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7화 — 삼십 일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국가조정실의 시범기간이 끝나는 날, 열차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 사실부터 사라노프에게 유리했다.
전쟁수송부 대회의실에는 지난 한 달 자료가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복 ‘최우선’ 명령.
평균 대기시간.
기관차 공회전 시간.
필수물자 지연.
병원·발전소·군수창 우선수송.
붉은 선은 대부분 내려가 있었다.
“평균 지연 31퍼센트 감소.”
사라노프가 말했다.
“중복 우선명령 58퍼센트 감소.”
다음 표.
“명령 충돌 해결시간 6시간 20분에서 2시간 7분.”
전쟁수송부 장관이 안경을 벗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의회 예산위원의 파벨 아르세닌은 숫자를 천천히 읽었다.
“좋은 결과입니다.”
사라노프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더 어렵군요.”
회의실 시선이 아르세닌에게 모였다.
그는 마흔 후반의 의회정치인이었다. 말투는 지나치게 부드럽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상대방 말을 충분히 인정한 뒤 가장 불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시범기간은 오늘 끝납니다.”
사라노프가 대답했다.
“공동평가 후 갱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갱신 기간은?”
“전시수송 정상화까지.”
“그 문구는 지난번에도 들었습니다.”
아르세닌은 벽의 그래프를 가리켰다.
“지표가 좋아졌습니다. 그러면 정상화에 가까워진 겁니까?”
“일부는.”
“그럼 권한을 일부 줄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라노프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왜죠?”
“권한을 사용했기 때문에 지표가 좋아진 겁니다.”
아르세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논리라면 성공할수록 권한을 유지해야겠군요.”
“필요가 유지되는 동안은요.”
“필요를 무엇으로 측정합니까?”
사라노프는 준비된 문서를 펼쳤다.
이번에는 종료지표도 있었다.
철도 정시율 85퍼센트 이상.
필수물자 평균 지연 3시간 이하.
우선명령 충돌률 일정 수준 이하.
세 달 연속 유지 시 단계적 권한 축소 검토.
할크로프트는 그 문서를 보고 조금 놀랐다.
사라노프는 끝나는 조건을 아예 무시하지 않았다.
아르세닌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좋군요.”
“문제가 있습니까?”
“‘검토’라는 단어.”
사라노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의회는 단어를 좋아하는군요.”
“정부는 동사를 좋아하고요.”
“기차는 둘 다 싫어합니다.”
대회의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났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아르세닌이 말했다.
“‘단계적 축소 시작’으로 바꿉시다.”
“세 달은 너무 짧습니다.”
“네 달.”
“여섯.”
“다섯.”
사라노프가 잠깐 생각했다.
“다섯 달 연속.”
“좋습니다.”
아르세닌은 서류에 표시했다.
할크로프트는 둘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싸우고 있었지만 협상은 됐다.
아직은.
회의의 두 번째 안건은 더 어려웠다.
국가조정실의 지방권한 확대.
사라노프는 라도바 같은 지방도시에 전시조정관을 파견하자고 제안했다.
군수·철도·식량의 충돌을 현장에서 해결하는 중앙대표.
“현지 조정이 잘 되는 곳에도?”
아르세닌이 물었다.
“전국 기준이 필요합니다.”
“라도바는 지금도 지연률이 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할크로프트는 그 말에서 마리야 벨스카를 떠올렸다.
회의가 끝난 뒤 그녀에게 전보를 보냈다.
공식 정보가 아니라 이미 공개된 회의결과였다.
중앙 전시조정관 파견안 논의.
답은 저녁에 왔다.
사람을 보내는 건 환영합니다. 이미 아는 척만 안 하면 됩니다. — M.B.
할크로프트는 웃었다.
다음 날 사라노프도 비슷한 전보를 받았다.
라도바 시청이 중앙에 공식 의견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현지 조정체계와 병행 가능. 기존 지방권한의 자동 대체에는 반대.
사라노프는 그 문서를 읽고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비서에게 말했다.
“라도바 자료 전부 가져오시오.”
할크로프트가 물었다.
“압박하려는 겁니까?”
“배우려고요.”
“그리고?”
“필요하면 압박도 하겠죠.”
사라노프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둘은 모순이 아닙니다.”
며칠 뒤 첫 중앙조정관 세 명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한 곳에서는 성과가 즉시 좋아졌다.
군수열차와 농산물열차 충돌을 하루 만에 해결했다.
다른 한 곳에서는 지방정부와 싸우느라 회의만 늘었다.
라도바에서는 벨스카가 조정관에게 첫날부터 자기 회의에 앉으라고 했다.
“지시하러 온 겁니다.”
조정관이 말했다.
“먼저 들어보세요.”
“중앙권한입니다.”
“중앙도 귀는 있을 것 아닙니까.”
회의는 시작부터 험했다.
그런데 사흘 뒤 결과보고는 의외였다.
현지 협의체 유지. 중앙조정관은 중앙기관 연락·이견 상신 역할 중심.
사라노프가 그 안을 승인했다.
할크로프트는 물었다.
“생각보다 유연하군요.”
사라노프가 말했다.
“작동하는 걸 왜 부숩니까?”
“전국 기준은?”
“작동하지 않는 곳에 더 필요하겠죠.”
그 답도 맞았다.
그날 발표된 30일 평가보고서에서 국가조정실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평가보고서에는 좋은 숫자만 있지는 않았다.
한 구간에서는 정시율이 올랐지만 화물 취소율도 함께 올랐다.
할크로프트가 물었다.
“정시에 못 보낼 열차를 아예 취소해서 정시율이 좋아진 건 아닙니까?”
국가조정실 통계책임자가 말했다.
“일부는 그렇습니다.”
사라노프는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취소율도 같이 냈습니다.”
취소화물 중 절반 이상은 다음 날 재편성됐고, 일부는 수요 자체가 사라졌으며, 나머지는 다른 경로로 전환됐다.
“숫자를 예쁘게 만들려고 취소한 건?”
“확인된 건 두 건.”
“처분은?”
“역장 경고 하나, 배차책임자 징계 하나.”
사라노프가 말했다.
“성과지표를 만들면 사람들이 지표에 맞춰 행동합니다.”
아르세닌이 물었다.
“그걸 알고도 씁니까?”
“안 쓰면 아무것도 측정 못 합니다.”
“그럼?”
“하나만 안 봅니다.”
할크로프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사라노프는 숫자를 맹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숫자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중앙조정을 원했다.
그래서 더 어려운 상대였다.
신문 제목은 간단했다.
열차가 움직였다. 권한도 남았다.
차량기지에서는 그 제목을 다르게 읽었다.
세레빈은 신문을 접어 탁자 위에 던졌다.
“열차가 움직인 건 맞습니다.”
젊은 기관사가 말했다.
“그럼 좋은 거 아닙니까?”
“좋지.”
“근데 왜 표정이 그래요?”
“열차 움직인 사람이 신문에 사라노프 한 명으로 나오니까.”
“실제로 조정실이 많이 한 것도 맞잖아요.”
세레빈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 말도 맞았다.
새 우선순위 체계 덕분에 현장에서 전화 돌리는 시간은 줄었다.
기관사들도 어느 명령을 먼저 볼지 알기 쉬워졌다.
세레빈은 결국 말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지.”
“뭘요?”
“사람들이 편해지는 제도는 오래 갑니다.”
기관사는 이해 못 한 표정이었다.
세레빈도 새 체계를 없애자고 할 생각은 없었다.
필요해서 만든 것이 언제부터 당연해서 남는지,
그게 문제였다.
아르세닌은 그 제목을 보고 말했다.
“두 번째 문장이 첫 번째보다 오래 갈지도 모르겠군.”
할크로프트는 반박하지 않았다.
성과는 실제였다.
그래서 다음 논쟁은 더 어려워졌다.
회의가 끝난 뒤 아르세닌은 할크로프트를 복도에서 불렀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무슨 쪽요?”
“사라노프 권한 연장.”
할크로프트는 웃었다.
“요즘 다들 그 질문을 합니다.”
“답은?”
“연장하되 종료조건을 더 명확히.”
“정치인 같은 답이군요.”
“불쾌한 말입니다.”
아르세닌의 표정이 풀렸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왜 회의에서 더 세게 반대합니까?”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야 조건이 생기니까.”
“사라노프도 그걸 압니까?”
“알 겁니다.”
“그럼 연극입니까?”
“아뇨.”
아르세닌이 말했다.
“진짜로 반대하고, 진짜로 타협하는 겁니다. 둘은 동시에 가능합니다.”
아르세닌은 다음 회의시간을 적어 주고 먼저 복도를 내려갔다.
사라노프 쪽 회의실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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