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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9화 — 귀환표

자유의 세기 · 39 / 516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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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행 귀환편 날짜가 채워졌다.

12월 18일.

할크로프트가 정한 날짜가 아니었다.

인사국이 제안한 날짜였다.

동계 임무 1차 종료 및 본부 협의.

회수명령은 아니었다.

협의.

복귀 후 재파견 가능.

웰스는 여전히 선택의 형태를 남겨뒀다.

포스터가 표를 건넸다.

“이번엔 날짜 있습니다.”

할크로프트가 봤다.

열이틀 뒤.

“취소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럼 왜 표를?”

“표가 있어야 취소도 선택이지.”

포스터는 웰스와 비슷한 말을 했다.

할크로프트는 싫은 표정으로 그를 봤다.

“둘이 편지 주고받습니까?”

“당신 얘기 말고도 할 게 많습니다.”

그날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평의회 긴급회의도 없었다.

철도 대형사고도 없었다.

빵 배급도 예정대로였다.

할크로프트는 그 평온이 어색했다.

정오에는 이발소에 갔다.

몇 주째 미뤘던 일이었다.

이발사는 그가 외국인인 걸 알아보고 물었다.

“전쟁 끝나면 돌아갑니까?”

“아마도요.”

“언제 끝납니까?”

“그걸 알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겠죠.”

이발사가 웃었다.

“다들 언제 끝나는지 모르는 일만 하네요.”

옆 의자 남자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책임내각 협상 기사.

철도 사고 기사.

곡물가격 기사.

그는 한 면을 넘기고 스포츠 결과부터 읽었다.

할크로프트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안심됐다.

도시 전체가 정치만으로 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를 자르고, 경기 결과를 보고, 저녁 장을 봤다.

자기가 떠난 뒤에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 사실은 위안이면서 조금 서운했다.

할크로프트는 처음으로 오후 일찍 숙소에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가족에게 온 편지가 있었다.

누나 애그니스.

런던 북쪽 교외에 살았다.

편지 대부분은 평범한 이야기였다.

봉투 안에는 조카가 그린 그림도 있었다.

빨간 집.

검은 연기.

옆에는 막대기 사람 셋.

한 사람 위에 삐뚤삐뚤하게 UNCLE EDWIN이라고 적혀 있었다.

할크로프트는 웃었다.

그림 속 자신은 집 앞에 서 있었다.

로시아도, 철도도, 제국도 없었다.

그는 서랍에서 오래된 가족사진을 꺼냈다.

몇 년 전 여름.

어머니.

누나.

조카.

자기 자신.

그 사진 속 사람은 지금보다 조금 더 쉽게 웃고 있었다.

할크로프트는 자신이 왜 이런 사진을 임무지에 가져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여행가방을 쌀 때 습관처럼 넣었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습관이 갑자기 귀환표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다.

조카가 학교에서 싸운 일.

어머니가 겨울마다 같은 감기에 걸리는 일.

아버지 묘지의 나무가 쓰러져 관리사무소에 항의한 일.

마지막에 짧게 적혀 있었다.

에드윈,

네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네가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나도 그렇게 말해두었다.

틀렸다면 이번엔 네가 직접 설명해라.

할크로프트는 편지를 접었다.

가족은 로시아 제국의 행정위기를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크리스마스 전에 집에 오느냐였다.

그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애그니스,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거기서 멈췄다.

‘업무 때문에’라고 쓰면 쉬웠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은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세레빈이었다.

“술 마십니까?”

“때에 따라.”

“오늘은?”

“무슨 일인데요?”

세레빈이 작은 작업수첩을 꺼냈다.

말로프의 것이었다.

“이거 읽어보세요.”

할크로프트는 수첩을 읽었다.

장시간근무.

신호점검.

인력 부족.

마지막 줄.

내일 교대 오면 쉼.

내일은 오지 않았다.

“보고서에 넣습니까?”

세레빈이 물었다.

할크로프트는 수첩을 돌려줬다.

“원하면.”

“나는 넣었으면 합니다.”

“가족 동의는?”

“있습니다.”

할크로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넣겠습니다.”

세레빈은 책상 위 귀환표를 봤다.

“갑니까?”

“런던에는 뭐가 있습니까?”

세레빈이 물었다.

“가족.”

“아내?”

“없습니다.”

“약혼자?”

“없고.”

“애인?”

할크로프트가 그를 봤다.

“정보원 심문입니까?”

“그냥 궁금해서.”

“누나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럼 가야겠네요.”

“그렇게 단순합니까?”

세레빈은 말로프 수첩을 손에 돌렸다.

“가족 있는 사람은 가끔 가족한테도 가야죠.”

“당신 가족은?”

“어머니는 북쪽에. 형은 군대. 여동생은 결혼했습니다.”

“자주 봅니까?”

“아뇨.”

“그러면서.”

세레빈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남한테라도 말하는 겁니다.”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전쟁과 행정위기 말고도 사람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 사실을 너무 오래 무시하면,

무엇을 지키려고 일하는지도 잊을 수 있었다.

“모릅니다.”

“가야죠.”

할크로프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영국 사람이잖아요.”

“그게 전부입니까?”

“아뇨.”

세레빈은 의자에 앉았다.

“가서 보고해야죠. 여기 어떤지.”

“보고는 전보로 합니다.”

“전보에는 냄새가 없잖아요.”

할크로프트가 웃었다.

세레빈은 귀환표를 다시 봤다.

“그리고 돌아올 수도 있고.”

“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까?”

“아직 여기 사람들한테 잔소리할 게 많아 보여서.”

“내가 잔소리를 합니까?”

“많이.”

둘은 말로프 사고보고를 함께 정리했다.

세레빈은 사망자 이름을 반드시 넣으라고 했다.

할크로프트는 넣었다.

밤이 늦어 세레빈이 돌아간 뒤에도 귀환표는 책상 위에 남았다.

할크로프트는 여행가방을 침대 위에 올렸다.

넣을 것은 많지 않았다.

정장 두 벌.

책 세 권.

면도도구.

가족사진.

검은 수첩.

갈색 수첩 앞에서 손이 멈췄다.

런던으로 가져가야 하는가.

두고 가야 하는가.

업무기록이라면 가져가야 했다.

현지인들의 신뢰기록이라면 함부로 국경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는 결국 둘 다 넣지 않았다.

책상 위에 그대로 뒀다.

가방도 다시 닫지 않았다.

출발 열이틀 전부터 짐을 싸는 건 지나치게 이르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실은 무엇을 가져갈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할크로프트는 애그니스에게 답장을 다시 썼다.

18일 표를 잡았다.

아직 탈지는 모르겠다.

그는 편지를 잠깐 덮었다.

‘왜 아직 모르느냐’를 설명해야 했다.

철도조정.

법원.

시민평의회.

감시명단.

그 모든 걸 가족에게 쓸 수는 없었다.

결국 한 줄만 더했다.

여기 일이 예상보다 사람 가까이 와 있다.

모호한 문장이었다.

애그니스는 싫어할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에드윈이 설명을 피하면 더 많은 질문을 했다.

할크로프트는 그 점을 떠올리고 미리 피곤해졌다.

동시에 조금 그리웠다.

집이라는 곳은 자기가 불완전한 답을 하면 계속 묻는 사람이 있는 곳일지도 몰랐다.

한 줄 더.

이번에는 내가 직접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편지를 봉했다.

봉투에 주소를 적고도 한참 들고 있었다.

이 편지가 런던에 먼저 도착할지,

자기가 먼저 도착할지도 몰랐다.

모로지나에게 귀환표 얘기를 했을 때 그녀 반응은 단순했다.

“가야 하면 가세요.”

“그게 전부입니까?”

“내가 붙잡으면 안 갑니까?”

“아니요.”

“그럼 왜 물어요?”

안토노바는 더 냉정했다.

“돌아가서 보고하는 게 당신 직업이잖아요.”

“다들 왜 이렇게 보내려고 합니까?”

“당신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안 돌아오면?”

안토노바는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그럼 그게 원래 삶이었던 거죠.”

아무도 ‘남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할크로프트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핑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날 아무 정부도 무너지지 않았다.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

열차도 대체로 움직였다.

그런데 할크로프트에게는 최근 몇 주 중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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