니다.”

“진짜요?”

“오늘은.”

그날 오후, 마라는 아까 보여준 심장수술 환자의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수술재료 두 품목 중 하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물류망에는 ‘운송 중’.

마라는 에이드리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대신 병원 물류담당자가 직접 라이프라인 의료채널에 문의했다.

12분 뒤 답.

아든 크로스 통과.

예상도착 4시간 20분.

마라는 그 답을 환자 아버지에게 그대로 말했다.

“확실합니까?”

“아뇨. 현재 예상입니다.”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간 뒤 재료는 실제로 도착했다.

마라는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했다.

“왔습니다.”

이번에는 ‘예정’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럼 수술합니까?”

“아이가 오늘 밤 상태 유지하면 내일 오전.”

“또 조건이네요.”

“네.”

마라는 웃지 않았다.

“지금은 조건 없는 약속을 안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신뢰는 확실한 약속보다 지켜진 조건에서 생기고 있었다.

모두가 확실성의 언어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 정도면 됐어요.”

에이드리언이 웃었다.

“그럼 오래 배우죠.”

마라도 처음으로 웃었다.

“오래 사는 시대니까 그건 가능하겠네요.”

마라는 이후 병원 우선순위 화면에 새 열을 하나 추가했다.

DELAY ACCUMULATED

단순히 현재 위험만 보지 않고 얼마나 오래 미뤄졌는지 표시하는 칸이었다.

첫날에는 숫자 하나가 늘었을 뿐이었다.

사흘 뒤에는 그 숫자가 어떤 환자를 먼저 불러야 하는지 바꾸게 될 터였다.

저녁 회의에서 마라는 이 칸을 다른 병원에도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부 병원은 시스템 변경이 번거롭다고 했지만, 하루 더 미룬 환자가 다음 날 같은 등급으로 보이는 문제가 더 컸다.

결국 시범적으로 세 병원이 먼저 붙었고 다음 교대부터 적용됐다.

에이드리언은 그 화면을 사진처럼 기억해뒀다.

나중이라는 말에도 시간이 쌓인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새 기준의 시작이었다.

병원은 그날부터 미룬 시간도 치료기록의 일부로 남겼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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