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3화 — 상속받은 두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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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고향과 복수시민권이 늘어나자 상속법이 먼저 한계에 닿았다. 세라나에서 70년을 산 로하르계 부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다. 자녀 둘. 큰딸은 제국 완전시민으로 아우렐리움 거주. 아들은 로하르 정식령에서 지역공무원. 문제는 집이 두 채였다. 세라나 아파트. 로하르 옛 가족주택. 재산액만 보면 세라나 쪽이 훨씬 비쌌다. 가족에게 중요한 건 로하르 집. 조부모부터 살던 곳. 둘 다 갖고 싶어 했다. 기존 상속계약에는 ‘균등분할’만. 집을 반으로 나눌 수는 없다. 팔아서 돈 나누면 간단. 둘 다 반대.
법원에 갔다. 거대한 시민권 철학은 없었다. 남매싸움. 큰딸은 말했다. “나는 어릴 때 매년 거기 갔어.” 아들은.
“나는 지금 거기 살고 있어.”
둘 다 사실. 법원은 재산가치만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현재 거주. 돌봄기여. 유언. 가족문화재 가치. 검토. 부모가 명확한 유언을 안 남긴 게 문제. 결국 집은 아들이 상속. 대신 큰딸에게 세라나 아파트와 현금차액. 큰딸 불만. 항소. 2심에서는 큰딸에게 매년 일정기간 사용권을 인정하는 가족협약을 권고. 강제판결보다 조정. 둘이 수용. 남매는 매년 로하르 집에서 며칠씩 같이 만났다. 처음 몇 년은 어색. 나중엔 아이들 때문에.
◆이 사건은 법원보다 공증업계에 더 큰 영향을 줬다. 다지역·다문화 가정 유언장 표준. 집. 가문물품. 언어자료. 디지털기억. ‘돈으로 환산하고 균등분할’만으로는 부족한 재산이 많았다. AI 분기개체 상속까지 합치면 더 복잡. 키오르 계열처럼 기억자료 자체가 재산인지 정체성인지. 공증인은 새 질문을 했다.
“이 물건을 누구에게 주고 싶습니까?”
“이 집을 팔아도 됩니까?”
“가족기록을 복제해도 됩니까?”
사람들은 귀찮아했다. 사망 뒤 소송보다 싸다. 황실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대단절 실종자 재산신탁. 수백 년. 후손. 귀환자.
과거의 상속과 현재의 상속이 겹친다. 복원항로국과 법무원이 별도조정. 어느 귀환자가 80년 전 가족주택을 돌려달라고 했다. 현재는 후손 가족이 살고 있었다. 법적으로 귀환자 권리 일부 인정. 현재 거주자도 보호. 집을 비우게 하지 않고 소유권 일부 보상. 귀환자는 처음 반발.
“내 집입니다.”
맞다. 현재 가족에게도. 세대가 겹치면 하나의 정의로 끝나지 않는다. 로하르 남매사건을 맡았던 판사는 미라 벤카였다. 오르 벤카 손녀라는 기사제목이 아직 붙을 때. 그녀는 조정기록에 가족감정 같은 말을 쓰지 않았다. 법적 권리. 사용권. 가치보상. 명확. 판결 뒤 큰딸이 말했다. “판사님은 고향이 몇 개예요?” 미라는 잠깐 생각했다.
◆“그 질문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웃음. 본인 출생지. 세르마크계 가족. 제국 시민. 또. 법정 바깥. 몇십 년 뒤 두 남매의 자녀들이 로하르 집을 공동으로 관리하게 됐다. 세라나 아파트는 이미 재개발돼 없어졌다. 비싼 재산이 더 오래 남는 것도 아니다.
집 안에는 조부모 사진과 제국 시민증, 로하르 왕실 축제표, 세라나 학교 졸업장이 같이 있었다. 상속된 건 집 하나보다 많은 것이었다. 법은 그중 일부만 다룰 수 있었다. 상속표준이 정착되면서 ‘기억재산’이라는 새 범주가 커졌다. 가족사진. 개인기록. AI 기억사본. 가상공간. 종족별 의식자료. 돈보다 복제가 쉬운 것들. 한 메르탄 가족은 조부모의 수중도시 기억기록을 두 자녀가 모두 원했다. 디지털이면 복사하면 된다. 문제는 원본성. 조부모는 생전 “하나만 남겨라”라고 했다. 왜. 자기 기억이 여러 가족에게 편집돼 흩어지는 걸 싫어했다.
법원은 유언을 존중했다. 원본기록 하나. 다른 자녀는 열람권. 복제 금지.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했다. 정보는 복사비용 0에 가까운데 왜. 재산가치는 물리적 희소성만이 아니다. 당사자가 의미를 정할 수도 있다. 반대로 AI 시민 유언에서는 복제허용이 기본인 경우가 많았다. 자기 기억의 일부를 연구재단과 가족 여러 곳에 동시에 남기기도 했다. 같은 법으로 처리하되 선택은 다르다.
◆로하르 남매 사건 뒤 가족주택 사용권 제도도 늘었다. 소유자는 한 명. 다른 가족은 명절·추모기간 사용. 팔 때 우선매수권. 부동산 업계는 싫어했다. 거래가 복잡. 가족들은 좋아한 경우도. 싫어한 경우도. 한 집은 사용권 때문에 60년간 못 팔려 가치가 떨어졌다. 후손들이 결국 공동합의로 권리를 종료. 법은 영원한 추모를 강요하지 않았다. 복원귀환자 재산문제는 더 어려웠다. 대단절 뒤 돌아온 사람이 자기 소유였던 연구소 지분을 주장. 현재 회사는 수차례 합병돼 거대기업. 원주식 그대로 복구하면 경영권이 흔들린다.
법원은 현금·신주 보상. 과거 지분의 경제적 가치 일부 인정. 현재 회사운영 연속성도 보호. 귀환자는 불만. 기업도 불만. 조정. 상속·복원법은 누구에게도 원래 세계를 그대로 돌려주지 못한다. 시간이 흘렀다. 미라 벤카는 고등법원에서 이런 사건도 맡았다. 판결문이 길어졌다. 기자가 물었다. “공감이 중요합니까, 법이 중요합니까?”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판결 못 합니다.”
짧은 답.
그녀는 가족주택 조정사건보다 기업복원 사건을 더 어려워했다. 숫자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서. 황실은 복원자 권리를 더 강하게 하라는 압박도 받았다. 대단절 생존자. 역사적 피해. 반대편. 현재 시민. 자기 삶. 황제 개인감정은 복원자에게 기울기 쉽다. 과거 제국. 사라진 사람. 그래서 법원 독립이 중요. 한 사건에서 황실법무팀이 복원자 측 의견서를 냈다가 법원에서 기각. 나는 상소지시 안 함.
◆세라는 조금 아쉬워했다.
“옛 소유권이 더 강하지 않습니까.”
법무장관.
“현재 신뢰도 재산권입니다.”
둘 다. 최종판결. 절충. 세라가 수용. 대단절을 기억하는 세대도 법원에서 질 수 있다. 몇십 년 뒤 로하르 남매의 집은 지역문화재가 됐다. 후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 국가가 빼앗은 것 아님. 세라나 아파트는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그 자리 고층주택 지하에 옛 주소표지 하나가 남았다. 누구도 특별히 보러 가지 않았다. 상속은 무엇을 남길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했다.
두 집 상속사건은 지방정부에도 영향을 줬다. 오래된 가족주택을 문화재처럼 보존하겠다는 사람이 늘면서 세금감면 신청이 급증했다. 모든 오래된 집이 문화재는 아니다. 지방정부가 거절하면 가족들이 “우리 기억을 무시한다”고 항의했다. 문화재위원회는 기준을 만들었다. 공공역사성. 건축가치. 지역공동체 활용. 가족에게만 소중한 집은 사유재산으로 존중하되 공공보조는 별개. 감정과 세금을 분리. 로하르 남매의 집은 처음엔 기준에 못 미쳤다. 몇십 년 뒤 지역이 크게 재개발되면서 옛 이주민 주거형식을 거의 유일하게 남긴 건물이 됐다. 그때 문화재 지정. 시간이 가치를 바꿨다.
◆가족은 지정조건을 두고 또 싸웠다. 공개관람일. 수리방식. 세금감면. 결국 후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건 그런 관리부담도 이유였다. 추억을 소유하는 것과 관리하는 건 다르다. 미라 벤카는 이런 상속사건을 오래 맡으며 판결문 문체도 바꿨다. 초기에는 가족감정을 최대한 빼려 했다. 나중에는 사용관계와 생활기여를 더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법원이 감정을 판정하진 않지만, 누가 실제로 집을 돌봤는지와 누가 멀리서 비용을 냈는지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법은 차갑다고 해서 생활을 모르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공증업계는 결국 가족재산을 ‘금전재산 / 사용재산 / 기억재산 / 공공기여재산’처럼 나눠 묻기 시작했다.
법적 분류는 더 복잡했지만 상담은 오히려 쉬워졌다. 사람들이 “이건 돈보다 누가 쓰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할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유언장은 길어졌고, 상속소송은 조금 줄었다.
상속조정제도는 나중에 생전 가족계약으로 발전했다. 노부모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자녀들과 집·기록·사업을 어떻게 나눌지 미리 정한다. 가족들은 처음엔 죽음을 미리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다. 몇 번 소송을 본 뒤 이용자가 늘었다. 한 장수종 아틀라스 부모는 300년 뒤 일을 지금 정하는 게 우습다고 했다. 공증인은 30년마다 갱신하자고 했다. 상속도 장수종 시간에 맞춰 한 번 쓰고 끝나는 문서가 아니었다. 상속조정센터는 그 뒤 ‘팔 것인가 남길 것인가’부터 묻지 않고, 가족이 그 재산을 앞으로 실제로 누가 사용할지를 먼저 물었다. 그 질문 하나가 소송을 꽤 줄였다.
◆가족주택 조정사건 판례는 부동산 가격표에 따로 표시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집값만 본다. 가족에게는 사용권 한 줄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법원은 그 차이를 돈으로 완전히 환산하지 않기로 했다. 미라가 맡은 상속사건 판결문에는 ‘정서적 가치’라는 표현 대신 실제 사용기록과 가족합의 가능성이 적혔다. 감정을 숫자로 평가하지 않되, 감정 때문에 생긴 생활관계를 사실로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후대 판사들이 그 문장을 많이 인용했다.
가족계약이 보편화되자 공증인은 상속분배보다 ‘누가 계속 돌볼 것인가’를 먼저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 기록, 가족사업은 소유권보다 관리책임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재산을 받는 것과 책임을 받는 일이 같은 문서에 적히기 시작했다.
상속문서는 결국 돈보다 오래 남는 관계를 조금 덜 망가뜨리기 위한 도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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