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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58화 — 서른한 개의 질문

별의 제국 · 158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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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멘이 넘긴 대단절 고기록은 생각보다 짧았다.

관리질의 31개.

각 항목은 한두 줄뿐이었다.

그런데 첫 네 줄부터 제국 기록과 너무 비슷했다.

[정치단위 연속성.]

[핵심영역 귀속.]

[보호관계.]

[지성개체 분류.]

세라가 네 번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우리 기록의 ‘외부 재분류’와 닮았습니다.”

오르테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량을 보는 질의가 아닙니다. 관계를 읽는 쪽에 가깝습니다.”

31번째 질문은 더 불편했다.

[보존대상 조건 충족 여부.]

‘보존.’

대단절 직전 제국 로그에서 발견한 미확인 외부 프로토콜의 해석과 겹쳤다.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루멘은 이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대?”

에일린이 자료를 넘겼다.

“기록 자체는 오래됐습니다. 의미를 해석한 건 최근입니다. 우리 자료와 비교하면서 일치도가 올라갔습니다.”

루멘도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제공한 과거 사례는 일곱 건.

모두 관리질의 뒤 경계단절이나 재설정이 발생했다.

그중 네 곳은 정치단위 일부가 살아남았다. 두 곳은 수십~수백 년 뒤 다른 고리권에서 재발견됐다. 한 곳은 지금까지 미확인.

완전소멸이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흩어진 거네.”

내가 말하자 세라는 자료에 표시했다.

우리의 인과파편 가설과 잘 맞았다.

한 사례는 더 자세했다.

19개 성계 연합.

관리질의 후 6개만 원래 위치에 남았다.

나머지 13개는 147년 뒤 세 곳의 서로 다른 경계권역에서 발견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각 파편정부가 자신이 원래 국가의 정통정부라고 주장했다.

셋이 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루멘 중재에도 불구하고 짧은 전쟁까지 났다.

결국 연방형 재통합.

세라가 말했다.

“카엘 본국을 찾으면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겠군요.”

세렌 릴레이 왕실대표.

현재 카엘 본국정부.

둘 다 살아 있다면.

누가 정통인가.

우리가 만든 ‘자동복구 금지’ 원칙이 갑자기 더 중요해졌다.

12번째 질문은 뜻 자체가 불분명했다.

[관찰자 연속성.]

오르테가는 처음에 관측장치 상태를 뜻한다고 봤다.

루멘 원문을 다시 받아보니 달랐다.

우리가 ‘관찰자’라고 번역한 단어는 단수인지 복수인지, 존재인지 체계인지, 역할인지조차 문법상 확정되지 않았다.

번역원 주석이 길어졌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과거 게임이라고 믿었던 표시체계가 떠올랐다.

세력.

영역.

인구.

보호.

언제나 세계를 ‘누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화면.

“가설 하나 추가.”

제0분석실장이 기다렸다.

“표시체계와 관리질의가 같은 상위정보구조를 참조했을 가능성.”

오르테가가 바로 물었다.

“근거는?”

“형식이 닮았어.”

“약합니다.”

“알아.”

에일린은 우선순위를 낮게 적었다.

황제가 말한 가설이라고 높게 둘 이유는 없었다.

내 개인기록에는 한 줄을 더 썼다.

[관찰자 = 나일 가능성?]

쓰고 나서 한참 봤다.

너무 쉽게 맞아떨어지는 가설은 위험하다.

현재 자료를 과거 기억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걸 수도 있었다.

며칠 뒤 우선순위를 한 단계 내렸다.

루멘 사례 중 하나에서는 정치단위가 사라진 뒤에도 ‘관찰자 연속성’ 질의에 응답이 계속됐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국가는 끊겼는데 어떤 관측주체는 남았다는 건가.

고리망이 스스로 응답했나.

생존자가 있었나.

제0분석실 벽에 31개 질문을 전부 띄웠다.

연구자들은 번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12번은 ‘관찰자.’

31번은 ‘보존.’

7번은 의미가 너무 불분명해서 그냥 ‘일곱.’

공식문서에는 별명을 쓰지 않았다.

새 연구원 하나가 31번 앞에서 물었다.

“보존 대상이 제국이라면 왜 외부권 시민을 버렸습니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옆 연구원이 말했다.

“그래서 제국이 아닐 수도 있죠.”

가설표가 다시 열렸다.

보존대상이 본토인지.

아틀라스 종족인지.

행정핵심인지.

특정 관찰자와 연결된 사회인지.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반증전담팀도 따로 만들었다.

‘아틀라스 핵심사회를 보존하려 한 사건’이라는 가설만 반박하는 자료를 찾게 했다.

1년 뒤 몇 가지가 나왔다.

본토의 아틀라스 군사시설 일부도 사라졌다.

외부권 아틀라스인 일부는 세렌 릴레이처럼 살아남았다.

본토 비아틀라스 비지성동물은 남았다.

반면 비아틀라스 완전시민은 본토에서 사라졌다.

법적 시민권만으로도, 종족만으로도 설명이 안 됐다.

관리질의는 누군가가 ‘물질’을 보기 전에 ‘관계’를 읽은 흔적처럼 보였다.

본토.

아틀라스.

보호관계.

지성.

어느 쪽이 핵심인지 아직 몰랐다.

오르테가는 한숨을 쉬었다.

“정보가 늘수록 모르는 게 늘어납니다.”

세라가 말했다.

“연구가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오르테가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 제0분석실에 혼자 남았다.

31개 질문이 벽에 떠 있었다.

화면 한쪽에는 오래된 표시체계 기록.

다른 한쪽에는 루멘 고기록.

비슷한 단어들.

비슷하지 않은 구조들.

서로 겹쳤다가 어긋났다.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두 화면을 모두 껐다.

어둠 속에서도 31번 질문의 문장만 한동안 기억에 남았다.

31개의 질의는 외부 연구자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만.

대단절 생존자 가족들은 왜 숨기느냐고 물었다.

정상적인 반응.

복원항로국은 공개 가능한 다섯 항목을 설명회에서 발표했다.

[정치단위 연속성.]

[경계귀속.]

[보호관계.]

[지성개체 분류.]

그리고 관리질의가 물리단절 전에 있었다는 사실.

‘보존’이라는 표현은 아직 비공개.

시아 렌은 발표를 맡으면서 황실에 요구했다.

“확정된 것처럼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대단절이 누군가의 보존행위였다고도.”

“그래.”

설명회 뒤 가족들은 더 많은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은 희망을 얻었다.

“다른 사례도 살아남았다면 우리 가족도.”

어떤 사람은 화를 냈다.

“33년이나 이걸 모르고 있었습니까?”

몰랐다.

황실이 가진 비밀이 늘어날수록 공개시점도 정치문제가 된다.

너무 빨리 내놓으면 오해.

너무 늦으면 은폐.

정답 없음.

몇 년 뒤 루멘에서 여덟 번째 유사사례가 발견됐다.

이번에는 관리질의가 발생했지만 큰 단절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요.

질의 자체가 사건원인이라는 가설이 약해졌다.

오르테가는 오히려 좋아했다.

“좋습니다.”

“왜.”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반증이니까요.”

과학자는 자기 가설이 깨지는 걸 좋아할 때도 있다.

새 사례를 넣자 그림이 바뀌었다.

관리질의가 ‘발사버튼’이 아니라 사건 전 검사나 상태확인일 가능성.

누군가 곧 일어날 일을 알고 확인했나.

혹은 어떤 자동체계가 위험을 감지했나.

31개의 질문은 더 이상 명령문처럼만 보이지 않았다.

점검표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누가 점검했고, 무엇을 보고 위험하다고 판단했는가.

질문은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더 커졌다.

제0분석실 연구자들은 31개 질문 옆에 새 칸을 만들었다.

[질의 후 사건 발생 여부.]

처음에는 7/7.

나중에는 7/8.

언젠가 더 내려갈 수도 있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가설순위가 움직였다.

벽은 몇십 년 동안 같은 질문을 띄웠지만, 그 옆의 답은 계속 바뀌었다.

제0분석실은 루멘 고기록만 믿지 않기 위해 독립검증도 시작했다.

고리망 밖에서 비슷한 사건 흔적이 있는지.

세레프 인과관측자료.

메르탄 위상항로 로그.

바르케시 고대전쟁기록.

전부.

바르케시 자료에서 아주 오래된 이상기록 하나가 나왔다.

전쟁 중 성계 하나가 통신망에서 사라졌다가 18년 뒤 다른 좌표관계에서 관측된 사건.

당시에는 전쟁혼란과 관측오류로 처리.

지금 보면.

인과파편 가능성.

아리아가 자료공개를 허용했다.

“우리 조상 실수기록까지 가져가는군요.”

“도움 되잖아.”

“그렇긴 합니다.”

이 사건에는 관리질의 기록이 없었다.

또 반증.

따라서 관리질의는 모든 인과단절의 필수조건도 아니다.

제0분석실 가설표가 더 복잡해졌다.

오르테가는 좋아했고, 세라는 싫어했다.

“표가 한 장 더 늘었습니다.”

“진실이 단순하다고 약속한 적 없습니다.”

그 말은 오르테가답게 들렸다.

내 개인 표시체계와의 연결가설도 우선순위가 오르내렸다.

어떤 날은 너무 닮아 보였고, 어떤 날은 전혀 다른 구조처럼 보였다.

나는 그 변화를 기록했다.

확신의 역사도 자료가 될 수 있다.

몇십 년 뒤 누군가 제0분석실 파일을 열면, 황제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믿었는지도 볼 수 있게.

정답만 남기면 판단과정이 사라진다.

그건 원하지 않았다.

31개의 질문을 연구하는 동안 가장 오래 싸운 건 과학자와 법률가였다.

‘정치단위’가 물리적으로 무엇인지.

국경선인가.

행정망인가.

시민들의 상호인식인가.

황제가 존재하는가.

한 법학자는 말했다.

“국가는 법적 관계입니다.”

오르테가는 반박했다.

“물리현상이 법전을 읽는다는 말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자료가 그 비슷한 걸 보여주지 않습니까.”

회의가 길어졌다.

세레프 연구자가 중간에 다른 표현을 제안했다.

‘정보적으로 안정된 관계집합.’

법학자는 싫어했고, 과학자는 덜 싫어했다.

결국 임시용어로 채택.

이 용어 덕분에 보호국·시민권·본토 같은 분류를 물리현상과 연결해 생각할 틀이 조금 생겼다.

정답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 다른 학문이 같은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제0분석실의 가장 큰 성과가 거대한 발견이 아니라 공통어 하나였던 해도 있었다.

그해 벽의 31개 질문은 그대로였다.

누구도 그 공통어를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음 회의부터 논쟁시간은 확실히 줄었다.

질문은 줄지 않았다. 다만 무엇을 모르는지는 전보다 훨씬 정확해졌다.

벽의 질문들은 그대로였고, 연구자들만 몇 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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