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1화 — 장관들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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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사라노프는 할크로프트가 예상한 사람과 달랐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주먹으로 책상을 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열차번호 체계부터 통일하겠습니다.”
사라노프가 말했다.
긴 식탁 위에 놓인 지도에는 네바그라드에서 서부전선까지 이어지는 철도망이 색깔별로 표시되어 있었다.
오늘 저녁은 사교 만찬이 아니었다.
외무부가 마련한 ‘비공식 의견교환’이라는 이름의 회의였다. 참석자는 전쟁수송부, 재무부, 내무행정국, 군수부, 의회 예산위원회 대표, 그리고 동맹국 관찰자 두 명.
할크로프트는 마지막 범주였다.
사라노프의 직책은 국가조정실 차장이었다.
아직 대부분의 시민은 그 부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각 부처가 자기 보안번호를 쓰는 순간부터 중복이 생깁니다.”
사라노프는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맨 위에 적힌 번호를 보고 할크로프트의 시선이 멈췄다.
S-4187.
“이 사례를 아십니까?”
“본 적 있습니다.”
“세 개 열차가 같은 번호를 썼지요.”
“네.”
“철도국은 새 번호체계를 월요일에 시작했습니다. 군수부는 일요일. 제2군관구는 다음 주 월요일.”
사라노프가 말했다.
“모두 승인받은 일정이었습니다.”
할크로프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라노프는 원인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사라노프는 말로만 준비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회의가 시작된 지 사십 분쯤 됐을 때 비서가 쪽지를 들고 들어왔다.
동부선에서 군수열차와 병원열차 우선순위가 충돌했다는 보고였다.
전쟁수송부 차관이 말했다.
“이런 게 매일 있습니다.”
사라노프는 쪽지를 읽고 물었다.
“병원열차 지연 한도?”
“두 시간.”
“군수열차?”
“오늘 자정까지.”
“현재 시각?”
“오후 일곱 시 십 분.”
그는 계산을 오래 하지 않았다.
“병원열차 먼저. 군수열차는 남부측선으로 우회.”
차관이 말했다.
“남부측선은 민간화물 예약입니다.”
“취소보상은 조정실 예비비로.”
재무차관이 바로 말했다.
“그 예비비는 승인 안 났습니다.”
사라노프가 그를 봤다.
“그래서 오늘 승인안도 같이 올렸습니다.”
재무차관은 할 말을 잃었다.
십 분 뒤 답이 왔다.
병원열차 먼저 통과.
군수열차 47분 지연.
사라노프는 아무 표정 없이 회의를 계속했다.
할크로프트는 그 장면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이 사람의 방식은 추상적으로만 효율적인 게 아니었다.
실제로 열차를 움직였다.
병원열차를 먼저 보내는 결정은 바로 작은 대가를 만들었다.
남부측선으로 밀린 민간화물 가운데 우편차가 하나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 전 우편국에서 항의전화가 왔다.
전선 병사 가족우편도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라노프는 비서에게 말했다.
“지연시간?”
“한 시간 이십 분 예상.”
“두 시간 넘으면 다시 보고.”
전쟁수송부 차관이 말했다.
“아까 결정 취소할 수 있습니다.”
사라노프가 고개를 저었다.
“병원열차가 이미 들어갔습니다.”
“그럼 우편국이 정치적으로 문제 삼을 겁니다.”
“그럼 내가 답하지요.”
“뭐라고요?”
재무차관이 사라노프를 잠깐 바라봤다.
“당신은 책임지는 걸 너무 쉽게 말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라노프가 대답했다.
“다만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래서 모든 결정권을 한곳에 모으자는 겁니까?”
“모든 결정권이 아닙니다.”
“계속 그렇게 말하지만 점점 늘고 있잖습니까.”
사라노프는 부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늘고 있으니까요.”
그 대답 때문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할크로프트는 그가 권력을 탐내서만 권력을 원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사라노프는 정말로 책임의 공백을 싫어했다.
그리고 바로 그 성격 때문에,
한 번 쥔 권한을 내려놓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사라노프는 잠깐 생각했다.
“병원열차를 먼저 보냈고, 그 결정 때문에 우편이 늦었다고.”
재무차관이 그를 봤다.
“그렇게 그대로 말합니까?”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할크로프트는 그 장면도 기억했다.
권력을 모으려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책임을 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라노프는 책임질 사람을 하나로 만들자는 논리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해결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가 다음 서류를 펼쳤다.
통합전시수송명령안.
“앞으로 군수·식량·병력·의료 운송은 하나의 우선순위표를 사용합니다. 열차번호도 한 기관에서 부여합니다. 각 부처가 이견이 있으면 국가조정실 결정이 우선합니다.”
전쟁수송부 차관이 말했다.
“그러면 철도부 장관보다 조정실이 위가 됩니까?”
“전시수송에 한해서는.”
“군관구도?”
“네.”
군수부 대표가 몸을 뒤로 기댔다.
“현장 사령관이 긴급 수송을 요청하면?”
“즉시 요청할 수 있습니다.”
“승인은?”
“조정실.”
“몇 시간 안에?”
“최대 두 시간.”
“전선은 두 시간을 안 기다립니다.”
사라노프는 바로 대답했다.
“지금은 이틀을 기다립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재무부 차관이 물었다.
“이 체계를 운영하려면 각 부처의 원자료까지 조정실로 보내야 할 텐데요.”
“그렇습니다.”
“예산은?”
“별도 편성.”
“인원은?”
“기존 부처에서 파견받습니다.”
“그러면 부처 기능을 사실상 하나 더 만드는 겁니까?”
“아닙니다.”
사라노프가 말했다.
“결정 기능을 하나로 줄이는 겁니다.”
할크로프트는 자신도 모르게 문서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열차번호, 우선순위, 보고 정의, 최종 결정권.
할크로프트가 며칠 동안 쫓아다닌 문제들이 한 장에 정리돼 있었다.
그리고 사라노프의 답은 놀랄 만큼 단순했다.
결정하는 곳을 하나로 만든다.
식탁 반대편의 의회 예산위원이 말했다.
“임시기구입니까?”
사라노프가 그를 봤다.
“전쟁기간 동안.”
“전쟁기간이라는 게 언제까지입니까?”
“전쟁이 끝날 때까지겠지요.”
“법률상 종료일을 묻는 겁니다.”
“종전일을 지금 정할 수 있습니까?”
위원이 입을 다물었다.
사라노프는 공격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중했다.
“우리는 이상적인 행정개혁을 논의하는 게 아닙니다. 다음 주 열차를 움직이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내무행정국 대표가 말했다.
“지방정부가 따르지 않으면?”
“중앙 보조금과 군수배정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방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건 운송조정이 아닙니다.”
의회 예산위원이 말했다.
“집행수단입니다.”
사라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행수단 없는 조정은 권고입니다.”
할크로프트는 그 말을 기억했다.
논리적으로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편했다.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프가 놓이자 사람들의 손이 서류에서 떨어졌다.
할크로프트 옆자리의 재무차관이 낮게 말했다.
“저 사람은 위험합니다.”
할크로프트가 물었다.
“왜요?”
“대부분 맞는 말을 하거든요.”
“그게 위험합니까?”
차관은 수프를 한 숟갈 떠먹었다.
“틀린 사람은 반박하면 됩니다.”
그는 사라노프를 봤다.
“맞는 사람은 어디까지 맞게 해줘야 하는지가 문제지요.”
식사 뒤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재무 문제가 올라왔다.
군표.
지방 세금.
곡물 신용.
병력보고에 따른 보급배정.
할크로프트가 지난 며칠 동안 따로 본 문제들이 같은 식탁 위에 올라왔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장관들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다.
군표 할인시장도, 병력 부풀리기도, 곡물 신탁계정도, 서로 다른 통계 정의도.
정보 부족보다 어려운 건 비용이었다. 한 문제를 고치면 다른 기관이 값을 치렀다.
재무부가 군표를 전액 현금화하면 통화량이 늘어난다.
군이 병력보고 기준을 현실화하면 예산이 즉시 증가한다.
곡물 가격을 올리면 도시 배급가격이 오른다.
지방 자율조정을 인정하면 중앙 권한은 더 약해진다.
할크로프트는 처음으로 제국 중앙의 문제가 정보 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누가 손해를 볼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
사라노프가 마지막 안건을 정리했다.
“그래서 조정실이 필요합니다.”
의회위원이 말했다.
“결국 누군가는 손해를 결정해야 하니까?”
“네.”
사라노프는 망설이지 않았다.
“정부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곳 아닙니까?”
회의가 끝난 뒤 사람들이 하나둘 나갔다.
사라노프가 할크로프트를 불렀다.
“조사관님.”
“네.”
“오늘 안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할크로프트는 정직하게 말했다.
“상당 부분 마음에 듭니다.”
“그런 표정은 아닌데요.”
할크로프트는 예전에 체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생각하는 표정입니다.”
사라노프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무엇이 걸립니까?”
“국가조정실의 권한이 끝나는 시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끝납니다.”
“누가 전쟁이 끝났다고 판단합니까?”
사라노프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굳었다.
“조사관님은 모든 문에 자물쇠와 열쇠를 동시에 달고 싶어 하는군요.”
“문을 만든 사람이 항상 그 문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사라노프가 먼저 서류를 접었다.
“브리튼에서는 기차 한 대 움직일 때 의회가 허락합니까?”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대신 어느 기관이 무엇을 결정하는지는 대체로 압니다.”
사라노프가 외투를 집어 들었다.
“그 차이가 지금 우리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인사하고 나갔다.
할크로프트는 빈 식탁 위에 남은 통합전시수송명령안 사본을 바라봤다.
오늘 처음으로 그는 문제를 자신보다 더 넓게 묶어 낸 사람을 만났다.
문제는 그 해답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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