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76화 — 돌아온 선박

별의 제국 · 176 / 290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마르엔 사건 뒤 11년. 베르단 국경항에 남아 있던 4호선이 제국으로 돌아왔다. 사건증거물로 묶여 있던 선박이었다. 냉각계, 격벽, 화재구역, 베르단 임시연결기. 조사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못했다. 회사가 축소회생에 들어가면서 소유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가 있었다. 채권단은 팔고 싶어 했다. 유족은 의견이 갈렸다. 폐기하자. 남기자. 다시 운항하지는 말자. 정부가 정할 일은 아니었다. 민간자산이었다.

결국 구매자는 비영리 탐사안전교육기관이 됐다. 상업관광 금지. 화재구역 보존. 나머지는 훈련시설로 전환. 이 조건으로.

첫 교육생은 200명이었다. 유리벽 너머로 검게 탄 냉각배관이 보였다. 교관은 사고설명보다 시뮬레이션부터 돌렸다. 희귀자원 신호. 경쟁 탐사선 14분 뒤 도착. 현장경계경고. 공개지도에는 아직 중립구역. 학생들이 선택. 회항. 정지 후 확인. 계속 진입.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도 18퍼센트가 계속 진입을 골랐다. 교관들이 놀랐다.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가상훈련이니까.”

“경쟁사에 뺏기면 손해입니다.”

“경고가 틀릴 수도 있잖아요.”

테론 바이스가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훈련방식을 바꿨다. 경계침범 뒤 사고확률을 단순 점수감점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가상승조원 부상·사망. 탐사면허 정지. 보험료 상승. 회사주가. 유족보상. 다 연결. 두 번째 훈련. 무시율 4퍼센트. 0은 아니었다. 교관은 0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0은 아닐 테니까.

4호선에서 훈련받은 젊은 함장 하나가 몇 년 뒤 실제 경계경고를 받았다. 희귀자원 후보. 경쟁사 탐사선 11분 뒤. 그는 정지했다. 경고를 확인하는 동안 경쟁사가 먼저 자원을 등록했다. 회사 손실. 본토 투자자 불만. 이사회는 함장을 징계하지 않았다. 규정대로 했기 때문. 그게 더 중요했다. 안전제도는 결과가 좋았을 때만 사람을 보호하면 오래 못 간다.

다른 회사에서는 반대사례가 나왔다. 함장이 경계경고 때문에 정지했더니 이사회 임원 하나가 비공식 통신으로 말했다. “다음엔 현장판단을 좀 더 공격적으로 하십시오.”

보험감사에서 기록이 걸렸다. 회사 벌금. 해당 임원 면직. 투자자들은 과하다고 했고 보험사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시장도 계속 같은 규칙을 시험했다.

4호선 화재구역은 교육생 출입금지였다. 유리벽 너머로만 볼 수 있었다. 일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유족단체가 반대했고 교육기관은 촬영을 금지했다. 몇십 년이 지나면서 원래 배관은 부식되기 시작했다. 보존하려면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유족 중에는 “손대지 마라”는 사람도 있었고 기술진은 그대로 두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했다. 결국 안전한 부분만 원형보존. 나머지는 제거. 기억도 정비가 필요했다.

메린 사아의 아이 둘 중 하나는 항법안전기사가 됐다. 세온 사아. 아버지와 같은 탐사직은 아니었지만, 경계·통신·항법망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가 4호선을 처음 방문한 건 성인이 된 뒤였다. 교관이 아버지가 일했던 냉각구역을 설명하려 했다. 세온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는 유리벽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날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몇 년 뒤 교육기관 기술고문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때문에 이 일을 합니까?”

기자가 다시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 뒤 더 묻지 못했다.

베르단 기술자 라코 민도 퇴직 전에 4호선을 방문했다. 세온과 처음 만났다. 라코가 말했다. “아버님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세온은 잠깐 시선을 내렸다.

“당신이 결정한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도 모든 경고를 잡지는 못합니다.”

둘 사이에는 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 뒤 냉각계 규격 얘기를 두 시간 했다. 기술자들이었다.

4호선 교육생 누적이 수백만을 넘긴 뒤에도 사고기념관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공식 명칭은 그냥 훈련선 4호. 매년 사고일에는 63명의 이름을 한 번 읽었다. 학생들 중 일부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세온이 한 번 특별강의를 맡았다. 첫 슬라이드는 냉각계 도면. 두 번째는 경계갱신 지연표.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함장이 잘못했습니까?”

“예.”

“베르단도?”

“예.”

“제국도?”

세온은 잠깐 생각했다.

“판결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럼 누구 탓입니까?”

세온은 다음 도면을 띄웠다.

“이 수업은 냉각계 수업입니다.”

교실에서 몇 명이 웃었다. 그날 교육은 예정시간보다 12분 늦게 끝났다.

4호선이 다시 우주로 나간 건 사고 뒤 46년째였다. 항해가 아니라 견인시험. 자력추진은 금지된 채, 새 비상도킹 규격을 검증하기 위해 항구 바깥까지 나갔다. 베르단제 냉각연결기. 제국제. 루멘 표준. 세 종류가 차례로 연결됐다. 전부 정상. 항구로 돌아올 때 누군가 박수를 쳤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기록에 안 남았다. 4호선은 다시 교육선 선착장에 묶였다.

훈련선 4호를 둘러싼 가장 오래된 논쟁은 “원형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였다. 화재구역을 그대로 두면 교육적 의미는 컸지만, 오래된 배관과 격벽은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위험물이 됐다. 기술진은 20년 주기로 대규모 보존공사를 요구했고, 유족단체 일부는 그런 공사 자체가 사고흔적을 지우는 일이라고 봤다. 결국 원칙을 하나 만들었다. 사고 당시 상태를 연기하지 않는다. 실제로 위험한 부품은 교체하고, 교체사실과 원래 구조를 기록으로 남긴다.

“불탄 배관이 가짜가 되면 무슨 의미입니까?”

한 유족이 물었다. 교육기관장은 답했다. “학생이 다치면 더 이상 교육시설이 아닙니다.”

그 말 뒤로 논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그래도 공사는 진행됐다.

훈련과정 자체도 세대에 따라 달라졌다. 초기 교육생들은 마르엔 사건을 거의 모두 기억했다. 방송을 봤고 판결도 알았다. 30년 뒤 들어온 학생들은 사고가 태어나기 전 역사였다. 교관이 “마르엔 사건”이라고 말하면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래서 사건설명 시간을 늘리자는 제안이 나왔다. 세온은 반대했다.

“역사강의가 너무 길어지면 학생들이 사고구조보다 감정부터 외웁니다.”

대신 첫날 20분. 경계경고. 성과급. 영사접근. 냉각계. 그 뒤 바로 기술훈련.

한 학생이 강의평가에 썼다.

[63명 이름을 왜 외우지 않습니까.]

세온은 다음 학기에 답변을 넣었다.

[이름은 추모시간에 읽는다. 수업에서는 왜 장비와 판단이 실패했는지 배운다.]

유족단체도 그 방식을 받아들였다. 모든 기억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법으로 다뤄질 필요는 없었다.

교육기관에는 베르단 학생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민감했다. 일부 제국 학생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번엔 연결기 압력 제대로 맞추세요.”

교관이 바로 제지했다. 개인에게 정부사고 책임을 씌우지 말 것. 베르단 학생도 불편한 표정으로 넘어갔다. 몇 년 지나면 그런 농담 자체가 줄었다.

베르단 교육기관과 공동훈련도 시작됐다. 시나리오를 바꿔가며 같은 사고를 양쪽 역할로 수행했다. 제국 학생은 억류국 보안책임자 역할을 맡았고, 베르단 학생은 외국 기술접근을 요구하는 영사관 역할을 맡았다. 입장이 바뀌면 쉬운 판단도 달라졌다. 한 제국 학생이 훈련 후 말했다.

“증거보존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보는지 조금 알겠습니다.”

베르단 학생은 반대로 말했다. “사람이 안 죽는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그랬겠죠.”

둘 다 기록에 남았다.

4호선은 기술적으로는 구형이 됐다. 새 탐사선은 냉각계도, 항법망도, 경계경고 인터페이스도 완전히 달라졌다. 교육기관 내부에서 폐선론이 나왔다.

“현대선박 훈련에 도움이 적습니다.”

세온도 일부 동의했다. 그렇다고 없애지는 않았다. 기술훈련은 새 모듈로 옮기고, 4호선은 판단·절차 훈련용으로만 남겼다.

마지막으로 자력추진기를 해체한 날 교육생 몇 명이 아쉬워했다.

“이제 진짜 배가 아니네요.”

정비팀장이 말했다. “원래도 다시 탐사 나갈 배는 아니었습니다.”

그 말이 맞았다. 4호선의 역할은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다른 배가 선을 넘기 전에 멈추게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세온 사아는 4호선 교육기관에서 70년 가까이 일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틀라스인보다 짧은 로하르계 수명이라 그의 외모에는 세월이 분명했다. 마지막 강의에서도 아버지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질문했다.

“이 배를 계속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온은 유리벽 뒤 화재구역을 봤다.

“제가 정할 일은 아닙니다.”

“왜요?”

“다음 세대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없애도 됩니다.”

몇몇 학생이 놀랐다. 기억도 강제로 영구화할 수는 없었다.

세온이 퇴직한 뒤 4호선 운영위에는 젊은 교관들이 들어왔다. 첫 회의 안건은 추모가 아니었다. 냉각비 절감. 교육용 시뮬레이터 교체. 주차선박 보험. 평범했다. 회의가 끝나고 마지막 사람이 불을 끄기 전 유리벽 뒤 검은 배관이 잠깐 반사됐다.

훈련선 운영위는 세온 퇴직 뒤 처음으로 4호선을 다른 항구로 옮길지 논의했다. 현재 항구 유지비가 비쌌다. 외곽 교육기지로 옮기면 절반. 유족단체는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반대. 학생은 비용절감 찬성. 결국 그대로. 왜. 비용만 보면 이전이 맞았지만, 수백만 명이 이미 이 항구와 4호선을 하나의 교육체계로 사용 중이었다. 옮기는 비용까지 계산하면 이익이 작았다. 결정은 감정도, 추모도 아니라 그냥 숫자와 사용량으로 끝났다.

몇십 년이 지나면 어떤 기억은 그런 식으로 일상시설이 된다.

4호선 유지예산은 결국 매년 자동배정이 아니라 20년 단위 재심사로 바뀌었다. 필요 없어진 순간까지 억지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 첫 재심사. 유지. 둘째. 유지. 셋째. 교육용 가치 여전히 있음. 유지.

언젠가 없어질 수도 있다. 운영위는 그 가능성까지 문서에 적었다. 사고를 기억한다는 것과 선박 자체를 영원히 보존한다는 건 같은 일이 아니었다.

훈련선 4호는 어느 시점부터 신입탐사자의 필수과정이 아니게 됐다.

새 세대 선박은 다른 시스템을 썼고, 모든 교육생을 굳이 옛 배에 보낼 이유도 없었다.

대신 고위험 경계탐사 자격과정에서만 선택교육으로 남았다.

학생 수는 줄었다.

교육효과는 오히려 높아졌다.

선택과정으로 바뀐 뒤 훈련선 유지비도 줄었다. 오래 남기기 위해서라도 덜 쓰는 편이 나았다.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