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화 — 사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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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크로프트는 지도에서 화살표를 지웠다.
세레빈이 말했다.
“아까 그건 왜 그렸습니까?”
“철도 우선연락망.”
“틀렸으니까 지우는 겁니까?”
“네.”
“좋은 습관이네요.”
네바그라드 대사관 임시사무실 벽에는 도시지도 두 장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는 공식지도.
관청, 병영, 철도역, 발전소, 창고, 경찰서.
두 번째는 할크로프트가 새로 만든 지도.
처음엔 비슷했다.
이제 달라지고 있었다.
할크로프트가 시청 식량담당 부서에 선을 하나 그었다.
세레빈이 고개를 저었다.
“거기 말고.”
“왜요?”
“실제로 창고를 여는 사람은 부국장이 아닙니다.”
“누군데요?”
“야간창고 책임자, 파벨 이바닌.”
“직급은?”
“낮아요.”
“결정권이 없잖습니까.”
“열쇠가 있어요.”
할크로프트는 그를 봤다.
“그건 중요한 차이군요.”
안토노바가 들어오며 말했다.
“둘이 뭐 합니까?”
“국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세레빈이 말했다.
“상당히 못 그리고 있고.”
안토노바는 지도를 봤다.
“법원은 왜 한 점입니까?”
“법원 하나니까요.”
“판사가 몇 명인데요?”
“기관을 표시한 겁니다.”
“그럼 틀렸어요.”
그녀가 연필을 가져갔다.
법원에서 세 방향으로 선을 그었다.
한 판사는 내무행정국과 가까웠다.
다른 판사는 시의회 법무위원회와 오래 일했다.
세 번째는 군사법원 출신이라 군관구와 연락이 빨랐다.
“같은 법원인데도 실제로 움직이는 길은 다릅니다.”
안토노바가 말했다.
세레빈이 말했다.
“변호사가 스파이보다 잘하네요.”
안토노바가 그를 봤다.
“당신도 그려봐요.”
세레빈은 철도노동조합 지부가 아니라 기관사 휴게소 세 곳을 표시했다.
“왜 여기입니까?”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는 곳.”
“조합사무실은?”
“거긴 회의할 때 갑니다. 소문은 여기서 돕니다.”
할크로프트는 지도 전체를 다시 봤다.
공식기관은 점점 배경이 되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이 더 많아졌다.
모로지나가 뒤늦게 들어왔다.
“내 이름은 왜 있습니까?”
“병원 연락망.”
“지워요.”
“왜요?”
“내가 아프면 병원이 멈춥니까?”
할크로프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로지나는 직접 연필을 가져가 자기 이름을 지우고 세 사람을 적었다.
수간호사.
보일러 책임자.
시립약국장.
“나보다 이 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당신이 조정하잖습니까.”
“그게 문제예요.”
모로지나가 말했다.
“좋은 시스템이면 내가 없어도 돌아가야죠.”
할크로프트는 지도의 목적을 바꿨다.
누가 중요한가.
가 아니라,
누가 빠지면 무엇이 멈추는가.
그 기준으로 보니 위험한 곳이 드러났다.
철도 배차는 두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
시립은행의 군표보증은 지점장 개인판단에 매달려 있었다.
병원 의약품 배분은 약국장 한 명이 거의 전부 알고 있었다.
전쟁수송부의 실제 원자료 구조는 말렌 같은 몇몇 실무자 머릿속에 있었다.
세레빈이 지도 중앙을 가리켰다.
“이 사람은 누구죠?”
할크로프트가 봤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당신이 썼습니까?”
“아뇨.”
안토노바도 고개를 저었다.
모로지나가 말했다.
“내가 썼어요.”
“왜요?”
“요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 연결되니까.”
할크로프트는 지우개를 들었다.
“왜 지웁니까?”
“내가 빠지면 이 도시가 멈추진 않으니까.”
“아직은요.”
그는 지우개를 내려놓았다.
지도 위 자기 이름이 갑자기 보기 싫어졌다.
세레빈이 말했다.
“이 지도, 런던에 보낼 겁니까?”
할크로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토노바가 먼저 말했다.
“안 보내겠죠.”
“왜 그렇게 확신합니까?”
그녀가 할크로프트를 봤다.
“이미 어느 편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 표정이 너무 뻔해서.”
할크로프트는 지도에서 자기 이름 옆에 작은 물음표를 그렸다.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의 지도는 그날 저녁 바로 시험을 받았다.
시립약국장이 회의 도중 자리를 비웠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간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다음 날 군 병원과 시립병원에 배분할 해열제 수량을 혼자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로지나가 말했다.
“봐요. 내가 말했죠.”
할크로프트가 지도에서 약국장 이름에 원을 그렸다.
“대체자는?”
“부약국장.”
“같은 정보를 압니까?”
“절반.”
“장부는?”
“금고.”
“열쇠는?”
모로지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빈이 웃었다.
“약국장 주머니?”
“네.”
안토노바가 이마를 짚었다.
결국 병원 직원이 약국장에게 사람을 보내 열쇠를 받아왔다.
그 일에 한 시간이 걸렸다.
할크로프트는 지도 옆에 새로운 기호를 만들었다.
○ = 대체자 있음.
△ = 대체자 있으나 정보 부족.
× = 단일 실패점.
시립약국장은 △.
시립은행 야간보증은 ×.
철도 배차는 사람 둘이라 ○에 가까웠지만, 둘 중 한 명이 아프면 △.
세레빈이 말했다.
“사람을 기계부품처럼 표시하네요.”
할크로프트가 펜을 멈췄다.
군표를 ‘지표’라고 불렀다가 체린에게 지적받던 일이 떠올랐다.
조사관에게는 지표, 당사자에게는 봉급.
“표현이 마음에 안 듭니까?”
“아뇨. 쓸모는 있어요.”
세레빈은 지도에서 자기 이름을 찾았다.
“나는?”
할크로프트가 말했다.
“△.”
“왜?”
“철도노조 연락망을 당신이 너무 많이 압니다.”
“다른 사람도 압니다.”
“전부는 아니죠.”
세레빈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럼 이걸 어떻게 고칩니까?”
“당신이 없어도 연락되게 해야죠.”
“내가 내 쓸모를 줄여야 한다고?”
“좋은 조직이면 그렇습니다.”
모로지나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내 말이잖아요.”
세레빈은 못마땅해했지만 그날부터 기관사 휴게소 연락책 둘을 따로 정했다.
안토노바도 자기 사무실의 사건별 담당자를 나눴다.
모로지나는 약품배분 장부 사본을 부약국장에게 맡겼다.
베레노프는 군 연락망은 보안상 지도에 못 넣는다고 버티다가, 최소한 민간 긴급연락 담당자 한 명은 지정했다.
며칠 뒤 약국장이 다시 출근했다.
그는 자기 없이도 배분이 돌아간 걸 보고 기분 나빠했다.
“내가 필요 없다는 뜻입니까?”
모로지나가 말했다.
“아뇨. 휴가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약국장은 그제야 웃었다.
할크로프트는 지도에서 자기 이름 옆 물음표를 다시 봤다.
자기가 빠졌을 때 무엇이 멈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게 안심이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공식권한은 없지만,
사람들이 그를 통해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 할크로프트는 지도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상의 상황 하나를 만들었다.
제4구역 급수펌프 정지. 야간. 전화선 일부 불통.
그는 세레빈, 모로지나, 안토노바에게 차례로 물었다.
“누구에게 연락합니까?”
세레빈은 철도전력반 기술자를 먼저 말했다.
모로지나는 급수시설 책임자와 병원 보일러실을 말했다.
안토노바는 시청 당직과 경찰을 말했다.
셋의 답이 달랐다.
할크로프트가 지도 위 선을 따라가 보니 20분 안에 같은 다섯 사람에게 모였다.
“좋은 겁니까?”
세레빈이 물었다.
“아마도.”
“또 아마도.”
“문제는 이 다섯 명 중 둘이 동시에 없으면 연락망이 끊긴다는 겁니다.”
모로지나가 말했다.
“그럼 대체자를 정하면 되죠.”
안토노바가 바로 물었다.
“누가 정합니까?”
세레빈이 웃었다.
“또 시작이네.”
결국 각 핵심연락자에게 대체자를 한 명씩 붙였다.
그 과정에서 예상 못 한 문제가 나왔다.
사람들은 자기 대체자를 고르는 걸 불편해했다.
“내가 없어도 된다는 뜻 같잖습니까.”
시청 창고책임자가 말했다.
세레빈이 대답했다.
“아니. 당신이 아파도 우리가 안 굶는다는 뜻이지.”
그 말은 생각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지도는 점점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덜 필수적으로 만드는 도구가 되어갔다.
할크로프트는 그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자기 이름 옆 물음표는 더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에게는 대체자를 정하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연결’ 역할의 대체자가 누군지는 아무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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