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4화 — 밀값

자유의 세기 · 24 / 516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첫 번째 곡물열차가 네바그라드에 도착했을 때 사진기자들이 나왔다.

보로닌은 싫은 표정을 했다.

“왜요?”

할크로프트가 물었다.

“우리가 곡물을 발명한 것처럼 찍잖아요.”

열차 옆에는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다.

농촌과 도시, 함께 승리한다.

보로닌이 중얼거렸다.

“저 문구 만든 사람은 농촌에 안 살아봤을 겁니다.”

그래도 결과는 좋았다.

안나 크라비나의 마을을 포함한 세 지역에서 계약물량 대부분이 들어왔다.

도시 곡물가격 상승도 잠시 멈췄다.

문제는 성공이 알려진 다음 시작됐다.

농정국은 보로닌의 계약방식을 전국에 적용하기로 했다.

정식 명칭:

통일 농산물 매입 및 신용보상 규정.

보로닌은 초안을 읽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우리 안이라고요?”

농정국의 세르게이 로마닌이 말했다.

“기본구조는 같습니다.”

“현금 50퍼센트.”

“같고.”

“나머지 신용계정.”

“같습니다.”

“공급품 우선권.”

“같습니다.”

“그런데 신탁계정은 왜 없어졌습니까?”

“토지분쟁은 별도 법률문제라 매입규정에서 뺐습니다.”

“그게 핵심이었는데.”

“일부 지역에서만요.”

“그리고 공급품 우선권 품목을 중앙이 정합니까?”

“그래야 조달이 가능합니다.”

보로닌이 목록을 봤다.

농기계.

등유.

소금.

종자.

비료.

“지역마다 필요한 게 다른데.”

“그래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승인은?”

“농정국.”

보로닌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우리 계약은 왜 됐는지 아십니까?”

로마닌의 목소리가 조금 굳었다.

“현장협상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겠죠.”

“맞습니다.”

“그 방식으로 400개 군을 협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원칙을 표준화해야지, 거래를 복사하면 안 됩니다.”

로마닌이 한숨을 쉬었다.

“보로닌 씨. 수도에 곡물이 매일 몇 톤 들어와야 하는지 아십니까?”

“압니다.”

“그걸 마을마다 저녁 먹으면서 협상하자는 겁니까?”

할크로프트는 둘 사이를 봤다.

성공한 지역계약을 확장하려면 행정형식이 필요했다.

문제는 확장하는 순간 성공조건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규정 시행 5일 뒤 첫 경고가 왔다.

북동부 세 지역의 계약률이 예상보다 낮았다.

일주일 뒤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농기계가 필요 없는 축산지역에 농기계 구매신용이 배정됐다.

반대로 등유가 급한 곳은 중앙할당이 이미 소진됐다.

더 심한 지역도 있었다.

법적 지주에게 대금이 지급되자 경작농들이 납품을 거부했다.

농정국은 계약위반 경고를 보냈다.

농민들은 정부가 먼저 약속을 바꿨다고 반발했다.

로마닌이 보로닌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말투가 훨씬 덜 단정적이었다.

“어떻게 고칩니까?”

보로닌이 말했다.

“모릅니다.”

로마닌의 눈썹이 올라갔다.

“당신 방식이잖습니까.”

“우리 마을 방식이지 전국 방식이 아닙니다.”

“그럼 제안이라도.”

보로닌은 지도를 펼쳤다.

“세 가지는 중앙에서 통일하세요.”

“뭡니까?”

“지급보증. 회계양식. 최소권리.”

“최소권리?”

“경작자가 분쟁 중이라고 신고하면 대금 바로 지주에게 못 주게.”

로마닌이 적었다.

“나머지는?”

“가격 범위, 공급품 조합, 인도일정은 지방협상.”

“그러면 가격이 지역마다 달라집니다.”

“운송비도 다른데 왜 같아야 합니까?”

“정치문제가 됩니다.”

“이미 정치문제입니다.”

로마닌이 할크로프트를 봤다.

“조사관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할크로프트는 대답하기 전에 물었다.

“실패한 지역 농민을 직접 만나봤습니까?”

로마닌은 대답하지 않았다.

보로닌이 할크로프트를 봤다.

그 질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이틀 뒤 북동부 지역으로 갔다.

첫 회의에서 한 노인이 규정집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거 누가 만들었습니까?”

로마닌이 말했다.

“농정국입니다.”

“당신이요?”

“초안에 참여했습니다.”

노인은 의자를 가리켰다.

“그럼 앉으세요.”

“왜요?”

“우리도 질문 좀 합시다.”

회의는 네 시간 갔다.

끝날 때 로마닌의 규정집에는 메모가 빼곡했다.

그날 밤 그는 보로닌에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았다고는 안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만 수도에서 만든 표준은 줄여야겠군요.”

“어느 정도?”

“내일 결정하죠.”

보로닌의 표정이 풀렸다.

“이제 좀 농촌행정 같네요.”

네바그라드로 돌아가는 길, 첫 성공지역에서 또 전보가 왔다.

안나 크라비나의 마을이었다.

2차 인도물량 예정대로 출발.

그 아래 손으로 덧붙인 문장이 있었다.

이번에는 중앙양식도 같이 보냅니다. 종이가 곡물보다 무겁지는 않더군요.

보로닌이 소리 내 읽었다.

통일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절반이 줄었고,

나머지 절반에는 지방이 고칠 수 있는 빈칸이 생겼다.

성공한 제도는 복사되지 않았다.

협상하는 방식이 복사되기 시작했다.

북동부 지역 회의 다음 날, 로마닌은 농민 몇 집을 직접 돌았다.

첫 집에서는 농기계 구매신용이 남아 있었지만 필요한 것은 등유였다.

둘째 집에서는 종자구매권이 있었지만 이미 종자를 확보했고, 대신 말 사료가 부족했다.

셋째 집에서는 아무 신용도 쓰지 않았다.

“왜요?”

로마닌이 물었다.

노인이 말했다.

“다음 달 규정 또 바뀔까 봐.”

“정부 보증입니다.”

“지난달 것도 정부 보증이었소.”

로마닌은 반박하지 못했다.

보로닌이 옆에서 말했다.

“정책은 종이 한 번 바꿔도 되지만, 사람은 다음번 계약에서 기억합니다.”

로마닌은 그 말을 자기 수첩에 적었다.

할크로프트가 봤다.

“당신도 수첩 씁니까?”

“왜요? 외국인만 씁니까?”

“요즘은 모두 쓰는 것 같아서.”

로마닌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수정된 전국규정 초안은 세 페이지 줄었다.

첫 장에는 중앙보장 항목만 남았다.

지급보증.

표준 회계양식.

분쟁대금 최소보호.

그 아래에는 빈칸이 늘었다.

지역 가격범위.

우선 공급품.

인도 일정.

추가 조건.

농정국 내부에서는 반발이 컸다.

“이렇게 하면 전국정책이 아니라 양식 배포입니다.”

한 과장이 말했다.

로마닌이 대답했다.

“전국에서 같은 실패를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통제가 안 됩니다.”

“회계는 통제됩니다.”

“가격은?”

“범위를 둡니다.”

“공급품은?”

“지역이 선택합니다.”

“그럼 책임은?”

로마닌은 멈췄다가 말했다.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보로닌이 회의 뒤 할크로프트에게 말했다.

“저 사람 달라졌네요.”

“좋아졌습니까?”

“그런 말 싫어합니다.”

“왜요?”

“수도 사람이 농촌 한 번 갔다고 현명해지는 이야기는 너무 쉽잖아요.”

보로닌은 수정안을 접었다.

“그냥 모르는 게 뭔지 조금 더 알게 된 겁니다.”

할크로프트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 같았다.

며칠 뒤 안나의 마을에서 2차 물량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곡물과 함께 작은 봉투가 하나 왔다.

안나가 쓴 편지였다.

등유 선택칸 생긴 건 좋습니다. 그런데 지주대리인이 신탁계정 서명 안 하려고 합니다. 다음 규정 고칠 때 참고하세요.

그 아래 큰딸의 글씨로 한 줄 더 있었다.

영국 조사관 아저씨는 이번에도 적지 말고 기억하세요.

할크로프트는 편지를 보로닌에게 보여줬다.

보로닌이 웃었다.

“유명해졌네요.”

“세금부터 오겠군요.”

둘 다 안나의 집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했다.

정책은 계속 고쳐졌다.

문제도 계속 생겼다.

하지만 이제 실패가 곧 폐기를 뜻하지는 않았다.

고칠 수 있는 제도라는 사실 자체가 신뢰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수정규정이 시행된 첫 주, 지역별 계약률은 오히려 서로 더 달라졌다.

어떤 곳은 크게 올랐고,

어떤 곳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농정국 내부에서는 다시 “통일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로마닌은 이번에는 숫자를 평균내지 않았다.

지역별 이유를 옆에 붙였다.

등유 선택권 확대 후 상승.

지주분쟁 미해결로 정체.

철도 부족으로 계약은 늘었으나 출하 지연.

보로닌이 말했다.

“이제 보고서가 더 지저분해졌네요.”

“네.”

로마닌이 대답했다.

“대신 덜 틀렸습니다.”

할크로프트는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

로마닌은 얼룩진 표를 새 종이로 다시 옮기지 않았다.

지역별 이유가 붙은 채 그대로 다음 회의에 가져갔다.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