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62화 — 두 장의 제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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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리안 협약국은 다섯 공화국의 느슨한 연합이었다.
26개 항성계, 인구 약 760억, 기술 VI+. 초광속항법과 행성간 산업은 충분했지만 대규모 함대와 고급 중력공학은 없었다. 평균수명은 약 190년.
아틀라스 기준으로 짧았다.
네리안 정부가 양국에 보낸 초청문은 노골적이었다.
[양측이 제공 가능한 장기안보·통상·정치협력 조건을 동일 형식으로 제출해주기 바란다.]
비교견적.
마리안이 웃었다.
“국가가 입찰을 받는군요.”
나쁜 방식은 아니었다.
◆아틀라스 제안서는 보호국 모델이었다.
외교·국방의 전략권을 제국에 위임하고, 내정·교육·문화·지역세금 자치를 유지한다. 제국시장 접근, 보호국 기준 하원대표, 개인별 시민권 경로, 낮은 초기 방위분담금.
아르칸트 제안은 준회원 연방형.
공동방위와 연방관세권 일부, 중앙법원 접근, 연방의회 대표, 전시군 통합, 외교 일부 공동조정. 정식가입은 일정기간 뒤 재검토.
어느 쪽이 무조건 낫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제국 보호국은 자치가 넓고 중앙대표가 적다.
아르칸트 준회원은 더 깊이 묶이지만 중앙대표권도 크다.
그리고 세 번째 선택.
둘 다 안 한다.
◆네리안 협약회의는 두 제안서를 전 국민망에 공개했다.
정치가 갈라졌다.
친아틀라스.
친아르칸트.
독립유지.
중립상업.
공화국마다 비율도 달랐다.
본토 언론은 처음부터 ‘누가 이길까’로 다뤘다.
마리안이 불쾌해했다.
“네리안 선거인데 왜 우리 경기처럼 보도합니까.”
세라는 건조하게 답했다.
“사람들이 스포츠처럼 보는 거죠.”
황실이 언론제목까지 바꿀 수는 없다.
◆네리안 총조정관 리에스 바른은 양쪽 대표를 같은 회의장에 불렀다.
나이 84, 네리안 기준 중견.
첫 문장부터 직설적이었다.
“우리는 누구의 완충국이 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했다.
“그럼 되지 마.”
리에스가 잠깐 나를 봤다.
“말은 쉽군요.”
“선택은 자네들이 하잖아.”
“선택 이후의 결과는 양국이 만듭니다.”
맞았다.
◆네리안은 세부조건을 파고들었다.
“보호국이 된 뒤 정식령 전환을 압박할 수 있습니까?”
“자동전환 없음.”
“100년 뒤에도?”
“조약 유지하면.”
“황제가 바뀌면?”
여기서는 잠깐 멈췄다.
“조약은 황제 개인약속이 아니라 제국법으로 묶는다.”
문서화.
수용.
아르칸트에도 같은 질문.
“준회원 기간 뒤 정회원 전환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연방이 탈퇴를 막을 수 있습니까?”
“안보위기 중에는 유예할 수 있습니다.”
네리안 쪽에서 웅성거림.
그 조항은 아르칸트에 불리했다.
◆제국도 약점이 분명했다.
네리안 의원이 물었다.
“외교와 방위를 넘기는데 중앙대표는 왜 3분의 1 이하입니까?”
마리안이 답했다.
“내정자치가 넓기 때문입니다.”
“중앙에서 덜 말하고 지방에서 더 말한다?”
“그렇습니다.”
아르칸트 대표는 반대로 설명했다.
“연방정책에 더 많이 묶이고, 그만큼 더 많이 대표됩니다.”
두 체제 차이가 선명해졌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르칸트 초안의 준회원 안정화기간은 50년.
네리안 평균수명 190년.
젊은 의원이 말했다.
“50년이면 제 정치경력 대부분입니다.”
사일은 회의 중 바로 수정했다.
“20년으로 줄이겠습니다.”
마리안이 나를 봤다.
“폐하보다 빨리 배우는군요.”
“들리거든.”
제국 초안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기반시설 전환기간 30년.
산업부가 본토 기준으로 만든 숫자.
“왜 30년?”
차관이 설명하려 하자 잘랐다.
“10년 단위로 나눠.”
리에스 바른이 말했다.
“둘 다 비슷한 실수를 하는군요.”
사일이 웃었다.
“적어도 혼자는 아니군요.”
◆제안서 제출 8개월 뒤 여론은 팽팽했다.
아틀라스 36.
아르칸트 31.
독립유지 29.
기타.
황실은 선거운동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르칸트 정부도 공식중립.
문제는 민간이었다.
헤르메스 네리안 자회사가 친아틀라스 시민단체에 ‘지역개발 연구비’를 후원한 기록이 나왔다. 금액은 적지 않았다.
네리안 국내법상 회색지대.
양국이 만든 정치개입 제한원칙에는 어긋났다.
사라 엔은 본사 승인이 아니라고 했다.
현지임원 독단.
“회사 본사 지시는 아니었습니다.”
“자회사도 자네 회사잖아.”
“네리안 법 위반은 아닙니다.”
“우리 합의 위반이잖아.”
자회사 후원중단.
현지임원 해임.
제국 공공계약 가점 5년 정지.
◆아르칸트 언론은 당연히 크게 다뤘다.
[아틀라스 기업의 정치개입.]
본토에서는 ‘왜 우리 회사만 처벌하냐’는 반응.
며칠 뒤 아르칸트 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연방계 은행이 친가입 정당의 광고대출을 시장금리보다 낮게 제공했다.
아르칸트 정부가 조사.
대출 취소.
은행 벌금.
리에스 바른은 기자회견에서 둘 다 비판했다.
“강대국들은 우리 선거를 아주 사랑하는군요.”
웃음이 나왔다.
다음 말은 웃기지 않았다.
“우리는 양국 정부가 자기 기업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지 보고 있습니다.”
그 문장이 두 제안서보다 오래 남았다.
◆네리안 다섯 공화국은 같은 제안서를 전혀 다르게 읽었다.
제1공화국은 금융·통상 중심이라 독립유지를 선호했다. 양쪽 시장을 다 쓰는 편이 돈이 된다는 계산.
제2공화국은 국경이 불안정했고 아틀라스 보호안 지지가 높았다.
제3공화국은 조선업 때문에 아르칸트 연방규격에 관심.
제4공화국은 전통적으로 중앙정부 자체를 싫어했다.
제5공화국은 어느 쪽도 확실히 우세하지 않았다.
‘네리안 여론’이라는 하나의 숫자 뒤에 다섯 정치가 있었다.
◆마리안은 현장방문을 권했다.
황제가 특정 공화국 선거집회에 가는 건 피하고, 항구·대학·군기지만 비정치 일정으로.
첫 방문지는 제2공화국 국경함대 기지였다.
함대 규모는 작았다. 오래된 순양함과 자체개조 구축함. 제국 기준으로는 구형이지만 정비상태는 좋았다.
네리안 제독이 말했다.
“우리는 보호를 원하지만 군대를 없애고 싶진 않습니다.”
보호국이 되더라도 지역방위군 유지 가능.
다만 전략지휘는 제국과 연동.
그 설명을 듣고 제독은 물었다.
“전쟁이 나면 제 명령보다 제국제독 명령이 위입니까?”
“전략전역이면.”
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아틀라스 보호의 실제 가격.
◆제1공화국에서는 반대로 상인들이 물었다.
“보호국이 되면 제국기업이 우리 시장을 다 사지 않습니까?”
마리안.
“경쟁법은 네리안 내정입니다.”
“제국 기업이 압력을 넣으면?”
“법으로 막으십시오.”
“황실이 편들지 않고?”
“계약위반 아니면.”
상인들은 그 대답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믿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아르칸트 대표단도 같은 시기에 움직였다.
연방가입의 장점만 보여주려 하지 않고 기존 준회원국 하나의 사례를 공개했다.
연방보조금.
중앙시장.
대표권.
그 대신.
관세독립 일부 상실.
연방법원 판결 우선.
전시군 통합.
네리안 언론이 자료를 비교했다.
처음으로 선거방송이 꽤 수준 높아졌다.
◆문제는 광고였다.
아틀라스 친화단체는 제국 도시와 장수의학, 거대시장 영상을 보여줬다.
아르칸트 진영은 연방의회에 네리안 대표가 앉는 그림.
독립파는 두 영상을 나란히 놓고 말했다.
[둘 다 자기 좋은 부분만 보여준다.]
정확.
◆황실은 공식 홍보영상을 만들지 않았다.
본토 관광청과 기업광고는 막지 않았다.
그 경계도 애매했다.
제국 항공사가 “보호국이 되면 아우렐리움이 가까워집니다”라는 광고를 냈다가 상무원에서 수정명령을 받았다.
보호국이 되어도 물리거리가 줄지는 않는다.
항공사는 ‘더 쉽게 연결됩니다’로 바꿨다.
◆아르칸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방계 대학이 “준회원 시민은 모든 연방대학 무상교육”이라고 광고.
실제로는 소득·성적 조건.
정정.
선거는 국가정책뿐 아니라 광고문구 전쟁이 됐다.
◆시간조항을 고친 뒤 양국은 모든 장기계약서에 네리안 시간환산표를 붙였다.
제국 초안의 ‘30년 산업전환’은 10년 단위 검토 세 번.
아르칸트 50년 안정화는 20년 기본+10년 재검토.
리에스 정부는 양쪽을 보며 말했다.
“강대국 둘이 와서 우리 수명부터 배워가는군요.”
사일이 답했다.
“좋은 수업료를 내고 있습니다.”
◆네리안 대학에서 학생토론도 열렸다.
한 학생은 보호국을 지지했다.
“우리가 제국의 3분의 1 대표만 받아도 지금보다 외부정치 영향력은 커집니다.”
다른 학생.
“대신 외교권을 잃습니다.”
“지금 우리 외교가 얼마나 강합니까?”
“약하다고 팔아야 합니까?”
논쟁.
◆황제에게 질문기회가 한 번 왔다.
학생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우리가 약해서 보호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약한 건 맞아.”
강당이 조용.
“근데 그게 보호국 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학생이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제안했습니까?”
“우리한테도 이익이고, 자네들한테도 괜찮은 거래라고 봤으니까.”
마리안은 옆에서 표정관리.
학생들은 오히려 웃었다.
◆나중에 본토 언론은 ‘네리안은 약하다’는 문장만 잘라 제목으로 썼다.
네리안 언론도.
황실 대변인이 전체영상을 공개.
며칠 시끄럽다가 끝.
외교에서 솔직함도 편집을 만나면 다른 물건이 된다.
◆헤르메스 정치후원 사건이 터졌을 때 여론이 크게 움직인 이유도 이미 이런 불신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정부가 아무리 중립이라고 말해도 기업과 시민단체가 움직이면 외부에서는 같은 제국으로 보인다.
사라 엔은 내부감사에서 현지 자회사에 정치위험 교육이 거의 없었다는 걸 인정했다.
그 뒤 헤르메스는 해외정치활동 금지규정을 본사 수준으로 강화했다.
본사 지시가 아니었다는 변명이 다음번엔 더 어려워졌다.
◆아르칸트 은행도 비슷한 개혁.
네리안 선거가 양쪽 기업규정까지 바꾼 셈.
리에스 바른은 기자에게 말했다.
“아직 어느 나라를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두 나라 법을 고쳤습니다.”
그날 네리안 여론조사에서 독립유지 항목이 처음 30퍼센트를 넘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