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3화 — 전화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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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동 뒤 40명 연락망은 더 유명해졌다.
그게 문제였다.
신문 하나가 기사를 썼다.
시민 자율비상대 — 정전 복구에 활약
기사에는 사진도 있었다.
코렌의 소방차.
모로지나 병원 직원.
베레노프가 보낸 군 트럭.
그리고 뒤쪽에 우연히 찍힌 할크로프트.
신문은 그를 영국인 자문관이라고 설명했다.
안토노바가 사진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누가 자문관입니까?”
세레빈이 말했다.
“사진은 그렇게 보이네요.”
할크로프트는 더 불편했다.
런던이 이 기사를 보면?
더 나쁜 건 현지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다음 호에는 정정문을 요구했다.
해당 외국인은 비상연락망의 구성원 또는 자문관이 아님.
신문사는 작은 정정을 실었다.
누구도 1면 사진만큼 크게 읽지 않았다.
할크로프트는 이미지가 사실보다 먼저 조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비상대’라는 이름은 아무도 정한 적 없었다.
다음 날 다른 신문은 더 크게 썼다.
시민방위조직 등장
안토노바는 신문을 탁자에 던졌다.
“이제 이름이 두 개입니다.”
세레빈이 말했다.
“우리는 아직 하나도 안 정했는데.”
베레노프는 더 걱정했다.
“‘방위’라는 말 빼야 합니다.”
“왜요?”
“군사조직처럼 보입니다.”
시장 대행은 오히려 좋아했다.
“시민들이 안심합니다.”
안토노바가 말했다.
“누구는 불안해할 겁니다.”
실제로 내무행정국에서 문의가 왔다.
조직 성격·인원·지휘체계·무장여부 제출 바람.
세레빈이 말했다.
“우리가 조직 아니라고 보내죠.”
안토노바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제 설득력 없습니다.”
“왜요?”
“명단 있고, 연락체계 있고, 규칙 있고, 실제 출동했잖아요.”
“그럼 조직?”
“최소한 행정적으로는.”
모로지나가 말했다.
“그냥 응급연락망이라고 하면 안 됩니까?”
“언론이 그렇게 안 부릅니다.”
“언론이 우리 이름 정합니까?”
세레빈이 말했다.
“우리가 안 정하면.”
회의는 이름을 정하는 문제로 한 시간 갔다.
베레노프는 군사적 단어를 반대.
안토노바는 권한을 과장하는 단어 반대.
모로지나는 길고 어려운 이름 반대.
세레빈은 이름 자체에 관심 없다고 하면서 제일 많이 말했다.
결국 임시 명칭:
시민비상연락대
Civic Emergency Contact Group.
안토노바가 말했다.
“‘대’도 좀 큽니다.”
세레빈이 말했다.
“‘명단’이라고 계속 할 순 없잖아요.”
“연락망?”
모로지나가 말했다.
“그게 낫네요.”
최종:
시민비상연락망
이름을 정하자 바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누가 대표해서 언론에 말할 것인가.
세레빈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가 가장 말을 잘했고 연락망을 실제로 묶었기 때문이다.
세레빈은 거부했다.
“내가 대표되면 노동조합 조직처럼 보입니다.”
모로지나가 말했다.
“그럼 안토노바.”
“법률조직처럼 보입니다.”
베레노프는 군인이라 더 안 됐다.
모로지나도 병원 이해만 대표한다고 했다.
결국 고정 대변인 없음으로 정했다.
상황별 담당기관이 설명.
공통 규칙은 회의록으로 공개.
불편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 얼굴과 조직이 동일시되는 걸 피할 수 있었다.
할크로프트는 그 결정을 들으며 사라노프를 떠올렸다.
유능한 한 사람에게 결정과 설명이 모이는 체계와,
의도적으로 얼굴을 만들지 않는 체계.
어느 쪽이 오래 버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누구도 감동하지 않았다.
그게 장점이었다.
공개설명회에서는 모두가 만족하지 않았다.
북부구역 주민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누가 당신들을 뽑았습니까?”
안토노바가 답했다.
“아무도.”
“그런데 우리 동네에 와서 움직여요?”
“요청받은 재난현장에만 갑니다.”
“내일은 누가 요청합니까?”
“등록기관.”
“그 기관들이 잘못하면?”
좋은 질문이었다.
세레빈이 말했다.
“그럼 우리도 안 따라야죠.”
안토노바가 그를 봤다.
“그렇게 간단히 말하지 마세요.”
주민은 계속했다.
“경찰도 정부도 못 믿겠다면서 시민조직까지 만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모로지나가 말했다.
“아무도 그냥 믿지 마세요.”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우리가 뭘 했는지 공개하고, 틀리면 문제 삼으세요.”
주민은 만족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리에 앉았다.
연락망은 신뢰를 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검증받아야 하는 조직이 되기로 했다.
그 원칙은 이름보다 더 중요했다.
내무행정국에는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인원 40.
상시동원 없음.
지휘관 없음.
무기 지급 없음.
시설 보호·연락·운송·응급지원 목적.
체포권 없음.
정치집회 개입 금지.
상황별 필요한 인원만 호출.
구성원들도 이 문서를 읽었다.
전직 하사관 한 명이 물었다.
“무기 지급 없음이면 개인 총도 두고 와야 합니까?”
베레노프가 말했다.
“출동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안토노바가 바로 끼어들었다.
“원칙적으로 두고 옵니다.”
“약탈이 있으면?”
“경찰 호출.”
“경찰이 없으면?”
또 같은 빈칸.
모로지나가 말했다.
“의료·화재·전력 출동에는 무기 필요 없습니다.”
코렌도 동의했다.
“소방차에 총 실으면 자리만 차지합니다.”
결국 별도 규칙이 붙었다.
무장은 예외적 시설방호 상황에 한해, 등록된 개인무기만. 무기 소지자는 별도 호출.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조직보다, 누가 총을 가져와도 되는지 제한하는 조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무행정국은 추가질문을 보냈다.
지휘관 없음 상태에서 누가 출동 결정?
안토노바가 답을 쓰려다가 멈췄다.
좋은 질문이었다.
첫 출동 때는 시청 야간당직자가 연락망을 호출했다.
다음에는?
세레빈이 말했다.
“누구든 상황 발견하면?”
“그러면 장난전화에도 출동합니다.”
모로지나가 말했다.
“기관별 요청.”
베레노프가 제안했다.
“병원·시청·소방·철도·전력 등 등록기관 요청이 있을 때.”
“개인이 위험 발견하면?”
“해당기관에 먼저 신고.”
안토노바가 적었다.
출동요청 권한: 등록 공공·필수서비스 기관의 당직 책임자.
“그 기관이 멈췄으면?”
세레빈이 물었다.
다시 빈칸.
결국 비상예외를 붙였다.
기관 연락 불가 + 생명·필수시설에 즉각 위험 시, 연락망 구성원 3인 이상 공동요청 가능.
베레노프가 말했다.
“왜 셋?”
“혼자보다 낫고, 다섯은 늦습니다.”
안토노바가 말했다.
“완벽한 숫자는 아닙니다.”
“그럼?”
“지금은 셋.”
그들은 규칙을 하나씩 만들었다.
조직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규칙을 만들수록 조직이 됐다.
할크로프트는 이번 회의에도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회의 뒤 세레빈이 초안을 보여줬다.
“어때요?”
할크로프트는 바로 돌려줬다.
“내가 검토하면 안 됩니다.”
“왜?”
“런던 지시.”
“한 줄 읽는 것도?”
“읽었잖아요.”
“그럼 의견.”
“없습니다.”
세레빈이 그를 빤히 봤다.
“요즘 재미없어졌네요.”
“좋은 현상입니다.”
“당신한테는?”
할크로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시민비상연락망 규칙은 2쪽이 됐다.
첫날 명단은 이름만 있었다.
이제 목적, 금지사항, 호출절차, 해산조건까지 생겼다.
마지막 조항은 안토노바가 넣었다.
정상적인 경찰·소방·의료·행정 기능이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본 연락망의 필요가 소멸할 경우 해산한다.
세레빈이 말했다.
“‘안정적으로’가 몇 일입니까?”
안토노바가 그를 봤다.
“또 시작이네요.”
“종료조건 좋아하잖아요.”
결국 30일 연속 정상운영 후 해산검토.
자동해산은 아니었다.
베레노프가 말했다.
“사라노프랑 비슷해졌군.”
안토노바의 표정이 굳었다.
“다릅니다.”
“어디가?”
그녀는 문서를 다시 읽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라노프의 논리도 비슷했다.
필요가 남아 있으면 권한을 유지한다.
차이는 규모와 강제력.
그리고 누가 종료를 판단하는가.
안토노바는 마지막 문구를 고쳤다.
30일 연속 정상운영 후 시민평의회 공개회의에서 존속 여부 재승인. 미승인 시 자동해산.
“이제 다릅니까?”
베레노프가 물었다.
“조금.”
안토노바가 말했다.
“최소한 끝나려면 누군가 허락해야 하는 게 아니라, 계속하려면 누군가 다시 허락해야 합니다.”
할크로프트는 그 말을 멀리서 들었다.
문장은 거창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화명단 두 장짜리 규칙에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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