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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51화 — 조정대표

별의 제국 · 151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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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이 먼저 접촉실로 들어갔다.

방은 양쪽 함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두 선박 사이에 임시로 연결한 중립 구획이었다. 바닥과 벽의 경계는 둥글게 이어져 있었고, 중력은 아우렐리움 표준보다 조금 약했다. 카시안은 문밖에 남았다. 루멘 쪽 경계개체도 반대편에서 멈췄다.

안으로 들어온 네 존재 가운데 어느 쪽이 조정대표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맨 앞에 선 존재는 사람보다 조금 컸다. 투명한 막 안에서 은빛 섬유가 천천히 흐르고 있었고, 두 팔 끝의 손가락은 보는 각도에 따라 수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뒤에는 생물학적 개체 하나, 기계에 가까운 개체 하나, 그리고 형태를 고정하지 않은 작은 군집체가 따라왔다.

통신이 열렸다.

“아틀라스 제국 황제.”

번역음에는 성별도 억양도 거의 없었다.

“제4관리권역 조정대표, 네마르-6입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초대 고맙군.”

은빛 섬유가 짧게 빛났다.

“초대가 아니라 상호접촉입니다.”

마리안이 눈만 살짝 움직였다. 첫 문장부터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규정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회의석은 여섯 개였다. 제국 쪽에는 나와 마리안, 오르테가가 앉았다. 루멘 측에서도 네마르-6과 두 기능대표만 자리를 잡았다. 남은 군집체는 통역과 기록을 겸하는 듯 천장 근처에 흩어졌다.

마리안이 첫 의제를 띄웠다.

“관리보류 회랑 네 곳부터 다루겠습니다.”

대단절도, 고리 제작자도 아니었다. 제국 기업들이 이미 투자한 성계와 루멘의 경계관리권이 부딪힌 현실적인 문제였다.

루멘은 세 곳에 대한 자료를 바로 열었다. 모두 비활성 고리망 구조물의 영향을 받는 곳이었다. 특정 질량 이상을 채굴하거나 대규모 구조물을 세우면 국소 공간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오르테가는 두 곳의 자료를 읽자마자 몸을 앞으로 숙였다.

“두 곳은 우리 모델과 맞습니다.”

세 번째 자료에서는 손가락이 멈췄다.

“여기는 다릅니다.”

루멘 측 과학대표가 답했다.

“귀측 모델에는 경계망의 위상재귀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오르테가 눈빛이 바뀌었다. 정치회담이 그대로 학술토론으로 넘어갈 것 같자 마리안이 종이 한 장을 그의 앞에 밀었다. 오늘 의제 목록이었다.

오르테가는 입을 다물었지만 자료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

세 곳 가운데 두 곳은 즉시 개발을 멈추고, 하나는 공동조사를 하기로 했다. 제국은 이미 허가한 민간개발의 실비를 보상하고, 루멘은 그동안 비공개였던 안전자료 일부를 제공한다.

네 번째 성계는 남았다.

“왜 여기는 자료가 없지?”

네마르-6이 대답했다.

“현재 대표권한으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 기업에게 철수하라고 할 근거도 부족하네.”

“개발행위가 경계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얼마나?”

“확률자료는 제공 가능합니다.”

“원인은 안 주고?”

“그렇다.”

나는 네 번째 항목을 닫았다.

“그럼 나머지 셋부터 끝내지.”

네마르-6의 반응이 9초 늦었다.

“귀측은 일부 합의와 일부 보류를 선호하는가.”

“풀리는 것까지 같이 묶을 이유가 없잖아.”

마리안이 아무 말 없이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네마르-6은 제국이 민간기업 손실을 보상하는 이유를 흥미로워했다.

“공개된 개척계약에는 외부권리 충돌 시 국가의 면책 가능성이 존재한다.”

저쪽도 우리 공개문서를 읽었다.

“법적으로 안 줘도 된다고 정치적으로 안 줘도 되는 건 아니지.”

“법적 의무와 통치비용을 분리해 계산하는가.”

“자네들은 안 하나?”

짧은 침묵 뒤 대답이 왔다.

“한다.”

처음으로 둘 사이에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이 생겼다.

통상 의제에서는 내가 거의 말하지 않았다.

제국이 원하는 건 고리망 안전자료, 비전략형 중력·인과센서, 등록정치단위 시장으로 들어갈 통로였다. 루멘은 희귀금속과 생물의약 데이터, 장수기술 일부, 그리고 제국의 대형 구조물 연속생산 공정을 원했다.

마리안은 함선건조 공정이 언급되자 바로 범위를 잘랐다.

“군사·조선 핵심공정은 제외합니다.”

“비군사용 대형구조물 제작공정으로 한정 가능.”

“한정범위를 먼저 정의하십시오.”

서로의 말이 짧았지만 회담은 느렸다. 기술명 하나를 열 때마다 군사적 파생효과와 상업적 가치가 함께 따라왔다.

오르테가는 과학자료를 더 받고 싶어 했고, 마리안은 무엇을 받아야 그 자료값을 치를 만한지 봤다. 나는 둘이 싸우는 걸 들으면서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세 번째 의제는 루멘이 표시한 외곽의 분쟁경계였다.

“접근을 권장하지 않는다.”

“금지하는 건가?”

“루멘 연속체가 금지할 권한은 없다.”

나는 그 답에서 처음으로 루멘의 경계를 봤다.

“누구끼리 싸우지?”

“등록정치단위 둘과 미등록 함대세력 하나.”

“전쟁인가?”

“정의에 따라 다르다.”

마리안이 물었다.

“서로 함대를 파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

그럼 충분했다.

루멘의 412개 정치단위가 하나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분쟁을 중재하고 고리망을 관리해도, 국가끼리 총을 쏘는 것까지 사라지진 않았다.

대단절 이야기는 마지막에 꺼냈다.

내가 제국의 고권한 조회기록 일부를 공개하자 네마르-6의 몸 안쪽 섬유 움직임이 거의 멈췄다.

본토와 외부권 분류.

보호조약.

지성개체와 정치단위의 관계.

그 질문들이 물리적 단절보다 먼저 나타났다는 기록.

오르테가가 낮게 말했다.

“이 형식, 알고 있습니까?”

“유사기록이 존재한다.”

“누가 보낸 겁니까?”

“불명.”

마리안의 손가락이 문서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현존 루멘 관리체계의 기록입니까?”

“아니다.”

“연속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부분적으로.”

회의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네마르-6은 오래된 사례 하나를 열었다. 루멘의 현재 체계가 자리 잡기 수천 년 전, 한 정치단위에서 유사한 관리질의가 발생한 뒤 경계가 재설정됐다. 그 지역은 사라진 것으로 처리됐지만 147년 뒤 일부 성계가 다른 고리권에서 다시 발견됐다.

“살아남은 겁니까?”

“일부는.”

그 한마디가 충분했다.

제국이 끝난 게 아니라 흩어진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이, 우리만의 특수한 사건이 아닐 가능성이 처음으로 생겼다.

오르테가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고리망 제작자와 관련 있습니까?”

“입증되지 않았다.”

“관리질의는 무엇을 읽습니까?”

“사례에 따라 정치단위 상태, 개체 분류, 경계귀속, 보호관계를 조회한다.”

세라가 여기 있었다면 행정망이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과거의 표시체계를 떠올렸다.

세력.

영역.

인구.

보호국.

그 기억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네마르-6은 자료 하나를 더 전송했다.

[관리질의 응답 실패 후 경계상태 변동.]

누가 응답했고, 무엇이 실패했는지는 기록에 없었다.

회담은 아홉 시간을 넘겼다.

식사는 각자 먹었다. 네마르-6은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벽면 단자에 은빛 섬유 일부를 연결했다. 오르테가는 그 장면을 너무 오래 보다가 마리안에게 팔꿈치로 찔렸다.

“관찰입니다.”

“식사 중입니다.”

“저게 식사인지 아직—”

네마르-6이 통신을 열었다.

“에너지보충 행위가 맞다.”

마리안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식사 뒤에는 정치체제 이야기가 나왔다.

루멘 측은 황제가 죽으면 누가 제국을 이어가는지, 후계자가 이전 황제의 기억을 그대로 갖지 않는데 어떻게 외교신뢰를 유지하는지 물었다.

“기록과 제도로 남기지.”

“불완전하다.”

“자네들은 완전해?”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웃었다.

루멘의 일부 기능개체는 구성자가 바뀌어도 같은 식별자와 권한을 이어받는다고 했다. 한 존재가 수백 년 동안 같은 직책을 맡는 것과도 다르고, 완전히 새 사람이 계승하는 것과도 달랐다.

마리안은 질문을 적어두었다. 앞으로 수십 년은 번역가와 법률가가 고생할 개념이었다.

마지막에 네마르-6이 말했다.

“아틀라스 제국은 경계질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우릴 어떻게 평가하지?”

은빛 섬유가 잠깐 멈췄다.

“확장성이 높다.”

마리안이 물었다.

“위험하다는 뜻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이라는 단어가 남았다.

접촉실 문이 열리자 카시안이 먼저 들어와 주변을 확인했다. 나는 네마르-6에게 손을 내밀려다가 멈췄다. 악수라는 의례가 상대에게 있는지도 몰랐다.

고개만 숙였다.

네마르-6도 비슷한 각도로 몸을 기울였다.

함교로 돌아온 뒤 마리안이 처음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땠어?”

그녀는 기록을 닫았다.

“생각보다 정상적입니다.”

뒤에서 오르테가가 중얼거렸다.

“그게 제일 실망스럽군요.”

창밖의 접촉구획이 천천히 분리되고 있었다.

회담 직후 가장 먼저 공개된 건 대단절 자료가 아니었다.

D-449를 제외한 세 회랑의 잠정합의였다. 대단절 관련 기록은 최고등급으로 묶였고, 통상협상도 아직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본 건 결국 민간개척권 두 곳을 중단하고 한 곳을 공동조사한다는 행정문서였다.

본토 반응은 예상대로 갈렸다.

성계거래소에서는 해당 기업 주가가 떨어졌고, 개척업계는 “루멘이 제국 민간개척을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불평했다. 반대로 보험업계는 위험정보를 받게 된 것만으로 장기손실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하원 외교위원회에서는 더 직접적인 질문이 나왔다.

“루멘이 제국 위에 있습니까?”

마리안이 귀환하기도 전 원격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저쪽 규칙에 맞춰 개발을 멈춥니까?”

“그 규칙이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있고, 우리 조사도 위험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한 의원이 끼어들었다.

“그럼 루멘이 아니라 우리 과학원 말을 따른 거군요.”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답이 의외로 논란을 줄였다.

상원은 더 실용적이었다.

루멘이 제국을 ‘확장성이 높은 정치단위’로 평가했다는 문장이 알려지자 몇몇 의원이 불쾌해했다. 반면 변경권역 출신 상원의원 하나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가 실제로 확장성이 높지 않습니까?”

회의장이 잠깐 조용해졌다.

맞는 말이었다.

그 의원은 이어서 물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저들이 뭘 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었다.

마리안은 “다음 회담에서 확인하겠다”고만 했다.

루멘은 반대로 로하르와 세르마크 사례에 관심을 보였다.

왜 어떤 보호국은 수십 년 뒤 정식령으로 들어오고, 어떤 곳은 그대로 남는가.

왜 감독국은 중앙의회 의석이 없는데 보호국은 있는가.

왜 제국은 자기보다 약한 정치단위의 왕실을 없애지 않는가.

제국이 공개한 행정자료를 읽은 루멘 연구자는 질문을 보냈다.

[로하르 왕실 존속의 기능적 이익.]

외교원 초안은 지나치게 건조했다.

[문화적 안정과 행정비용 감소.]

내가 한 줄을 추가했다.

[주민 다수가 남기길 원했다.]

마리안은 그 문장을 그대로 보냈다.

루멘의 답은 없었다.

나중에 세라티 결절을 방문했을 때야 그들이 왜 질문했는지 알게 된다. 루멘에도 정치권력은 잃었지만 지역정체성으로 남은 오래된 기능집단이 있었다.

회담 마지막 밤에는 공식 만찬 비슷한 자리가 열렸다.

네마르-6은 음식 대신 벽면 단자에 은빛 섬유를 연결해 에너지를 보충했고, 다른 루멘 대표 하나는 작은 액체용기 전체를 서서히 색 변화시키며 영양을 섭취했다.

오르테가는 관찰을 멈추지 못했다.

“저 액체 전체가 개체입니까, 아니면 몸 일부입니까?”

마리안이 낮게 말했다.

“식사 끝나고 물어보십시오.”

상대 대표가 먼저 통신했다.

“질문 가능.”

오르테가는 바로 물었다.

답은 더 복잡했다.

“현재 용기 내부의 63퍼센트가 지속개체 구성. 나머지는 교환가능 매질.”

오르테가는 행복해졌다.

카시안은 더 불편해졌다.

“어디까지가 신체인지 모르면 보안검색을 어떻게 합니까.”

그 질문에는 루멘도 잠깐 침묵했다.

정상회담에서 예상하지 못한 실무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회담이 끝난 뒤 네마르-6은 작은 데이터패킷 하나를 별도로 보냈다.

공식문서가 아니라 참고자료였다.

과거 관리질의 사례 일곱 건의 결과만 정리된 표.

단절 뒤 재발견된 정치단위들 가운데 하나는 원래 정부를 유지했고, 하나는 군정으로 변했고, 둘은 여러 정부로 갈라져 있었다. 어떤 지역은 원래 국민이 귀환한 본국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복원은 발견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남방연합권에서 이미 겪은 문제였다.

나는 자료를 세라에게도 보냈다.

답장은 짧았다.

[복원항로국에 공유 가능한 범위를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대단절의 미스터리가 외교문서 한 장을 넘어 현재 행정으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함교 창밖에서 루멘 접촉구획이 점점 멀어졌다. 누군가의 초월적 궁전 같은 건 없었다. 정비등이 켜진 연결구와 작업선 몇 척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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