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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61화 — 같은 지도를 본 두 나라

별의 제국 · 161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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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 렌타는 생각보다 작았다.

아르칸트 연방의장이라는 직함과 980개 항성계라는 숫자를 먼저 보고 있으면 사람도 거대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실제로 접촉실에 들어온 그는 나보다 머리 하나쯤 작았고, 마른 체형에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피부는 밝은 청회색, 눈동자는 세로로 길었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악수문화가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루멘보다 편했다.

“아틀라스 황제.”

“사일 렌타.”

마리안과 아르칸트 외교조정관이 양옆에 앉았다. 군사대표와 경제대표는 한 줄 뒤. 우리 쪽에서는 대함대사령부 대표가 참석했다. 첫 만남부터 서로 전쟁준비를 하는 모습으로 보일 필요는 없었다.

첫 의제는 미등록권역이었다.

루멘 남동쪽의 넓은 공간에서 제국 민간탐사선과 아르칸트 연방탐사대가 점점 자주 마주치고 있었다. 아직 지도에 빈 곳도 많았고 자체 초광속 문명도 여럿 있었다.

사일이 먼저 말했다.

“우리는 그 지역을 선으로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다면 상호비간섭권역을 설정할 이유도 없겠군요.”

마리안이 바로 말을 받았다.

“비간섭과 정보공유는 별개입니다. 어느 쪽이 한 정치단위와 군사보호·가입·방위조약 협상에 들어가면 최소한 통보는 필요합니다.”

아르칸트 외교조정관이 물었다.

“허가를 구하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사일을 봤다.

“자네들도 우리한테 가입 허락받을 생각 없잖아.”

사일이 아주 조금 웃었다.

“그 점은 다행입니다.”

아르칸트가 걱정하는 건 아틀라스가 작은 국가들을 보호국으로 빠르게 묶은 뒤 연방 접근을 막는 일이었다. 제국이 걱정하는 건 반대였다. 아르칸트가 먼저 연방가입을 제안해 정치·군사체계를 통합해버리면 뒤늦게 나타난 아틀라스가 그 지역을 자기 영향권으로 바꿀 이유가 줄어든다.

둘 다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미등록국은 시장이자 항로이자 완충지이자 미래의 동맹.

문제는 그 국가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였다.

사일이 문서를 열었다.

“과거에 우리 연방은 경쟁적 가입제안 때문에 세 번 전쟁했습니다. 우리가 한쪽 국가에 가입을 제안했고 다른 강대국이 보호를 제안했습니다. 두 외부세력이 직접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지파벌이 외부지원을 끌어오면서 내전이 시작됐습니다.”

마리안의 손이 멈췄다.

이 부분이 더 위험했다.

제국과 아르칸트가 전쟁을 피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작은 나라 내부에서 ‘아틀라스파’와 ‘아르칸트파’가 싸울 수 있다.

첫 초안에는 서로 상대편 정당·정치조직에 자금을 대지 않는 조항이 들어갔다.

그런데 사일이 지적했다.

“기업은 어떻게 합니까?”

제국기업, 아르칸트 기업, 현지은행, 재단, 언론. 정부가 직접 돈을 안 줘도 우회로는 많다.

결국 조항이 길어졌다.

외국정부·군·국영기업의 직접 정치후원 금지. 전략계약을 가진 민간기업의 정당후원 제한. 비영리·교육지원은 공개. 언론소유도 공개.

완벽한 장벽은 아니었다.

우회할 사람은 생길 것이다.

그래도 선은 필요했다.

두 번째 쟁점은 군사였다.

어느 미등록국이 실제 공격을 받아 한쪽에 구조나 군사지원을 요청하면 상대에게 사전통보할 것인가.

“전투 중에?”

내가 물었다.

사일도 곤란한 표정이었다.

“최대한 신속히.”

“그건 나중에 알려도 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폐하께서는 공격받는 국가를 구조하면서 우리 허락을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

“저도 아닙니다.”

구조·자위·즉각적 대량학살 방지는 사전허가 대상이 아니되 24시간 안에 통보. 지속주둔과 장기방위조약은 별도협의.

아르칸트 군사대표가 말했다.

“24시간이면 귀국은 전쟁 하나를 끝낼 수 있지 않습니까.”

대함대사령부 대표가 대꾸했다.

“상대에 따라.”

이전 하위문명과 달리 여기서는 그 말에 실제 의미가 있었다.

점심 뒤 사일과 단독시간이 잡혔다.

통역과 기록만 남았다.

사일은 공개회의보다 먼저 본론을 꺼냈다.

“우리는 귀국의 확장방식을 우려합니다.”

“자네들도 확장하잖아.”

“그렇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지?”

“속도.”

그는 제국 지난 수십 년의 지도를 띄웠다. 보호국, 정식령 전환, 민간개척, 남방연합권, 루멘 등록. 색이 빠르게 늘었다.

“귀국 황제는 수백 년 같은 정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연방의장은 24년 임기입니다. 주변국이 귀국과 장기조약을 맺으면, 우리 정부가 몇 번 바뀌는 동안 같은 협상상대가 그대로 남습니다.”

카르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그래서 나더러 덜 확장하라고?”

“아닙니다.”

사일은 예상보다 솔직했다.

“우리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물었다.

“우릴 왜 만나자고 했지. 진짜 이유.”

사일은 잠깐 침묵했다.

“미등록권역에서 곧 같은 나라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가 좌표를 하나 열었다.

제국 탐사망 바깥쪽, 아르칸트 상업망 안쪽. 26개 항성계. 인구 약 760억. 기술 VI+.

[네리안 협약국.]

우리도 이름을 알고 있었다. 민간탐사기업을 통해 통상요청이 들어온 상태.

아르칸트도.

“저들이 양쪽 모두에게 접근했습니다.”

“보호를 원하는 건가?”

“아직은 아닙니다.”

“그럼.”

“비교하고 있습니다.”

네리안은 제국과 아르칸트 사이에 끼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였다.

선택지가 있다는 뜻.

사일은 말했다.

“저 국가를 두고 우리가 첫 시험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규칙이 살아남는지.”

단독회담은 30분 예정이었다.

47분 걸렸다.

밖으로 나오자 마리안이 시간을 확인했다.

“예정보다 길었습니다.”

“얘기 좀 했어.”

“잘 됐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네리안 좌표를 그녀에게 보냈다.

마리안은 화면을 보고 바로 이해했다.

다음 회담 일정은 그 자리에서 잡혔다.

공개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는 가장 먼저 ‘영향권’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아르칸트 기자가 물었다.

“양국이 남동 미등록권역을 사실상 공동관리하는 것 아닙니까?”

사일은 바로 부정했다.

“관리할 권한이 없습니다.”

본토 기자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다른 표현으로 던졌다.

“그럼 제국은 기존 개척계획을 양보합니까?”

“아니.”

“아르칸트와 충돌하면요?”

“그때 협상하지.”

사람들은 더 선명한 답을 원했다.

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미리 선을 긋고, 지도에 색을 칠해두면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그 선 안에 이미 다른 국가와 사람들이 산다는 것.

공동성명 초안에서 가장 오래 싸운 단어도 ‘영향’이었다.

아르칸트 초안.

[상호 전략영향권의 중첩을 방지한다.]

마리안이 지웠다.

“이 문구 자체가 우리가 영향권을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아르칸트 외교조정관은 대안을 냈다.

[전략이해의 중첩.]

이번에는 제국 법무팀이 반대.

너무 모호.

결국 남은 문장은 재미없었다.

[제3정치단위와 관련된 보호·가입·주둔 협상은 상호통보한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표현.

그래서 법률문장으로는 괜찮았다.

사일과의 단독회담 뒤 양국은 네리안에 같은 날 연락하기로 했다.

누가 먼저 접촉해 유리한 그림을 만들지 않도록.

그 결정 하나 때문에 양국 외교원이 시간대까지 맞췄다.

네리안 표준시 오전 10시.

두 메시지가 17초 차이로 도착했다.

네리안 언론은 그 17초를 가지고 하루 동안 떠들었다.

[아틀라스가 먼저.]

[통신지연 고려하면 아르칸트가 먼저.]

리에스 바른 정부는 둘 다 같은 시각 접수로 기록했다.

현명했다.

네리안에서 첫 답이 왔을 때 나는 황궁이 아니라 황제함에 있었다.

[양국의 관심을 환영한다. 그러나 협약국의 정치적 선택은 협약국 국민이 결정한다.]

당연한 문장.

그런데 외교원은 안도했다.

적어도 저쪽도 우리가 무슨 경쟁을 시작했는지 알고 있었다.

아르칸트와의 회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일은 본국 연방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고, 나는 제국 상원과 하원에 협상원칙을 설명해야 했다.

황제는 외교 최종권을 갖지만, 기업정치후원 제한이나 해외군사정보 통보 같은 조항은 국내법과 예산에 닿는다.

상원에서는 첫 질문이 군사였다.

“24시간 통보가 너무 짧지 않습니까?”

라울 테르미온이 오히려 답했다.

“더 길면 통보가 아니라 역사기록입니다.”

하원에서는 반대 방향.

“왜 외국에 우리 군사행동을 알려야 합니까?”

마리안.

“미등록국을 두고 서로 전쟁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르칸트가 안 지키면?”

“그때 우리도 재검토합니다.”

황제가 서명하면 끝나는 협정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수십 조직이 자기 몫을 확인했다.

정보원은 정치자금 우회경로.

재무원은 기업후원 규정.

군은 통보범위.

개척원은 민간탐사.

법무원은 제3국 권리.

그중 어느 하나라도 너무 넓으면 협정이 제국 스스로의 손을 묶을 수 있었다.

아르칸트 쪽도 비슷했다.

사일은 자기 연방의회에서 “아틀라스에게 확장 허가를 받는 조약”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가 답한 문장이 공개됐다.

[아틀라스도 우리 허가를 받지 않는다.]

정치적으론 그 말이 제일 잘 먹혔다.

양국 군사대표들이 별도회의를 열었을 때 분위기는 외교관보다 더 차가웠다.

제국 측이 물었다.

“귀국이 어떤 국가에 연방가입을 제안하면 군사고문단도 같이 들어갑니까?”

“협상단계에는 제한적입니다.”

“제한적이 몇 명입니까?”

“상황에 따라.”

우리 답도 다르지 않았다.

“보호국 협상 중 제국군이 들어갑니까?”

“위협이 있으면.”

“얼마나?”

“상황에 따라.”

군인끼리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 20분 걸렸다.

사일과 두 번째 비공개 만남에서는 그가 더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폐하께서는 보호국이 되는 걸 거부한 국가를 싫어합니까?”

“왜 싫어해.”

“귀국 기록을 보면 편입된 국가가 많습니다.”

“거부한 곳도 있잖아.”

세레프.

카론.

바르케시.

칼드라.

각자 방식으로 독립.

사일은 목록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네리안이 거부해도 관계를 유지한다?”

“돈 되거나 전략적으로 쓸모 있으면.”

그가 웃었다.

“도덕적 표현은 없군요.”

“자네는 있어?”

“공식문서에는 많습니다.”

이번엔 내가 웃었다.

회담 마지막 날 양국 실무진은 공동원칙 14개에 합의했다.

정식조약이 아니라 향후 협상기준.

그중 13개는 예상범위였다.

마지막 하나는 네리안 정부가 요구해서 들어갔다.

[제3정치단위에 관한 양국 협의내용은 해당 정치단위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다.]

우리끼리 아무리 이야기해도 네리안 땅을 둘로 나눌 수 없다는 문장.

리에스 바른이 직접 요구했다.

양국 모두 수용.

협정문을 닫은 뒤 사일이 말했다.

“이제 실제 사람이 있는 곳에 가보죠.”

네리안.

그 말에 마리안이 다음 일정을 열었다.

황제함은 아우렐리움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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