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2화 — 부모가 준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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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시민이면 자녀도 시민이 되는 규칙은 오래된 제도였다. 다종족 제국에서는 그 단순한 규칙도 시간이 지나면 복잡해진다. 엘사르 출신 부부가 있었다. 부모 둘 다 제국 완전시민권을 취득한 뒤 세라나로 이주했다. 자녀 셋은 제국에서 태어났다. 막내가 성인이 되자 시민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이름은 세린 아델. 이유는 정치도 종교도 아니었다. 엘사르 왕국으로 돌아가 농업회사를 운영하고 싶었다. 엘사르 법에서는 일부 농지와 왕실개발권을 외국 완전시민이 소유할 수 없었다. 복수국적 허용범위도 좁았다. 제국시민권을 유지하면 할머니에게서 받을 농장과 지역협동조합 지분을 상속받기 어렵다.
부모는 반대했다.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시민권을 받았는데.”
세린은 말했다. “그건 부모님 선택이잖아요.” 가족싸움. 법적으로는 성인이 자기 시민권을 포기할 수 있다. 단. 세금·군사·형사책임 회피 목적이 아닌지. 미해결 재산·채무. 보안자료. 확인. 세린은 조건 모두 통과. 시민권 포기. 장기거주권도 신청 안 함. 엘사르 귀환. 본토 언론 일부는 ‘시민권 역이민’이라고 과장했다. 실제 통계. 극히 적음. 시민권을 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래도 상징성이 컸다. 과거에는 외부인이 제국시민이 되는 것만 이야기했다. 이제는 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상원에서 제한안을 내자는 의원도 있었다. 부모가 귀화해 받은 시민권을 자녀가 쉽게 버리면 제도 의미가 약해진다는 주장. 법무원은 반대했다. 시민권이 부모의 포상이라면 자녀가 영구히 보유할 의무가 생긴다. 현재 제국법은 시민권을 개인의 정치적 지위로 본다. 성인이면 자기 선택. 황제에게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제국에서 태어나 제국교육을 받고 아무 박해도 받지 않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떠난다. 왜. 더 좋은 삶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으니까. 제국이 모든 사람에게 최선일 필요는 없다.
세린은 엘사르에서 농장을 물려받았다. 첫해 사업은 잘 안 됐다. 제국식 자동농업장비를 너무 비싸게 들였고 지역협동조합 규정도 잘 몰랐다. 부모는 말했다. “그러니까 남았어야.” 세린은 안 돌아왔다. 둘째 해 손실 감소. 셋째 해 흑자.
그녀는 제국 기업과 거래했다. 시민권은 버렸지만 제국 제품은 샀다. 세라나 친구와 연락도 계속. 정치적 탈출서사가 아니었다. 그냥 이주. 몇 년 뒤 세린의 언니가 결혼식을 위해 엘사르를 방문했다. 가족은 여전히 싸우고 여전히 만났다. 시민권이 달라도 자매는 자매. 반대 방향 사례도 있었다. 보호국 출신 부모가 시민권을 끝까지 거부했는데 자녀가 성년이 되어 제국시민권을 선택. 부모가 서운. 아이도 자기 선택.
◆가족 안에서 국적이 갈라지는 일이 늘었다. 정부서식은 이미 대응. 사람 감정은 더 느리다. 시민권 상담센터는 법률설명 외에 가족중재 서비스를 따로 만들었다. 처음엔 과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신청자 많음. 문제는 법보다 가족. 한 상담사는 말했다. “국가가 누구 시민인지 정하는 건 쉬운데, 부모에게 그 선택을 설명하는 건 어렵습니다.” 시민권 포기 후 다시 돌아오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재취득. 가능. 자동복원은 아님. 일반 신청. 세린도 40년 뒤 장기체류를 위해 준시민 비슷한 지위를 다시 신청했다. 왜. 부모 노후.
완전시민권 재취득? 안 함. 장기거주. 충분. 부모는 처음에는 또 시민권 받으라고 했다. 나중에는 포기. 세린은 엘사르 농장과 세라나 가족 사이를 오갔다. 누군가 인터뷰에서 물었다. “결국 제국으로 돌아온 겁니까?”
“아뇨. 부모님 보러 온 겁니다.”
사람 이동을 국가승패처럼 해석하는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세린은 그 해석을 평생 싫어했다. 황실 시민권 보고서에는 그녀 사례가 ‘자발적 이탈 후 비시민 장기거주’로 짧게 들어갔다. 이름은 익명. 그게 더 나았다. 세린 아델의 시민권 포기는 엘사르 정치에도 작은 파장을 만들었다. 왕국 보수파는 “제국 시민권을 버리고 돌아오는 청년”을 선전에 쓰려 했다. 세린은 거부했다.
◆“저는 농장 때문에 왔습니다.”
그 한마디로 캠페인이 맥이 빠졌다. 엘사르 진보파는 반대로 그녀가 제국식 농업기술을 들여오는 걸 ‘경제적 재편입’이라고 비판했다. 세린은 또 화냈다.
“장비 사는 게 국적입니까?”
국가들은 사람의 선택을 자기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 한다. 당사자는 대개 더 사소한 이유로 움직인다.
세린 농장은 제국장비만 쓰지도 않았다. 네리안 수분센서. 칼리스테르 토양분석기. 엘사르 현지 기계. 가장 싼 것. 수확량은 12년 동안 크게 늘었다. 지역협동조합에서 세린은 나중에 이사가 됐다. 제국정치 관심. 거의 없음. 부모 노후 때문에 세라나를 자주 오가면서 세금 문제가 다시 생겼다. 엘사르 거주자. 제국 장기체류. 양국 소득. 세린은 한때 “시민권 버리면 서류가 줄 줄 알았다”고 불평했다. 줄지 않았다. 그녀 선택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국경을 오가는 삶 자체가 복잡하다.
부모가 병들자 세린은 세라나에 6년 가까이 머물렀다. 완전시민이 아니라도 가족돌봄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돼 있었다. 복지부의 장기돌봄 개정이 여기에도 적용됐다. 어머니가 죽은 뒤 시민권 재취득을 다시 고민했다. 법무원 상담사는 장점과 의무를 설명. 세린은 신청서까지 받았다. 제출 안 함. 왜. 아직 엘사르 농장이 삶의 중심. 아버지는 서운해하지 않았다. 처음과 달라졌다.
◆“네가 알아서 해.”
시간. 세린의 조카는 반대로 제국군에 들어갔다. 가족식사에서 삼촌·이모 국적이 세 개. 아무도 크게 의미부여 안 함.
시민권 포기통계도 점점 평범한 행정자료가 됐다. 연간 완전시민 중 자발적 이탈 비율. 매우 낮음. 그중 상당수는 복수국적 제한이나 상속·공직 문제. 정치적 적대 때문에 떠난 사람은 더 적었다. 황실 전략원은 이탈률을 국가충성 지표로 쓰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너무 많은 이유가 섞여 있다. 한 의원은 그래도 “시민을 붙잡을 정책”을 요구했다. 법무장관이 물었다. “나가려는 사람을요?”
“제국에 남게 해야.”
“왜.”
명확한 답 없음. 경제적으로 필요한 인재라면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시민권 포기를 실패로 간주해 사람을 잡을 필요는 없다. 세린 사례는 시민권 교육자료에 익명으로 들어갔다.
[귀화가족 자녀의 자발적 시민권 이탈.]
학생들은 토론했다.
“부모한테 너무한가.”
“자기 인생이지.”
정답 없음. 몇십 년 뒤 세린은 엘사르에서 죽었다. 장례에는 세라나 가족도 왔다. 유언대로 농장은 현지 조카에게. 세라나의 부모 집 지분은 제국시민 언니에게. 두 나라 재산을 미리 정리해둔 덕분에 소송은 없었다.
시민권은 떠났지만 가족관계는 국경을 건넜다. 행정은 그걸 처리하면 됐다. 세린의 선택 이후 시민권 상담센터에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오는 경우가 늘었다. 상담사는 처음부터 말했다. “여기는 설득하는 곳이 아닙니다.” 부모는 그래도 설득해달라고 했다. 센터는 거부했다. 법적효과만 설명. 어떤 가족은 상담실에서 크게 싸웠다. 부모는 보호국에서 어렵게 완전시민이 됐고, 아들은 아르칸트로 취업하며 시민권 포기를 고민했다. 아들은 제국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르칸트 회사가 외국 완전시민 고위직을 제한했을 뿐. 부모는 그 회사가 문제라고 했다. 아들은 경력기회라고 했다.
◆결국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직급을 한 단계 낮춰 취업했다. 몇 년 뒤 회사가 규정을 바꿔 승진. 다른 결론. 상담센터는 이런 사례를 통계로 묶지 않았다. 시민권 유지율을 높이는 게 목표가 아니어서.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이 제국 공공연금이나 과거 복지기여를 전부 잃는지도 문제였다. 초기 법은 불명확. 새 규칙. 이미 납부한 기여분은 개인권리. 시민권과 분리. 다만 시민에게만 주는 추가급여는 종료.
세린도 부모 돌봄 때문에 세라나에 오래 머무는 동안 과거 납부한 의료기여분을 일부 사용할 수 있었다. 국가를 떠난다고 과거 노동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반대로 제국시민권을 취득한 외부국민이 본국 연금을 잃는 사례도 있었다. 양자협정이 없는 나라. 황실이 다 해결할 수 없다. 외교원은 주요 이민국가와 연금이동협정을 조금씩 늘렸다. 시민권 문제 하나가 다시 외교로 연결됐다.
세린은 말년에 세라나와 엘사르를 오가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정착하지 않았다. 농장 이사회는 조카에게 넘기고, 부모 집 일부는 언니가 관리했다. 세린 명의의 주소는 두 개였다. 그녀가 죽은 뒤 가족은 유언대로 엘사르에 장례를 치렀고, 세라나 집에는 작은 사진 하나만 남겼다.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이 제국 가족사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시민권 상담센터는 나중에 신청·취득뿐 아니라 포기·재취득까지 같은 창구에서 다루게 됐다.
◆예전 이름은 ‘귀화지원센터’. 새 이름은 ‘시민지위 상담소’. 들어오는 방향만 전제로 하지 않게 된 셈이다. 세린 사례를 모르는 젊은 직원들에게는 원래부터 그런 이름인 것처럼 보였다. 시민권 포기 절차에는 숙려기간도 있었다. 처음엔 1년. 너무 길다는 민원. 성년자가 이미 외국 취업·상속 일정을 잡은 경우 1년은 큰 손해. 법무원은 90일로 줄였다. 대신 보안·세금·채무 문제가 있으면 별도연장. 세린은 옛 제도였다면 농장상속을 놓쳤을 수도 있다. 그녀 사례가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민원이 누적돼 바뀌었다. 사람이 국가를 떠나는 절차도 불필요하게 벌처럼 만들지 않는 방향이었다.
세린 사례 이후 시민권 포기자의 가족돌봄 체류는 별도비자가 아니라 일반 장기거주 사유에 포함됐다. 특별사례가 늘어나면 특례를 계속 만드는 대신 일반규칙을 넓히는 쪽이 더 나았다. 몇 년 뒤 직원들은 그 제도가 세린 같은 사건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몰랐다. 세린의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녀는 세라나 집을 바로 팔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비워뒀다가 결국 언니에게 지분을 넘겼다. 시민권을 포기했어도 정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관계가 있었다.
국가는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 시민권 포기 통계가 안정된 뒤 법무원은 더 이상 연례보고 첫 장에 ‘이탈률’을 두지 않았다. 취득·유지·포기·재취득을 같은 표 안에 놓았다. 한 방향만 정상이라고 보는 표에서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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