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9화 — 침묵의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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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절 30주기.
제국 전체가 멈췄다.
47초.
약 7조에 이르는 본토·정식 제국령 시민.
수백억의 보호권역 주민.
이번에는 처음으로 외국대표도 함께했다.
아르카디아.
로하르.
세르마크.
벨로아.
카르디아.
라사드.
30년 전에는 제국에 없던 사람들.
그들이 사라진 사람을 같이 추모했다.
◆황궁 앞 추모광장에는 빈 의자가 놓였다.
옛 보호국마다 하나.
국가 수십 개.
그리고 이름 없는 외부령을 위한 의자 하나.
국기는 걸지 않았다.
국가가 사라졌다고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문장만.
휴면문장.
30년 동안 보존된 상징.
◆나는 연설하지 않으려 했다.
추모일은 황제 연설보다 침묵이 맞다고 생각했다.
실종자 가족협회가 부탁했다.
“짧게라도.”
그래서 올라갔다.
“30년이 지났습니다.”
아틀라스 수명으로는 길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어디로 갔는지.
왜 사라졌는지.
살아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도 30년 동안 바뀌지 않았습니다.”
좋은 말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뀐 것도 있습니다.”
나는 뒤를 봤다.
로하르 국왕.
세르마크 총리.
벨로아 의장.
라사드 대표.
리에나 메르체.
“30년 전 외계의 목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오늘 이 광장에는 다시 여러 언어가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둘을 혼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고개를 들었다.
◆추모식 뒤 옛 카엘 보호왕국 대사관 문이 30년 만에 열렸다.
돌아온 건 아니었다.
보존점검.
가족협회 요청으로 내부를 처음 공개.
책상.
사진.
컵.
그날 멈춘 일정표.
모든 게 그대로.
리에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저희가 볼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그 판단을 존중했다.
◆한 방에는 아이 그림이 있었다.
카엘 외교관 자녀가 그린 아틀라스 수도.
그 아이도 사라졌다.
당시 나이 43세.
카엘 종족 기준으로 어린이.
지금 살아 있다면 성인.
나는 그림을 오래 봤다.
황제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대단절은 내 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게 가장 싫었다.
◆추모기간 중 새로운 유전정보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옛 보호국 생체샘플과 현재 새 외계종족 비교.
직접 동일종 없음.
즉 로하르나 세르마크가 옛 보호국 후손일 가능성은 낮다.
새로운 우주.
새로운 종족.
옛 사람들은 여전히 따로 어딘가에 있다.
혹은.
없다.
◆대단절 연구원은 30주기에 외부증거 총목록을 공개했다.
아르카디아 대항로 떨림.
별빛 휨 영상.
공명표식기 장애.
X-41 생물군 활동증가.
완전히 연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사건이 본토 내부만의 현상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강해졌다.
“본토가 이곳에 나타난 것일 수 있다.”
가설 지지율이 학계에서 처음 50퍼센트를 넘었다.
◆그러면 질문이 생긴다.
어디서 왔는가.
옛 보호국은 원래 위치에 남았는가.
본토만 떨어져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왜 본토 안 외계인은 사라졌는가.
왜 본토 밖 아틀라스인도 사라졌는가.
공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종족만으로도.
대단절은 여전히 모순이었다.
◆추모식 저녁.
오르 벤카가 대단절 실종자 명부 앞에 꽃을 놓았다.
그는 30년 전 제국인이 아니었다.
세르마크 군인이었다.
이제 시민.
기자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 나라가 됐으니까.”
짧은 답.
본토에서 크게 퍼졌다.
제국 시민권이란.
과거까지 같이 짊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같은 날.
리아 카르멘도 광장에 왔다.
아직 시민이 아니었다.
오르가 물었다.
“또 신청할 거야?”
“언젠가.”
“왜 그렇게 되고 싶어?”
리아는 잠시 생각했다.
“로하르를 버리려고가 아닙니다.”
“그럼?”
“둘 다 갖고 싶어서.”
로하르인.
제국 시민.
둘 다.
새 시대 사람들의 욕심이었다.
◆47초의 침묵이 끝났을 때.
옛 외교지구 새 공관들의 불이 다시 켜졌다.
아르카디아.
로하르 문화원.
벨로아 상무관.
라사드 연락관.
30년 전보다 적었다.
하지만 5년 전보다는 많았다.
나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라진 우주를 복원하는 게 아니다.
다른 우주에서.
다시 제국을 만들고 있다.
◆대단절 30주기에는 옛 실종자 명부도 처음 전면 디지털 공개됐다.
이름.
종족.
직업.
마지막 위치.
가족동의가 있는 경우 사진과 음성.
수십억 건의 기록.
본토 시민들은 자기 옛 이웃을 검색했다.
보호국 주민들도 봤다.
“제국에는 우리 이전에도 이렇게 많은 외계인이 있었나.”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새 보호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최초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명단을 보면 체감이 달랐다.
◆로하르 한 대학에서는 옛 보호국 언어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남아 있는 음성자료.
문학.
노래.
대사관 기록.
언어학자와 AI가 공동작업.
왜?
돌아오면 말할 수 있게.
실용 가능성은 낮았다.
그래도 했다.
장수명 사회에서는 30년 기다림이 너무 길지 않았다.
◆아르카디아 학자들도 대단절 연구에 합류했다.
그들의 대항로 떨림 기록.
제국의 침묵 47초.
두 시간축을 정밀비교.
오차 0.3초 이하.
우연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오르테가는 말했다.
“같은 사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인은?”
“아직.”
또 그 말.
하지만 ‘아직’의 무게는 30년 전과 달랐다.
이제 질문의 방향은 보이기 시작했다.
◆카론 연방과 접촉하기 전 확보한 일부 상업기록에서도 30년 전 공간교란 흔적이 있었다.
아르카디아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범위가 훨씬 넓었을 가능성.
만약 그렇다면.
대단절은 본토 하나를 이동시킨 사건이 아니라.
수천 광년에 영향을 준 거대한 시공간현상일 수 있다.
◆대단절 조사원 내부에서는 새 가설이 힘을 얻었다.
[본토 보존권역 가설.]
어떤 존재나 장치가.
특정 공간.
특정 인구.
특정 인과관계를 기준으로.
본토를 ‘선택’해 남겼다.
문제는 본토 안 비아틀라스인이 사라지고.
본토 밖 아틀라스인도 사라졌다는 점.
단순 위치도.
단순 종족도 아니다.
“제국 행정권역?”
한 연구자가 제안했다.
본토에 공식등록된 아틀라스 시민.
그러나 본토에 있던 비아틀라스 시민도 사라졌다.
다시 모순.
◆나는 비공개로 시스템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 화면에서 ‘본토’는 명확한 구역이었다.
외곽령.
보호국.
본토.
행정상 분리.
혹시.
그 분류가 현실에 영향을 준 건가.
생각만 했다.
증거는 없다.
공식회의에서는 말하지 않았다.
“게임”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진다.
아직은 내 개인가설.
◆추모식 뒤 리에나가 물었다.
“황제께서는 옛 보호국이 살아 있다고 믿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믿는 건 아니야.”
“그럼?”
“가능성을 닫지 않는 거지.”
“30년인데.”
“우리한텐 길지 않아.”
그녀는 자기 수명 210년을 떠올린 듯했다.
“저희라면 30년은 깁니다.”
“알아.”
시간이 다른 종족끼리는 희망의 유효기간도 달랐다.
◆실종자 가족협회 일부는 새 보호국 확대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옛 사람도 못 찾으면서 새 나라만 늘린다.”
그 감정도 이해됐다.
황실은 옛 보호국 탐사예산을 별도회계로 분리했다.
팽창예산과 경쟁하지 않게.
새로운 우주를 얻는 것과.
잃어버린 우주를 찾는 것.
둘 다 한다.
◆30주기 마지막 행사.
47초 침묵 뒤.
새 보호국 아이들이 옛 외계언어로 짧은 인사를 읽었다.
발음은 서툴렀다.
의미.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광장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이 울었다.
나는 연설하지 않았다.
이번엔 정말 필요 없었다.
◆밤이 되자.
외교지구에는 새 공관 불빛과 빈 공관의 어둠이 같이 있었다.
둘 다 제국의 일부였다.
현재와 과거.
확장과 상실.
나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생각이 없었다.
제국은 앞으로 가면서.
뒤도 계속 볼 것이다.
◆30주기 이후 실종자 가족협회는 두 파로 갈렸다.
하나는 ‘계속 찾자.’
다른 하나는 ‘이제 사망을 인정할 선택권도 달라.’
30년.
아틀라스에게 짧지만.
모든 사람이 기다리고 싶은 건 아니다.
배우자.
상속.
새 가족.
법적 지위.
특별법은 사망추정을 지나치게 오래 막고 있었다.
하원에서 개정논의가 시작됐다.
◆가족이 원하면 개인별 ‘추정사망’ 신청을 허용할 것.
국가는 전체 실종자 지위를 유지.
개인 가족관계만 정리 가능.
실종자가 돌아오면 권리복구절차.
어려운 법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포기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말했다.
“기다리라고 강요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나는 두 번째 말에 동의했다.
국가가 기억을 유지할 수는 있다.
개인에게 영원한 기다림을 명령할 수는 없다.
◆법은 통과됐다.
첫 신청자는 대단절 당시 배우자를 잃은 602세 시민.
그는 30년 동안 기다렸다.
이제 새로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울었다.
“잊는 게 아닙니다.”
아무도 잊으라고 하지 않았다.
제국법이 처음으로 기다림에도 출구를 만들었다.
◆옛 외교지구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추정사망이 확정된 개인소유 상점 일부는 상속인에게 넘어갔다.
대사관은 여전히 휴면외교재산.
국가와 개인을 구분했다.
거리는 조금씩 현재로 돌아왔다.
모든 문을 영원히 잠가둘 수는 없었다.
◆나는 개정법 재가 뒤 대단절 기념관을 찾았다.
어떤 이름은 ‘실종.’
어떤 이름은 ‘가족신청 추정사망.’
표시가 달라졌다.
둘 다 기억된다.
기다리는 방식이 다를 뿐.
제국은 이제 상실을 보존하는 것뿐 아니라.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우고 있었다.
◆추정사망법 통과 뒤 실종자 가족협회는 분열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선택을 인정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기다리는 사람과 놓아주는 사람 모두 가족이다.]
그 한 문장이 30년의 시간을 정리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