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4화 — 세르마크의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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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마크 군축감독 5년차.
약속한 선거가 열렸다.
제국은 날짜를 미루지 않았다.
상원 강경파는 우려했다.
“반제국 정부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감독조약 폐기를 선언하면?”
“선언은 하겠지.”
“허용합니까?”
“실행은 못 해.”
선거와 주권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세르마크는 내정정부를 뽑는다.
전쟁권과 외교권은 감독조약 아래.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했다.
◆정당은 네 개가 컸다.
현실개혁당.
감독협력.
경제재건.
보호국 승격 목표.
민족회복당.
감독조약 재협상.
군사자주 확대.
하지만 무력투쟁 반대.
노동공화당.
군수기업 해체와 복지 확대.
구군정연합.
옛 장교 중심.
제국에 가장 적대적.
그래도 선거에는 참여.
나는 마지막 당도 금지하지 않았다.
전쟁범죄자 개인은 출마금지.
사상은 금지하지 않는다.
◆바렌 노크는 어느 당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방송토론 사회자로 나왔다.
예전 장군이 정치토론 진행자.
기묘했다.
“왜 출마 안 했어?”
내가 물었다.
“군인이 정치한 결과를 충분히 봤다.”
“자네 인기면 이길 텐데.”
“그래서 더 안 한다.”
좋은 판단이었다.
◆투표율 74퍼센트.
현실개혁당 39.
민족회복당 31.
노동공화당 21.
구군정 7.
기타 2.
과반 없음.
연정협상.
세르마크 사람들은 처음으로 함대보다 의석을 계산했다.
본토 방송은 그걸 생중계했다.
일부 아틀라스 시민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감독국 선거를 우리가 봅니까?”
시청률은 높았다.
남의 정치도 재미있었다.
◆연정은 현실개혁당+노동공화당.
리안 테모르가 초대 민선 행정총리가 됐다.
그는 취임연설 첫 문장에서 말했다.
[세르마크는 자유롭지 않다.]
제국 강경파가 분노했다.
나는 계속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5년 전보다 자유롭다.]
[전쟁을 시작할 자유를 잃었고, 정부를 바꿀 자유를 얻었다.]
좋은 연설이었다.
◆리안은 바로 감독조약 개정을 요구했다.
현지경찰권 완전이양.
경제정책 감독 축소.
제국 검열권 폐지.
마지막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검열권이 없는데 뭘 폐지해?”
마리안이 웃었다.
정치적 상징이었다.
협상 결과.
경찰권 대부분 이양.
경제감독 일부 축소.
군사·외교는 유지.
민족회복당은 부족하다고 비판.
그래도 변화는 있었다.
◆세르마크 군도 바뀌었다.
정규군 1,800만에서 420만.
함대는 지역방위함 중심.
장거리공격함 대부분 폐기 또는 제국 관리.
옛 군항 일부는 상업항.
군사학교는 공학대학으로 전환.
그러나 군인문화는 남았다.
학교 체육.
국가기념일.
전쟁영웅 동상.
제국은 다 없애지 않았다.
기억까지 지우면 반발만 커진다.
대신 학살자와 전쟁범죄자 기념물은 철거됐다.
◆구군정연합은 그 철거를 ‘역사말살’이라 비판했다.
유가족은 반박했다.
광장에서 두 집단이 충돌할 뻔했다.
경찰이 분리.
사망 0.
5년 전이었다면 군이 발포했을 상황.
바렌이 말했다.
“이게 발전인지 모르겠군.”
“안 죽었잖아.”
나는 라사드 때와 같은 답을 했다.
평화는 가끔 시끄럽다.
총성이 없는 소음이면 견딜 수 있었다.
◆선거 1년 뒤 세르마크 지표.
국내총생산 성장.
민간조선 급증.
출산율 회복.
군인 자살률 감소.
제국 호감도는 여전히 낮음.
38퍼센트.
리안 정부 지지율 52퍼센트.
감독체제 유지 찬성 47.
반대 48.
팽팽했다.
제국은 그 숫자를 조작하지 않았다.
감독은 인기투표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조건은 지켰다.
5년 조약준수.
민간정부.
군사문민통제.
전쟁범죄 재판 거의 완료.
지역군 개편.
세르마크는 일반 보호국 전환심사를 신청했다.
바렌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드디어 승격인가.]
나는 답했다.
[심사 통과하면.]
[여전히 말이 마음에 안 든다.]
[5년째 같은 말이네.]
그가 웃는 표시를 보냈다.
◆세르마크가 보호국이 되면.
제국에 새로 정복된 나라가 하나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감독이 끝나는 것이다.
통제는 여전히 많다.
외교도 군사도 중앙.
그런데 ‘징벌받는 나라’에서 ‘일반 제국권 국가’로 바뀐다.
상징은 중요했다.
사람은 법조항만으로 살지 않는다.
◆세르마크 보호국 전환심사는 8개월 걸렸다.
군사시설 11만 곳.
정치기관.
경찰.
법원.
교육.
예산.
전부 확인.
바렌은 불평했다.
“전쟁할 때보다 서류가 많다.”
리안이 답했다.
“전쟁은 서류 안 보고 시작해서 문제였죠.”
둘은 이제 농담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비밀무기창고였다.
구군정 시절 숨겨둔 미사일 1만 7천 기.
현 정부도 위치를 몰랐다.
제국 정보원이 찾아냈다.
민족회복당은 말했다.
“제국이 우리 주권을 침해했다.”
리안 정부는 오히려 제국에 감사했다.
자기들도 모르는 무기를 누군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일은 해체.
핵심재료 일부는 민간산업으로 전환.
◆보호국 전환조건에 ‘진실한 무장신고’가 추가됐다.
세르마크 군 내부에서 자진신고가 이어졌다.
숨겨둔 함선.
탄약고.
비밀계정.
처벌면제기간 90일.
그 기간에 신고하면 과거 은닉죄는 감면.
대량의 무기가 나왔다.
라울은 말했다.
“사면이 정보기관보다 많이 찾는군요.”
사람은 잡힐까 봐 숨긴다.
살려준다고 하면 말하기도 한다.
◆전환심사 마지막 날.
세르마크 의회가 공식결의했다.
[군축감독국 지위 종료와 아틀라스 제국 일반보호국 지위 수용.]
찬성 62.
반대 35.
기권 3.
민족회복당 일부도 찬성했다.
독립이 아니라 ‘감독 졸업’을 선택한 셈.
5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표결이었다.
◆체결식에서 나는 바렌에게 말했다.
“축하해.”
“나라가 보호국 됐는데 축하받는 것도 이상하군.”
“감독국보단 낫잖아.”
“그건 인정.”
리에나가 옆에서 작게 웃었다.
아르카디아인에게는 여전히 기묘한 대화였을 것이다.
◆보호국 전환 뒤 세르마크는 자체 군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단.
제국기 아래.
옛 장교들은 그 순서를 불편해했다.
젊은 병사들은 별로 신경 안 썼다.
5년 차이.
세대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였다.
정치상징은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된다.
◆첫 보호국 국방예산은 전쟁기 대비 28퍼센트.
남은 돈은 연금.
교육.
항만.
의료.
리안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돈이 많았는지 몰랐습니다.”
73년 동안 군대가 먹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니 국가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군축으로 자존심 상실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제국은 세르마크 지역군에 특별임무를 줬다.
고중력 행성 구조.
중력환경 전투.
권역 전문부대.
세르마크 종족특성을 살린 역할.
“우리를 쓸모 있게 만들려는 겁니까?”
바렌이 물었다.
“원래 쓸모 있었어.”
“전쟁 말고도?”
“그걸 찾는 중이지.”
사람도 국가도.
기존 정체성을 전부 부수면 빈자리가 생긴다.
새 자부심이 필요했다.
◆보호국 전환 뒤 제국 호감도는 38에서 46퍼센트로 올랐다.
절반은 안 됐다.
나는 만족했다.
“낮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5년 전엔 우리 죽이려 했잖아.”
“기준이 낮으십니다.”
“현실적이라고 해.”
세르마크가 제국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조약을 지키고.
전쟁을 안 하고.
같이 일하면 된다.
감정은 더 오래 걸릴 수 있었다.
◆세르마크 공화연합으로 국호가 바뀐 뒤 가장 먼저 바뀐 건 군복이 아니었다.
공문서 상단.
학교 교과서.
여권.
항만표지.
국가 이름 하나 바꾸는 데만 수십억 건 데이터가 수정됐다.
리안이 말했다.
“전쟁보다 행정이 오래 걸리는군요.”
바렌이 답했다.
“전쟁은 생각 없이 시작해도 되니까.”
둘 다 웃었다.
◆옛 군정상징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문제였다.
독수리 비슷한 군정휘장.
한쪽은 금지.
다른 쪽은 역사유산.
최종안.
현역 국가기관 사용 금지.
박물관·역사교육·개인소장은 허용.
제국은 과거를 지우지 않았다.
현재권력에서만 떼어냈다.
◆첫 민선정부는 군정시절 비밀경찰 기록을 공개할지 고민했다.
피해자는 공개를 원했다.
가해자 가족은 반대.
개인정보 문제도 있었다.
제국 기록원이 도움을 줬다.
피해자 본인기록 우선접근.
공직자 범죄는 확대공개.
사생활은 보호.
완전공개도 완전봉인도 아니었다.
세르마크는 자기 과거를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감독국 졸업기념일을 국경일로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름 때문에 싸웠다.
‘해방일.’
제국은 반대.
‘보호국 승격일.’
민족회복당이 반대.
결국.
[평화헌정일.]
누구도 완전히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다.
그래서 통과됐다.
정치적 타협은 축제 이름에도 필요했다.
◆세르마크군의 옛 장군 일부는 보호국 전환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바렌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사람도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린다.”
몇몇은 몇 년 뒤 처음 제국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에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 정책.
제국은 장수명 덕분에 기다릴 수 있었다.
세르마크인 수명은 더 짧았지만.
그래도 10년은 정치적으로 큰 시간이었다.
◆보호국 전환 뒤 세르마크의 첫 외교사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외교권은 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대외경제대표부’가 만들어졌다.
아르카디아와 무역하고 싶으면 제국 외교망 안에서 움직인다.
과거 군정외교관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젊은 상무관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제국 외교망을 쓰면 작은 세르마크 혼자 협상할 때보다 훨씬 큰 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독립을 잃은 만큼 규모를 얻었다.
그 교환을 각 세대가 다르게 평가했다.
◆보호국 전환식 뒤 세르마크의 옛 전쟁박물관도 이름을 바꿨다.
[승전기념관]에서 [73년 전쟁기록관].
승리라는 단어를 지우는 데 5년이 걸렸다.
바렌은 말했다.
“이제야 전쟁을 끝낸 것 같군.”
함대가 멈춘 날보다 훨씬 늦게.
기억도 조금씩 정리되고 있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