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79화 — 군인의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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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노프가 새 서약문을 싫어한 이유는 문장이 너무 길어서였다.
“군인은 이걸 외우지 못합니다.”
국방장관이 말했다.
“헌법적 의미가 중요합니다.”
“의미를 줄이지 말고 단어를 줄이십시오.”
초안은 이랬다.
본인은 로시아 제국의 합법적 헌정질서, 황제, 책임내각, 의회가 제정한 법률 및 정당한 상관의 명령에 충성을 맹세하며—
베레노프는 중간에서 종이를 내려놨다.
“충성 대상이 몇 명입니까?”
법무관이 말했다.
“기관입니다.”
“전투 중엔 기관이 명령 안 합니다. 사람이 합니다.”
“그래서 정당한 상관.”
“상관 둘이 다르게 명령하면?”
아무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게 지금 문제였다.
동원해제로 군대 규모는 줄고 있었다.
병사 가족들도 명령충돌을 빠르게 알아챘다.
제22여단 병영 앞에는 아내와 부모 수십 명이 모였다.
“간다면서 왜 안 갑니까?”
한 여자가 물었다.
병사는 대답했다.
“명령 기다립니다.”
“어느 명령?”
그 질문에 웃음이 나왔다.
웃긴데 웃을 일이 아니었다.
한 노인은 베레노프에게 말했다.
“내 아들은 나라 군인입니까, 동부 군인입니까?”
베레노프가 말했다.
“나라 군인입니다.”
“그럼 왜 동부 허락을 기다립니까?”
“허락이 아니라 대체경비 문제입니다.”
“그 차이를 내 며느리한테 설명해보시오.”
베레노프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휘체계의 헌법적 차이는 가족에게는 출발일이 언제냐는 문제였다.
대신 남은 부대의 충성대상은 더 복잡해졌다.
황제는 여전히 통수권자.
책임내각에는 국방장관.
군관구는 오래된 지휘계통.
의회는 군 예산과 법률.
일부 지역평의회는 자기 지역 병력을 외부로 이동시키기 전에 동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군은 하나였지만,
명령은 여러 곳에서 왔다.
제22보병여단 사건이 서약 논쟁을 폭발시켰다.
여단은 동부지역에서 네바그라드 근처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국방부 명령.
법적이었다.
그런데 동부지역연합회는 철도 치안이 불안하다며 병력 이동을 2주 유예해 달라고 요구했다.
요구.
명령은 아니었다.
여단장 스테판 로고프는 국방부 명령을 따르려 했다.
병사대표위원회가 반대했다.
“우리 고향 철도를 누가 지킵니까?”
로고프가 말했다.
“군대는 지역군이 아니다.”
“그럼 왜 지역에서만 징집했습니까?”
“편성 때문.”
“가족은 거기 있습니다.”
병사대표위원회는 명령거부를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출발열차 탑승을 미뤘다.
6시간.
12시간.
하루.
국방부는 사실상 항명이라고 판단했다.
베레노프가 현장에 파견됐다.
그가 도착했을 때 병사들은 병영에 있었다.
병영 안에서는 평소 훈련이 중단돼 있었다.
병사들은 떠날지 남을지 몰라 군장을 풀지도 못했다.
침상 아래 상자는 닫혀 있었고,
편지는 이미 가족에게 ‘내일 출발’이라고 보낸 뒤였다.
한 병사가 베레노프에게 편지를 보여줬다.
“어제도 내일이라고 썼습니다.”
“오늘도?”
“오늘은 안 썼습니다.”
“왜?”
“거짓말 같아서.”
베레노프는 편지를 돌려줬다.
지휘혼란은 군사적 준비율만 떨어뜨리는 게 아니었다.
병사들이 자기 가족에게 말할 수 있는 사실도 줄였다.
그는 그 점을 국방부 보고에 적었다.
명령변경은 병력뿐 아니라 가족통지·귀향계획의 신뢰를 훼손함.
참모가 말했다.
“그런 것도 보고합니까?”
“요즘은.”
무기도.
탄약도.
장교들도.
누구도 총을 들고 반란을 외치지 않았다.
그저 열차에 타지 않았다.
로고프 여단장은 베레노프를 보자 말했다.
“저 사람들 설득해 주십시오.”
“내가 왜?”
“대령님은 병사들이 믿습니다.”
“그게 지휘권은 아니오.”
병사대표 세 명이 들어왔다.
대표위원회 내부도 하나가 아니었다.
농부 출신 대표는 지역잔류를 강하게 원했다.
“수확 전까지 최소 병력 남겨야 합니다.”
교사 출신은 중앙명령을 따르되 이유를 공개하자고 했다.
철도노동자 출신은 대체경비 숫자가 확정되면 바로 출발하자는 쪽.
위원회가 모든 병사의 뜻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베레노프가 물었다.
“대표는 어떻게 뽑았습니까?”
“중대별 선출.”
“투표율?”
세 사람 얼굴이 달라졌다.
농부 대표가 말했다.
“절반 조금 넘습니다.”
“반대자는?”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위원회 결정 따릅니까?”
“원칙상.”
베레노프가 말했다.
“그럼 여러분도 지휘관과 비슷해지는군.”
대표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선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책임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한 명은 농부 출신.
한 명은 교사.
한 명은 철도노동자.
그들은 말했다.
“정부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지역이 무방비가 되는 명령을 재검토해 달라는 겁니다.”
베레노프가 물었다.
“국방부가 거부하면?”
침묵.
교사 출신 병사가 말했다.
“그때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은 결정 미루는 거고?”
“네.”
베레노프는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이해했다.
자기 역시 명령을 12시간 미룬 적이 있었다.
차이는 자신은 지휘관이었고,
이들은 병사집단이었다.
그 차이는 작지 않았다.
“내가 명령 미뤘을 때.”
베레노프가 말했다.
“책임을 내 이름으로 졌소.”
병사들이 조용해졌다.
“지금 누가 책임집니까?”
대표위원장이 말했다.
“위원회가.”
“위원회가 감옥 갑니까?”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베레노프는 그 빈칸을 놓치지 않았다.
“집단결정은 용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책임까지 사라지게 하면 안 돼.”
협상은 밤까지 갔다.
동부지역연합회에서 이리나 베셀로바가 전보를 보냈다.
병력 이동 자체에 반대하지 않음. 지역철도 치안 대체인력 확보 후 출발 요청.
국방부는 처음엔 거부했다.
사라노프가 숫자를 확인했다.
지역철도 경비병력 1,400명 중 600명이 여단 소속.
그들이 빠지면 실제 공백이 생겼다.
“이건 지역주의가 아니라 배치문제입니다.”
그가 말했다.
국방장관이 물었다.
“그럼 군대가 지역평의회 허락 받고 이동합니까?”
“허락은 아닙니다.”
“결과는 같지 않습니까?”
아르세닌이 중재했다.
대체병력 400명 파견.
지역 민간철도경비 250명 임시증원.
제22여단은 48시간 뒤 출발.
병사대표위원회는 탑승 동의.
국방부 명령은 철회되지 않았다.
지역 요구도 완전히 거부되지 않았다.
베레노프는 출발날 플랫폼에서 병사들을 봤다.
이번에는 모두 탔다.
한 병사가 물었다.
“대령님. 그래서 우리는 누구한테 충성합니까?”
베레노프가 말했다.
“사람 말고 법에.”
“법도 서로 다르게 읽잖습니까.”
“그래서 어려운 거다.”
“그럼 명령은?”
베레노프는 잠깐 생각했다.
“합법적인 명령을 따르고.”
“둘 다 합법이면?”
“그때는 책임질 사람이 결정해야지.”
“누구?”
베레노프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걸 지금 정하는 중이야.”
네바그라드로 돌아온 그는 새 서약문 초안에서 단어를 지웠다.
황제.
내각.
의회.
상관.
기관 이름을 나열하는 대신 한 문장을 썼다.
본인은 헌법과 법에 따른 민간정부의 권위에 복무하며, 불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을 책임 또한 진다.
국방장관이 읽었다.
“짧군요.”
“병사들이 외울 수 있습니다.”
“황제는?”
“헌법 안에 있습니다.”
“상관은?”
“법 안에.”
“불법명령 판단은 누가?”
베레노프가 말했다.
“그게 다음 문제입니다.”
서약문은 채택되지 않았다.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서약문 한 문장을 놓고 세 시간이 걸렸다.
불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을 책임.
한 의원이 물었다.
“병사에게 명령의 합법성을 판단시키면 군이 무너집니다.”
베레노프가 말했다.
“명백한 불법명령까지 따르게 할 겁니까?”
“명백한의 기준?”
“민간인 학대, 사적 약탈, 법에 없는 처형 같은 것부터.”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명령은?”
“따르고 사후 이의제기.”
안토노바가 자문석에서 말했다.
“즉시 거부 가능한 명백한 불법과, 법적 판단이 필요한 분쟁명령을 구분해야 합니다.”
새 문장이 붙었다.
명백히 불법한 명령은 거부한다. 법적 권한이 다투어지는 명령은 지휘계통에 이의를 기록하되 원칙적으로 따른다.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군인이 모든 명령에 복종하거나 모든 명령을 표결하는 두 극단 사이에 길 하나가 생겼다.
그러나 폐기되지도 않았다.
서류철 맨 위에 남았다.
군의 충성을 한 사람에게서 규칙으로 옮기는 일은,
한 문장보다 훨씬 오래 걸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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