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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42화 — 황제의 대답

자유의 세기 · 42 / 516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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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대답은 ‘아니오’가 아니었다.

‘예’도 아니었다.

조건부 협의 계속.

궁정은 책임내각 원칙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세 가지 조건을 붙였다.

황제의 입장은 궁정 법무관이 설명했다.

“폐하께서는 의회의 신임을 받는 내각이 전시행정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십니다.”

아르세닌이 물었다.

“그럼 왜 해임권을 남기려 하십니까?”

“정부가 의회 다수만을 기준으로 움직이다 제국 전체의 안보를 해칠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누가 안보를 해쳤다고 판단합니까?”

“폐하께서.”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법무관은 화내지 않았다.

“의회가 항상 옳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럼?”

“그래서 법원과 선거가 있습니다.”

“황제는?”

아르세닌이 잠깐 멈췄다.

“헌정질서의 일부.”

법무관의 표정이 굳었다.

‘일부’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황제를 국가의 일부로 볼 것인가,

국가를 대표하는 최종기관으로 볼 것인가.

문장 하나가 제국 전체의 구조를 가르고 있었다.

군 통수·고위장교 임명은 황제 권한 유지.

외교조약 체결권 유지.

비상시 내각 해임권 유지.

의회 대표단은 첫 두 가지는 협상 가능하다고 봤다.

세 번째가 문제였다.

시내 신문도 정확히 세 번째 조건에서 갈렸다.

보수지는 썼다.

국가위기 시 황제 최종보호권 필요

자유주의지는 반박했다.

책임 없는 해임권은 책임내각을 무의미하게 한다

노동신문은 전혀 다른 제목을 달았다.

빵과 임금은 누가 책임지는가

같은 협상을 보면서 각자가 국가의 다른 부분을 보고 있었다.

세레빈은 노동신문을 읽고 말했다.

“적어도 우리 제목이 제일 이해하기 쉽네요.”

안토노바가 말했다.

“헌법도 결국 그 질문입니다.”

“빵?”

“누가 결정하고, 잘못하면 누가 책임지느냐.”

세레빈은 신문을 다시 봤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헌법 좀 알겠네요.”

안토노바는 그를 칭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아르세닌이 말했다.

“내각이 의회 신임을 받아도 황제가 언제든 해임할 수 있으면 책임이 어디에 있습니까?”

궁정 법무관이 대답했다.

“황제도 국가에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누가 묻습니까?”

방 안 공기가 굳었다.

궁정 법무관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 헌법과 전통을 지키려 했다.

“제국은 의회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동의합니다.”

아르세닌이 말했다.

“그래서 황제 권한을 없애자는 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 임면권을 사실상 제한합니다.”

“정부가 의회에서 예산을 받아야 하니까요.”

두 사람의 논리는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오후에는 군 대표가 들어왔다.

베레노프보다 훨씬 높은 계급의 장군이었다.

그는 책임내각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다.

“군수와 행정이 안정되면 군에도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만 지휘권이 정쟁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아르세닌이 물었다.

“민간정부의 명령도 정쟁입니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군 지휘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건 동의합니다.”

“그럼 통수권은 황제에게.”

“통수권과 작전지휘는 구분해야 합니다.”

논쟁은 다시 시작됐다.

할크로프트는 협상장 밖에 있었다.

외국 대사관 대표들은 별도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환율표를 봤다.

모두 같은 걱정을 했다.

새 정부가 만들어지면 기존 조약과 채무가 유지되는가.

정치적 이상보다 채권계약이 먼저였다.

브리튼 대사가 할크로프트에게 물었다.

“책임내각 가능성?”

“반반보다 높다고 봅니다.”

“숫자로.”

“60.”

“어제는?”

“55.”

“왜 올랐나?”

“궁정이 원칙 자체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노프?”

“총리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됩니다.”

“브리튼이 선호할 사람은?”

할크로프트가 그를 봤다.

“그 질문에 답해도 됩니까?”

대사는 피식 웃었다.

“시험해봤네.”

외국이 새 정부를 고르려 한다는 인상은 최악이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대기실에서는 각국 외교관이 자기 언어로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새 총리가 기존 차관을 인정하는가.

군수계약은 유지되는가.

철도차관 담보는 유효한가.

대사 한 명이 할크로프트에게 말했다.

“이럴 때 헌법보다 채권이 정직합니다.”

“왜요?”

“돈 받을 사람이 누군지 바로 묻거든.”

냉소적인 말이었지만 완전히 틀리진 않았다.

새 정부가 합법인지 세계가 판단하는 방식에는 선언뿐 아니라,

누가 서명한 계약을 누가 계속 갚는지도 포함됐다.

아르세닌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임내각안 부속문서에는 한 줄이 들어갔다.

기존 국가채무·조약·행정계약의 연속성 보장.

혁명적인 변화가 성공하려면,

어떤 것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럼에도 각국은 내부적으로 후보를 평가하고 있었다.

할크로프트도 평가했다.

아르세닌.

사라노프.

현 총리대행.

지방파 후보.

장점과 위험.

그런 표를 만들면서 자신이 어디까지 관찰자인지 또 의심했다.

저녁 다섯 시.

궁정에서 새 문안이 나왔다.

황제는 의회 다수의 신임을 받는 총리를 임명한다.

대신:

국가안보 및 전시 긴급상황에서 황제는 국가평의회 동의를 거쳐 내각 재신임을 요구할 수 있다.

직접 해임권보다 약했다.

의회대표단은 검토에 들어갔다.

아르세닌은 말했다.

“이 정도면 협상 가능합니다.”

다른 의원은 반대했다.

“‘국가안보’가 뭔지 누가 정합니까?”

“그걸 법에 써야죠.”

“또 법.”

“좋은 대안 있습니까?”

논쟁은 밤까지 이어졌다.

사라노프는 그날 밤 의회에 나타났다.

기자들이 몰렸다.

“총리 후보입니까?”

그는 말했다.

“오늘은 수송보고 하러 왔습니다.”

“제안받았습니까?”

“정부가 생기면 그때 정부 얘기합시다.”

“책임내각을 지지합니까?”

사라노프는 잠깐 멈췄다.

“책임지는 내각은 필요합니다.”

“의회에 책임지는?”

“국가에.”

기자들이 바로 받아 적었다.

그 한 단어가 다음 날 신문 제목이 됐다.

사라노프 ‘정부는 국가에 책임’

의회파는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지지자들은 당연한 말이라고 했다.

할크로프트는 직접 문장을 들었다.

사라노프가 의회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의회만을 책임의 유일한 기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분명했다.

밤 열한 시,

궁정과 의회는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도시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결과를 기다리다 먼저 잠들었다.

카페 라디오는 밤 열 시까지만 새 소식을 반복했다.

협의 계속.

합의 근접.

최종결정 없음.

빵집 벨린은 라디오를 끄고 다음 날 반죽을 준비했다.

병원에서는 모로지나가 야간회진을 돌았다.

세레빈은 사고 뒤 새 근무표를 확인했다.

이들에게 황제와 의회의 합의는 중요했다.

하지만 합의가 늦는다고 야간업무가 늦춰지진 않았다.

국가의 꼭대기가 결정을 미룰 때,

아래쪽은 이미 다음 날을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날 계속.

도시는 또 기다렸다.

그 사이 국가조정실은 철도 정시율 신기록을 발표했다.

80.9퍼센트.

사라노프의 가장 강한 정치연설은,

그가 하지 않은 연설일지도 몰랐다.

열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신문 여론조사도 그걸 보여줬다.

“누가 총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사라노프는 1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정부에서 가장 유능한 기관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는 국가조정실이 압도적이었다.

아르세닌의 측근이 그 결과를 보여줬다.

“부럽습니까?”

아르세닌이 말했다.

“매우.”

“그런데 왜 그를 내각에 넣을 생각입니까?”

“유능해서.”

“경쟁자 아닙니까?”

“더더욱 정부 안에 있어야죠.”

아르세닌은 종이를 접었다.

“민주정치는 유능한 사람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도 규칙 안에서 일하게 하는 제도라고 믿고 싶군.”

측근이 물었다.

“믿고 싶다?”

“아직 시험 전이니까.”

그 시험은 생각보다 빨리 올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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