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81화 — 얼굴 없는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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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프 첫 공식회담은 그들의 외곽성계 ‘이오라-3’에서 열렸다.
제국 대표단.
마리안.
오르테가.
인공지능윤리원장.
정보원.
군 대표.
황제는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배웠다.
◆세레프가 준비한 회담장은 행성도 우주정거장도 아니었다.
거대한 연산구조물 내부.
물리공간은 단순했다.
의자.
탁자.
창문 없음.
문제는 상대 대표.
얼굴이 없었다.
홀로그램 세 개.
하나는 인간형.
하나는 기하학적 빛.
하나는 소리만.
마리안이 물었다.
“세 분입니까?”
[하나이면서 셋.]
통역기가 잠시 멈췄다.
◆세레프는 생물지성체와 AI가 공동정치했다.
첫 대표.
아델 세렌.
생물지성체.
둘째.
‘노드-칼릭스’.
인공지성 집합체.
셋째.
‘합의체 7’.
여러 도시의 연산의지를 임시통합한 정책AI.
우리 기준으로는 복잡했다.
그들 기준으로는 평범한 대표단.
◆마리안이 먼저 물었다.
“누가 최종결정권을 가집니까?”
아델이 답했다.
“의제마다 다릅니다.”
“외교조약은?”
“생물의회와 연산의회 공동승인.”
“군사?”
“비상합의핵.”
“경제?”
“대부분 자동분산.”
제국 관료들이 메모했다.
국가가 다르면 ‘정부’라는 단어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세레프가 제일 먼저 보여준 건 대단절 기록이었다.
312년 전.
아틀라스 본토는 지금과 다른 좌표에 있었다.
그들은 장거리 센서로 제국 신호를 간접관측했다.
그리고 30여 년 전.
정확히 대단절 시점.
신호가 끊김.
47초.
다시 다른 좌표에서 비슷한 문명신호 등장.
우리 기록과 맞았다.
◆오르테가가 숨을 삼켰다.
“좌표를 주십시오.”
[교환조건.]
“무엇을 원합니까?”
[대단절 당시 아틀라스 내부센서 원본.]
당연한 요구.
제국도 일부 제공 가능.
전략군사자료는 가림.
협상 시작.
◆세레프는 대단절을 ‘국소 인과단절’로 분류했다.
공간이동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위치변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선택적 연속성 손실.]
정확했다.
본토 안 비아틀라스 지성체 실종.
본토 밖 아틀라스인 실종.
지리와 종족이 동시에 섞인 선택.
세레프도 이해 못 했다.
◆“원인은?”
오르테가가 물었다.
[불명.]
상황이 조금 김 빠졌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를 더 알고 있었다.
[사건 직전 0.8초, 본토권 외곽에서 비정상적 정보밀도 증가.]
“무슨 뜻입니까?”
[공간보다 정보구조가 먼저 변함.]
제국 과학자들이 조용해졌다.
◆세레프 설명은 어려웠다.
물질이 이동하기 전에.
‘어떤 것이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가 재작성된 흔적.
본토.
아틀라스인.
행정망.
통신.
정체성.
그중 무엇이 선택기준인지 모름.
그들은 ‘인과필터’ 가설을 세웠다.
◆나는 황궁에서 실시간 보고를 봤다.
시스템 기억이 떠올랐다.
본토.
외곽령.
보호국.
게임의 행정분류.
혹시.
현실의 인과필터가 행정분류를 읽었다면?
너무 위험한 추측.
증거 없음.
나는 메모만 했다.
◆세레프 기술평가도 시작됐다.
AI.
VIII급 이상.
센서.
VIII.
정보압축.
VIII.
에너지.
VII.
함선.
VII.
산업.
VII-.
인구.
VI급 규모.
군사량.
작음.
총체.
VII 상위.
예상대로.
◆오르테가가 말했다.
“특정기술은 우리보다 낫습니다.”
군 대표가 답했다.
“전쟁하면 이깁니다.”
둘 다 맞았다.
세레프는 제국을 파괴할 국가가 아니다.
대신 제국도 모르는 걸 아는 국가.
그게 훨씬 가치 있을 수 있다.
◆세레프는 우리 평가체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귀국은 우리를 장기보호국 후보로 분류했는가.]
마리안은 잠깐 멈췄다.
거짓말하지 않았다.
“가능성은 검토대상입니다.”
[현재는?]
“독립유지가 제국에 더 유리.”
세레프 홀로그램의 빛이 변했다.
웃음 같은 건지.
모르겠다.
◆아델 세렌이 말했다.
“그 답을 예상했습니다.”
“불쾌합니까?”
“예.”
“그래도 회담은?”
“귀국 정보가 필요합니다.”
서로 똑같았다.
싫어도 필요하면 대화한다.
◆첫날 합의.
대단절 데이터교환.
AI·센서 비전략 공동연구.
상호 사이버비침투 원칙 협상 개시.
군사정보 제한.
영토문제 논의 안 함.
◆회담 종료 직전 노드-칼릭스가 말했다.
[귀 제국은 우리를 작다고 평가한다.]
마리안이 답했다.
“국가규모는 작습니다.”
[정확하다.]
[그러나 작은 것은 약함과 동일하지 않다.]
“동의합니다.”
세레프는 그 답을 마음에 들어 한 듯했다.
◆제국은 새로운 종류의 상대를 만났다.
함대수로는 약하다.
정보에서는 강하다.
영토는 작다.
역사는 오래다.
그리고 대단절을 우리보다 더 멀리서 봤다.
완전한 동급은 아니다.
그러나.
함포보다 먼저 질문해야 할 문명.
그게 세레프였다.
◆세레프 회담 첫날에는 의전사고도 있었다.
제국 측이 생물인 대표 아델 세렌에게만 공식좌석을 준비한 것이다.
노드-칼릭스는 물리적 몸이 없었다.
합의체 7도 홀로그램.
세레프 측은 조용히 물었다.
[좌석이 없는 대표는 대표로 인정되지 않는가.]
마리안은 바로 사과했다.
다음 회담부터 빈 의자 두 개가 추가됐다.
앉을 사람은 없지만.
대표자리.
상징은 물리적 몸이 없어도 필요했다.
◆본토 의전원은 이 사건으로 새 규칙을 만들었다.
비생물지성 외교대표.
분산지성.
군체지성.
원격지성.
대표성이 물리적 개체수와 같지 않을 수 있음.
우주가 넓어질수록 의전도 철학이 된다.
◆세레프는 제국 황제제를 아주 흥미롭게 봤다.
[하나의 생물개체에게 최종권한이 집중.]
노드-칼릭스 표현.
“맞습니다.”
마리안이 답했다.
[실패위험이 높지 않은가.]
“그래서 관료제와 의회가 있습니다.”
[그래도 최종결정은 하나.]
“예.”
세레프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이고 위험해 보였다.
그들은 합의와 분산을 선호.
우리는 결단과 연속성을 선호.
◆반대로 제국 관료는 세레프 의사결정 속도에 답답함을 느꼈다.
외교문구 하나.
생물의회.
연산의회.
합의체.
윤리검토.
몇 시간.
간단한 수정도.
세레프는 말했다.
[빠른 결정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마리안이 답했다.
“느린 결정이 항상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서로 맞는 말.
◆대단절 데이터 교환에는 가장 민감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제국 신원망 원본.
30년 전 시민 위치.
종족.
가족.
의료데이터 일부.
세레프는 분석에 필요하다고 했다.
본토 개인정보법과 충돌.
황제명령으로 넘길 수도 있다.
나는 안 했다.
익명화.
식별자 제거.
최소필요정보만.
◆세레프 AI는 불만.
[정보손실.]
“시민 사생활도 정보야.”
[사건규명보다 우선하는가.]
“항상은 아니지만 이번엔.”
대단절 미스터리가 크다고.
7조 시민 기록을 통째로 외국 인공지능에게 줄 이유는 없다.
◆세레프는 그 결정을 존중했다.
그리고 자기 시민 데이터도 같은 수준으로 익명화해 제공.
신뢰는 상대가 선을 그을 때 더 잘 생길 수도 있다.
◆군 대표는 세레프 방어망을 봤다.
함대는 적다.
대신 성계 전체 센서.
무인방어.
분산연산.
침입자를 매우 일찍 본다.
“정복 쉽다는 평가 수정해야겠군요.”
라울에게 보고.
라울은 답했다.
“이기는 건 쉽고 숨는 걸 잡는 건 어렵다.”
정확했다.
◆세레프는 물리적 전쟁에서 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국가가 함대와 수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AI 인격 수십억이 분산백업.
외부망.
비밀노드.
전쟁에서 영토를 점령해도.
세레프라는 문명을 완전히 끝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전략원은 정복비용 모델에 새 항목을 추가했다.
[정보적 잔존성.]
국가가 패배한 뒤에도 얼마나 오래 저항·존속 가능한가.
세레프 최고등급.
◆오르테가는 회담 쉬는 시간에 노드-칼릭스와 과학얘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대단절.
20분 뒤 우주론.
한 시간 뒤 둘만 알아듣는 수학.
마리안이 끊었다.
“외교회담 중입니다.”
오르테가는 아쉬워했다.
노드-칼릭스는 말했다.
[외교보다 생산적인 대화였다.]
마리안 표정이 굳었다.
AI도 무례할 수 있었다.
◆첫날 저녁.
생물인 대표단만 식사를 했다.
AI 대표는 식사 대신 연산시간.
제국 측은 그들에게 ‘만찬 참석’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
결국 홀로그램은 그대로 참석.
음식을 먹진 않지만 대화.
외교는 식사보다 같은 시간에 있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아델 세렌이 말했다.
“귀국은 생각보다 우리를 불편해하지 않는군요.”
마리안이 물었다.
“왜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까?”
“AI를 도구로 보는 문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부 AI는 도구입니다.”
“일부는?”
“사람입니다.”
세레프는 그 구분에 관심.
우리도 세레프의 넓은 인격범위를 배웠다.
서로 예상보다 가까운 부분도 있었다.
◆회담 첫날이 끝났을 때.
대단절 답은 아직 없었다.
기술협정도.
조약도.
그런데 서로를 ‘이상한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단계는 넘어갔다.
이해할 수 없는 문명에서.
다르게 작동하는 문명으로.
첫 접촉은 그 정도면 성공이었다.
◆세레프 대표단은 황제에게도 질문서를 보냈다.
[귀하는 자신의 권력을 어떤 근거로 정당화하는가.]
정치학 강의 같은 질문.
나는 짧게 답했다.
[법과 역사, 그리고 제국이 아직 나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노드-칼릭스는 재질문.
[시민 다수가 거부한다면.]
[그때는 문제를 해결해야겠지.]
[퇴위?]
나는 잠깐 웃었다.
[경우에 따라.]
황제라고 영원히 자동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제국은 군주국이지만 체제안정도 결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유지된다.
◆세레프는 그 답변을 공개해도 되는지 물었다.
허용.
본토에서 토론이 커졌다.
일부 황실충성파는 “퇴위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불편해했다.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정치체제는 현실이다.
신앙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세레프에 물었다.
“AI가 다수결로 생물인을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리면?”
노드-칼릭스가 답했다.
[헌정적 금지.]
“위기 때는?”
[비상합의 필요.]
“누가 거부권?”
[생물의회, 연산의회, 윤리핵 중 둘 이상 동의.]
복잡했다.
그러나 그들도 권력폭주를 막는 장치를 만들었다.
형태가 다를 뿐.
◆세레프 대표단은 제국 황실근위에도 관심을 보였다.
[황제 개인보호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투입.]
카시안이 불쾌해했다.
“황제가 사망하면 국가위기입니다.”
AI는 계산했다.
[분산통치가 더 안전.]
카시안이 답했다.
“그건 정치제도 바꾸라는 말입니다.”
[맞음.]
대화 종료.
서로 끝까지 동의 못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게 정상이다.
◆첫 회담 마지막날.
세레프는 제국측 모든 대표에게 개인별 피드백을 제공했다.
마리안.
[협상성향: 신중, 예측가능.]
오르테가.
[정보욕구 과도.]
오르테가는 만족해했다.
군 대표.
[위협평가 과도.]
군 대표는 불만.
정보원.
[정보은닉 다수.]
에일린 측 대표는 답변 거부.
세레프는 사람을 숫자로 보는 습관이 있었다.
제국은 그 평가를 참고만 했다.
◆마리안이 귀환보고 마지막에 썼다.
[세레프는 기술적으로 친숙하면서 사회적으로 가장 낯선 문명.]
맞았다.
함선과 센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이면서 셋’인 대표가 더 어려웠다.
외교는 결국.
상대 기술보다 상대가 자신을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