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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6화 — 농부들

디 오거나이저 · 16 / 31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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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웨스트미어의 농업창고는 도시보다 조용했다.

트랙터가 움직였고, 건조기가 돌아갔고, 사일로 계기판은 평소처럼 숫자를 올렸다.

전쟁은 여기서도 아직 멀어 보였다.

아이작 벨은 그 착각을 싫어했다.

“3번 사일로 출고 멈춰.”

직원이 물었다.

“아스터 베이 물량인데요?”

“검사부터.”

“도시에서는 빨리 달라는데.”

“도시가 급해졌다고 곡물먼지까지 먹일 순 없잖아.”

샘플 검사.

수분.

균류.

해충.

정상.

그제야 출고가 다시 시작됐다.

직원이 말했다.

“이 속도면 오늘 목표 못 맞출 수도 있습니다.”

“썩은 곡물 보내면 내일 목표는 더 못 맞춰.”

아이작은 창고 밖을 봤다.

화물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일부는 정부계약.

일부는 민간.

일부는 농가 자체 차량.

문제는 곡물이 아니었다.

연료.

비료.

타이어.

운전사.

다음 달도 농사를 지으려면 오늘 전부 도시로 보내면 안 됐다.

에이드리언은 오전 10시쯤 웨스트미어에 도착했다.

아이작이 말했다.

“드디어 화면 밖으로 나오셨네요.”

“리아한테도 같은 얘기 들었습니다.”

“그럼 다들 같은 생각인가 보네.”

둘은 사일로 사이를 걸었다.

바람에 곡물가루가 날렸다.

에이드리언은 재킷 소매로 코를 가렸다.

아이작이 웃었다.

“도시 냄새랑 다르죠?”

“먼지가 많네요.”

“그게 돈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재고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직접 오라고 한 겁니다.”

아이작이 2번 사일로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건 다 도시로 보낼 수 있습니다.”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그런데 안 보내시겠죠.”

“그럼 다음 작기에 뭐로 버팁니까?”

“얼마를 남겨야 합니까?”

아이작은 곧바로 숫자를 말했다.

“종자 8%. 사료 14%. 지역소비 19%. 예비 6%.”

“예비 6은 왜요?”

“철도 끊기면 여기 사람도 먹어야 하니까.”

“도시에서는 과잉비축으로 볼 겁니다.”

“도시는 도시 기준으로 보겠죠.”

“그래서 제가 물어보러 왔습니다.”

아이작이 잠깐 그를 봤다.

“징발할 생각은요?”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은.”

“그 표현 싫어하시는 거 압니다.”

“싫어도 사실이니까.”

둘은 잠시 걷기만 했다.

창고 한쪽에서는 작업자들이 포대 대신 벌크 호퍼를 연결하고 있었다.

젊은 작업자 하나가 아이작을 불렀다.

“연료배정 또 줄었습니다.”

아이작의 얼굴이 굳었다.

“얼마?”

“오늘분 82%.”

“이유?”

“도시발전 우선.”

아이작이 에이드리언을 봤다.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불편했다.

에이드리언이 단말을 열었다.

“누가 조정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말하는 겁니다.”

아이작이 말했다.

“도시는 우리한테 곡물 더 달라고 하면서 그 곡물 움직일 연료부터 가져가요.”

에이드리언은 연료배분표를 확인했다.

실제로 농업 운송용이 일괄 산업용으로 묶여 감축돼 있었다.

“이건 고치겠습니다.”

“왜요?”

“라이프라인에 필요한 연료니까.”

“농민이 불쌍해서가 아니고?”

“그 이유로 정책 만들면 다음번에 다른 사람이 더 불쌍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작이 잠깐 웃었다.

“그 답은 마음에 드네.”

점심은 현장식당에서 먹었다.

빵.

수프.

달걀.

도시에서는 일부 메뉴가 사라지는 중이었지만 농업지대 식당은 아직 풍성해 보였다.

에이드리언은 주변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는 그를 알아봤고,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한 농부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도시에서 왔습니까?”

“네.”

“우리 곡물 가져가러?”

아이작이 끼어들려 했지만 에이드리언이 손으로 막았다.

“사러 왔습니다.”

“돈이 종자 되나?”

“종자는 안 가져갑니다.”

“말은 다 그렇게 하지.”

농부는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겁이 난 얼굴이었다.

“내 아들이 아스터 베이에 삽니다.”

그가 말했다.

“도시 굶는 것도 싫어. 근데 여기 밭 망가지면 내년엔 다 같이 굶어.”

에이드리언이 대답했다.

“그래서 오늘만 얼마나 보낼지보다 다음 달에도 얼마나 보낼 수 있는지 정하러 왔습니다.”

농부가 아이작을 봤다.

아이작이 말했다.

“그래서 불렀어.”

그제야 농부가 물러났다.

에이드리언은 남은 수프를 봤다.

화면 속 1,700톤이 갑자기 식당 한 접시와 연결돼 보였다.

식사 뒤 아이작이 말했다.

“내가 도시를 싫어해서 이러는 줄 압니까?”

“아닙니다.”

“도시가 무너지면 우리도 끝입니다. 비료도, 부품도, 약도 다 도시에서 와요.”

그는 사일로 벽을 두드렸다.

“근데 도시가 우리를 식량통처럼 보면, 다음엔 우리가 도시를 못 믿어요.”

“그럼 뭘 원합니까?”

아이작은 준비해 둔 조건을 꺼냈다.

- 농업연료 우선공급

- 비료 계약 보장

- 타이어·부품 긴급배정

- 징발 시 독립감사

- 현장 생산자 대표의 배분회의 참여

에이드리언은 마지막 항목에서 멈췄다.

“배분회의요?”

“우리가 물건만 내놓고 나머지는 도시가 결정하는 구조 싫습니다.”

“상시 의석?”

“위기 동안.”

에이드리언은 즉답하지 않았다.

대표를 넣으면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생산자가 빠진 식량회의도 이상했다.

“한 자리.”

아이작이 말했다.

“두 자리.”

“한 자리, 대리참석 허용.”

“발언권?”

“동일.”

“표결권?”

에이드리언이 멈췄다.

현재 회의는 법적 표결기구가 아니었다.

“결정권자가 따로 있는 안건은 권고. 공동계약은 서명권.”

아이작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시작해보죠.”

에이드리언이 손을 잡았다.

명령이 아니었다.

거래도 아니었다.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오후.

웨스트미어 농업대표가 라이프라인 배분회의에 처음 들어왔다.

첫 안건.

도시가 추가로 하루 500톤을 요구.

농업대표는 반대했다.

리아도 반대했다.

철도용량이 없었다.

마라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병원은 열량보다 특정 영양분이 부족합니다. 곡물만 늘려도 해결 안 돼요.”

아이작이 말했다.

“그럼 콩을 섞죠.”

식량안정국이 계산했다.

대두 120톤.

곡물 280톤.

감자 100톤.

총량 500.

영양효율은 단순 곡물보다 높았다.

리아가 말했다.

“무게는 같으니까 철도는 상관없어요.”

토머스가 말했다.

“가격은 올라갑니다.”

마라가 말했다.

“환자 영양상태 무너지면 비용 더 올라갑니다.”

에이드리언은 그 결과를 보며 말했다.

“그 조합으로.”

아이작이 말했다.

“이래서 생산자 앉혀놓는 겁니다.”

“오늘은 인정하겠습니다.”

“오늘만?”

“다음에도 맞으면요.”

아이작이 처음으로 웃었다.

“당신도 농촌 와서 말이 좀 나아졌네.”

저녁.

첫 혼합식량 열차가 편성됐다.

곡물만 싣지 않았다.

도시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들로 바뀌었다.

농업연료 감축도 되돌아갔다.

전량은 아니었다.

92%.

아이작은 100을 요구하지 않았다.

“92면 내일은 돌아갑니다.”

그 말이 지금 시대의 기준 같았다.

에이드리언이 떠나려는데 아이작이 불렀다.

“케인.”

“네.”

“도시 살리는 거 좋습니다.”

“네.”

“농촌 죽여서 하진 마요.”

에이드리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작은 에이드리언을 보내기 전에 사일로 옆 작은 창고로 데려갔다.

안에는 종자용 곡물이 따로 보관돼 있었다.

식용보다 포장이 더 엄격했고, 출고금지 표지가 붙어 있었다.

“위기 심해지면 이거까지 달라고 할 겁니다.”

아이작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때 당신이 여기 없을 수도 있고.”

에이드리언은 창고를 봤다.

징발권 하나로 열 수 있는 문.

그 뒤에는 다음 해 수확량이 있었다.

“종자비축은 별도 보호등급으로 올리죠.”

“지금 결정할 수 있습니까?”

“혼자서는 못 합니다.”

“그럼?”

“내일 회의에 안건 올리고, 농업대표 동의 없이는 해제 못 하게 제안하겠습니다.”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시스템이지.”

에이드리언은 그 말을 그대로 메모했다.

현재의 식량을 지키는 규칙과 다음 계절의 식량을 지키는 규칙은 달라야 한다.

“도시 살리는 거 좋습니다.”

아이작이 다시 말했다.

“농촌 죽여서 하진 마요.”

에이드리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 말고 시스템으로 막아요.”

그 말이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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