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80화 — 경계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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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두절된 탐사선은 한 척이었다. 이름은 《머나먼 등불》. 승선인원 3,204명. 민간탐사기업 소속. 마지막 신호는 단순했다.
[등록국 영유권선 진입 경고.]
[외부 통신차단.]
그 뒤 침묵. 마르엔 사건과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상황표 첫 줄에 일부러 문장을 붙였다.
[마르엔 사건과 동일시하지 말 것.]
세라가 그 문장을 보고 물었다. “아직도 이런 걸 쓰십니까?”
“응.”
실패 경험은 다음 판단을 돕기도 하지만, 다음 사건을 과거 사건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루멘 긴급중재 준비를 병행했다. 직접외교만 기다리지 않았다. 마리안이 말했다. “생명위험이 확인되기 전이라도 영사접촉 절차부터 여는 편이 낫습니다.”
수용. 가장 가까운 제국전단은 국경 밖에서 대기. 아직 강제진입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상대가 누군지도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베르단이 보내온 군사이동 자료와 루멘 등록망을 대조하자 이름이 열렸다.
[칼리스테르 공동체.]
황궁 전략원이 몇십 년 전 보여준 ‘아르칸트보다 큰 단일 정치단위 둘’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는 첫 장만 읽고 닫았던 파일. 이번에는 끝까지 열었다. 직할·공동관리 약 1,430개 항성계. 생물학적 인구환산 약 7조 8천억. 비생물·분산개체 별도. VIII급 기술 다수. 루멘 등록 약 600년. 군사력 세부는 비공개지만 공개기록만으로도 아르칸트보다 무거운 국가였다.
◆이동 중인 함대 추정 41만 척. 칼리스테르 전체전력은 아니다. 그래도 베르단 국경함대보다 크고, 제국이 현장에 둔 전단 3만 척보다는 훨씬 많았다. 증원은 가능했다. 문제는 왜 증원해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는 것. 아델라인은 함대자료를 보며 말했다.
“장거리타격 배치가 많습니다.”
마리안이 바로 쳐다봤다.
“싸울 생각부터 하지 마십시오.”
“안 합니다. 싸우지 않으려면 봐야죠.”
그 말은 맞았다.
루멘에 문의. 답.
[칼리스테르 공동체 군사작전 진행 중.]
“누구와?”
[분쟁당사자 정보 제한.]
“제국 민간선 상태는?”
[칼리스테르 확보 확인.]
살아 있다는 뜻. 적어도 확보 당시.
칼리스테르에 직접 영사접촉을 요청했다. 첫 답까지 2시간 11분.
[탐사선 승조원 상태 안정.]
[군사작전 종료 후 조사·접촉 가능.]
마리안이 말했다. “12시간 안 접촉을 요구하겠습니다.”
나는 마르엔 때 33시간을 떠올렸다. 12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6시간.”
칼리스테르가 거부했다.
[현 작전구역 보안상 불가.]
10시간 제안. 제국 8. 그들이 수용했다. 협상 23분. 이번에는 루멘 긴급중재 신청도 동시에 들어갔다. 과거 경험을 복제한 건 아니지만 절차는 빨라졌다.
◆8시간 뒤 영사통신이 열렸다. 화면에는 탐사선장과 승조원 대표 둘. 다친 사람 없음. 생명유지 정상. 가족들에게 즉시 통보. 황궁 가족대기실은 이번엔 몇 시간만 운영하고 닫았다. 마르엔 때 근무했던 외교원 직원 일부가 같은 업무에 배치돼 있었다. 한 직원이 나중에 말했다.
“화면에 사람이 살아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쉬었습니다.”
그 말을 보고서에 넣지는 않았다.
영사관이 선장에게 물었다. “왜 경계 안으로 들어갔습니까?”
“경계 밖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이번에는 공개지도 갱신이 정상. 현장경고도 없었다. 마르엔과 다른 지점. 칼리스테르가 군사작전 시작과 함께 임시통제선을 비공개로 확장한 것이 원인이었다. 민간선은 알 방법이 없었다. 제국 법무원이 바로 문제 삼았다.
“비공개 경계로 외국민간선을 억류할 수 있습니까?”
칼리스테르 답.
“영유권선이 아니라 군사작전 안전통제선이다.”
그럼 더 복잡.
탐사선이 왜 아직 풀려나지 않는지도 확인됐다. 《머나먼 등불》의 센서가 칼리스테르 군사작전 일부를 기록했다. 함대배치. 무기신호. 작전대상 일부. 칼리스테르는 해당 데이터를 군사기밀로 분류해 삭제를 요구했다. 탐사기업은 거부. 제국 정부도 즉시 동의하지 않았다. 민간선이 우연히 수집한 데이터라고 해도 타국 군사기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외국군이 제국시민의 선박기록을 마음대로 지우게 둘 수도 없다.
◆마리안은 절충을 냈다. 루멘 중재원이 원본을 봉인. 제국·기업은 일정기간 열람 안 함. 칼리스테르도 직접 삭제 못 함. 군사작전 종료 뒤 공개범위 판단. 칼리스테르가 검토에 들어갔다.
아르칸트에서도 연락이 왔다. 남동협정 적용구역 바깥이었지만 군사정보 교환은 가능했다.
[칼리스테르와 220년 전 경계대치를 경험했다.]
자료 제공. 당시에도 장거리타격 함대가 국경에 대규모로 전개됐지만 실제 사격은 없었다. 긴장. 협상. 철수. 좋은 기록.
베르단은 더 불안해했다. 칼리스테르 이동축이 자기 국경과도 가까웠다. 제국 함대가 증원되면 칼리스테르가 오해할 수 있고, 증원하지 않으면 베르단은 자기만 노출된다고 느낀다. 세 나라 문제가 될 가능성. 루멘 조정회는 ‘군사투명성 회의’를 제안했다. 칼리스테르. 베르단. 아틀라스.
그때 처음으로 칼리스테르가 제국에 직접 질문을 보냈다. [귀측은 억류 민간선 회수 외 군사목적을 보유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없다.]
그들이 다시 물었다. [현장 전단 증원 계획.]
“현재 없음.”
아델라인이 내 쪽을 봤다. 아직은.
◆칼리스테르도 자기 군사작전 목적 일부를 공개했다. 분쟁경계에서 활동하는 대규모 무장세력 소탕. 루멘 등록국 하나와의 공동작전. 제국을 향한 배치가 아님. 확인할 자료. 일부.
상황이 조금 내려갔다. 탐사선은 여전히 억류. 41만 함대도 여전히 움직임. 그렇지만 의도 하나가 분리됐다. 제국을 치러 오는 건 아닐 가능성.
칼리스테르는 루멘의 데이터봉인 절충안을 수용했다. 조건. 탐사선 센서핵은 작전 종료까지 루멘 관리. 승조원·선박 본체는 즉시 석방. 제국도 수용. 12시간 뒤 《머나먼 등불》이 경계 밖으로 나왔다. 3,204명. 전원 생존. 본토에서는 환호.
나는 환영연설을 하지 않았다. 아직 분쟁이 끝난 게 아니었다. 센서데이터도. 군사통제선의 적법성도. 칼리스테르와의 관계도.
탐사선이 제국전단에 도킹한 직후 칼리스테르에서 정상급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상대 직함. 공동체 전쟁조정관. 마리안이 말했다. “상당히 높은 급입니다.”
“왜 나한테?”
“귀국 함대가 자기 작전구역 바로 밖에 있기 때문이겠죠.”
화면 한쪽에는 41만 척의 이동선이 계속 표시됐다.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래도 상황실 공기는 마르엔 때보다 가볍지 않았다. 상대가 더 컸다. 그리고 이번에는 법률보다 함대가 먼저 서로를 보고 있었다.
◆《머나먼 등불》이 풀려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센서핵 분리였다. 루멘 관리선이 직접 도킹해 봉인장치에 넣었다. 제국 기술자와 칼리스테르 기술자는 둘 다 입회했지만 누구도 원본데이터를 열 수 없었다. 기업대표가 항의했다.
“우리 장비입니다.”
마리안이 말했다. “지금은 증거물이기도 합니다.”
칼리스테르 쪽은 더 강하게 말했다. “군사기밀이 포함돼 있습니다.”
루멘 관리관은 양쪽 말을 듣고 봉인번호만 읽었다.
탐사선장 소아렌 미르가 제국전단에 올라와 첫 조사를 받았다. 그는 국경경고를 못 봤다고 했다. 항법로그도 맞았다. 칼리스테르가 만든 임시 군사통제선은 등록망 공개대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왜 외국 민간선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에 비공개 통제선을 만들었냐는 것. 칼리스테르 답. 작전보안. 루멘 규정상 일정조건에서 가능. 대신 우발진입 선박은 가능한 한 즉시 통보·퇴거시켜야 한다. 억류까지 필요했는지는 중재대상.
이번 사건에서는 제국 쪽 잘못이 아직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본토 여론은 더 강경했다.
“당장 데이터 돌려받아라.”
“군함을 왜 밖에 세워두나.”
마르엔 사건 때와 반대.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승조원은 이미 돌아왔다. 생명위험 없음. 지금 남은 건 데이터와 군사규칙. 사람 구출과 같은 긴급도가 아니다.
아델라인도 이 점에서는 동의했다.
“함대는 유지하되 증원은 필요 없습니다.”
라울.
“칼리스테르가 우리 전단을 약하게 본다면?”
“3만 척 뒤에 제국 전체가 있다는 걸 모를까요.”
알 것이다.
칼리스테르 쪽도 함대 41만 척 전부를 우리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대부분 분쟁경계 안쪽 작전에 집중. 제국전단과 가장 가까운 구간에는 별도 연락함만. 서로 전쟁할 생각이 없다는 신호.
그런데 본토망에서는 함대숫자만 계속 비교됐다. 제국 현장 3만. 칼리스테르 41만.
“우리가 밀린다.”
실제로는 전체전력 비교도 아니고 임무도 다름. 황실 대변인이 설명. 사람들은 그래도 숫자를 좋아한다.
칼리스테르 공동체의 첫 정상급 통신은 예상보다 건조했다. 전쟁조정관 이름은 마르 케일. 생물학적 개체. 외모는 네리안인과 비슷한 두 팔 체형이지만 얼굴에 감각기관이 네 개. 첫 문장.
“귀측 민간선은 안전하게 반환됐다.”
“확인했다.”
“군사데이터는 공동관리 중.”
“그것도.”
그는 바로 본론.
“귀국 전단이 작전경계 밖에 계속 머무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다.”
“우리 시민선과 데이터 문제 끝날 때까지.”
“데이터 문제가 끝나면 철수하는가.”
“상황 따라.”
마리안이 옆에서 나를 봤다. 너무 솔직했나. 마르 케일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동일하다.”
◆그는 자기들 군사작전 목적을 조금 더 공개했다. 분쟁경계 안쪽에서 수년간 활동한 대규모 무장세력의 기지를 정리하는 작전. 상대 세력은 루멘 등록국 하나의 내전에서 갈라져 나온 함대집단. 민간선 위장과 고리망 불법사용 전력. 칼리스테르는 인근 등록국 요청으로 개입. 제국을 상대로 한 작전이 아니었다.
마리안이 물었다. “임시통제선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
“대상 함대가 민간항로 정보를 사용해 이동한다.”
“그 결과 우리 민간선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확보했다.”
“통보는 왜 늦었습니까.”
마르 케일이 잠깐 멈췄다.
“우리 절차가 외부 등록국 영사접촉을 전제로 설계돼 있지 않았다.”
의외로 솔직.
루멘 등록 600년 국가인데. 외부선박 억류사례가 적었나. 아님. 자기 관리권역 외부국과 접촉이 드물었다. 아틀라스가 새로 들어온 탓.
“그 절차 고칠 생각 있나.”
“검토 중.”
첫 회담치고. 나쁘지 않다.
군사정보 삭제 문제는 끝까지 안 풀렸다. 제국은 원본보존. 칼리스테르는 군사기밀 비공개. 루멘은 중간. 결국 50년 봉인. 그 기간 동안 군사적 가치가 대부분 사라질 거라는 계산. 기업에는 비군사 탐사자료만 추출해 돌려준다. 칼리스테르 군사배치는 삭제된 파생본만.
◆기업대표는 화났다. 희귀중력현상 데이터 일부도 봉인대상. 수익손실. 제국은 보상 안 함. 외국 군사작전 구역에 우연히 들어가 얻은 데이터까지 국가가 수익보장할 이유 없음.
칼리스테르는 억류로 생긴 직접손실과 일정 임대비만 보상. 배상. 법적 책임 일부.
중재는 계속.
정상통신이 끝난 뒤 아델라인이 말했다. “생각보다 말이 통합니다.”
마리안.
“함대가 크다고 말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뜻 아니었습니다.”
칼리스테르 파일을 더 읽었다. 1,430개 항성계. 7조 8천억 생물인구. 분산개체 별도. 장거리타격. 고속분산함대. 전시동원은 제국보다 느릴 수 있지만 현장전단 독립성이 높음. 아르칸트와 220년 전 국경대치. 사격 없음.
전략원 평가.
[아틀라스와 직접전쟁 시 결과 불확실.]
이 문장이 중요했다. 예전에는 적 대부분에게 없던 문장.
아델라인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좋군요.”
마리안이 한숨.
“뭐가 좋습니까.”
“모른다는 게.”
현장전단은 4일 뒤 일부 철수했다. 칼리스테르 함대도 작전축을 더 안쪽으로 이동. 우발충돌 거리 확대.
◆베르단도 경계태세를 한 단계 내렸다. 루멘 조정회 긴급통지 종료. 아무도 발포하지 않았다.
《머나먼 등불》 승조원들은 가족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사망자 0. 사건이 뉴스에서 빠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군과 외교원에서는 반대였다. 처음으로 제국과 비슷한 규모의 상위국 함대가 같은 화면에 놓였다.
칼리스테르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서가 있었다.
[향후 군사작전 임시통제선 외부통보 절차 협의 제안.]
마리안이 말했다. “다음 회담이 필요합니다.”
아델라인은 함대자료를 닫지 않았다. 나는 둘 다 승인했다. 외교팀. 군사분석팀. 따로.
상황실 창밖에서는 아우렐리움 야간교통이 평소대로 움직였다. 화면 한쪽에만 칼리스테르 전쟁조정관과의 다음 통신일정이 새로 들어왔다. 일정은 6개월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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