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54화 — 일흔세 개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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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멘 제4관리권역에서 먼저 제국에 정식 접촉을 요청한 국가는 하디안 공화군이었다.
이름만 보면 군사정부 같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직할 61개 항성계와 협력권을 합쳐 약 190개 권역, 생물학적 인구 약 2천4백억. 선거와 민간법원이 있었고, ‘공화군’이라는 명칭은 오래전 이주함대 시절 시민군 조직에서 유래했다.
마리안은 첫 자료를 읽고 말했다.
“이름 때문에 사고 나겠군요.”
실제로 며칠 뒤 본토 언론은 하디안을 ‘군정국가’로 소개했고, 하디안 외교부가 정정을 요청했다.
번역원은 첫날부터 바빴다.
◆하디안 사절 아르 베논은 인사말보다 전함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귀국은 대형함선을 매우 빠르게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빠르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마리안이 되묻자 그는 제국 공개자료에서 가져온 생산량을 띄웠다.
정확했다.
저쪽도 준비해왔다.
하디안이 원하는 건 타이탄급을 그대로 만드는 기술이 아니었다. 수천 킬로미터 구조물의 각 구간을 동시에 생산하고, 최종 조립에서 오차를 거의 없애는 제국식 연속생산 공정.
제국이 원하는 건 하디안의 다층 방어장 기술이었다.
오르테가가 눈을 반짝였고, 아델라인은 처음부터 경계했다.
“어디까지 줄 겁니까?”
“민간형부터.”
“저 나라 민간형 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 지적이 맞았다.
◆하디안은 첫 시연에 소형선 한 척을 내놨다.
제국 시험포가 출력 제한 상태로 발사됐다. 충격은 선체에 닿기 직전 여러 층으로 갈라져 공간 자체를 따라 흘렀다. 방어막 하나가 버틴 게 아니라, 한 번의 타격이 여러 작은 충격으로 나뉘어 사라졌다.
선체 손상은 거의 없었다.
아델라인이 말했다.
“쓸 만하군.”
오르테가는 고개를 돌렸다.
“그게 전부입니까?”
“군인은 맞고 안 부서지면 됩니다.”
둘의 기준은 늘 달랐다.
◆반대 시연에서는 하디안 사절단이 제국 조선소를 찾았다.
타이탄급 프레임 수백 구간이 서로 다른 궤도에서 동시에 생산되고 있었다. AI가 조정하지만 최종검증과 군사설계 승인에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아르 베논은 가장 놀란 부분을 엉뚱하게 짚었다.
“생산라인을 하나 멈춰도 전체가 계속 갑니까?”
“그렇게 설계했습니다.”
대단절 뒤 공급망을 다시 만들며 생긴 습관이었다.
한 공장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디안은 방어장이 강했고, 제국은 생산이 끊겨도 계속 만드는 데 강했다.
◆기술교환 협상은 시연보다 훨씬 재미없었다.
어디까지가 민간형이고 어디부터 군사핵심인가.
하디안은 방어장 출력보다 구조방식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제국은 재충전시간과 다중피격 내성, 전자전 저항까지 함께 봤다.
하디안이 민수형이라고 제시한 4등급 모듈을 보고 아델라인이 말했다.
“저걸 여객선에 달면 우리 구축함 주포 한 발은 버팁니다.”
아르 베논은 진지하게 답했다.
“귀국 민간선은 그 정도를 버티지 못합니까?”
회의가 세 시간 더 길어졌다.
◆결국 양국은 공동수출분류표를 만들었다.
출력.
재충전.
다중피격.
전자전 내성.
자기복구.
분류항목이 늘어나자 기업들은 싫어했고 군과 법무원은 좋아했다.
첫 합작제품은 전함이 아니라 대형 여객선용 충돌방어장이었다. 우주항만 사고나 소행성 파편을 막는 용도.
시험이 성공하자 보험료가 내려갔다.
아델라인은 못마땅해했다.
“전함에 먼저 달 줄 알았습니다.”
오르테가가 웃었다.
“민간시장이 더 큽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아도 장군은 장군이었다.
◆하디안 사회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됐다.
아르 베논은 군인이 아니라 경제관료 출신이었다. 다만 그의 이름 앞에는 시민군 복무이력을 나타내는 표식이 붙었다.
마리안이 물었다.
“군복무가 정치자격입니까?”
“아닙니다. 경력 중 하나입니다.”
아틀라스 공인가문명이나 옛 제국 훈장과 비슷했다.
반대로 하디안은 황제제를 신기해했다.
아르가 내게 직접 물었다.
“황위가 세습되는데 시민이 황제를 어떻게 통제합니까?”
“황제를 선거로 뽑지는 않아.”
“그러면?”
“의회, 법원, 관료제. 그래도 망하면 반란도 있겠지.”
마리안이 눈을 감았다.
아르는 웃었다.
“우리도 마지막 수단은 비슷합니다.”
◆첫 작은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항법에서 나왔다.
하디안 사절선의 보조정 한 척이 황제함 안전반경 안으로 들어왔다. 황실근위는 경고를 보냈지만 응답이 늦었다. 카시안은 요격기를 발진시키기 직전이었다.
하디안 쪽에서 급히 보조정을 회수했다.
본토망에서는 곧바로 ‘황제 암살시도’라는 제목이 돌았다.
황실과 하디안 정부가 동시에 부인했다.
합동조사 결과는 더 시시했다.
좌표 정의가 달랐다.
제국은 황제함을 중심으로 방호구역 전체를 계산했고, 하디안은 함선 표면에서 실제 접근거리만 계산했다. 루멘 표준은 속도와 접근벡터를 추가했다.
각자 자기 기준에서는 경계를 안 넘었다.
◆카시안과 하디안 보안책임자는 처음 두 시간 동안 서로 책임을 따졌다.
그 뒤부터는 수식을 비교했다.
결국 세 체계를 합친 새로운 접근규칙이 나왔다. 질량, 속도, 권한등급에 따라 자동으로 안전거리를 계산한다.
몇 년 뒤 이 규칙은 루멘권의 다자회담장에서도 쓰였다.
이름에는 어느 국가도 붙지 않았다.
◆하디안과 기술교환 계약은 2년 뒤 체결됐다.
제국은 민간·비전략형 충격분산 방어장과 일부 설계원리를 얻었다. 하디안은 제국의 대형구조물 생산자동화와 분산품질관리 일부를 받았다.
양쪽 모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남겼다.
전부 줄 이유가 없었다.
◆첫 계약 몇 년 뒤 하디안 조정대표가 루멘 회의에서 제국의 고리통행료 인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마리안이 회의 뒤 아르 베논에게 물었다.
“기술교환은 잘해놓고 바로 반대합니까?”
“그래서 기술교환과 정치가 다른 겁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마리안도 웃었다.
◆하디안 방어장을 단 여객선이 아우렐리움에 흔해질 무렵, 승객들은 기술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거의 몰랐다.
항만정비사들은 알았다.
새 장비 때문에 자격교육을 다시 받아야 했으니까.
한 정비사가 방송에서 말했다.
“더 안전해진 건 좋은데 시험을 또 봐야 합니다.”
그게 첫 상위국과 맺은 기술협력의 가장 평범한 결과 중 하나였다.
◆하디안 기술은 군함보다 산업현장에서 먼저 변화를 만들었다.
대형조선소의 작업선과 궤도건설선에 충격분산장이 들어가자 작업반경을 더 좁게 잡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대형 구조물 주변 수십 킬로미터를 비워야 했지만, 비상충돌 위험이 줄어들면서 생산선 사이 간격을 줄였다.
조선소 생산량이 몇 퍼센트 올랐다. 그 숫자는 전투 시연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다.
하디안 쪽도 제국 자동품질관리에서 비슷한 효과를 봤다. 그들은 원래 방어장 기술이 좋아 선체 결함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 설계문화가 있었다. 제국식 생산검증을 적용하자 방어장에 의존할 필요가 줄었다.
아르 베논이 농담처럼 말했다.
“귀국 기술이 우리 방어장 판매를 줄이는군요.”
마리안이 답했다.
“대신 함선을 더 많이 만드시잖습니까.”
실제로 그랬다.
◆기술교류가 깊어지면서 산업스파이 사건도 한 번 났다.
제국 협력업체 엔지니어 하나가 하디안 군용방어장 시험자료를 몰래 복사했다. 회사 상층부 지시는 아니었고, 경쟁사에 팔 계획이었다.
하디안은 즉시 공동연구 중단을 요구했다. 제국 법무원은 엔지니어를 체포했고, 해당 회사의 접근권을 정지했다.
문제는 하디안이 회사 전체를 20년 동안 공동사업에서 배제하자고 요구한 것.
너무 길었다.
마리안은 배상과 보안강화, 회사 5년 정지를 제안했다. 하디안은 15년, 제국은 7년을 다시 불렀다. 결국 8년.
“왜 8입니까?”
본토 기자가 물었다.
마리안은 대답했다.
“합의가 그 숫자에서 됐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원칙은 없었다.
◆해당 회사 주주는 큰 손실을 봤다. 직원 수십만 명 전체가 범죄자는 아니었다. 다른 사업은 정상운영했고, 군사공동연구만 제한됐다.
8년 뒤 회사는 재심사를 받고 복귀했다. 첫날부터 최고등급 자료는 못 봤다. 신뢰도 다시 쌓아야 했다.
하디안에서도 반대 사건이 일어났다. 제국 조선공정 일부를 취급하던 하디안 연구원이 자기 연방국 기업에 자료를 넘겼다.
이번에는 우리가 피해자였다.
하디안 법원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다. 개인 처벌, 기관 접근제한, 배상.
본토 강경파는 “우리만 착하게 처리했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상대도 자기 규칙을 지켰다.
◆몇십 년 뒤 양국 합작조선소 하나가 세워졌다. 위치는 제국도 하디안도 아닌 루멘 중립결절이었다.
군함은 만들지 않았다.
탐사선, 대형구조선, 구조함.
첫 합작선 이름을 두고 또 싸웠다. 제국은 기능명을 원했고 하디안은 역사적 인물명을 원했다.
결국 번호만 붙였다.
가장 재미없는 타협.
그 배는 70년 동안 사고 없이 운항했다. 사람들은 이름보다 성능을 기억했다.
◆하디안과의 관계가 깊어졌다고 해서 외교가 항상 부드러워진 것도 아니었다. 고리통행료, 경계중재, 하디안 자치함대의 무장제한 같은 사안에서 양국은 자주 반대편에 섰다.
아르 베논이 어느 회의 뒤 마리안에게 말했다.
“우리가 협력국인지 경쟁국인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리안은 서류를 정리하며 답했다.
“둘 다일 수 있지 않습니까.”
아르가 웃었다.
“그게 가장 정확하군요.”
둘은 다음 날 또 다른 안건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첫 합작조선소 개장식에는 황제도 하디안 최고지도자도 가지 않았다. 현장 기술자와 회사대표가 테이프를 잘랐다.
몇 년 뒤 그 조선소에서 만든 구조함이 루멘 분쟁경계의 난민선 구조에 투입됐다. 기술교류 조약과 실제 사람 목숨 사이에는 긴 시간이 있었지만, 연결은 분명했다.
◆아르 베논은 몇십 년 뒤 본국으로 돌아가 상업조정관이 됐다. 마리안과의 연락도 줄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공식메시지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 얘기였다.
[제국 정비사들이 우리 장비 욕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마리안은 답했다.
[하디안 정비사들도 제국 장비 욕을 합니다.]
[그럼 정상입니다.]
그 뒤로 직접 연락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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