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0화 — 장관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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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은 진짜였다.
장관은 기억하지 못했다.
할크로프트는 전쟁수송부 회의실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문서에는 전쟁수송부 장관의 친필서명이 있었다.
네바그라드 제4발전소 연료수송 최우선 지정.
그 명령 때문에 다른 화물 여러 편이 밀렸다.
문제는 같은 날 같은 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다른 명령이 있었다.
서부군수창 탄약수송 최우선 지정.
둘 다 최우선.
둘 다 같은 시간대.
둘 다 친필서명.
장관은 문서를 번갈아 봤다.
“내 서명이 맞군.”
국가조정실의 사라노프가 물었다.
“두 문서 모두 직접 승인하셨습니까?”
장관이 비서실장을 봤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전시 우선명령은 사전서명지를 사용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할크로프트가 물었다.
“사전서명지?”
비서실장은 불쾌한 얼굴을 했다.
“장관께서 모든 긴급명령을 직접 기다릴 수 없으니까요.”
“빈 문서에 서명합니까?”
“완전히 빈 문서는 아닙니다.”
“어느 정도 비어 있습니까?”
장관이 손을 들었다.
“그 질문은 내가 하겠소.”
비서실장이 숨을 들이마셨다.
“표준명령 양식에 서명하십니다. 이후 전시수송국장이 대상과 시간을 채웁니다.”
“몇 장?”
“주당 스무 장 정도.”
장관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열 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긴급수요가 늘었습니다.”
사라노프가 문서를 가져갔다.
“이 방식은 오늘부로 중지해야 합니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러면 모든 긴급수송이 장관 결재를 기다려야 합니다.”
“조정실이 승인하겠습니다.”
장관이 사라노프를 봤다.
“내 권한을 당신 부서가 가져간다는 뜻이오?”
“아닙니다.”
“그럼?”
“장관님이 실제로 행사하지 않는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지 명확히 하자는 겁니다.”
비서실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할크로프트는 사라노프를 봤다.
말은 날카로웠지만 틀리지 않았다.
장관이 물었다.
“대안은?”
사라노프는 준비해 왔다.
“긴급우선 명령은 세 단계로 나눕니다.”
그가 종이를 펼쳤다.
“1급은 장관 또는 차관 직접 승인.”
“2급은 조정실과 부처 공동.”
“3급은 실무국장 권한.”
“그리고 ‘최우선’이라는 단어는 1급에만 사용.”
전쟁수송부 차관이 말했다.
“그럼 현장속도가 느려집니다.”
“지금은 모두 최우선이라 아무도 빠르지 않습니다.”
사라노프는 최근 2주 자료를 가져오게 했다.
표에는 붉은 표시가 빽빽했다.
‘최우선’ 명령 186건.
그중 같은 시간대 동일 선로에서 충돌한 사례 41건.
평균 해결시간 6시간 20분.
다음 표는 동부선 시범등급제 3일치였다.
1급 명령 11건.
충돌 3건.
평균 해결시간 1시간 50분.
전쟁수송부 차관이 말했다.
“표본이 너무 작습니다.”
“맞습니다.”
사라노프가 말했다.
“그래서 전면개편이 아니라 30일 시범을 제안합니다.”
의회 예산위원 대표가 물었다.
“30일 뒤 자동종료?”
사라노프는 잠깐 멈췄다.
“평가 후 갱신.”
“자동종료는 아니군요.”
“전쟁 중 운영제도를 매달 처음부터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안토노바가 있었다면 싫어했을 답이라고 할크로프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수치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사라노프의 방식은 실제로 더 빨랐다.
일주일 뒤 중간집계가 나왔다.
시범구간에서 우선명령 충돌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평균 대기시간도 눈에 띄게 내려갔다.
철도노동자 불만신고 중 ‘명령 중복’ 항목이 처음으로 감소했다.
사라노프는 그 수치를 언론에 공개했다.
신문은 그를 열차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전쟁수송부 직원 중에서도 조정실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었다.
테렌코 같은 역장들에게는 최종결정 전화를 한 곳만 하면 된다는 게 실제로 편했다.
할크로프트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사라노프의 권한 확대는 단순한 정치선전이 아니었다.
현장 사람들이 원한 부분도 있었다.
문제는 편리한 권한이 가장 버리기 어려운 권한이라는 점이었다.
장관이 할크로프트를 봤다.
“브리튼은 이런 일이 없습니까?”
할크로프트가 말했다.
“있습니다.”
회의실 몇 사람이 놀란 얼굴을 했다.
“다만 보통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장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예를 들면?”
“위임.”
사라노프가 말했다.
“그럼 문제없지 않습니까?”
할크로프트가 고개를 저었다.
“위임은 누가 무엇을 결정할지 미리 정하는 겁니다. 사전서명은 누가 무엇을 결정했는지 나중에 알게 되는 방식이고요.”
장관이 비서실장을 봤다.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회의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결론:
사전서명지 전면 폐지.
긴급명령 등급제 도입.
서명자와 실제 작성자의 이름 모두 기록.
개혁은 바로 시험을 받았다.
그날 밤 북부선에서 냉동의약품 열차와 포병탄약 열차가 같은 단선구간을 요구했다.
예전 같으면 두 부처가 모두 ‘최우선’ 전보를 보냈을 것이다.
새 규정에서는 의약품이 1급,
탄약은 2급.
군수부가 반발했지만 국가조정실은 18분 만에 결정을 내렸다.
의약품 먼저.
탄약 52분 지연.
다음 날 병원은 냉동약품을 정상 인수했다.
탄약도 예정일 안에 전선창고에 도착했다.
사라노프는 결과표를 회의에 가져왔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어제라면 누가 먼저 갈지 결정하는 데 탄약이 도착할 시간만큼 걸렸을 겁니다.”
전쟁수송부 장관조차 고개를 끄덕였다.
할크로프트는 그 장면을 주의 깊게 봤다.
권력이 집중되기 전에,
먼저 성과가 집중되고 있었다.
현장 반응도 빨랐다.
테렌코 역장은 새 등급표를 보고 말했다.
“적어도 이제 ‘최우선’이 한 장에 다섯 번은 안 나오겠군요.”
그 정도의 편리함은 사소해 보였다.
하지만 사소한 편리함이 제도를 가장 오래 살게 할 수도 있었다.
좋은 개혁이었다.
문제는 마지막 조항이었다.
기관 간 충돌 시 국가조정실 결정이 최종.
의회 예산위원 대표는 종료조건을 다시 요구했다.
“30일 뒤 의회 보고.”
사라노프가 말했다.
“보고는 동의합니다.”
“권한은?”
“전쟁수송이 정상화될 때까지.”
“그게 언제입니까?”
“정상화 지표를 정하면 됩니다.”
“누가 지표를 정합니까?”
사라노프가 답하려다가 멈췄다.
짧은 침묵이었다.
할크로프트는 놓치지 않았다.
사라노프는 권한의 필요성을 수치로 증명하는 데 능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권한을 끝낼 수치도 필요했다.
문제는 권한을 가진 조직이 자기 종료조건까지 정하게 될 가능성이었다.
타협안은 이렇게 됐다.
30일 후 의회·관련부처 공동평가.
자동종료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기한도 아니었다.
사라노프는 그 조항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회의 뒤 할크로프트가 사라노프에게 말했다.
“성과가 좋습니다.”
“놀랐습니까?”
“조금.”
사라노프의 표정이 풀렸다.
“당신은 내가 실패하길 바랍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늘 끝나는 시점부터 묻더군요.”
“성공하면 더 오래 남을 테니까요.”
사라노프는 잠깐 생각했다.
“좋은 제도가 오래 남는 게 문제입니까?”
“좋은 제도가 아니라 좋은 권한일 수도 있습니다.”
“차이는?”
할크로프트가 말했다.
“제도는 다른 사람이 이어받아도 돌아가야 합니다. 권한은 가진 사람이 옳아야 돌아갑니다.”
사라노프가 웃지 않았다.
“그 문장, 언젠가 다시 이야기합시다.”
둘은 악수하지 않았다.
적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논리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됐다.
그게 장기적으로는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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