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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57화 — 분쟁경계의 조난선

별의 제국 · 157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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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신호는 루멘이 경고한 분쟁경계에서 왔다.

제국선은 아니었다.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가장 가까운 제국 탐사전단이 먼저 움직였다. 전투함 36척. 구조선 4척. 신호를 보내는 민간수송선에는 약 18만 명이 타고 있었다.

그 뒤를 함선 112척이 따라오고 있었다.

소속표식은 오르단 권역국.

현장 지휘관 카렌 소르는 첫 보고에서 상대 함대성능을 과장하지도 낮추지도 않았다.

[제국 전단과 유사급. 일부 센서·방어장 성능 우세 가능성.]

아델라인이 원격으로 물었다.

“싸우면?”

“방어는 가능합니다. 압승은 장담 못 합니다.”

몇십 년 전 하위문명 함대라면 나오지 않았을 답이었다.

카렌은 전투대형 대신 난민선과 추격함 사이에 함선을 세웠다.

“민간수송선 공격을 중단하십시오.”

오르단 쪽에서 바로 답이 왔다.

“해당 선박은 반란세력 가족과 전투원을 수송 중이다.”

“민간인 18만 명이 확인됩니다.”

“그들이 민간인인지 귀측은 모른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루멘 중재망을 호출했다.

예상 응답시간 17분.

문제는 난민선 동력핵이었다.

27분 안에 정지할 가능성.

카렌은 계산을 오래 하지 않았다.

제국 구조선이 접근했다.

오르단 함선 하나도 같이 앞으로 나왔다.

경고거리 안.

제국 구축함이 진로를 막았다.

서로 사격통제레이더를 켰다.

함교에서는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카렌이 말했다.

“저쪽이 쏘기 전에는 발사하지 마십시오.”

17분 뒤 루멘 중재대표가 접속했다.

분쟁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벨시라 자치권이 오르단 권역국에서 분리독립을 시도했고, 몇 년째 내전 비슷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벨시라 무장조직 일부가 민간시설을 공격한 기록도 있었고, 오르단 보안군의 집단보복 기록도 있었다.

한쪽만 깨끗하지 않았다.

루멘 규정은 간단했다.

민간선은 중립항구로 이동.

승선자 개별심사.

추격함은 안전거리 밖으로.

오르단이 거부했다.

“아틀라스가 이미 군사개입했다.”

카렌은 반박하지 않았다.

함대를 사이에 넣은 건 사실이었다.

난민선 엔진경고가 다시 울렸다.

카렌이 구조를 시작했다.

승선검사팀이 먼저 올라갔다. 무장한 사람도 있었다. 군용소총. 개인방호구.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나 공격용 함재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르단 함대는 계속 접근했다.

거리 1만8천 킬로미터.

1만6천.

제국 함대도 무장을 풀지 않았다.

루멘 중재대표가 오르단에 고리망 접근정지 가능성을 경고했다.

34분째.

오르단 함대가 방향을 돌렸다.

총은 한 발도 나가지 않았다.

난민선을 제국 임시항구로 견인한 뒤 진짜 일이 시작됐다.

18만 명을 ‘난민’ 한 단어로 묶을 수 없었다.

승선자 가운데 무장조직 경험자가 4,112명.

강제징집.

자원입대.

민병대.

정규전투원.

섞여 있었다.

그중 전쟁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은 331명.

본토 여론은 처음엔 단순했다.

“난민을 구했다.”

며칠 뒤.

“테러리스트를 데려왔다.”

둘 다 일부만 맞았다.

심사에는 수개월이 걸렸다.

항구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원래 화물기지라 침대도 학교도 부족했다. 첫 이틀은 군이 식량을 나눠줬고 셋째 날부터 민간구호단체와 루멘 등록국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왔다.

언어도 문제였다.

벨시라 공용어를 하는 번역가가 적었다.

어머니 하나가 아이를 다른 구역 보육소에 맡겼다가, 번역단말 오류 때문에 ‘보호’라는 단어를 ‘구금’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울면서 아이를 찾는 영상이 퍼졌다.

[아틀라스가 난민아이를 빼앗는다.]

오르단 선전망은 즉시 가져다 썼다.

아이를 찾는 데 여섯 시간.

어머니와 아이가 다시 만난 영상도 공개됐다.

첫 영상만큼 퍼지지는 않았다.

황실은 선전전보다 통역인력을 늘렸다.

4주 뒤 같은 종류의 혼선은 거의 사라졌다.

4,112명의 무장경력자는 개별심사했다.

“전투에 참여했습니까?”

예라고 답한다고 범죄자는 아니었다.

어디에서.

누구 명령으로.

민간인 공격에 참여했는지.

포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오르단은 전원 인도를 요구했다.

제국은 거부했다.

전쟁범죄 증거가 충분한 사람만, 그것도 송환 후 고문·강압심문 위험을 따져야 했다.

오르단에는 과거 위반기록이 있었다.

결국 루멘 특별법정이 맡았다.

87명이 정식기소.

52명 유죄.

35명 무죄.

오르단은 너무 적다고 했고, 벨시라 망명단체는 정치재판이라고 했다.

법정은 둘 다 만족시키지 못했다.

18만 명 가운데 약 7만은 제국권 임시체류를 택했다. 4만은 다른 등록국으로 갔다. 나머지는 분쟁이 잠잠해진 뒤 귀환하거나 가족을 찾아 흩어졌다.

처음 난민선에서 아틀라스 군함을 거대한 방패처럼 그렸던 아이는 제국에 남았다.

10년 뒤 기자가 다시 찾아갔다.

그때 아이는 제국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했다.

“제국이 고향입니까?”

“아니요.”

“그럼?”

잠깐 생각했다.

“여기도 집입니다.”

카렌 소르는 사건 뒤 승진했다.

총을 안 쏜 게 이유는 아니었다.

사격해야 할 순간과 기다릴 수 있는 순간을 구분했다는 평가.

아델라인은 군사대학에 그녀를 불렀다.

학생이 물었다.

“오르단이 한 발 쐈다면 어떻게 했습니까?”

“반격했겠죠.”

“얼마나?”

“멈출 때까지.”

답은 짧았다.

카렌은 자기 실수도 숨기지 않았다.

첫 승선검사에서 무장조직원 일부가 가족구역으로 섞이는 걸 놓쳤고, 그 때문에 심사가 몇 주 더 길어졌다. 임시항구 의료구역도 부족했다. 화물칸에 사람을 너무 많이 넣어 동선이 꼬였다.

그 사건 뒤 제국 탐사전단 전투함에는 작은 난민수용 모듈이 추가됐다.

평소에는 창고.

필요할 때 생명유지구역.

대부분의 함선에서는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철거안도 몇 번 나왔다.

통과하지 않았다.

분쟁경계의 전쟁은 그 뒤로도 20년 가까이 더 이어졌다.

제국은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끝내려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카렌의 함대가 한 일은 그날 엔진이 멈춰가던 수송선 하나를 데리고 나온 것뿐이었다.

루멘 분쟁지도에는 그 18만 명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았다.

난민사건은 제국 정치에도 작은 흔적을 남겼다.

하원에서는 ‘분쟁경계 구조원칙’을 법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민간선이 위협받을 경우 국적과 무관하게 구조할 수 있다는 내용.

반대파는 우려했다.

“그러다 남의 전쟁에 매번 끌려들어갑니다.”

찬성파는 물었다.

“눈앞에서 죽는 민간선을 그냥 지나갑니까?”

둘 다 쉬운 답은 없었다.

결국 법은 절대의무가 아니라 지휘관 재량과 위험기준을 남겼다.

즉각적 민간인 위협.

구조가능성.

제국전력 위험.

분쟁당사자의 법적 지위.

현장지휘관이 판단.

사후심사.

카렌은 법안에 자문했지만 자기 사건을 표준정답으로 만들지는 말라고 했다.

“그날은 그날 조건이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조문이 하나 줄었다.

모든 미래사건을 과거 한 번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오르단과의 외교관계도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

몇 년 뒤 오르단 정부가 제국에 공식대표를 보냈다. 첫 회담은 차가웠다.

오르단 대표가 말했다.

“귀국은 우리 반란세력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마리안이 답했다.

“민간선을 구조했습니다.”

“그 안에 전투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사했습니다.”

둘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했다.

오르단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제국도.

대신 앞으로 분쟁경계에서 비슷한 상황이 생길 경우 루멘 중립항구를 우선 사용한다는 절차를 만들었다. 엔진고장처럼 시간이 부족하면 예외.

그 협정에는 카렌의 27분 기록이 그대로 들어갔다.

벨시라 쪽에서도 불만은 남았다.

무죄가 난 전투원들 가운데 일부는 제국이 너무 오래 구금했다고 주장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몇 건을 인정했다.

심사과정에서 증거 없이 구금기간이 늘어난 사례.

국가는 배상했다.

난민을 보호했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건 아니었다.

임시항구는 15년 뒤 정상화됐다.

난민캠프 자리는 물류창고로 돌아갔다.

다만 한 구역만 작은 기념공원으로 남았다.

거대한 동상은 없었다.

처음 도착한 난민선의 외판 한 조각과, 여러 언어로 적힌 날짜.

카렌은 개장식에 초대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구조한 사람이 계속 앞에 있으면,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못 합니다.”

아델라인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렌의 함대가 난민선을 구조한 날 이후, 탐사전단 내부에서는 ‘중립’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어느 쪽에도 복속되지 않은 채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은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조가 곧 정치적 지지인 것도 아니었다.

이 구분은 교리문서보다 현장에서 더 자주 설명됐다.

한 젊은 장교가 카렌에게 물었다.

“그날 오르단이 철수하지 않았다면 정말 싸웠습니까?”

“예.”

“그러면 중립이 아니지 않습니까?”

카렌은 잠깐 생각했다.

“우리가 벨시라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앞에서 민간선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학생은 완전히 납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 정도가 오히려 좋았다.

몇 년 뒤 다른 분쟁에서 제국 함대가 구조에 개입하지 않은 사례도 생겼다.

민간선은 있었지만 현장에 들어가려면 제국함대가 사실상 전쟁당사자가 되어야 했고, 루멘 중립항구가 세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는 기다렸다.

사망자 일부 발생.

본토 여론은 다시 갈렸다.

카렌은 공개논평을 하지 않았다.

자기 사건을 모든 사건의 답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말을 지켰다.

몇 년 뒤 카렌은 그 두 사례를 같은 강의에서 나란히 보여줬다.

한쪽에서는 개입했고, 다른 쪽에서는 기다렸다.

학생들은 결국 같은 질문을 했다.

“둘 다 맞습니까?”

카렌은 대답했다.

“둘 다 당시 판단입니다.”

그 이상은 붙이지 않았다.

카렌의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은 한동안 교실에 남아 두 사건의 항로도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 해군대학 강의자료는 이후 분쟁경계 임무를 맡는 장교들의 필수과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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