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78화 — 베르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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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시민 대부분이 베르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마르엔 사건 때문이었다. 63명. 억류. 국경. 첫인상은 오래 갔다. 사건 직후 여론조사에서 베르단 신뢰도는 루멘 등록국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다. 교역은 계속됐지만 사람은 숫자보다 느리게 바뀌었다.
아우렐리움의 베르단 식당 몇 곳은 예약취소를 겪었다. 베르단 학생들이 학교에서 “사람 죽인 나라”라는 말을 들었다. 반대로 베르단에서는 아틀라스 민간탐사자를 “국경을 돈으로 사려는 제국인”이라고 부르는 방송이 나왔다. 양쪽 정부는 대규모 화해캠페인을 만들지 않았다. 차별과 폭력은 법으로 처리. 감정은 시간과 실제 접촉에 맡겼다.
첫 교환학생 지원자는 적었다. 10년 뒤에는 늘었다. 베르단 대학의 경계센서·중력항법 연구가 좋았기 때문이다. 학생에게는 외교사건보다 학과평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한 베르단 학생이 아우렐리움 기숙사에서 마르엔 희생자 친척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대학은 배정 뒤에야 알았다. 바꿀지 물었다. 둘 다 그냥 두겠다고 했다. 처음 몇 주 정치 얘기 거의 없음. 시험기간에는 같이 밤샘. 몇 달 뒤 룸메이트가 먼저 사건 얘기를 꺼냈다.
“우리 삼촌이 그 배에 있었습니다.”
베르단 학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 정부도 잘못했습니다.”
“우리 함장도.”
그 정도. 둘은 나중에 친구가 됐지만 방송다큐 촬영요청은 같이 거절했다. 자기 우정을 국가화해로 팔고 싶지 않다고.
◆베르단 내 아틀라스 상인들도 비슷했다. 사건 직후 학교·주택에서 불편을 겪었다. 베르단 법원에서 차별사건 몇 건이 인정됐다. 제국에서도 베르단인 차별소송이 나왔다. 양쪽 법원이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공동연구가 늘었다. 베르단의 국경센서. 제국의 대량생산. 합작 비콘망이 루멘 다른 등록국에 수출됐다. 마르엔 사건 당사국들이 국경안전을 팔기 시작한 셈. 본토 언론은 처음엔 아이러니라고 썼다. 몇 년 뒤에는 그냥 산업뉴스.
라코 민은 퇴직 전까지 제국-베르단 기술협력팀을 이끌었다. 그의 후임은 사건 당시 학생이던 젊은 기술자. 제국 쪽 후임도 세온 세대. 그들은 매일 통신하면서 마르엔 사건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업데이트주기. 센서오류. 예산. 업무가 더 많았다.
베르단 국경청 교육과정도 변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마르엔 사건은 시험문제였다.
[왜 외부기술접근이 늦어졌는가.]
정답에는 세 가지. 증거보존 우선순위 과도. 생명위험 평가실패. 기술규격 상호이해 부족. 제국 교육자료와 놀랍게 비슷했다. 양국이 자기 잘못을 각자 교재에 넣고 있었다.
◆공동추모행사를 하자는 제안도 한 번 나왔다. 외교부끼리는 좋은 생각이라고 봤다. 유족단체가 반대했다.
“우리 가족을 양국 우호행사 배경으로 쓰지 마십시오.”
행사 취소. 대신 기술회의 첫날 1분 묵념만. 그것도 몇 년 뒤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기억 방식은 영구하지 않았다.
사건 30년째 베르단 대사관 앞에는 시위가 없었다. 대사관 건물 맞은편 카페가 더 붐볐다. 점심시간. 베르단 직원과 제국 회사원들이 같은 줄에 섰다. 아무 일 없었다.
그러다 베르단 정부에서 황실에 긴급정보가 왔다. 루멘 분쟁경계 북동측. 등록국 함대의 대규모 이동. 함선 수. 수십만. 베르단 국경함대 전체보다 컸다. 제국 정보원도 별도로 같은 신호를 잡았다. 이건 베르단 문제가 아니었다.
마리안이 전략회의 자료를 열었다. 등록국 이름은 아직 공개제한.
“우리 쪽으로 옵니까?”
“아직 아닙니다.”
“왜 움직이죠?”
“모릅니다.”
화면 한쪽에는 몇십 년 전 마르엔 사건 좌표가 작게 남아 있었다. 그보다 훨씬 바깥쪽에서 붉은 이동선이 길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국과 베르단의 관계가 평범해지는 데 가장 도움이 된 건 정상회담도 공동성명도 아니었다. 사람이 오갔다. 학생. 상인. 기술자. 관광객.
베르단의 중력지형은 특이했다. 국경성계 몇 곳에는 오래된 항성포획 흔적과 자연 중력렌즈가 있어 관광산업도 컸다. 제국 여행방송이 촬영을 갔다. 첫 회차 제목.
[63명의 나라, 지금은.]
베르단 현지에서 즉시 항의가 나왔다.
“우리 나라가 사고 하나입니까?”
방송사는 제목을 바꿨다.
[베르단 경계성계 여행.]
시청률은 조금 떨어졌다. 현지 반응은 좋아졌다.
진행자는 방송 중 라코 민과 인터뷰하려 했다. 그는 거절했다.
“관광방송에서 그 얘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중력렌즈 연구자를 소개해줬다. 방송은 사고 이야기를 5분만 하고 나머지는 천문학과 음식, 시장을 다뤘다. 본토 시청자 상당수는 그제야 베르단에 사람 사는 도시가 있다는 걸 본 셈이었다.
베르단 음식 하나가 아우렐리움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향이 강한 발효식품. 처음에는 호불호. 몇 년 뒤 제국식 변형제품. 베르단인들은 “그건 우리 음식이 아니다”라고 불평. 아틀라스 사람은 맛있으면 됨. 이런 싸움이 국경사고 논쟁보다 훨씬 건강했다.
◆공동대학 과정에서 나온 첫 큰 연구성과도 군사가 아니었다. 저중력 골절치료. 베르단의 중력조절 의료와 제국 재생의학 결합. 노인·저중력종족 환자 치료기간 단축.
로하르 정식령 병원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로 사용. 환자들은 기술출처에 관심 거의 없음. 의사들만 논문에 두 나라 기관명.
몇십 년 전 서로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던 사회가 의료특허를 같이 나누게 됐다. 그걸 ‘화해’라고 부르는 공식행사는 없었다. 그냥 계약서.
베르단 내부에서도 제국을 보는 세대가 바뀌었다. 마르엔 사건 당시 성인이던 사람은 국경침범 기억이 강했다. 그 뒤 태어난 세대는 제국을 큰 시장, 대학, 여행지로 먼저 알았다. 여론조사 신뢰도는 천천히 회복. 완전호감? 아님. 강대국 경계심. 항상.
제국도 마찬가지. 베르단은 친한 나라가 아니라 거래·협력 가능한 이웃. 가끔 분쟁. 가끔 공동연구.
한 번은 자원권 해석으로 또 충돌했다. 민간기업 두 곳. 법원. 중재. 이번에는 뉴스 3일. 아무도 함대 얘기 안 함.
정치적으로 관계가 정상화되자 오히려 마르엔 유족 일부는 잊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제 베르단 여행광고만 봅니다.”
그 감정도 이해. 유족단체는 사고기록 보존을 요구. 이미 기록원에 있음.
◆국가는 기억을 보존할 수 있지만 사회에 계속 슬퍼하라고 명령할 순 없다. 황실은 별도 추모캠페인을 만들지 않았다.
베르단 대사관 맞은편 카페는 30년째에도 있었다. 주인이 바뀌고 메뉴가 바뀌었다. 한쪽 테이블에서 베르단 대사관 직원과 제국 기업인이 계약서를 보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는 학생들. 사건 얘기 없음.
그 평범함이 오래 갈 것 같았는데, 베르단 국경청에서 긴급통신이 왔다. 북동측 분쟁경계에서 거대한 함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베르단도 목적을 몰랐다. 우리 정보원도. 등록식별은 걸려 있었지만 이름은 최고등급 정보로 잠겨 있었다. 마리안이 물었다.
“우리 쪽으로 옵니까?”
“현재는 아닙니다.”
“베르단 쪽?”
“통과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베르단은 제국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정보공유만. 그 차이가 중요했다. 제국도 함대를 보내지 않았다. 센서자료를 교환.
화면에서 붉은 이동선은 아주 천천히 길어졌다. 마르엔 사건 국경선은 그 아래 작게 보였다. 몇십 년 동안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선이 지도축척을 넓히자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베르단과의 공동의료 연구가 커지면서 양국 보험체계도 부딪혔다. 제국은 장기치료를 시민복지와 민간보험이 나눠 부담. 베르단은 기초의료를 국가가 더 많이 책임. 공동치료를 받은 환자의 비용을 누가 내는지 분쟁. 처음에는 병원들이 서로 청구서를 돌려보냈다. 환자는 치료받았는데 행정이 싸움.
양국은 공동의료정산소를 만들었다. 진단코드. 치료비. 국가부담. 보험부담. 자동변환. 또 새로운 중간기관.
몇 년 뒤 환자는 어느 나라 병원에 가도 본인부담 차이를 미리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걸 외교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 앱 기능. 그 정도.
마르엔 사건으로 시작한 양국 관계가 국경센서에서 의료청구서까지 내려왔다. 어떤 관계가 안정됐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정상회담 횟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상대국을 특별한 사건 없이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문장은 외교백서에 들어갔다가 너무 멋을 부린다는 이유로 편집자가 뺐다. 잘 뺐다.
베르단 여행방송이 나온 뒤 관광객이 실제로 늘었다.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국경청도 사건현장도 아니었다. 중력렌즈 전망대. 제국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베르단 상인이 기념품을 팔았다. 한 가게에는 아틀라스어 표지판이 서툴게 붙어 있었다.
[환영합니다. 국경 넘지 마십시오.]
농담. 관광객들이 좋아했다. 몇십 년 전 같으면 불쾌했을 문장. 시간이 지나면서 농담이 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반대로 유족 중 일부는 그 사진을 보고 화가 났다. 그 반응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회가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된 사건을 가족까지 가볍게 볼 의무는 없다. 황실은 어느 쪽에도 설명문을 내지 않았다. 같은 기억을 같은 방식으로 가져야 할 필요는 없었다. 베르단 대사관 직원 하나는 나중에 그 관광표지판 사진을 자기 책상에 붙였다. 처음엔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몇 년 뒤 표지판은 낡아 새것으로 교체됐다.
관광객은 계속 왔고, 대사관 직원은 점심을 먹으러 맞은편 카페를 계속 이용했다. 베르단은 어느새 사건명이 아니라 여행지와 거래처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꽤 오래 걸렸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베르단과 제국 사이 민간결혼도 서서히 늘었다. 숫자는 크지 않았지만 가족법이 또 문제였다. 상속. 양육권. 수명차. 양국 법이 달랐다. 첫 몇 건은 법원에서 오래 끌었다. 그 뒤 공동가족법 안내서가 생겼다. 외교부보다 변호사와 시민단체가 먼저 만들었고 정부는 나중에 공식인증했다. 국가관계가 평범해지면 이런 문서가 더 중요해진다. 전쟁계획보다 양육권 양식이 사람 일상에 더 자주 등장했다.
◆양국 학교의 교환학생 수가 늘자 역사교재 비교사업도 시작됐다.
마르엔 사건을 제국 교과서는 ‘복합책임 국경사고’로, 베르단 교과서는 ‘불법침범 및 영사접근 실패사건’으로 적고 있었다.
둘 다 사실.
강조점은 달랐다.
공동교재를 만들자는 제안은 결국 포기했다.
대신 상대 교과서도 함께 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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