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화 — 비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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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20분.
공식 지표상 아스터 베이는 43.2일을 버틸 수 있었다.
에이드리언은 그 숫자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질문이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43.2일인가.
노스리버 식량안정국 담당자가 표를 띄웠다.
“광역권 총가용열량입니다.”
“가용의 정의는요?”
“정부비축, 민간재고, 유통망, 전환 가능한 산업·사료원료, 확정 입항분, 농업계약분.”
모리스가 커피잔을 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론상 우리 입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다 더한 숫자네.”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계획에는 그게 맞습니다.”
“72시간 안에 실제 배급망으로 넣을 수 있는 물량은요?”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담당자가 말했다.
“그 지표는 별도로 안 봅니다.”
“왜요?”
“평시에 72시간 동원가능량을 따질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 답으로 충분했다.
시스템이 잘못 계산한 게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질문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에이드리언은 화면을 가리켰다.
“그럼 새로 계산하죠.”
“어떤 기준으로요?”
“72시간 안에 아스터 베이 배급망에 실제 인도 가능한 물량.”
담당자가 잠시 생각했다.
“그럼 수출계약도 빼야 합니다.”
“취소 가능한 계약은?”
“위약금 전제로 일부 포함.”
“군 비축은?”
“공동승인 없이는 0.”
“사료?”
“가공시간 반영.”
모리스가 웃었다.
“43일이 벌써 말라가네.”
◆항목이 하나씩 갈라졌다.
정부비축 가운데 일부는 군 비축과 공동창고였다.
민간재고 가운데 일부는 장기 수출계약에 묶여 있었다.
사료원료는 먹을 수 있었지만 가공설비가 필요했다.
농업계약은 창고에 있어도 철도가 없으면 도시 재고가 아니었다.
해상입항분은 더 이상 ‘확정’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오후 12시 40분.
첫 추정치.
31.8일.
오후 1시 15분.
냉장망 제약 반영.
28.7일.
오후 1시 42분.
철도 처리량 반영.
25.9일.
식량안정국 담당자가 말했다.
“농업권역 자체소비와 종자비축까지 빼야 합니다.”
모리스가 에이드리언 쪽을 봤다.
에이드리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2시 07분.
24.6 DAYS
이번에는 누구도 숫자를 다시 세지 않았다.
그게 현재 72시간 안에 아스터 베이 배급망으로 실제 동원할 수 있는 식량이었다.
담당자가 말했다.
“이것도 낙관적입니다.”
“이유는?”
“전쟁위험 할증이 더 올라가면 민간운송이 줄고, 사람들이 집에 쌓기 시작합니다. 지역별 편차도 커지고요.”
“도시 전체가 24.6일이면 모든 지역이 똑같이 24.6일입니까?”
“아닙니다.”
담당자가 지도를 열었다.
남부 산업권.
18일.
북부 주거권.
29일.
항만권.
21일.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의 차이도 있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돈과 저장공간이 많은 사람이 더 빨리 재고를 확보했다.
모리스가 말했다.
“평균이 사람을 숨기네.”
에이드리언은 그 말을 기억했다.
43.2일은 틀린 숫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평시에는 유용한 숫자가 전시에는 안심용 숫자로 변할 수 있었다.
화상화면 한쪽에서 농업조합 대표가 손을 들었다.
“방법은 있습니다.”
이름.
아이작 벨.
웨스트미어 농업협동조합 연합.
“말씀하세요.”
“수출대기 곡물 일부를 국내로 돌리고, 사료전환을 당기겠습니다.”
식량안정국 담당자가 바로 말했다.
“수출계약 위약금이 큽니다.”
“그래서 돈을 달라는 겁니다.”
아이작이 답했다.
“곡물을 가져가라는 게 아니라 사가라는 거예요.”
“비상징발권을 쓰면—”
아이작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다음 물량부터 안 나옵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에이드리언이 물었다.
“왜요?”
“도시가 필요할 때마다 가져갈 수 있으면 농가가 왜 재고를 쌓습니까? 왜 다음 계절 생산량을 늘립니까?”
식량안정국 담당자가 반박했다.
“사람이 굶는 상황이면 계약보다 생존이 우선입니다.”
“맞습니다.”
아이작이 말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도시가 또 먹으려면 농가도 살아 있어야죠.”
둘 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팽팽했다.
에이드리언은 징발권 문서를 화면에서 닫았다.
“조건이 뭡니까?”
아이작은 준비해 둔 듯 바로 말했다.
“연료와 비료 공급 유지. 철도 우선권. 가격상한 일방적 적용 금지.”
“물량은?”
“아스터 베이 기준 약 이틀 반.”
모리스가 낮게 말했다.
“이틀 반이면 크네.”
에이드리언은 식량안정국 담당자를 봤다.
“긴급구매 계약 가능합니까?”
“법무 간이심사 거치면요.”
“얼마나?”
“두 시간.”
“한 시간으로 줄일 수 있습니까?”
담당자가 눈을 좁혔다.
“법무가 대충 보면요.”
에이드리언은 입을 다물었다.
아침부터 모든 것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꾸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하지만 법무가 대충 본 계약은 나중에 농가도, 도시도 믿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요. 두 시간 쓰죠.”
모리스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아이작도 화면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습니다.”
계약 초안에는 가격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갔다.
연료를 누가 먼저 받을지.
철도차량을 누가 배정할지.
수출업체 손실을 누가 부담할지.
농가가 약속한 물량을 못 채웠을 때 어떤 책임을 질지.
도시가 약속한 비료를 못 보냈을 때 어떤 보상을 할지.
거래는 곡물을 사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다음 행동을 약속하는 일이었다.
오후 3시 06분.
첫 계약 체결.
웨스트미어에서 곡물열차 두 편이 준비에 들어갔다.
공식 총가용량 43.2일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72시간 동원가능량은 24.6에서 27.1일로 올라갔다.
젊은 분석관이 말했다.
“2.5일 확보.”
에이드리언은 그래프를 봤다.
처음으로 숫자가 위로 움직였다.
그는 기뻐하기 전에 다른 창을 열었다.
“웨스트미어 물량, 실제 적재 확인됐습니까?”
분석관이 말했다.
“계약은 확정됐습니다.”
“계약 말고 화물.”
“아직 집결 전입니다.”
모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좀 배웠네.”
에이드리언은 웨스트미어 3번 사일로에 직접 연결했다.
영상이 늦게 떴다.
바람 소리.
거대한 저장탑.
형광조끼를 입은 현장관리자가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들고 있었다.
“노스리버 재난물류국입니다. 오늘 계약된 첫 편성 적재 언제 시작합니까?”
관리자가 뒤를 돌아봤다.
“이미 하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움직였다.
곡물이 컨베이어를 따라 화차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화면의 2.5일이 처음으로 물질이 됐다.
“현재 몇 톤?”
“칠백 조금 넘었습니다.”
“계획은?”
“첫 편성 1,240. 두 번째 1,180.”
“차질 가능성?”
관리자가 웃었다.
“농사는 숫자대로 안 됩니다. 철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묻는 겁니다.”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연료예요. 적재는 할 수 있는데 역까지 가져갈 트럭이 부족해지면 끝입니다.”
에이드리언은 새로운 메모를 만들었다.
농업집결지 차량연료.
그가 물었다.
“필요량 보내주세요.”
“보내면 줍니까?”
“약속은 못 합니다.”
관리자는 잠시 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차라리 낫네요.”
통화가 끝났다.
젊은 분석관이 말했다.
“숫자 다시 내려갈까요?”
“모릅니다.”
에이드리언은 27.1일을 보았다.
“그래서 이 숫자 옆에 시간을 붙입시다.”
화면에 작은 문구가 추가됐다.
CURRENT ESTIMATE — 15:12
그 순간부터 비축일수는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시각이 붙은 추정치가 됐다.
그 순간 개인단말에 가족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버지: 서부 철도변전소 복구팀 들어간다. 통신 불안하면 걱정 말고 일해.
에이드리언은 답장창을 열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그렇게 쓰고 지웠다.
아버지가 들을 말이 아니었다.
`확인했습니다. 끝나면 연락 주세요.`
전송.
곧바로 화면 한쪽에서 해운보험사 위험등급이 올라갔다.
예상 입항량이 다시 떨어졌다.
모리스가 물었다.
“좋은 숫자 보고 있을 시간 끝난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작이 아직 연결된 화면에서 말했다.
“그래도 우리 두 편은 갑니다.”
에이드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편부터 살리죠.”
“케인 씨.”
아이작이 그를 불렀다.
“네.”
“다음번에는 ‘얼마 있습니까’보다 ‘얼마를 계속 보낼 수 있습니까’부터 물어보세요.”
에이드리언이 잠깐 멈췄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때 벽면 뉴스가 긴급화면으로 전환됐다.
멀리 떨어진 대형 항만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아직 자막은 원인을 쓰지 못했다.
MAJOR PORT INCIDENT — CONFIRMED
에이드리언은 2.5일을 벌었다.
세상은 그보다 더 빨리 나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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