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9화 — 첫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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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42분.
에이드리언이 마라 엘리스를 처음 직접 본 것은 전력배분회의에서였다.
첫 30초 안에, 자기가 먼저 물어봐야 할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마라는 앉지도 않았다.
“병원 전력 70% 통일안은 안 됩니다.”
전력당국이 제안한 안은 단순했다.
병원.
수도.
철도.
통신.
군.
모든 핵심기관이 조금씩 줄이면 광역정전을 피할 수 있다.
화면만 보면 합리적이었다.
에이드리언은 이번에는 숫자를 먼저 정하지 않았다.
“병원 쪽 최소 안전선부터 말씀해 주세요.”
마라가 그를 한 번 봤다.
아침의 180세트 배분을 기억하는 표정이었다.
“병원마다 달라요.”
“그래서 부른 겁니다.”
“좋아요.”
마라는 병동별 전력지도를 띄웠다.
“중앙의료원 재생치료동은 82% 아래로 못 내립니다.”
전력 담당자가 말했다.
“생명유지 우선회로는 별도입니다.”
“그 회로 말고 무균 배양계요. 한번 안전모드 들어가면 복구 36시간. 지금 배양장기 46개 있습니다.”
“전력 유지 못 하면?”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최소 31명 수술계획이 수개월 밀립니다.”
전력 담당자가 반박했다.
“지금 도시 전체 정전 위험입니다. 31명만 볼 수는 없습니다.”
마라의 표정이 굳었다.
“저도 31명만 보자는 말 안 했습니다.”
“그럼—”
“병원마다 다르게 줄이자고요.”
그녀가 다음 화면을 열었다.
“중환자 재배치하면 세 곳은 55%까지 내릴 수 있어요. 대신 환자 이동 위험이 있습니다.”
“감수 가능한 수준?”
“현재 도로상태면 6시간에 나눠서 해야 합니다.”
전력 담당자가 계산했다.
병원군 전체 절감.
340메가와트.
“통일감축보다 더 줄어드네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물어보시라고요.”
마라가 에이드리언 쪽을 한 번 봤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물었습니다.”
“그러네요.”
◆리아가 화상으로 말했다.
“그중 90은 철도.”
오르테가가 말했다.
“30은 군 통신.”
“철도 최소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리아가 답했다.
“60이면 돌아갑니다. 느리게.”
“군은?”
“15면 통신 유지. 나머지 자체발전.”
“추가 연료?”
오르테가.
“하루 2만 리터쯤.”
수도 담당자가 말했다.
“우리 할당은 못 줄입니다. 펌프압 떨어지면 6시간 뒤 고층부터 물 끊깁니다.”
에이드리언은 표를 다시 만들었다.
병원 차등배분.
수도 유지.
철도 +60MW.
군 통신 +15MW.
상업지구 추가감축.
비필수 데이터센터 제한.
토머스 베일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상업 데이터센터를 너무 많이 끄면 결제·기업망도 같이 죽습니다.”
아이리스가 말했다.
“핵심 노드는 분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걸려요?”
“최소 40분.”
전력담당자가 말했다.
“우리에겐 48분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아이리스가 말했다.
“그럼 8분 남네요.”
“실패하면?”
“일부 결제망까지 같이 갑니다.”
토머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세요.”
에이드리언이 그를 봤다.
“괜찮습니까?”
“안 괜찮죠.”
토머스가 말했다.
“그래도 수도보다 돈이 먼저일 순 없습니다.”
그 문장으로 하나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전력 담당자가 최종 결과를 봤다.
“예비율 7.8%.”
“권장?”
“12.”
“최소?”
“5.”
“7.8이면?”
“한 군데 더 큰 장애가 생기면 위험합니다.”
“한 군데가 어느 정도죠?”
“대형 변전소 하나. 발전기 한 기. 송전선 두 줄.”
에이드리언은 지도에 빨간 표시들이 얼마나 많은지 봤다.
돌아가긴 한다.
여유가 거의 없을 뿐.
마라가 물었다.
“이거 누가 승인합니까?”
전력 담당자가 에이드리언을 봤다.
“비상물류국은 권고까지만 가능합니다.”
에이드리언도 알고 있었다.
정식 위원회 소집 예상.
2시간 20분.
전력망 한계도달.
48분.
법무담당자가 말했다.
“다기관 인프라 충돌 시 6시간 한시명령 조항이 있습니다.”
“조건은요?”
“명령자 개인책임. 사후승인. 손실발생 시 감사.”
오르테가가 말했다.
“쓰십시오.”
에이드리언은 바로 누르지 않았다.
화면에는 `APPROVE` 버튼이 떠 있었다.
그걸 누르면 상업지구 수천 곳이 어두워진다.
수술이 미뤄진다.
직원이 집에 못 간다.
데이터센터 일부가 멈춘다.
반대로 누르지 않으면 결정은 전력망이 대신 내린다.
무작위 정전.
그게 더 공평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훨씬 더 위험했다.
“반대 있습니까?”
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수도 담당자도.
마라는 말했다.
“병원안 그대로면 없습니다.”
전력 담당자가 말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에이드리언은 그 말을 기록에 넣었다.
“이 문장도 같이 남겨주세요.”
법무담당자가 물었다.
“왜요?”
“나중에 성공하면 사람들이 안전했던 결정이라고 기억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승인키를 눌렀다.
TEMPORARY CRITICAL INFRASTRUCTURE ALLOCATION ORDER
서명.
ADRIAN KANE
◆19:51.
동부 송전망 주파수 하락.
20:03.
상업지구 순환정전.
아스터 베이 중심부의 광고판이 하나씩 꺼졌다.
고층건물 외벽의 조명이 사라졌다.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창밖을 봤다.
어떤 곳은 계산을 서둘렀다.
어떤 곳은 촛불을 켰다.
20:07.
비필수 데이터센터 1차 감축.
토머스가 결제망 지연수치를 보고 있었다.
3초.
6초.
9초.
아이리스가 우회경로를 붙였다.
다시 4초.
“유지.”
20:11.
중앙의료원 재생치료동 환경제어 99.4%.
마라가 직접 배양실 창을 확인했다.
냉각펌프 정상.
산소 정상.
압력 정상.
20:14.
철도 서부야드 수동운영 유지.
리아의 곡물열차가 느리게 통과했다.
20:18.
수도펌프 정상.
20:23.
군 통신센터 자체발전 전환.
오르테가는 연료사용량 증가 보고에 서명했다.
누구도 원하는 만큼 받지 못했다.
병원도.
철도도.
군도.
그래서 전체가 버텼다.
◆20:31.
상업지구에서 항의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왜 우리 건물만 꺼집니까?”
“병원 옆 건물은 켜져 있는데요?”
“계약상 우선전력 고객입니다.”
토머스가 에이드리언에게 말했다.
“보상문제 생깁니다.”
“예상했습니다.”
“얼마나?”
“모릅니다.”
“그건 제가 계산하죠.”
에이드리언은 그 말을 고맙게 들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맡길 사람이 있다는 게 처음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모리스가 옆에서 말했다.
“첫 명령 기분이 어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시작이네.”
에이드리언의 단말이 울렸다.
마라.
재생치료동 유지. 환자 손실 없음.
한 줄 더.
이번엔 먼저 물어봤네요.
에이드리언은 잠시 웃었다.
답했다.
지난번에 배웠습니다.
곧 답장이 왔다.
한 번 더 배우게 될 겁니다.
순환정전이 시작된 뒤 에이드리언의 개인단말에도 메시지가 쌓였다.
지인.
동료.
모르는 사람.
우리 구역은 왜 껐습니까?
병원 옆 쇼핑몰은 켜져 있습니다. 특혜 아닙니까?
그는 직접 답하지 않았다.
대신 전력당국에 구역별 감축원칙을 공개하도록 요청했다.
주소별 상세배전도는 보안상 숨기되, 왜 어떤 구역이 먼저 줄었는지는 설명했다.
필수시설 연결회로.
복구난이도.
전력피크.
완전히 공평해 보이는 정전보다 이유가 있는 불균등이 더 안전했다.
명령 발동 52분 뒤, 지역의회 감사실에서 첫 질의가 도착했다.
상업지구 감축 기준과 병원별 차등배분 근거 제출 요청.
모리스가 말했다.
“벌써 감사?”
법무담당자가 답했다.
“사후감사가 조건이었습니다.”
에이드리언은 피곤한 얼굴로 자료를 열었다.
“지금 보내죠.”
“경보까지 났는데요?”
“그래서 더.”
그는 회의록, 전력담당자의 위험문구, 마라의 병원별 최소선, 리아와 오르테가의 요구량을 함께 첨부했다.
자기 결정이 맞았다는 문장은 넣지 않았다.
그 순간 도시 밖에서 방공경보가 울렸다.
회의실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창문이 아니라 자기 화면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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