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3화 — 베레노프의 거부

자유의 세기 · 23 / 516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탄약상자에는 탄약이 없었다.

미하일 베레노프는 상자를 직접 열어봤다.

나무 냄새만 났다.

“이건 뭡니까?”

병참장교가 말했다.

“빈 상자입니다.”

“그건 나도 봤네.”

“실탄은 아직 철도역입니다.”

“언제 옵니까?”

“오늘 밤 예정.”

“확실한가?”

병참장교는 대답하지 않았다.

베레노프가 할크로프트를 봤다.

“이제부터 그 질문은 금지해야겠군.”

새벽에 군단본부 명령이 내려왔다.

제19사단은 다음 날 오전 6시 전방으로 공세를 개시한다.

목표는 적 전초선을 밀어내고 고지를 확보하는 것.

작전 자체는 무모하지 않았다.

문제는 탄약이었다.

야포 포탄은 계획량의 43퍼센트.

소총탄은 61퍼센트.

공병 폭약은 38퍼센트.

사단 수송차량 상당수는 제2여단 이동에 사용 중이었다.

작전참모가 말했다.

“공격을 하루 미루면 됩니다.”

통신장교가 답했다.

“군단은 불가랍니다.”

“왜?”

“옆 사단 공격시간과 연동.”

베레노프가 물었다.

“옆 사단은 준비됐나?”

“그쪽 정보는 없습니다.”

“없다고?”

“군단 작전보안입니다.”

베레노프의 표정이 굳었다.

“같이 공격하는 부대 준비상태가 작전보안?”

“그렇습니다.”

베레노프가 말했다.

“군단에 요청. 포병탄약 도착 전 공격시각 연기.”

30분 뒤 답신.

불가. 명령대로 시행.

작전참모가 말했다.

“대령님.”

“알아.”

“선택해야 합니다.”

베레노프는 지도를 봤다.

공격하지 않으면 옆 사단이 단독으로 나갈 수 있다.

공격하면 자기 병사들이 충분한 화력지원 없이 열린 지형을 건너야 한다.

“옆 사단 지휘관과 직접 연락.”

“군단을 건너뜁니다.”

“전화해.”

연결에는 20분이 걸렸다.

옆 사단장도 놀랐다.

그쪽 역시 탄약이 부족했다.

“공격 준비됐다고 보고했다면서?”

베레노프가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욕설이 들렸다.

“준비율 보고를 보냈지. 군단이 ‘준비 완료’로 바꿨나 보군.”

두 지휘관은 말을 멈췄다.

베레노프가 물었다.

“내일 나갈 건가?”

“명령이면.”

“포병탄약은?”

“절반.”

베레노프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같은 문제가 두 사단에서 반복됐다.

각 단계에서 ‘부분 준비’가 ‘준비’가 되고,

‘준비’가 ‘공격 가능’이 되었다.

베레노프는 직접 전보를 작성했다.

현 탄약상태에서 계획된 공세 수행 시 과도한 손실 예상. 제19사단은 공격개시를 12시간 연기함. 인접사단과 조정 완료. 책임은 사단장이 부담함.

작전참모가 말했다.

“인접사단도 연기합니까?”

“아직.”

“그럼 조정 완료가 아니잖습니까.”

베레노프가 그를 봤다.

“지금 전화해서 완료하게.”

방 안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두 사단은 결국 동시에 공격을 늦췄다.

군단본부는 격노했다.

오후에 군단 법무장교와 작전감찰관이 도착했다.

감찰관이 할크로프트를 봤다.

“외국인이 왜 여기 있습니까?”

“군수체계 조사.”

“이건 군 내부 문제입니다.”

할크로프트가 나가려 했다.

베레노프가 말했다.

“그 사람 말이 맞소. 나가시오.”

할크로프트는 문 밖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마침내 감찰관들이 나왔다.

베레노프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지휘명령 불복종 예비조사.”

“직위는?”

“유지.”

“공격은?”

“오늘 밤 탄약 도착하면 내일.”

“그럼 결과적으로 원래 원하던 대로 됐군요.”

베레노프가 그를 봤다.

“그 말은 하지 마시오.”

“왜요?”

“내가 맞았다는 이유로 명령거부가 옳아지는 건 아니니까.”

할크로프트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럼 무엇이 옳았습니까?”

베레노프는 빈 탄약상자를 발로 밀었다.

“이걸 보고도 병사들을 내보내지 않은 것.”

“차이는?”

“내가 옳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들 책임자였으니까.”

다음 날 공격은 시작됐다.

탄약은 완전히 도착하지 않았지만 전날보다 훨씬 나았다.

고지는 점령됐다.

손실도 예상보다 적었다.

그리고 저녁,

군단본부는 베레노프의 예비조사를 정식 징계절차로 전환했다.

승리는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거부가 필요했는지 증명해 버렸다.

공격 전날 밤, 베레노프는 전방대대 하나를 직접 돌았다.

할크로프트는 따라가지 못했다.

군단감찰이 이미 외국인의 접근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다음 날 후방 야전병원에서 결과를 봤다.

첫 부상병들이 들어온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계획보다 적었다.

하지만 ‘적다’는 말은 병원에서는 이상하게 들렸다.

들것 하나마다 사람이 있었다.

어깨에 파편상을 입은 하사가 베레노프를 보자 말했다.

“대령님, 포병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늦은 게 아니라 어제 못 쏜 걸 오늘 쏜 거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베레노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병사는 웃다가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공격은 성공했다.

고지는 점령됐다.

하지만 중대 하나가 예상보다 오래 기관총 진지 앞에 묶였다.

전사자도 나왔다.

작전참모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만약 어제 공격했으면 손실이 더 컸을 겁니다.”

베레노프가 말했다.

“그 문장 지워.”

“왜요?”

“증명 못 하잖아.”

“탄약이 절반이었는데—”

“더 컸을 가능성은 높다. 그건 사실이 아니고 평가야.”

할크로프트가 그 말을 들었다면 좋아했을 것이다.

베레노프는 몰랐지만, 그도 사실과 판단을 나누고 있었다.

징계심문은 전투 이틀 뒤 시작됐다.

군단 법무장교가 물었다.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명령거부가 정당했다고 생각합니까?”

베레노프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당시 내가 알고 있던 탄약상태.”

“결과를 몰랐는데도?”

“결과를 모르니까 지휘관이 판단하는 겁니다.”

“상급자는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상급자는 빈 상자를 못 봤습니다.”

그 대답이 방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심문 뒤 할크로프트가 물었다.

“직위 잃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 있소.”

“후회합니까?”

베레노프가 야전병원 창문 너머를 봤다.

“후회라는 말은 이상하군.”

“왜요?”

“내가 그날 공격했어도 누군가는 살았고 누군가는 죽었겠지.”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지휘관은 선택하지 않은 결과를 볼 수 없소.”

“그래서?”

“그래서 자기 선택을 신화로 만들면 안 되지.”

그날 저녁 부대 안에서는 베레노프가 병사들을 살린 영웅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참모에게 그 소문을 막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공식 일일명령에 한 줄을 넣었다.

작전연기 결정은 탄약·수송 상황에 대한 당시 현장판단이며, 향후 모든 명령불복종의 선례로 간주하지 않는다.

참모가 말했다.

“누가 이걸 읽습니까?”

“나중에 다들 내 이름 들먹일 때 누군가는 읽겠지.”

베레노프의 거부는 성공했다.

그래서 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었다.

며칠 뒤 부상당한 하사 한 명이 베레노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대령님이 공격을 미뤄서 우리가 살았다고들 합니다. 맞습니까?

베레노프는 답장을 오래 쓰지 못했다.

결국 한 줄만 적었다.

나는 그날 탄약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당신이 살아 있는 이유 전부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할크로프트가 우연히 그 문장을 봤다.

“조금 차갑지 않습니까?”

“거짓말보단 낫소.”

“병사는 영웅적인 답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베레노프가 고개를 저었다.

“군대는 영웅담을 너무 빨리 만듭니다.”

그는 징계서류 위에 편지 사본을 올려놓았다.

“다음 지휘관이 ‘베레노프도 명령 어기고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겠소?”

할크로프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결과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이번 승리는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징계 소식이 퍼지자 젊은 장교 몇 명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말했다.

“결과가 맞았는데 왜 징계합니까?”

베레노프는 그 말을 들은 자리에서 대답했다.

“결과가 좋으면 규칙이 없어지는 군대는 다음번엔 결과 나쁜 명령거부도 막을 수 없네.”

“그럼 대령님 선택은 잘못이었습니까?”

“그 판단도 절차가 끝나야 하지.”

장교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베레노프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예외로 만들어 군대를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