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화 — 정상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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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8시 17분.
“180개?”
마라 엘리스가 공급담당자를 봤다.
“480 요청했는데요?”
“리든 비축에서 180세트 우선배정입니다.”
“누가 잘랐대?”
“재난물류국.”
“승인자.”
담당자가 화면을 내렸다.
“Adrian Kane.”
마라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좋아서가 아니었다.
180이라는 숫자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아스터 베이 중앙의료원은 공식적으로 정상운영 중이었다.
선택수술 일부가 미뤄졌고, 응급실 대기시간은 늘었고, 공급실은 정상보다 훨씬 자주 전화를 받았다.
그래도 문은 열려 있었다.
그래서 뉴스에서는 병원을 ‘정상운영’으로 분류했다.
복도 전광판에도 같은 말이 떴다.
NORMAL OPERATIONS
마라는 지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저거 내려.”
행정직원이 물었다.
“왜요?”
“정상 아니잖아.”
“비상운영이라고 쓰면 환자들이 불안해합니다.”
“거짓말 보면 더 불안해.”
“그럼 뭐라고 합니까?”
마라는 잠깐 생각했다.
“필수진료 유지. 일부 진료 조정.”
전광판 문구가 바뀌었다.
ESSENTIAL SERVICES ACTIVE — SOME SERVICES ADJUSTED
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낫네.”
◆그녀는 공급실에서 180세트의 산소정제막을 직접 확인했다.
“전체 병동에 나누면 며칠?”
“평균 여섯.”
“평균 말고.”
담당자가 멈췄다.
“병동별로요?”
“응.”
중환자실.
외상센터.
재생치료동.
선택수술병동.
재활병동.
마라는 소비량과 교체주기를 다시 돌렸다.
그녀가 처음 끈 건 환자가 아니었다.
선택수술 일정이었다.
그다음은 일부 재활병동의 중앙산소 의존도를 낮췄다.
이동 가능한 환자는 분산했다.
반대로 재생치료동은 건드리지 않았다.
환경제어가 한번 안전모드로 들어가면 배양장기 수십 개를 잃을 수 있었다.
“재활동 반발할 겁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알아.”
“고령환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료진 붙여서 옮겨.”
“인력이 부족합니다.”
마라는 화면을 넘겼다.
선택수술 중단으로 비는 회복실 인력.
“여기서 여섯 명.”
“그쪽도 갑자기 응급 들어오면요?”
“그럼 다시 부르지.”
마라는 모든 답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저 지금 어디에서 조금 빼도 되돌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40분 뒤 새 수치가 나왔다.
담당자가 화면을 봤다.
“120세트면 일주일 버팁니다.”
“응.”
“180 필요 없는데요.”
“응.”
마라가 손목단말을 열었다.
재난물류국.
수신자 Adrian Kane.
현재 배정량 180 중 60은 과배정입니다. 120으로 7.2일 유지 가능합니다. 잔여 60 리든 반환 권고. 다음부터 의료배분 전 임상운영 데이터 요청 바랍니다.
담당자가 옆에서 읽었다.
“좀 세지 않습니까?”
“틀린 말 있어?”
“없습니다.”
“그럼 보내.”
전송.
◆에이드리언은 메시지를 회의 중에 받았다.
한 번 읽고, 다시 읽었다.
모리스가 옆에서 물었다.
“무슨 일?”
에이드리언이 화면을 보여줬다.
모리스는 마지막 문장을 보고 웃었다.
“혼났네.”
“그러게요.”
“180 보낸 거 틀렸어?”
에이드리언은 잠깐 생각했다.
당시 정보로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의료진에게 먼저 물었으면 60세트를 덜 움직여도 됐다.
그 60세트가 정수권역에서 언제 필요해질지는 몰랐다.
“과했네요.”
그는 리든 물류팀에 반환을 걸었다.
그리고 마라에게 답했다.
확인했습니다. 잔여 60 반환합니다. 다음 의료배정부터 임상운영 확인 후 결정하겠습니다.
몇 초 뒤 읽음 표시.
답은 없었다.
모리스가 말했다.
“답 없으면 용서한 건가?”
“아마 더 바쁘다는 뜻이겠죠.”
“그 의사 이름 기억해둬.”
“왜요?”
“너 같은 사람은 숫자 보고 사람 잊기 쉬워.”
에이드리언이 모리스를 봤다.
“저를 그렇게 봅니까?”
“아직은.”
모리스는 커피를 마셨다.
“사람은 변하니까.”
◆병원으로 돌아온 9시 03분.
마라는 항응고제 원료 경보를 확인했다.
현재 재고 9일.
재난물류국의 질문은 단순했다.
사용량 감축 가능 범위 요청.
이번에는 ‘몇 퍼센트 줄여라’가 아니었다.
마라는 그 차이를 봤다.
의료위원회를 불렀다.
예방적 사용 일부를 대체약으로 전환.
고위험군 우선.
혈전위험이 낮은 선택수술 연기.
그 과정에서 신경외과가 반발했다.
“우리 수술은 미루면 회복률 떨어집니다.”
마라가 물었다.
“몇 퍼센트?”
“케이스별로 달라요.”
“그럼 케이스별로 가져와.”
“전부요?”
“전부.”
“오늘 밤에?”
“약도 오늘 밤에 줄고 있어.”
회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누구도 자기 환자를 ‘나중’으로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다.
마라는 한 번도
“전체를 위해 희생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했다.
지금 안 하면 되돌릴 수 없는가.
다른 약이 있는가.
다른 시술이 있는가.
48시간 미뤘을 때 위험이 얼마나 변하는가.
두 시간 뒤 예상 사용량 27% 감소.
재고는 12일 조금 넘게 늘어났다.
숫자를 확정하기 전에 마라는 연기대상 환자 목록을 직접 훑었다.
일흔넷.
백둘.
마흔아홉.
백서른여섯.
장수사회에서도 환자는 숫자로 늙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백 살이 넘어도 혼자 걸어왔고, 어떤 사람은 쉰 살에 여러 장기를 교체한 상태였다.
목록 중 하나에서 손이 멈췄다.
심장판막 재수술.
원래 일정은 이틀 뒤.
알고리즘은 ‘72시간 연기 가능’으로 분류했다.
마라는 담당외과의에게 전화했다.
“이 사람 정말 72시간 돼?”
“데이터상은.”
“당신 판단은?”
상대가 잠깐 침묵했다.
“48.”
“그럼 48로 바꿔.”
“전체 재고계산 깨집니다.”
“사람이 계산에 맞춰 아픈 건 아니잖아.”
마라는 목록을 끝까지 다시 봤다.
27%는 그대로 유지됐다.
대신 어떤 약을 어디서 아낄지가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간호사 한 명이 의자에 앉은 채 잠들었다.
마라는 깨우려다 멈췄다.
“교대 언제였어?”
옆 직원이 말했다.
“두 시간 전이요.”
“왜 안 갔대?”
“다음 조가 길 막혀서 못 왔습니다.”
마라는 자기 손목단말을 봤다.
병원 안 물자가 아니라 사람도 공급망이었다.
“수송팀에 직원 셔틀 우선권 요청해.”
“의료물류가 아니라 직원이요?”
“직원이 없으면 물류상자 혼자 환자 보니?”
그제야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라는 보고서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넣었다.
의료인력 교대수송을 필수 의료물류로 분류 요청.
그 뒤에야 재난물류국으로 보고를 보냈다.
27% 감축 가능. 그 이상은 임상손실 증가.
답장.
27%로 계획 반영. 추가감축 없음.
마라가 작게 말했다.
“배우기는 하네.”
응급실 간호사가 물었다.
“누가요?”
“180개 보낸 사람.”
“아, 그 사람 뉴스에 나오던데요.”
“벌써?”
“항만 인터뷰.”
“유명해질 시간 있으면 물자나 보내라 그래.”
◆그때 복도에서 들것 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항만노동자.
무인 견인차 안전정지 과정에서 컨테이너 지지대가 넘어졌다고 했다.
다리 압궤.
의식 명료.
마라가 직접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다니엘.”
“나이?”
“백열셋.”
“알레르기?”
“없습니다.”
환자가 고통 속에서도 웃었다.
“요즘은 나이 물어보면 기분 좋네요. 아직 어리다고 해주니까.”
“말할 힘 있으면 괜찮습니다.”
“그건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농담 아닌가요?”
“네.”
마라도 잠깐 웃었다.
그 뒤로 약국 앞 군중사고 환자 둘.
결제망이 23분 멈췄고, 사람들이 현금성 비상신용을 받으려고 몰렸다고 했다.
전쟁은 아직 병원 창문 밖에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자가 먼저 환자 형태로 들어오고 있었다.
밤 10시 41분.
병원 조명이 한 번 흔들렸다.
두 번.
복도에서 사람들이 천장을 봤다.
전력은 돌아왔다.
마라가 공급담당자에게 말했다.
“발전기 연료.”
“어제 점검했습니다.”
“오늘 또.”
“문제 있습니까?”
“없을 때 확인하는 거야.”
마라는 복도 끝의 전광판을 봤다.
필수진료 유지. 일부 진료 조정.
아침에는 그 문장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였을지도 몰랐다.
지금은 오히려 낙관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아스터 베이 전력당국이 대형 산업시설에 자발적 사용감축을 요청했다.
마라는 전광판을 한 번 읽고 화면을 껐다.
병원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정상이라는 말의 기준만,
아침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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