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5화 — 런던의 선

자유의 세기 · 25 / 516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웰스의 전보는 짧았다.

현지 정치조직에 대한 자문·문서작성·물질지원 금지.

정보수집 범위를 행정·군수·정치동향 평가로 제한.

모든 민감 접촉은 주간보고에 기재.

에드윈 할크로프트는 마지막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전보 아래에는 인사국 메모가 한 장 더 붙어 있었다.

동계임무 종료 후 본부 복귀 시 상급분석관 보직 검토 가능.

정식 승진 제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문장도 아니었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따뜻한 사무실이 있었다. 정해진 근무시간, 익숙한 언어, 어느 부서가 어느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 대체로 알 수 있는 정부도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포스터가 메모를 흘끗 봤다.

“축하해야 합니까?”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문구는 아무한테나 안 붙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런던 대변인 같습니까?”

“당신이 자꾸 로시아 사람처럼 굴어서 균형 맞추는 중입니다.”

농담이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할크로프트는 인사국 메모를 전보와 함께 접었다.

처음으로 ‘귀환’이 명령이 아니라 선택지처럼 보였다.

포스터가 맞은편에서 말했다.

“화났군요.”

“아닙니다.”

“그 표정은 압니다.”

“생각하는 표정입니다.”

“그 핑계도 압니다.”

할크로프트는 전보를 접었다.

“왜 지금입니까?”

“런던이 당신을 좋아해서.”

“이게?”

“싫었으면 회수했겠죠.”

포스터는 의자에 기대었다.

“웰스 경은 선을 그어주는 겁니다.”

“이미 있습니다.”

“어디?”

할크로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갈색 수첩이 서랍 안에 있었다.

예방관찰 명단 사본도 그 안쪽 봉투에 들어 있었다.

포스터가 말했다.

“당신이 현지 사람들에게 뭘 해주고 있는지 런던이 완전히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뭘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게 문제죠.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 말이 제일 걱정됩니다.”

할크로프트가 창밖을 봤다.

네바그라드에는 이른 오후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민감 접촉을 주간보고에 기재하라는 건, 이름까지 쓰라는 뜻입니까?”

“보통은.”

“보통?”

“정보원 보호가 필요한 경우 코드를 쓰기도 합니다.”

“그럼 코드로 하겠습니다.”

포스터가 그를 봤다.

“전부?”

“필요한 사람은.”

“누가 필요하다고 판단합니까?”

“제가.”

“그게 바로 런던이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할크로프트는 짜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럼 웰스가 직접 여기 와서 판단하라고 하십시오.”

포스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크로프트가 바로 후회했다.

포스터가 차갑게 말했다.

“그 사람은 당신을 여기 보냈고, 아직 불러들이지 않았습니다.”

“압니다.”

“그럼 최소한 화낼 상대는 정확히 고르세요.”

할크로프트는 숨을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그건 런던 보고서에 안 써도 됩니다.”

포스터가 일어섰다.

“오늘 밤까지 접촉목록 보내세요.”

문이 닫힌 뒤 할크로프트는 검은 수첩을 펼쳤다.

A-1: 지방 사법 관계자. 안토노바.

R-3: 철도 노동조직 관계자. 세레빈.

M-2: 군 지휘관. 베레노프.

A-4: 농정 협상 관계자. 보로닌.

H-1: 시립의료 행정 관계자. 모로지나.

그는 이름 대신 코드를 썼다.

하지만 문제는 이름이 아니었다.

코드를 다 쓰고 나니 더 우스운 문제가 생겼다.

A-1을 읽으면 누군지 거의 알 수 있었다. 법원에 드나들고, 구금사건을 맡고, 비상권한 문제를 다루는 여성 법률가.

R-3도 마찬가지였다. 철도노조, 차량기지, 임금협상.

설명을 줄이면 보호가 됐다.

대신 보고 가치도 사라졌다.

설명을 늘리면 코드가 무의미해졌다.

할크로프트는 코드 옆 문장을 여러 번 고쳤다.

A-1 — 사법·비상권한 관련 현지 법률전문가.

R-3 — 철도 노동·운영 관련 현지 조직자.

정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절반 이상 지워진 문장이었다.

문서보안은 암호보다 무엇을 덜 말할지 결정하는 기술에 가까웠다.

접촉 목적을 적어야 했다.

안토노바: 법률동향 확인.

세레빈: 철도운영·노동동향 확인.

베레노프: 군 보급·지휘체계 확인.

보로닌: 농촌조달·토지분쟁 확인.

모로지나: 시립의료·민간보급 확인.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정전을 해결한 것.

사람들을 서로 소개한 것.

체포명단 사본을 보관한 것.

이름을 일부러 보고서에서 뺀 것.

그건 ‘확인’이라는 단어에 들어가지 않았다.

저녁 여덟 시쯤 안토노바가 찾아왔다.

“법원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최근 제17치안조정과가 구금영장을 직접 신청하지 않고 경찰 출석요구를 늘리고 있어요.”

“합법입니까?”

“형식상.”

“목적은?”

“모르죠.”

그녀가 의자에 앉았다.

“왜 그렇게 봅니까?”

“오늘 런던에서 새 지시가 왔습니다.”

“당신도 잡아가나요?”

“아직.”

“아쉽군요.”

할크로프트는 전보를 내밀었다.

안토노바가 읽었다.

“정치조직에 문서작성 금지.”

“네.”

“잘됐네요.”

“왜요?”

“당신 글은 너무 딱딱해요.”

할크로프트가 웃음을 참았다.

안토노바는 전보를 돌려줬다.

“그럼 우리 대화도 보고합니까?”

“접촉 사실은.”

“내용은?”

“필요한 만큼.”

“누가 정합니까?”

할크로프트가 그녀를 봤다.

안토노바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아.”

“뭡니까?”

“이제 알겠네요.”

“뭘요?”

“당신이 왜 계속 내 질문을 싫어하는지.”

“어떤 질문?”

“누가 결정하느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질문이 당신한테도 오니까.”

문 앞에서 안토노바가 돌아봤다.

“조사관님.”

“네.”

“선을 넘지 말라는 명령은 좋은 겁니다.”

할크로프트가 전보를 들어 보였다.

“동의합니다.”

“문제는 선이 움직일 때죠.”

그녀는 나갔다.

할크로프트는 책상 위 접촉목록을 다시 봤다.

한 줄을 추가했다.

현지 정치조직에 직접 자문·문서작성·물질지원을 하지 않음.

사실이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사람에게 연결하는 것도 지원인가?

그 질문은 보고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인사국 메모를 다시 꺼냈다.

상급분석관.

예전 같았으면 기뻤을 것이다.

지금은 그 보직을 맡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부터 떠올랐다.

병원 보일러실에 내려갈 필요가 없다.

노동자 가족에게 임금이 언제 나오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

곡물창고에 들어가 실제 자루를 세지 않아도 된다.

현지 보고를 받고, 여러 출처를 비교하고, 위험도를 정하면 된다.

안전하고 중요하며 자신이 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런던의 책상이 아니라 테렌코의 역무실과 모로지나 병원의 냉기였다.

할크로프트는 메모를 검은 수첩 안에 넣었다.

공식 경력 문제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그는 주간보고 마지막 장에 접촉목록을 붙였다.

전송 직전 포스터가 읽었다.

“코드만 보내는군요.”

“규정상 가능하다고 했잖습니까.”

“가능은 합니다.”

“그럼?”

포스터가 A-1 항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런던에서 실제 신원 요구하면?”

“그때 판단하겠습니다.”

“지금 판단을 미룬 거군요.”

“네.”

“그건 때때로 판단한 것보다 더 큰 결정입니다.”

할크로프트는 서류를 빼앗지 않았다.

전송했다.

다음 날 웰스에게서 답이 왔다.

코드 사용 승인. 단, 정책판단에 직접 영향을 주는 출처는 요청 시 신원 제출.

승인처럼 보였다.

동시에 유예였다.

할크로프트는 그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런던과 자신의 관계도 지금은 허가가 아니라 유예에 가까웠다.

런던은 아직 그를 믿고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그 정도가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