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3화 — 시민권이라는 벽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리아 카르멘 사건 뒤 시민권 신청이 폭증했다.
로하르.
벨로아.
세르마크.
카르디아.
라사드.
신청자 1년 3,800만 명.
승인.
412명.
숫자가 공개되자 보호권역이 뒤집혔다.
[승인율 0.001퍼센트.]
마엘 코르는 하원에서 말했다.
“이건 제도가 아니라 장식입니다.”
본토 의원들이 야유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어놓고 벽보다 좁게 만들었습니다.”
◆시민권위원회는 반박했다.
승인자 412명은 전부 특별공훈.
과학자.
구조영웅.
제국군 장기복무자.
전략기술 기여자.
수십 년 검증된 행정가.
일반 이민제도가 아니다.
보호국민은 보호국민 신분으로 살 수 있다.
제국 시민이 될 필요는 없다.
마엘은 다시 물었다.
“그럼 시민권을 원할 자유는?”
“신청할 자유가 있습니다.”
“받을 가능성은?”
“공훈에 따라.”
서로 말은 맞았다.
◆제국 시민권이 어려운 이유는 정치권 때문이었다.
본토 자유이동.
상원·하원 완전참정.
전략기관 접근.
제국군 핵심직.
토지와 개척특허 우대.
그리고 법적으로 황제와 직접 연결되는 신분.
아틀라스 시민들은 그걸 13,000년 역사로 쌓은 공동체라고 봤다.
새로 만난 나라 주민에게 몇 년 만에 대량개방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현실문제도 생겼다.
뛰어난 외계인들이 제국을 위해 일한다.
세금도 낸다.
군대도 돕는다.
그런데 본토 정착에는 매번 허가.
정치권은 제한.
아이들도 보호국민.
불만이 쌓인다.
재상은 새로운 중간신분을 제안했다.
[제국 준시민.]
본토 장기거주.
취업자유.
보호권역간 이동자유.
일부 지방선거권.
그러나 상원권, 전략직, 황실기관은 제한.
“시민권 희석 아닌가?”
보수파가 반발했다.
“그래서 이름이 다릅니다.”
논쟁이 시작됐다.
◆나는 준시민제에 찬성했다.
시민권 문턱을 낮추는 대신.
문턱 앞에 계단을 만든다.
보호국민.
영주권.
준시민.
정식 시민.
각 단계마다 권리와 책임.
이게 현실적이었다.
◆첫 준시민 후보군은 20년 이상 본토 거주자.
대단절 이후 외부접촉이 4년밖에 안 됐으니 신규 보호국민은 아직 해당이 안 됐다.
대신 대단절 직전 본토에 있었다가 사라지지 않은 사례?
없었다.
비아틀라스인은 전부 사라졌다.
결국 제도는 미래를 위해 만들어졌다.
법은 때로 사람이 오기 전에 문을 만든다.
◆보호국 왕족도 시민권을 요구했다.
카르디아 한 대공의 아들.
“제국 귀족이 되고 싶습니다.”
담당관이 말했다.
“왕족 신분은 가산점이 아닙니다.”
“저는 11개 도시의 후계자입니다.”
“그래서요?”
그 질문은 이제 제국 행정의 상징처럼 됐다.
혈통은 현지에서 중요할 수 있다.
제국 시민권에서는 공훈이 더 중요했다.
◆돈으로 시민권을 살 수도 없었다.
벨로아 억만장자가 제국 개발기금에 거액을 기부하며 신청.
거부.
“제가 낸 돈이 전함 한 척보다 많습니다.”
위원이 답했다.
“기부는 감사드립니다.”
“시민권은?”
“별개입니다.”
그는 화를 냈다.
그래도 돈은 돌려받지 않았다.
마리안이 말했다.
“진짜 기부였군요.”
◆첫 412명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된 사람은 세르마크 구조대원이었다.
이름 오르 벤카.
카르만전투 뒤 적군이었던 로하르 선원 수천 명을 구조.
그 뒤 제국 구조대와 4년간 합동근무.
X-41에서도 아르카디아 생존자 구조.
시민권위원회가 공훈을 인정했다.
그가 기자에게 말했다.
“저는 제국인이 되고 싶어서 사람을 구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시민권을 받았습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본토에서 인기가 폭발했다.
◆시민권 수여식은 황궁이 아니라 지방행정청에서 열렸다.
과도한 영웅화 방지.
오르 벤카는 신분단말의 표시가 바뀌는 걸 한참 봤다.
[보호민]에서.
[아틀라스 제국 시민.]
종족은 여전히 세르마크인.
시민은 제국인.
둘은 모순이 아니었다.
◆그가 첫날 한 일은 본토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동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진짜 허가 없어도 됩니까?”
직원이 말했다.
“이제 시민입니다.”
그는 여행지로 카르만 회랑 전몰기념관을 골랐다.
자기가 적으로 싸웠던 장소.
거기서 로하르 유가족과 만났다.
사진 한 장이 퍼졌다.
시민권 논쟁이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시민권은 숫자가 아니다.
한 사람을 정치공동체 안으로 들이는 일.
그래서 어렵게 주는 게 맞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만들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면.
제국은 영원히 아틀라스인만의 나라로 남는다.
우리는 다시 외부세계를 얻었다.
언젠가는.
제국인이라는 말의 뜻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천천히.
◆준시민제 논쟁은 예상보다 오래갔다.
보수파는 시민권 가치가 희석된다고 했다.
개방파는 중간신분이 오히려 영구차별을 굳힐 수 있다고 했다.
둘 다 가능했다.
그래서 준시민은 자동종착점이 아니라 정식 시민권 심사에서 공훈기간으로 인정하게 했다.
준시민 30년.
성실납세.
범죄 없음.
제국공공복무.
그 자체가 시민권 보장은 아니다.
하지만 경력은 쌓인다.
◆보호국 사람들은 또 물었다.
“30년이 짧습니까?”
아틀라스 관료는 무심코 말했다.
“매우.”
라사드 대표가 화를 냈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3분의 1입니다.”
그 사건 뒤 시민권제도는 종족별 수명보정을 도입했다.
절대연도와 생애비율을 같이 본다.
아틀라스 기준을 우주 전체에 복사하면 제도가 차별이 될 수 있었다.
◆시민권 시험도 있었다.
제국법.
역사.
언어.
정치제도.
그런데 공훈시민 후보 중 일부는 시험성적이 낮았다.
전투영웅이 상원구조를 잘 모를 수 있다.
과학자가 황실의전 역사를 싫어할 수도 있다.
위원회는 시험을 탈락도구가 아니라 교육과정으로 바꿨다.
기준 미달이면 재교육.
공훈이 사라지진 않는다.
◆오르 벤카는 시민권 받은 뒤 첫 선거에서 투표했다.
“누구 찍었습니까?”
기자가 물었다.
“비밀투표 아닙니까?”
그가 되물었다.
영상이 퍼졌다.
본토 시민들이 좋아했다.
새 시민이 제도를 오래된 시민보다 더 정확히 존중했다.
◆그에게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세르마크 보호국민이던 부모를 본토로 초청할 수 있게 됐다.
가족결합권.
부모는 본토에 와서 말했다.
“우리는 시민이 아닌데 여기 살아도 되나?”
“장기거주권.”
“아들이 시민이라서?”
“예.”
시민권은 개인 하나의 신분만 바꾸지 않았다.
가족의 이동도 바꿨다.
◆마엘 코르는 이 사례를 이용해 가족결합권 확대법을 냈다.
시민 배우자·부모·미성년자녀 우선거주.
통과.
본토 강경파는 ‘연쇄이민’이라고 비판.
실제 숫자는 작았다.
제국 본토·정식 제국령 인구 7조 규모에서는 통계상 오차에 가까웠다.
정치는 때로 숫자보다 상징에 더 크게 반응한다.
◆시민권위원회는 첫 비아틀라스 집단공훈사건도 심사했다.
X-41 연구팀.
라사드 의료진.
카르디아 구조대.
개인공훈은 인정.
집단으로 시민권을 주진 않았다.
“왜?”
오르테가가 물었다.
“시민권은 개인판단이니까.”
부대나 회사 전체가 충성한다고 사람 하나하나까지 같은 건 아니다.
제국은 집단처벌을 조심했고.
집단특혜도 조심했다.
◆리아는 로하르로 돌아가 지역군 개혁을 시작했다.
첫해부터 반발.
젊은 장교 승진확대.
귀족출신 자동보직 폐지.
일부 귀족이 왕실에 항의.
알렌 국왕은 리아 편을 들었다.
“전쟁에서 귀족혈통이 미사일을 피하게 해주진 않는다.”
제국식 능력주의가 현지 군제를 바꾸고 있었다.
◆리아의 시민권 재심사 예정은 10년 뒤.
그녀는 말했다.
“10년이면 충분합니다.”
아틀라스 관료는 그 말에 놀랐다.
로하르인에게 10년은 짧지 않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큰 결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시민권 논쟁을 보며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문은 열어둔다.
넓게 열진 않는다.
제국은 수백 보호국을 가질 수 있다.
그 모든 사람을 바로 시민으로 만들면 시민권과 보호권의 구분이 사라진다.
반대로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하면 제국은 다종족 질서가 아니라 아틀라스인의 외부통치체제로 굳는다.
둘 사이.
좁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길.
그걸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준시민제 최종안에는 ‘정치적 충성심 시험’이라는 표현이 빠졌다.
대신 ‘헌정질서 수용.’
왜냐하면 충성심을 어떻게 측정할지 아무도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제를 좋아하는가.
제국정책에 찬성하는가.
그건 정치적 의견.
필요한 건 법을 지킬 의사와 제국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것.
마엘이 말했다.
“그 정도면 반제국주의자도 준시민이 될 수 있습니까?”
법무장관이 답했다.
“합법적 반대라면.”
좋은 제도였다.
◆본토 강경파가 반발했다.
“제국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권리를 줍니까?”
나는 답했다.
“좋아해야 세금 내?”
“충성의 문제입니다.”
“법 지키는 게 충성의 최소선이지.”
감정까지 국가가 확인하려 들면.
국가는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건 비용도 크고 위험했다.
◆시민권위원회는 외계종 공훈평가 기준도 세분화했다.
종족수명.
평균교육기간.
복무가능연령.
신체특성.
사회적 출발점.
같은 20년 복무가 아틀라스인과 라사드인에게 같은 무게가 아니다.
기계적 평등 대신 비례평가.
보수파는 기준이 복잡하다고 했다.
위원회는 인정했다.
“다종족 제국이 복잡합니다.”
교육부 답변과 비슷했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법으로 억지로 누르는 게 더 위험했다.
◆오르 벤카 시민권은 세르마크에서 예상 밖의 자부심이 됐다.
제국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말했다.
“그래도 우리 사람이 제국 시민이 됐다.”
민족주의와 제국정체성이 동시에 작동했다.
나는 그 현상을 흥미롭게 봤다.
제국 시민권이 지역정체성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지역의 명예가 될 수 있다.
그게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일지도 몰랐다.
◆오르는 본토에서 집을 샀다.
세르마크식 고중력실이 필요했다.
건축법에 해당기준이 없었다.
허가가 몇 달 막혔다.
그 한 건 때문에 본토 주거법에 ‘비아틀라스 종족환경 조정기준’이 새로 생겼다.
시민 한 명이 법 하나를 바꿨다.
제국이 다종족화된다는 건.
거대한 선언보다 이런 작은 규정이 쌓이는 일이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