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59화 — 회비를 내는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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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멘 등록 10년째, 제국에 첫 정식 관리회비 고지서가 도착했다.
본토 언론은 제목부터 신났다.
[제국, 외국에 회비 낸다.]
[조공인가.]
재무원은 두 기사 모두 싫어했다.
◆루멘 고리망 유지비는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등록정치단위가 사용하는 경계센서, 통신우선순위, 분쟁중재 체계, 안전항로 자료 같은 공동서비스의 비용을 여러 방식으로 나누는 구조였다.
제국 몫은 생각보다 컸다.
재무장관이 숫자를 보고 말했다.
“우리 고리망 이용량은 낮습니다.”
마리안은 분담표를 넘겼다.
“규모기여분이 큽니다.”
“안 쓰는데 왜 규모 때문에 냅니까?”
그 질문은 상원에서도 똑같이 나왔다.
◆상원 150표 가운데 몇몇 의원은 탈퇴까지 언급했다.
“우리 항로망이 충분한데 외국망 회비를 왜 냅니까?”
반대편에서는 고리망 안전자료, 분쟁기록, 등록정치단위 접근권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해 가져왔다.
재무원이 처음으로 전체 손익을 계산했다.
탐사보험 절감.
충돌사고 감소.
중재비용 절약.
항로정보.
통상기회.
총합은 회비보다 약간 컸다.
약간.
압도적이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그럼 계산식부터 보자.”
루멘 조정회에 분담식 공개를 요구했다.
처음 답은 일부 공개.
핵심 가중치는 보안·내부행정 정보.
마리안이 거부했다.
“돈을 내는데 계산식을 모르고 낼 수는 없습니다.”
네마르-6은 자기 권한만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루멘 정치가 보였다.
조정대표 하나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문제.
등록국 조정회.
기능대표.
관리권역 예산기구.
여러 곳을 돌아야 했다.
◆제국만 불만인 것도 아니었다.
하디안 공화군.
에르시온 합의체.
작은 등록국 몇 곳.
각자 다른 이유로 공개를 원했다.
아틀라스가 먼저 목소리를 냈지만 금세 공동요구가 됐다.
3년 걸렸다.
◆공개된 계산식을 보니 오류가 있었다.
루멘 체계가 제국 보호국과 보호령 인구를 사실상 완전통합 인구처럼 계산하고 있었다. 외교·군사는 중앙에 있지만 행정·재정 자율이 큰 보호국까지 정식령과 같은 가중치를 받았다.
마리안이 로하르·엘사르 사례를 들고 설명했다.
루멘 쪽은 처음에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대외주권은 하나인데 내부통합도가 다르다.”
“맞습니다.”
“경계안전 위험은 인구규모에 비례한다.”
“행정비용과 이용량은 그렇지 않습니다.”
협상은 또 길어졌다.
결국 제국 분담금이 18퍼센트 내려갔다.
◆본토에서는 외교승리라고 떠들었다.
마리안은 기자회견에서 선을 그었다.
“계산오류를 수정한 겁니다.”
“18퍼센트면 큰 승리 아닙니까?”
“잘못 청구된 돈을 덜 내는 겁니다.”
그녀는 이런 때 체면을 팔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작은 등록국들이었다.
인구 80억짜리 국가 하나가 제국 상주대표부에 감사문을 보냈다. 자기들은 120년 동안 같은 계산식에 의문이 있었지만 검증할 인력과 자료가 부족했다고 했다.
레온 하르.
새로 부임한 제국 상주대표가 그 문서를 황궁에 보냈다.
[우리 요구가 다른 나라 회비도 낮췄습니다.]
본토 언론은 또 제국 영향력이라고 떠들었다.
나는 좋으면서도 조금 불편했다.
우리 기준이 남에게 유리한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니까.
◆몇 년 뒤 바로 반대사례가 나왔다.
제국이 버그 생체오염 위험 때문에 고리망 검역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작은 등록국들이 반대했다.
검역장비.
인력.
시간.
그들에게는 너무 비쌌다.
제국 입장에서는 버그가 실존하는 전략위협이지만, 어떤 등록국은 수백 년 동안 비슷한 생물을 본 적조차 없었다.
“우리 위험을 남한테 떠넘기는 셈 아닙니까?”
레온 하르가 외교원 회의에서 말했다.
맞았다.
◆전면검역안은 철회했다.
대신 위험지역 출발선과 특정 생물신호가 잡힌 함선만 강화검역.
바르케시의 버그자료를 루멘망에 공유해 위험도 기준을 만들었다.
몇 년 뒤 다른 등록국에서 유사한 생체오염이 발생했을 때 그 기준이 작동했다.
확산은 막혔다.
반대하던 국가들도 제국안을 전부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레온 하르는 루멘 조정회에서 점점 이름이 알려졌다.
첫달에는 실수도 했다.
하디안 안건에 찬성표를 약속했다가 본국 지침이 중립이라는 걸 뒤늦게 확인.
약속을 취소하자 하디안이 불쾌해했다.
마리안이 물었다.
“왜 약속했습니까?”
“관계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관계는 지킬 수 있는 약속으로 만드세요.”
그걸로 끝.
레온은 잘리지 않았다.
대신 같은 실수를 안 했다.
◆몇십 년 뒤 그는 황제보다 루멘 절차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됐다.
회의에서 내가 물었다.
“이건 그냥 네마르-6과 합의하면 안 되나?”
레온은 15분 동안 왜 안 되는지 설명했다.
나는 중간에 포기했다.
“자네가 해.”
그게 전문가였다.
◆회비 체계는 40년째 다시 문제 됐다.
제국이 독자 경계센서를 개발하면서 루멘 서비스를 덜 쓰게 됐다.
재무원은 이용량 감소만큼 분담금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루멘은 기본안전망 자체가 공동재라고 반박했다.
이번 협상은 레온이 주도했다.
결론.
회비 6퍼센트 인하.
대신 제국 센서데이터 일부를 공동망에 제공.
돈 대신 정보.
◆등록 30년이 넘어가자 회비 고지서는 뉴스가 되지 않았다.
상원도 큰 변동이 없으면 예산을 일괄심사했다.
처음에는 제국 자존심을 건드리던 외국 회비가 행정항목이 됐다.
그 무렵 루멘 등록국 하나가 제국 초광속 회랑을 이용하고 우리에게 통행료를 냈다.
본토 신문 하나가 제목을 뽑았다.
[루멘도 제국에 조공.]
외교원은 또 정정문을 냈다.
사람들은 돈이 국경을 넘으면 왜 그렇게 조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루멘 대학과 제국 대학의 첫 교환과정도 이 시기에 생겼다.
외교문제보다 기숙사 규칙이 더 어려웠다.
루멘의 분산개체 학생 하나가 방 세 개를 동시에 쓰겠다고 신청했다.
“하나의 개인입니다.”
대학은 3인실 요금을 청구했다.
분쟁.
결국 신체점유면적과 동시사용공간을 기준으로 새 규정을 만들었다.
레온은 그 사례를 외교보고서 부록에 넣었다.
마리안이 물었다.
“이게 왜 외교자료입니까?”
“다음엔 시민권 문제로 올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매년 같은 계절, 레온은 분담식 검증보고서를 올렸다.
제목도 거의 같았다.
처음 몇 년은 내가 직접 읽었다.
나중에는 첫 장과 결론만 봤다.
보고서가 재미없어졌다는 건 제도가 안정됐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어느 해에는 세라가 표지를 잘못 다른 예산서 위에 놓아두었다.
나는 오후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관리회비가 일상화되면서 본토 정치권의 관심은 ‘왜 내느냐’에서 ‘무엇을 얻느냐’로 옮겨갔다.
처음 가장 크게 늘어난 이용은 군사도 통상도 아니었다.
법률자료.
루멘 조정회에는 수백 년 동안 쌓인 등록정치단위 사이의 경계분쟁 판례가 있었다. 성계 하나의 소유권, 이동함대의 통행, 인공지능 분기체의 국적, 행성개조로 생긴 새 영토의 귀속 같은 사건들.
제국 법무원은 일부 자료를 번역해 내부교육에 쓰기 시작했다.
상원의원 하나가 비꼬았다.
“회비 내고 외국 판례집을 사오는 겁니까?”
법무장관은 답했다.
“전쟁 한 번보다 쌉니다.”
◆실제 효과가 나온 사례도 있었다.
제국 민간개척기업 하나가 루멘 등록국의 유목함대 이동회랑과 채굴권이 겹쳤다. 예전 같으면 주권논쟁부터 시작했을 사건.
루멘 판례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이미 17건.
대부분 계절·주기별 공간사용권을 나눴다.
제국 기업은 8개월 채굴.
유목함대는 4개월 통과·정박.
기업은 처음 싫어했다.
“1년 중 3분의 1을 비우라고요?”
계산해보니 전쟁보다 싸고, 아예 권리를 잃는 것보다 낫다.
합의.
◆회비를 반대하던 상원의원도 몇 년 뒤 그 사례를 언급했다.
탈퇴주장은 더 하지 않았다.
대신 매년 이용실적 공개를 요구했다.
좋았다.
돈을 내면 따져야 한다.
◆루멘 대학과 제국 대학의 공동과정도 예상 밖으로 커졌다.
처음에는 외교·경계법만.
그다음.
인과물리.
분산지성윤리.
다종족 의학.
◆학생교환 첫해에는 사고가 많았다.
분산개체 학생이 방 세 개를 동시에 점유한 문제는 그중 하나.
또 다른 학생은 수면주기가 83시간이라 기숙사 소음규칙과 계속 충돌했다.
대학은 처음에 모두 예외처리하려 했다.
예외가 너무 많아졌다.
결국 개인별 생리·공간사용계약.
더 복잡하지만.
공정.
◆세라가 대학규정 보고서를 보고 말했다.
“외교원이 아니라 대학이 먼저 연방헌법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농담.
절반.
◆몇십 년 뒤 공동과정 졸업생들이 외교원과 기업, 루멘 조정회에 들어갔다.
레온 하르의 후임 중 하나도 그 출신.
처음에는 회비를 내고 얻은 작은 교환프로그램.
나중에는 사람이 오가는 길.
◆회비 계산을 둘러싼 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경기침체 때마다 다시 나왔다.
“올해는 줄이자.”
루멘 쪽도 마찬가지였다.
세라티 시위대가 관리비 인상에 반대하던 풍경은 수십 년이 지나도 반복됐다.
국제질서가 오래간다고 예산싸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느 해 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의원이 물었다.
“루멘 등록을 유지하지 않으면 얼마나 절약합니까?”
재무장관은 숫자를 냈다.
회비.
외교원 인건비.
공동연구.
적지 않음.
그다음 장.
탈퇴 시 추가되는 비용.
독자경계정보.
중재법무.
보험위험.
탐사사고.
시장접근 상실.
더 큼.
의원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루멘 등록은 더 이상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계약 하나, 판례 하나, 대학기숙사 하나까지 연결된 체계였다.
그날 재무원에서 온 새 고지서는 평소와 같은 형식이었다.
레온 하르는 오류가 없는지 계산부터 다시 돌렸다.
고지서 맨 아래에는 다음 검토주기가 적혀 있었다. 36년 뒤.
레온은 그 날짜까지 달력에 등록해두고 문서를 닫았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 날짜를 특별한 사건처럼 보지 않았다.
평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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