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77화 — 국경이 움직이는 속도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마르엔 사건 이후 가장 지루한 후속사업은 지도였다. 루멘 등록경계 갱신. 제국 민간항로망. 베르단 국경청. 보험사. 탐사기업. 서로 다른 시스템이 같은 선을 봐야 했다. 우주국경은 행성지도처럼 자로 그은 직선도 아니었다. 항성은 움직이고 중력장도 변하고, 고리망 영향권과 인과불안정구역은 몇 년 사이 형태가 바뀐다. 그래서 제국과 베르단은 공동경계비콘망을 만들었다. 비콘 1만 2천여 기. 돈이 많이 들었다.
기업들이 분담금에 반발했다. 보험사가 먼저 답했다. “비콘 사용기업에는 보험료를 낮추겠습니다.”
그 뒤 반발이 많이 줄었다.
첫 2년은 잘 굴러갔다. 3년째 인과폭풍이 지나가면서 비콘 417기가 동시에 오류를 냈다. 제국 탐사선 9척. 베르단 22척. 전부 자동정지. 항로 12시간 마비. 상인단체가 난리였다.
“안전시스템 때문에 거래가 멈췄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보험사는 반대로 말했다. “그래서 아무도 국경을 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맞았다.
수동항법을 허용하자는 요구가 나왔다. 군용선에는 일부 허용. 민간은 제한. 왜. 오류 중에는 진짜 경계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사전에 합의된 공동 임시항로를 따로 만들었다. 비콘망 전체가 이상하면 자동으로 그 좁은 길만 쓴다. 다음 인과폭풍에서는 2시간 만에 통행 재개. 배운 만큼 빨라졌다.
◆경계정보를 얼마나 공개할지도 문제였다. 너무 정확하면 자원권과 군사감시정보가 그대로 노출된다. 너무 늦게 공개하면 마르엔 사건 반복. 민간용 경계는 10분 안에 반영. 군사용 세부자료는 별도. 과거 7개월이던 갱신지연이 10분까지 줄었다. 기술이 해결한 부분.
작은 등록국들은 같은 체계를 못 따라왔다. 돈. 인력. 루멘 조정회가 공동기금을 만들었다. 아틀라스와 베르단이 기술을 제공했고, 아르칸트도 나중에 들어왔다. 정부가 무료로 풀자는 의견. 기업은 반대. 최종적으로 핵심표준은 무료, 장비·유지서비스는 유료. 시장도 생겼다.
네리안 회사들이 빠르게 끼어들었다. 아틀라스 규격과 아르칸트 규격을 같이 처리하던 경험을 살려 통합비콘을 만들었다. 제국-베르단 국경에도 네리안 장비가 들어갔다. 보호국 경쟁에서 독립을 택한 나라 회사가 양국 국경시스템을 파는 상황. 마리안은 보고서를 보고 웃었다.
“저 사람들은 어디서든 중간장사를 하는군요.”
재무원은 가격이 싸다고 좋아했다.
세온 사아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항법안전기사. 아버지 사건 때문에 선택한 길인지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기술회의에서는 베르단 엔지니어와 자주 싸웠다. 세온은 경계변경 즉시 배포를 원했다. 베르단 쪽은 검증 뒤 배포.
“검증하다 늦으면요?”
“틀린 선을 먼저 뿌리면 더 위험합니다.”
둘 다 맞았다. 최종안은 두 단계. 예비경계. 확정경계. 변화가 잡히면 즉시 예비경고. 검증이 끝나면 확정.
◆누군가 예비경계를 ‘노란선’이라고 부르자 세온이 바로 반대했다. 마르엔 탐사자들이 현장경고를 가볍게 부르던 은어와 같았다. 공식명칭에서는 제외. 그런 세세한 단어까지 사고기억이 남아 있었다.
20년이 지나 경계침범은 크게 줄었다. 0은 아니었다. 제국 소형탐사선 하나가 비콘을 일부러 꺼놓고 베르단 자원권에 들어갔다. 불법채굴. 체포. 이번에는 영사접촉까지 18분. 기술접근 즉시. 다친 사람 없음. 본토 관심도 작았다. 범죄자가 재판받았고 벌금을 냈다. 사건이 평범했다. 그게 예전과 가장 달랐다.
경계표준 위원회가 루멘 전체로 확대되면서 세온은 나중에 제국 대표가 됐다. 회의장에는 73개 정치단위 기술자들이 있었다. 사회자가 그를 소개하며 말했다. “마르엔 사고 유족이자—”
세온이 바로 고쳤다.
“항법안전기사입니다.”
사회자가 사과했다. 그 뒤 아무도 유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위원회에서 경계갱신 표준은 72시간에서 6시간으로 다시 줄었다. 기술이 좋아진 덕. 마르엔 사건 당시 민간망은 7개월 늦었다. 세온은 숫자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의는 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고리망 통행료. 몇몇 대표가 졸기 시작했다.
◆수십 년 뒤 대규모 비콘 오류가 한 번 더 났다. 이번에는 확정경계가 0.002광년 잘못 표시됐다. 자동정지. 수천 척이 불편을 겪었다. 사망 0. 상인들은 6시간 동안 욕했다. 다음 날 다른 뉴스로 넘어갔다. 세온은 오류보고서에 서명하고 퇴근했다.
공동비콘망이 자리 잡은 뒤 국경분쟁은 줄었지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이 생겼다. 누가 비콘 데이터를 소유하는가. 제국 탐사기업들은 자기 선박이 수집한 중력·항성 이동자료를 회사자산이라고 주장했다. 베르단은 국경안전에 쓰인 이상 공동데이터라고 봤다. 보험사는 데이터를 받아야 위험을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첫 협상안은 실패했다. 기업자료를 전부 공개하면 탐사경쟁력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으면 경계정확도가 떨어진다. 결국 데이터도 층을 나눴다. 경계안전에 필요한 최소값은 공용. 자원위치·탐사세부는 기업소유. 긴급오류 때는 일정기간 원자료 제출, 나중에 폐기. 법률가보다 기술자가 더 많이 싸운 협정이었다.
몇 년 뒤 실제로 데이터 유출사건이 터졌다. 베르단 유지업체 직원 하나가 공용경계망 접근권을 이용해 제국 탐사기업의 희귀광물 흔적을 훔쳐 자기 친족회사에 넘겼다. 광산선점. 수익. 적발. 베르단 법원에서 유죄. 제국 기업은 배상. 공용망 신뢰가 다시 흔들렸다.
◆일부 기업은 비콘망 탈퇴를 요구했다. 보험료가 바로 올랐다. 대부분 다시 들어왔다. 이 시스템은 좋아서만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비용이 더 커서 쓰는 부분도 있었다.
세온은 이 사건 뒤 접근권한 구조를 고쳤다. 경계운영자도 기업원자료를 직접 볼 수 없게. 필요한 계산값만 자동추출. 사람이 볼 수 있는 범위를 줄였다. 기술로 신뢰를 덜 요구하는 방식.
루멘 표준위원회는 이 구조를 다른 등록국에도 권고했다. 작은 나라들은 구현비용을 걱정했다. 공동기금 지원. 또 돈.
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의원이 말했다. “우리는 국경사고 한 번 때문에 왜 수십 년 동안 계속 돈을 냅니까?”
항로청장이 답했다. “국경은 수십 년 뒤에도 있습니다.”
질문은 끝났다.
경계망은 군사적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제국군은 민간용보다 훨씬 정밀한 자료를 원했다. 베르단은 반대. 민간안전망이 군사정찰망으로 바뀌면 다른 등록국이 사용을 꺼릴 수 있다. 결국 군은 자기 센서를 별도운영. 공용망은 군사목표 추적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조약.
전쟁이 나면? 자동중지조항. 그때는 별도. 평시와 전시를 구분했다.
◆아르칸트는 처음에 이런 제한을 답답해했다. 네리안은 오히려 지지. 자기 통합비콘이 대국 군사감시에 쓰이면 중립사업이 무너짐. 다시 작은 나라 이해가 규칙에 들어갔다.
세온이 루멘 경계표준위원으로 일하던 시기, 그에게 황궁 표창을 주자는 제안이 있었다. 마르엔 사고 유족에서 국제표준 전문가로 성장했다는 이유. 그가 거부했다.
“표준 만든 사람이 저 혼자도 아닙니다.”
표창은 공동기술팀 전체로 바뀌었다. 세온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날 베르단에서 현장점검 일정이 있었기 때문.
그는 베르단 국경항에서 라코 민 후임자와 비콘 하나를 직접 열어봤다. 안쪽 부품은 네리안제. 센서는 베르단. 통신모듈은 제국. 루멘 표준소프트웨어. 어느 한 나라 물건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이게 고장 나면 누구 탓입니까?”
젊은 기술자가 농담했다. 세온이 대답했다. “유지보수팀 탓이죠.”
그게 기술자의 정답이었다.
경계갱신 6시간 표준이 생긴 뒤에도 긴급변경은 즉시통보 원칙이 남았다. 실제 전쟁훈련 때문에 베르단이 임시통제구역을 설정한 사건에서 제국 민간선에 90초 만에 경고가 갔다. 선박은 방향을 돌렸다. 뉴스도 안 됐다.
◆마르엔 사고 당시라면 큰 사건이 됐을 상황. 이제는 항법로그 한 줄.
[임시통제구역 확인. 우회.]
그 정도.
세온이 은퇴한 뒤에도 표준은 더 빨라졌다. 6시간. 2시간. 30분. 기술이 바뀔 때마다 법도 수정. 언젠가는 거의 실시간.
그 과정에서 누구도 7개월 지연을 다시 경험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같은 종류의 실수는 점점 하기 어려워졌다.
경계표준 위원회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논쟁은 ‘얼마나 빨리 갱신할 수 있는가’보다 ‘누가 마지막 확인을 하는가’였다. 전면자동화하면 빠르다. 사람 검토를 넣으면 늦다. 루멘 일부 국가는 자동. 베르단은 이중검증. 제국은 위험등급별.
결국 단일방식은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최종결과에 책임주체가 반드시 남도록 했다. 자동이면 시스템운영기관. 사람이면 승인자. 누군가 결정했다는 기록.
세온은 이 원칙을 특히 지지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이 그랬다’고 끝내면 아무것도 못 고칩니다.”
회의록에 남음.
수십 년 뒤 실제 자동갱신 오류가 났을 때 담당기관이 책임지고 알고리즘을 수정했다. 아무도 ‘기계가 잘못했다’는 말만 하지는 못했다.
◆표준위원회가 끝난 뒤 세온은 한동안 복도에 남아 새 경계갱신 속도를 확인했다. 6시간. 예전 7개월. 숫자는 엄청나게 줄었지만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옆의 젊은 기술자가 물었다. “더 줄이고 싶습니까?”
“언젠가는.”
“몇 분까지?”
세온이 웃었다. “문제가 안 되는 만큼.”
정답이 아니라 목표였다. 세온은 다음 회의에서 갱신속도보다 오류율 자료를 먼저 요구했다. 빠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회의는 다시 길어졌다. 다음 갱신표준은 속도 2시간, 오류율 허용치 0.001퍼센트로 잡혔다. 이번에는 누구도 7개월을 떠올려 설명하지 않았다. 회의는 예정시간을 넘겼다.
◆국경비콘 사업은 나중에 민간항공까지 내려왔다.
고위험 탐사선만 쓰던 경계경고가 상선·여객선 항법화면에도 기본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승객은 그 기능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용히 작동하는 안전장치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
승객에게는 경계선보다 도착시간이 중요했다. 시스템은 화면 뒤에서 알아서 움직였다.
비콘망 장애가 일어나도 이제 민간선은 경계 자체를 의심하기보다 우회경로부터 찾았다. 위험이 특별사건에서 일상운영 문제로 바뀐 것이다.
그 변화는 뉴스가 되지 않았다.
그게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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