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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55화 — 번역이 틀린 날

별의 제국 · 155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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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멘권 외교가 늘어나자 외교원에서 가장 먼저 한계를 드러낸 건 번역체계였다.

문법은 문제가 아니었다.

개념이었다.

하디안 공화군의 ‘군’이라는 단어가 첫 사례였다.

제국 번역기는 군사조직을 뜻하는 말로 옮겼다. 본토 언론은 하디안을 군정국가로 소개했고, 하디안 외교부는 불쾌해했다.

실제 의미는 시민집단, 함대전통, 행정단위를 한꺼번에 품은 역사적 명칭에 가까웠다.

번역원은 고유명처럼 ‘공화군’을 유지하기로 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다음 건은 달랐다.

에르시온 합의체 대표가 마리안에게 말했다.

[귀측 황제의 영속성은 흥미롭다.]

자동번역은 이렇게 나왔다.

[귀측 황제의 불멸성은 흥미롭다.]

불멸.

단어 하나.

본토망이 폭발했다.

황제가 불멸이라는 기사.

종교집단.

장수연구 음모론.

일부 보호권역의 황제숭배 종파.

하루 만에 모든 게 생겼다.

라사드 한 도시에서는 실제로 축제까지 열렸다.

세라는 보고서를 들고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폐하께서는 불멸하십니까?”

“나도 모르지.”

“농담하지 마십시오.”

외교원이 원문을 다시 확인했다.

에르시온 대표가 말한 건 생물학적 불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일반적인 정치지도자보다 훨씬 오래 같은 권한을 행사한다는 뜻.

황실은 정정문을 냈다.

에르시온도 별도설명을 보냈다.

[영속성은 생물학적 불사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정정문은 처음 기사만큼 퍼지지 않았다.

어떤 종교집단은 오히려 말했다.

“제국이 진실을 숨긴다.”

부정이 증거가 되는 순간 사실확인은 거의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종교를 금지하지도 않았다.

폭력.

사기.

강제헌금.

그런 게 없으면 무엇을 믿는지는 자유였다.

황실 법무원은 ‘황제가 공식적으로 불멸을 인정했다’는 허위광고만 정정하게 했다.

종파는 문구를 바꿨다.

[우리는 황제의 영속성을 믿는다.]

이번엔 법적으로 문제없었다.

세라가 더 싫어했다.

번역원은 체계를 뜯어고쳤다.

정치·법률·가족·시간과 관련된 핵심어는 자동번역 하나로 확정하지 않는다. 원문개념코드와 현재 대응어, 설명주석을 함께 붙인다.

문서는 길어졌다.

마리안은 불평했다.

“예전엔 조약 한 장을 30분이면 읽었습니다.”

“지금은요?”

세라가 물었다.

“반나절입니다.”

“실수는 줄었습니까?”

“예.”

“그럼 됐군요.”

590세 번역가 이레나 소르가 개편팀에 들어왔다.

대단절 전 카엘 외교문서와 보호조약을 번역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첫 강의에서 말했다.

“모르면 번역하지 마세요.”

젊은 번역가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문서가 안 끝납니다.”

“그래서 주석을 쓰는 겁니다.”

학생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레나가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건 ‘관리’였다.

루멘어 하나가 문맥에 따라 관리, 감독, 통치, 보호, 운영으로 다르게 번역됐다. D-449 같은 비주권 관리구역에서는 단어 하나 잘못 고르면 소유권 주장처럼 보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논쟁한 끝에 제국 법률용어 하나가 새로 생겼다.

‘비주권 관리권.’

처음에는 설명문이 열 줄이었다.

몇십 년 뒤 학생들은 그냥 한 단어로 배웠다.

과거문서도 다시 들여다봤다.

대단절 전 카엘 보호조약의 한 표현은 자동번역으로 ‘황제의 검’이라고 나왔다.

원문 뜻은 훨씬 미묘했다.

‘왕권 바깥에서 대신 휘두르는 검.’

외교와 방위를 제국에 위임하되 왕국 내부주권은 유지한다는 옛 표현.

복원협상에서 ‘황제의 검’이라는 말만 써버리면 카엘 왕실이 원래부터 황제 휘하 봉신이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었다.

시아 렌은 문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33년 살아남았는데 번역 때문에 나라를 잃을 뻔하겠군요.”

농담이 절반도 안 됐다.

두 번째 실제 사고는 전략조약에서 나왔다.

하디안과의 충돌방지 문구.

원문은 ‘무력행위를 의도하지 않은 항법침범.’

자동번역은 ‘의도 없는 무력행위.’

첫 문장은 길을 잘못 든 함선을 말한다.

두 번째는 실수로 쏜 포격까지 포함할 수 있다.

마리안이 서명 직전에 발견했다.

협상은 12시간 멈췄다.

하디안은 수정에 동의했다.

그날부터 전략조약에는 서로 다른 두 명의 전문번역가가 독립검토하는 절차가 붙었다.

AI는 초안을 만든다.

최종문장은 사람이 책임진다.

비용은 늘었다.

기업들은 싫어했다.

몇 년 뒤 광산권 분쟁 하나가 석 달 만에 끝났다.

원문코드 덕분에 ‘채굴권’과 ‘토지소유권’이 처음부터 구분돼 있었다.

과거 같으면 몇 년 갈 사건이었다.

그 뒤 기업 쪽 불평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공동번역학교도 생겼다.

아틀라스, 루멘, 하디안, 에르시온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 앉았다.

교수가 첫날 칠판에 한 단어를 띄웠다.

[경계관리권.]

“번역하십시오.”

답이 19개 나왔다.

교수는 전부 틀렸다고 했다.

학생들이 항의하자 웃었다.

“맥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뒤부터 학생들은 문장보다 상황을 먼저 물었다.

외교뿐 아니라 일상사고도 줄었다.

에르시온 민간선 하나가 제국 보호령 항구에서 검문요구를 ‘구금통보’로 잘못 받아들인 일이 있었다. 선장은 공포에 질려 출항을 강행했고 지역경비대가 추적했다.

새 원문코드 덕분에 외교원이 4분 만에 오류를 확인했다.

추격중지.

선박 귀환.

총 한 발 안 나갔다.

나중에 항만장이 선장과 밥을 먹으며 말했다.

“우린 서류 보자는 거였습니다.”

선장은 웃었다.

“우린 감옥 가는 줄 알았습니다.”

이레나 소르는 640세에 완전히 은퇴했다.

마지막 강의에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이 겪은 가장 위험한 오역은 황제 불멸 사건입니까?”

이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내 말과 같은 뜻으로 말한다고 믿는 겁니다.”

강의실이 잠잠해졌다.

그 문장은 나중에 번역원 첫 페이지에 들어갔다.

[확실하지 않으면 번역하지 말고 설명하라.]

황제 불멸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종파는 몇십 년 뒤 이름을 ‘장수황제회’로 바꿨다.

세라가 그 자료를 가져왔을 때 나는 읽고 돌려줬다.

이번엔 농담하지 않았다.

번역체계 개편은 외교원 인사제도까지 바꿨다.

예전에는 통역과 번역이 지원직으로 분류됐다. 이제 전략조약을 다루는 개념전문가는 외교관과 동급의 책임서명을 했다. 한 문장을 잘못 옮기면 함대가 움직일 수 있는데 지원직 취급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젊은 외교관들은 처음엔 불편해했다. 자기 문장을 번역가가 공개적으로 고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회담에서 마리안이 ‘감독권’이라는 말을 썼다.

옆의 번역가가 바로 손을 들었다.

“장관님, 상대 원문은 감독보다 관리책임에 가깝습니다.”

회의가 잠깐 멈췄다.

마리안은 이유를 들은 뒤 표현을 바꿨다. 이 장면이 외교원 내부에서 꽤 오래 회자됐다.

장관 문장을 고쳤다는 이유가 아니라, 장관이 화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업계에서는 별도 문제가 생겼다.

루멘권 계약서 번역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

중소기업 하나는 번역비가 계약금의 4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상무원은 번역비를 보조하지 않았다. 대신 공용개념사전과 표준계약문을 공개했다.

무료.

중소기업은 그걸 사용해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복잡한 계약은 여전히 전문가가 필요했고 단순계약은 직접 처리할 수 있었다.

새 직업도 늘었다.

문명간 법률개념가, 생물학적 가족제도 번역사, 분산지성 계약전문가.

성계거래소에서는 번역기업 주가가 한동안 급등했다. 투자자들은 “루멘 412개 국가 시장”을 기대했다.

몇 년 뒤 절반은 망했다.

실제 접촉국은 그렇게 빨리 늘지 않았으니까.

이레나는 그 상황을 보고 웃었다.

“단어도 투기가 되는군요.”

번역문제는 종교에서도 후속작용을 남겼다.

‘장수황제회’는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폭력적이지 않았고 정치권력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 생일에 장수축제를 열고 황제 초상 대신 별을 사용했다.

황실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지방정부가 행사보조금을 지급하려 했다.

세리아가 하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종교행사에 지방세를 왜 씁니까?”

지역정부는 관광효과를 주장했다.

법원은 종교 자체 지원이 아니라 공개축제·관광행사 기준을 적용하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결국 축제에서 황제숭배 의식은 빠지고 지역시장과 공연만 남았다. 믿음과 세금이 분리됐다.

불멸 오역 하나가 수십 년 뒤 지방축제 예산판결까지 이어졌다.

이레나가 은퇴한 뒤 외교원은 그녀 이름을 딴 상을 만들려 했다.

그녀가 거부했다.

“번역가 이름이 남으면 번역이 잘못된 겁니다.”

과장된 말이었지만 그다운 말이었다.

대신 번역원 도서관 한 방에 그녀가 쓰던 주석자료를 보관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가는 자료가 됐다.

몇십 년 뒤 ‘영속성’과 ‘불멸’을 헷갈리는 신입은 거의 없었다.

대신 다른 단어를 틀렸다.

언어는 끝나지 않았다. 외교원은 그걸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했다.

외교원은 결국 번역품질을 승진평가에도 넣었다. 멋진 연설보다 오역 없는 계약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젊은 외교관 일부는 처음엔 불만이었지만, 한 번이라도 잘못된 단어 때문에 회담이 하루씩 멈추는 걸 겪고 나면 생각이 달라졌다.

마리안은 나중에 신입들에게 말했다.

“외교에서 침묵보다 위험한 건,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 문장만큼은 교재에 그대로 들어갔다.

번역학교 졸업생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루멘 정치단위 전문외교관이 됐다. 처음에는 언어를 배우러 들어왔다가 법과 역사까지 파고든 사람들이다.

외교원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어느 나라 말 할 줄 아느냐”보다 “그 나라가 같은 단어를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물었다.

신입면접 문항도 바뀌었다.

몇십 년 뒤에는 번역원이 조약실무자보다 먼저 회의에 들어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누구도 그걸 격식 위반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 때문에 생긴 불편이었고, 나중에는 외교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그 뒤부터 외교원에서는 번역이 잘됐다는 칭찬보다, 번역 때문에 아무 일도 안 생겼다는 평가를 더 높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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