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71화 — 같은 이름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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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케시가 보내온 고대군사기록은 예상보다 많았다.
전체 1만 8천 건.
그중 ‘버그’와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기록 312건.
문제는 번역이었다.
바르케시 고대어에서 해당 단어는 ‘갉아먹는 무리’, ‘검은 번식체’, ‘벌레’가 섞인 의미였다.
정말 같은 존재인지.
단순히 우주생물을 벌레라고 부른 건지.
과학원장 오르테가 칼리스가 말했다.
“단어만 같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맞았다.
그래서 형태부터 봤다.
◆첫 영상.
기록연대 1,900년 전.
바르케시 변경전투.
검은 생체함.
금속을 덮는 유기막.
무인전투체를 흡수해 형태를 바꾸는 개체.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억 속 버그와 비슷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게임에서는 더 단순했다.
적색 표식.
군집체.
증식.
현실은 더 복잡했다.
◆바르케시 기록에는 세 종류가 등장했다.
기생체.
함선형.
‘모체’라 불린 거대한 생체구조.
그리고 마지막.
[지휘하는 개체가 존재할 가능성.]
오르테가가 화면을 멈췄다.
“하이브 지능.”
라울이 말했다.
“우리 기록과 유사합니다.”
대단절 이전 제국 군사기록에도 버그 군집지휘체계는 있었다.
다만 직접조우 기록은 조각뿐.
게임 기억은 더 많지만.
그걸 회의에서 꺼낼 수는 없다.
나는 실제 기록만 봤다.
◆바르케시는 그 전쟁을 이겼다.
정확히는 몰아냈다.
변경 17개 성계 상실.
행성 3개 완전생태붕괴.
사망자 약 90억.
그들 역사에서는 ‘제2흑번식전쟁.’
지금의 바르케시 군사주의가 강화된 계기 중 하나였다.
카르 황태자는 말했다.
[우리는 놈들이 다시 올 거라 생각해 군대를 유지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 사회도 실제 상처가 있었다.
◆제국은 자기 기록을 공개했다.
대단절 이전 봉인기록 중 일부.
유사 생체함.
금속침식.
포식성 군집.
바르케시 분석관들이 놀랐다.
양쪽 기록 사이 공통점 43개.
차이 27개.
완전 동일종 확정 불가.
그러나 같은 생태군 또는 계통 가능성 높음.
◆카르가 물었다.
“귀국은 최근에도 본 적 있소?”
나는 X-41 밤의 천사 자료 일부를 공개했다.
그는 영상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기록의 버그와 다르오.”
“우리도 그렇게 봐.”
“하지만?”
“인공 유전자 흔적이 있고, 일부 군집통신 구조가 닮았어.”
카르가 잠시 생각했다.
“전초생물일 수도 있겠군.”
오르테가가 말했다.
“가능성입니다.”
전초.
정찰.
생태개조.
게임에서는 없었던 개념.
현실 버그가 훨씬 복잡할 수 있다는 증거.
◆양국은 공동분류체계를 만들었다.
버그 확정체.
버그 유사체.
미확인 생체위협.
밤의 천사는 일단 두 번째.
확정체가 아니다.
공포 때문에 모든 검은 우주생물을 버그라 부르면 정보가 망가진다.
◆바르케시는 자기 기록에서 버그가 나타나기 전 징후도 공개했다.
상선 실종.
통신잡음.
소행성대 생체물질.
저등급 생물군 급증.
X-41과 겹친다.
오르테가는 표정을 굳혔다.
“패턴이 너무 비슷합니다.”
◆나는 질문했다.
“바르케시 버그전쟁 전에 이런 밤의 천사 같은 생물이 있었나?”
카르가 기록을 확인했다.
[있었소.]
화면에 오래된 스케치가 떴다.
날개 없는 검은 생물.
라사드 ‘밤의 천사’와 형태 유사도 61퍼센트.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럼 X-41은 단순 우주생물 서식지가 아닐 수 있다.
과거 버그 침공 전 단계와 유사한 생태변화.
아직 수백 년 앞일 수도.
이미 시작됐을 수도.
아무도 모른다.
나는 즉시 명령했다.
X-41 감시등급 상향.
200광년에서 800광년으로 탐지망 확대.
인근 보호국 생체검역 강화.
그러나 대중에 ‘버그 전조’라고 발표하지는 않는다.
증거가 부족하다.
◆카르는 말했다.
[귀국도 겁먹는 게 있군.]
“당연하지.”
[뜻밖이오.]
“황제라고 우주보다 세진 않아.”
그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제국을 이끈다.
국가가 강할수록 겁내야 할 것도 커진다.
◆공동기록 분석에서 더 오래된 자료가 나왔다.
바르케시보다 이전.
그들이 정복한 고대국가 유적.
약 5천 년 전.
벽화.
검은 군집.
그리고 은색 함선.
오르테가가 확대했다.
은색 함선 형태가.
제국 고대 탐사함과 비슷했다.
“또 아틀라스?”
확정 불가.
하지만 시기가 제17심외탐사단보다 더 오래됐다.
◆나는 개인기록에 적었다.
[버그와 아틀라스의 접점이 4천 년보다 오래됐을 가능성.]
구향성.
옛 탐사.
대단절.
버그.
조각들이 너무 멀리 흩어져 있다.
아직 그림은 안 보인다.
하지만 서로 완전히 무관한 조각은 아닐 수 있다.
◆양국은 ‘생체위협 정보협정’을 체결했다.
군사동맹 아니다.
상호방위도 아니다.
버그 계통 위협 발견 시 자료공유.
감염선박 검역.
경보.
필요하면 공동연구.
바르케시와 처음 맺는 실질협력.
◆카르가 서명 뒤 말했다.
[우리가 언젠가 싸우더라도 버그가 나타나면 이 협정은 지키길 바라오.]
“동의.”
[적과도 같은 적을 가질 수 있군.]
“우주가 넓으니까.”
양 제국은 서로를 경계했다.
그런데 더 오래된 적 하나가.
잠깐 우리를 같은 편으로 만들었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직 몰랐다.
◆버그 기록 공동분석을 위해 바르케시 연구진이 아우렐리움에 왔다.
군사과학자.
생물학자.
전사연구관.
그들은 수도 규모에 놀랐고.
우리 연구자들은 바르케시가 보존한 전쟁자료에 놀랐다.
1,900년 전 함교음성.
병사 개인일지.
손상된 생체함 표본.
바르케시는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썼다.
◆한 바르케시 연구관이 말했다.
“우리는 버그를 역사적 적으로 가르칩니다.”
오르테가가 물었다.
“아이들에게도?”
“초등교육부터.”
“공포를 키우지 않습니까?”
“망각보다 낫다고 봅니다.”
제국은 다르게 했다.
버그는 대단절 이전 기록 속 희미한 위협.
본토 시민 대부분에게는 실감 없는 역사.
어느 방식이 맞는지.
아직 모르겠다.
◆공동연구실에서는 문화충돌도 있었다.
바르케시 과학자는 실험 샘플 앞에서 전사자 이름을 읽는 짧은 의식을 했다.
제국 연구자는 처음엔 비과학적이라고 봤다.
그런데 그 의식은 실험절차를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르케시 연구자에게 집중의식 역할.
오르테가는 금지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바꾸지 않는 한 상관없습니다.”
제국의 세속주의는 종교나 의식을 없애는 게 아니라.
과학판단과 섞이지 않게 하는 방식이었다.
◆바르케시 기록에는 버그 포로가 없었다.
잡히면 죽는다.
자폭.
붕괴.
생체조직은 남아도 지휘개체는 생포 실패.
제국도 마찬가지.
오르테가는 살아 있는 지휘개체를 잡고 싶어 했다.
아델라인은 말했다.
“잡는 날 연구소 행성 하나 비워드리죠.”
“진심입니까?”
“우리 본토에서는 하지 마십시오.”
과학과 군사의 합의가 점점 구체적이 됐다.
◆버그 생태계의 가장 두려운 부분은 ‘학습’이었다.
바르케시가 열무기를 많이 쓰자.
몇십 년 뒤 내열개체 증가.
전자전.
그 뒤 차폐조직.
완전한 진화인지.
인공설계인지.
하이브 의식의 선택인지.
불명.
그러나 상대가 적응한다는 건 분명했다.
◆나는 군사회의에서 물었다.
“그럼 완벽한 버그무기 만들 수 있어?”
라울이 답했다.
“완벽하면 한 번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처음엔 잘 듣는다.
다음엔 적응.
버그전은 기술하나로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계속 바꿔야 한다.
◆제국은 ‘순환무장교리’를 만들었다.
열.
입자.
중력.
공간절단.
생체소각.
무인기.
같은 무기를 반복하지 않는다.
보호국군에는 간소화버전.
바르케시도 자기식 교리를 공유.
강대국끼리 처음으로 실제 생존전술을 교환했다.
◆본토 일부는 버그공포를 과장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침공은 없음.
수십 년간 유사체 몇 건.
예산증가.
정당한 질문.
황실은 예산을 무제한 늘리지 않았다.
감시망과 연구 위주.
함대 대증강은 보류.
공포가 국가를 먹어치우게 둘 생각도 없었다.
◆카르는 그 점을 의외로 봤다.
[우린 비슷한 기록 후 군비를 크게 늘렸소.]
“그래서 지금 군사제국 된 거 아냐?”
[후회하오?]
“아니. 자네들 방식은 자네들 역사에 맞지.”
제국은 다른 나라의 상처를 자기 정책근거로 그대로 복사하지 않는다.
◆양국 연구협정은 100년으로 체결됐다.
바르케시 기준 긴 기간.
아틀라스 기준 중기.
기간 차이 때문에 갱신조항도 달랐다.
50년 중간검토.
100년 자동연장 없음.
◆카르가 농담했다.
[100년 뒤에도 당신이 황제일 가능성이 높겠군.]
“자네는?”
[살아 있으면 운이 좋겠지.]
수명 차이.
친분에도 끝이 다르게 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마음이 무거웠다.
제국의 장수명은 외교관계에서도 상실을 더 많이 본다는 뜻이었다.
◆버그보다.
가끔은 시간이 더 오래된 적처럼 느껴졌다.
◆공동연구 결과는 보호권역에도 교육자료로 내려갔다.
단, 공포를 줄이기 위해 단계별 공개.
학교에는 생체위협 일반교육.
군에는 구체적 전술.
과학자에게는 유전자 데이터.
모두에게 같은 정보를 뿌리지 않았다.
정보도 용도에 맞춰야 한다.
◆라사드에서는 바르케시 전쟁기록을 보고 기존 종말론이 다시 커졌다.
별황제회는 말했다.
[황제가 오래된 어둠과 싸울 준비를 한다.]
황실은 또 부인.
전통사제 아몬은 오히려 말했다.
[적이 실재한다고 신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사회가 과학정보를 자기 방식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세르마크에서는 전쟁영웅 문화가 버그 대비와 결합했다.
옛 로하르전쟁 영웅 대신.
카스르-9 바르케시 방어자들의 이야기가 번역.
새로운 군인상.
정복보다 방어.
국가가 어떤 영웅을 선택해 가르치느냐도 문화개혁이었다.
◆본토에서는 바르케시 전쟁영화가 수입됐다.
전투는 거칠고.
희생이 많고.
제국 시민은 신기해했다.
일부는 지나치게 낭만화됐다고 비판.
바르케시 시민은 제국 전쟁영화를 보고 반대로 말했다.
[왜 아무도 안 죽나.]
문화교류가 군사철학까지 드러냈다.
◆나는 두 나라 영화를 하나씩 봤다.
바르케시 영화는 주인공 절반이 죽었다.
제국 영화는 구조선이 더 많이 나왔다.
세라가 물었다.
“어느 쪽이 낫습니까?”
“둘 다 너무 길어.”
그녀는 한숨 쉬었다.
황제에게 문화평론 능력까지 기대하면 안 된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