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61화 — 카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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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 연방과의 첫 회담은 중립성계 라테르에서 열렸다.
무인행성 하나.
궤도정거장 하나.
양측 호위함 숫자는 12척씩.
숫자만 같았다.
실제 전력은 같지 않았다.
외교장관 마리안 세르는 그 차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상대 체면을 살리는 비용이 싸다면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이었다.
형식은 상대 자존심을 위해 존재할 때도 있었다.
◆카론 대표단은 네 명이 중심이었다.
외무장관 에란 모이르.
연방함대원수 사렌.
고기록원장 릴라 아르켄.
상무대표 벨로스 타인.
사렌은 얼마 전 변경에서 우리 탐사단과 대치했던 바로 그 지휘관이었다.
그는 회담장에 들어오자 내 자리가 비어 있는 걸 확인했다.
“황제는 오지 않았습니까?”
마리안이 답했다.
“이번 회담은 외무장관급입니다.”
“우리 연방은 최고위 대표를 보냈습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사렌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카론이 처음으로 체감한 격차는 함포가 아니라 의전이었다.
그들에게 국가최고위급인 인사가.
우리에게는 황제를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첫 의제는 당연히 ‘아틀라스 항로’ 기록.
릴라 원장은 원문 사본을 가져왔다.
4,127년 전.
카론 전신국가의 항해일지.
문장.
[서쪽 먼 별에서 온 은빛 함대가 아틀라스 항로를 따라 지나갔다.]
[그들은 거래를 원하지 않았고, 별지도를 교환한 뒤 떠났다.]
나는 황궁에서 실시간으로 자료를 봤다.
문제는 우리 기록이었다.
해당 시기 제국 외부탐사자료에는 카론 방향 원정이 없다.
“위조 가능성?”
정보원장 에일린 아르카가 말했다.
“낮습니다. 기록매체 연대와 문체가 일치합니다.”
“그럼 누락?”
“가능성.”
4천 년 전.
제국에게도 오래된 과거.
기록이 완벽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아틀라스 항로’라는 표현은 너무 정확했다.
◆카론은 대가를 요구했다.
“우리 기록을 전부 공개하는 대신 귀국도 동등한 역사자료를 공개하십시오.”
마리안이 물었다.
“어떤 자료를 원합니까?”
“아틀라스 제국의 건국기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구향성.
대항행.
아우렐리움 정착.
공개정보 범위는 존재했다.
문제는 정확한 기원을 우리도 모른다는 점.
마리안은 그대로 말했다.
“저희도 모릅니다.”
카론 대표단이 처음으로 당황했다.
“귀국이 자기 모성을 모른다고요?”
“예.”
“그런 문명이 존재합니까?”
“여기 있습니다.”
릴라 원장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역사적으로 훨씬 오래된 국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맞다.
13,000년.
카론 연방은 약 2,100년.
전신국가 포함 5,000년 정도.
그런데 자기 기원을 모르는 13,000년 제국.
그들에게는 기묘했다.
나는 개인통신으로 마리안에게 말했다.
“너무 설명하지 마.”
“알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걸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였다.
◆카론은 군사문제도 바로 꺼냈다.
“귀국은 엘리시온 전역을 사실상 종속시켰습니다.”
마리안이 정정했다.
“보호국·감독국·개도보호국입니다.”
“표현이 다를 뿐 외교·군사는 귀국이 통제합니다.”
“맞습니다.”
에란 외무장관이 물었다.
“카론에도 같은 질서를 요구합니까?”
마리안은 답하지 않고 황실 지침을 따랐다.
“현재 회담 의제는 상호관계 설정입니다.”
“현재.”
에란이 그 단어를 반복했다.
아르카디아 리에나도 싫어했던 단어.
이제 카론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카론은 자신들이 ‘완전한 주권강국’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제국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 VII급 지역강국이었다.
그들의 함대 9만 척은 엘리시온 전체를 압도할 수 있다.
산업도.
인구도.
기술도.
다만 제국과 비교하면 다르다.
아틀라스 정규함대 일부 대권역 전력만으로도 카론 전체와 맞설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굳이 테이블 위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숫자는 필요할 때 보여주면 된다.
◆경제의제는 오히려 잘 풀렸다.
카론은 중공업제품을 팔고 싶어 했다.
우리는 고밀도 합금 제조법과 중력환경 공정에 관심.
그들의 선박엔 제국에는 드문 장점이 있었다.
저비용.
수리편의.
대량생산.
성능은 낮아도 변방 보호국에는 오히려 적합할 수 있다.
상무원은 시험수입을 승인했다.
카론은 제국 의료장비와 에너지저장기술을 원했다.
전략등급 아래에서 교환 가능.
거래는 빠르게 진행됐다.
상대가 쓸 만하다는 판단이 끝난 뒤에는 일부러 시간을 끌지 않았다. 시험수입, 공동검증, 군사교류 담당부처를 그날 안에 지정했고 예산도 기존 외부권역 기금에서 바로 열었다. 몇 달 더 회의를 한다고 제국이 얻을 정보가 늘어나는 단계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사렌 원수가 마지막에 군사교류를 제안했다.
“합동훈련.”
아델라인이 황궁에서 바로 말했다.
“받죠.”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좋아해?”
“VII급 함대는 처음입니다.”
“장난감 생겼네.”
“상대에게 무례한 표현입니다.”
본인이 더 기대하고 있었다.
◆합동훈련은 3개월 뒤.
규모는 제한.
카론 1,200척.
제국 120척.
카론은 숫자차이를 보고 웃었다.
“자신 있군요.”
아델라인은 답했다.
“필요한 만큼입니다.”
훈련은 전면전이 아니라 항로방어.
상선군 보호.
적성군 가상침공.
카론은 조직력이 좋았다.
지휘망도.
포격정확도도.
엘리시온 군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 20분 동안 제국 일부 구축함이 실제로 압박을 받았다.
본토 시청자들은 흥미로워했다.
“드디어 제대로 싸우네.”
그 반응이 너무 여유로워 카론 측이 불쾌해할 정도였다.
◆결과.
제국 승.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아델라인 평가.
[카론은 VII급 중상위.]
[지휘관 수준 양호.]
[고중력함대 교리 우수.]
[장기전 보급 취약.]
카론 쪽 평가.
[아틀라스 함대는 전력비교가 불가능.]
[함선 한 척당 전투력 추정치 재산정 필요.]
사렌은 훈련 뒤 말했다.
“이제 왜 아르카디아가 싸우지 말라고 했는지 알겠습니다.”
아델라인이 답했다.
“우리는 싸우자고 한 적 없습니다.”
“그게 더 불편합니다.”
◆훈련에서 카론은 우리에게 하나를 보여줬다.
‘압력파 장갑’.
물리탄과 미세운석 충격을 분산하는 구조.
제국 방어막보다 수준은 낮았지만 대량생산성이 좋았다.
변경 개척선에 적용 가치가 있었다.
기술협상이 시작됐다.
그 대가로 카론은 제국의 비전략 의료나노기술 일부를 요구.
협상 가능.
또 배울 게 있었다.
◆나는 카론 평가표를 다시 봤다.
VII급.
강하다.
유능하다.
자존심도 있다.
당장 보호국화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외부 강대국으로 두고.
오르비스와 바르케시 정보를 얻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카론이 제국 전략권 깊숙이 들어온다면.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회담 마지막 날.
릴라 원장이 마리안에게 비공개 자료 하나를 건넸다.
‘아틀라스 항로’ 기록의 뒷부분.
공개본에는 없던 문장.
[은빛 함대는 자신들이 돌아갈 길을 찾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문장에서 멈췄다.
돌아갈 길.
어디로.
구향성?
옛 제국탐사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건.
4천 년 전의 아틀라스 함대도.
길을 잃고 있었던 걸까.
대단절보다 훨씬 이전부터.
제국 역사에는 빈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카론 대표단은 회담 둘째 날 제국의 인구구조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아틀라스인 평균수명 약 천 년.
교육기간 수십 년.
한 명의 장교가 카론 장교 셋의 경력을 합친 것보다 오래 복무할 수 있다.
사렌은 말했다.
“그럼 귀국은 경험을 세대교체로 잃지 않는군.”
“대신 굳은 사람도 오래 남습니다.”
라울이 답했다.
장수는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다.
잘못된 교리도 오래 산다.
낡은 귀족도.
무능한 관료도.
제국이 정기심사와 가문명 박탈, 보직순환을 강하게 운용하는 이유였다.
카론은 그 설명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도 장성층 고령화였다.
수명은 짧지만 권력은 오래 남는다.
결국 문명마다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고기록원장 릴라는 아우렐리움 기록원의 공개자료를 요청했다.
4천 년 전 탐사연표.
당시 황제명.
제국지도.
우리는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제공했다.
그녀는 자료를 읽다가 한 지점에서 멈췄다.
“이 별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원 분석관도 확인했다.
옛 제국지도에 있던 항성.
현재 동일좌표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단절 때문이라고 하기엔 4천 년 전 지도다.
오차라고 보기엔 당시 제국 천문기술이 너무 높다.
새로운 의문.
우리가 잃은 건 30년 전 지도뿐이 아닐 수도 있다.
◆카론의 옛 항해일지에도 현재 없는 별이 여러 개 있었다.
양쪽 기록을 비교하자 일부가 일치했다.
“항성이 실제로 사라졌나?”
오르테가가 물었다.
“초신성 흔적이 없습니다.”
“좌표체계 변화?”
“그것도 불충분합니다.”
우주는 예상보다 더 많이 변했거나.
우리가 공간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
◆나는 카론과 공동천문연구소 설립을 승인했다.
위치는 중립성계.
카론 연구자.
제국 연구자.
아르카디아 항법전문가도 일부 참여.
처음으로 세 문명이 같은 문제를 연구했다.
제국이 훨씬 강해도.
데이터는 각자 다르게 갖고 있었다.
강한 국가가 모든 기록까지 가진 건 아니다.
◆카론 군사대표는 제국 함대연령에 이어 장교연령에도 놀랐다.
아델라인 400세 이상.
라울 500세 이상.
그들에게는 사실상 전설 속 인물이 현역으로 지휘하는 셈.
사렌이 말했다.
“우리 군대라면 역사박물관에 있을 사람들입니다.”
아델라인이 답했다.
“우리도 800세면 고민합니다.”
사렌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 잠시 멈췄다.
◆합동훈련 뒤 카론 함장들이 제국함에 승선했다.
그들은 자동화보다 승조원 대화방식에 놀랐다.
하급장교가 제독에게 직접 질문.
작전전에는 반론.
명령 뒤 즉시 복종.
카론군은 더 위계적이었다.
사렌은 훈련 후 자국군에 토론절차를 일부 도입했다.
제국교리를 복사한 게 아니다.
자기 군대에 맞게 바꿨다.
나는 그걸 긍정적으로 봤다.
배운다는 건 흉내내는 게 아니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반대로 제국군은 카론의 장거리보급방식 하나를 채택했다.
대형보급함 대신 중간거점에 분산된 소형연료창.
파괴되더라도 전체가 마비되지 않는다.
제국은 본토에서 지원망이 워낙 좋아 대형중앙집중에 익숙했다.
먼 변경에서는 카론 방식이 더 안전했다.
라울은 군수규정 개정을 승인했다.
첫 VII급 접촉이 실제 교리변경으로 이어졌다.
◆회담 마지막 날 사렌이 내게 직접 비공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귀국보다 약합니다.]
[그러나 약하다는 이유로 종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답했다.
[그럴 필요 없는 동안은.]
몇 분 뒤.
[그 표현이 문제다.]
카론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틀라스 제국은 상대의 자존심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존심을 국가전략보다 위에 두지도 않는다.
◆릴라 원장은 떠나기 전 말했다.
“고기록을 공동연구하게 된 건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마리안이 답했다.
“저희도.”
“적어도 과거에는 우리가 서로 싸우지 않았던 것 같군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4천 년 전의 아틀라스 탐사대.
카론을 지나.
더 먼 곳으로 갔다.
그들이 남긴 길을.
우리가 다시 따라갈 날이 올 것이다.
이번에는.
돌아올 수 있게.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