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화 — 선을 넘은 날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핵무기 사용이 공식 확인된 뒤에도 아스터 베이의 신호등은 작동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후 12시 31분.
에이드리언은 창밖을 봤다.
사람들은 길을 건넜고, 화물차는 교차로에서 멈췄다가 출발했다.
카페 문은 열려 있었다.
배달차량은 정해진 구역에 섰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방사능 영향 예상?”
누군가 물었다.
환경안전국 담당자가 답했다.
“현재 폭발지점과 기상조건 기준으로 노스리버 직접영향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지금 아는 범위에서는요.”
“얼마나 자주 다시 계산합니까?”
“풍향 바뀔 때마다. 기본 30분.”
에이드리언은 시민공지 초안을 봤다.
처음 문장은 짧았다.
노스리버 방사능 영향 없음.
그는 지웠다.
대신 이렇게 썼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와 기상조건 기준, 노스리버 지역에 직접적인 방사능 영향은 예상되지 않습니다. 상황 변화 시 즉시 갱신합니다.
모리스가 말했다.
“사람들은 ‘현재까지’를 빼고 읽겠지.”
“그래도 빼면 안 됩니다.”
“맞아.”
모리스가 창밖을 봤다.
“나중에 틀렸을 때 거짓말이 되니까.”
◆핵폭발보다 먼저 도시를 흔든 건 요오드제 주문이었다.
약국 주문량 19배.
방사선 차폐용품.
비상수.
지하주차장 검색량.
아이리스가 말했다.
“‘핵공격 대피소’ 검색이 32배입니다.”
마라가 의료망에서 끼어들었다.
“요오드제 아무나 먹지 말라고 공지해야 합니다.”
노아미가 물었다.
“왜요?”
“필요 없는 사람이 먹으면 부작용만 생깁니다. 그리고 정작 필요한 사람한테 안 남아요.”
“직접 설명하시죠.”
“제가요?”
“의사가 말하는 게 낫습니다.”
마라는 카메라를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10분 뒤 중앙의료원 로비에 섰다.
“현재 노스리버에 방사성 요오드 노출징후는 없습니다. 예방약을 임의로 복용하지 마십시오.”
노아미가 물었다.
“만약 상황이 바뀌면요?”
“제가 먼저 먹으라고 말하겠습니다.”
“어린이나 임산부는요?”
“현재도 같습니다. 실제 노출위험이 확인되면 우선순위를 별도로 안내합니다.”
“집에 약이 있으면?”
“보관하세요. 먹지 말고.”
방송이 나간 뒤 20분.
요오드제 신규주문 속도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이미 주문한 사람들의 취소도 조금씩 들어왔다.
마라는 카메라가 꺼지자 말했다.
“다음엔 약 보내달라고 부르세요.”
노아미가 말했다.
“오늘은 정보가 약이었습니다.”
마라는 반박하려다 그만뒀다.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
◆오후 1시 20분.
연방 전략경보가 다시 올라갔다.
핵무기 한 발이 곧바로 전면 핵전쟁을 뜻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아무도 두 번째가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오르테가가 말했다.
“방공대피소 개방 준비해야 합니다.”
공공안전국의 라파엘이 반대했다.
“전면개방하면 사람들이 지하로 몰립니다.”
“실제 공격이면?”
“실제 공격이 아니면 압사합니다.”
오르테가가 말했다.
“경보가 뜬 뒤 열면 늦습니다.”
“문은 먼저 열 수 있습니다. 사람을 먼저 보내지 말자는 겁니다.”
둘 다 에이드리언을 봤다.
에이드리언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도.
아스터 베이 인구.
지하철역.
공공대피소.
민간건물 차폐층.
수용가능 인원.
전부 합쳐도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가 물었다.
“최우선은?”
라파엘이 답했다.
“실외에 있는 사람. 차폐가 약한 건물. 학교·요양시설은 현 위치 계획 우선.”
오르테가가 말했다.
“해안권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그럼 지역별 단계개방.”
에이드리언이 말했다.
“대피소는 개방하되 이동명령은 내리지 맙시다. 수용인원 실시간 공개.”
라파엘.
“자발적으로 몰리면?”
“만석이면 지도에서 닫고, 다른 곳 안내.”
오르테가.
“실제 경보가 뜨면?”
“그때 단계별 이동명령.”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후 2시 04분.
첫 대피소가 열렸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가지 않았다.
대부분은 일을 계속했다.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온 사람.
집에 전화한 사람.
약국에 간 사람.
그냥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
아스터 베이의 한 사무실에서는 직원 절반이 조퇴를 요청했다.
팀장은 처음엔 거절하려 했다.
프로젝트 마감.
업무 연속성.
그런데 자기 배우자에게서 ‘아이 데리러 간다’는 메시지를 받고 생각을 바꿨다.
“필수인력만 남고 재택으로 돌립시다.”
누군가 물었다.
“정부 지침입니까?”
“아니.”
“그럼 왜요?”
팀장은 잠시 답하지 못했다.
“일이 오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도시는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수천 개의 작은 판단이 동시에 바뀌고 있었다.
◆노아미는 거리에서 시민 한 명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으세요?”
노인은 작은 식당 셔터를 올리던 중이었다.
“무섭지.”
“그런데 왜 여세요?”
“직원들 밥 먹어야 하잖아.”
“손님은 올까요?”
“모르지.”
“그럼 닫아도 되잖아요.”
노인은 잠깐 노아미를 봤다.
“내가 닫으면 저쪽 약국 직원도 밥 못 먹어.”
노아미는 그 답을 방송에 넣었다.
방송 뒤 식당에는 손님이 몰리지 않았다.
대신 근처 병원 직원이 와서 도시락 열두 개를 주문했다.
노인은 방송을 본 건지 아닌지 말하지 않았다.
◆오후 3시 37분.
대피소 문의전화가 폭증했다.
가장 많은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반려동물을 데려가도 됩니까?
기존 매뉴얼에는 금지였다.
라파엘은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려다가 멈췄다.
사람들이 동물을 두고 가지 않으면 대피 자체를 거부할 수 있었다.
결국 일부 대피소에 분리구역을 만들기로 했다.
핵위기 계획표에 없던 문제였다.
현실은 항상 매뉴얼보다 생활에 가까웠다.
오후 4시.
라이프라인 화물량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4,300톤 예상.
에이드리언은 그 숫자를 확인했다.
그때 연방 방위망에서 새로운 지침이 왔다.
모든 지역정부는 독자적 군사행동을 금지한다. 전략자산 관련 명령은 중앙 인증 없이는 무효.
오르테가가 말했다.
“당연한 지침입니다.”
“왜 지금 보냈을까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오르테가는 화면을 봤다.
“누군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려는 지역이 있겠죠.”
“군이 중앙과 끊기면요?”
“지정된 승계지휘체계가 있습니다.”
“그 승계체계도 끊기면?”
오르테가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을 실제로 할 날이 안 오길 바랍니다.”
에이드리언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테가도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오후 4시 22분.
아스터 베이 학교망에서 문의가 들어왔다.
내일부터 정상수업을 합니까?
질문은 단순했다.
답은 아니었다.
대피시설을 갖춘 학교.
없는 학교.
교직원 출근 가능성.
학생 수송.
또 전략경보가 울릴 가능성.
교육청 담당자는 전면휴교를 원했다.
라파엘은 학생들이 집에 흩어지면 비상연락과 돌봄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마라는 병원 직원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지면 의료인력이 빠진다고 지적했다.
결국 학교는 지역별로 나뉘었다.
차폐시설이 있는 학교는 단축수업과 비상돌봄.
취약시설은 원격수업.
필수근로자 자녀는 별도 돌봄.
에이드리언은 결정을 보고 잠깐 웃었다.
핵무기 사용 다음 날의 회의가 결국 아이를 누가 오후까지 돌볼지로 이어졌다.
그게 현실이었다.
핵무기 하나가 전쟁의 선을 넘었다.
다음 위험은 모두가 그 선을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었다.
저녁 브리핑에서 노아미가 물었다.
“핵무기가 또 사용되면 노스리버는 어떻게 합니까?”
에이드리언은 답하지 않았다.
오르테가가 대신 말했다.
“군사대응 계획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노아미가 다시 물었다.
“시민이 뭘 해야 하는지는요?”
라파엘이 대피지도를 띄웠다.
“그건 공개합니다.”
군이 무엇을 할지는 숨겨야 했고, 시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최대한 알려야 했다.
같은 위기 안에서도 비밀과 공개의 선이 달랐다.
에이드리언은 문서를 저장했다.
지금까지 그의 일은 물건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명령도 제대로 된 선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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