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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46화 — 문명을 나누는 방법

별의 제국 · 46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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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드에 첫 제국식 대학을 세우자는 제안은 예상보다 반대가 컸다.

라사드 사제단만 반대한 게 아니었다.

본토 대학들도 반대했다.

“교육수준 차이가 너무 큽니다.”

“제국 학위를 남발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기로 했다.

준비학교.

기초과학원.

기술전문학교.

그 위에 대학.

4단계.

라사드 학생이 제국 본토대학에 곧바로 들어가는 대신 현지에서 10년 준비과정을 밟게 했다.

라사드 평균수명에는 긴 시간.

아틀라스 기준에는 짧은 시간.

첫 입학생은 18만 명.

지원자는 700만 명이 넘었다.

시험장 앞에서 사제와 귀족 자녀가 농민 자녀와 같은 줄에 섰다.

라사드 역사에서는 드문 장면이었다.

합격자 중 하층민 비율 39퍼센트.

여성 44퍼센트.

사제단이 충격을 받았다.

기존 고등교육에서 여성 비율은 6퍼센트였다.

제국은 할당제를 쓰지 않았다.

시험조건을 같게 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사회구조가 흔들렸다.

문제는 언어였다.

라사드어에는 현대물리 개념을 표현할 단어가 부족했다.

제국어를 전부 가르치면 빨랐다.

하지만 그러면 과학이 곧 제국어가 된다.

문화원은 새로운 번역어를 만들었다.

라사드 학자와 제국 언어학자가 공동작업.

양자.

중력장.

유전자.

항성분광.

한 단어를 정하는 데 몇 시간씩 싸웠다.

“그냥 제국어 차용하면 안 됩니까?”

젊은 관료가 물었다.

언어학자가 답했다.

“가능합니다. 백 년 뒤 라사드 과학자가 자기 언어로 과학을 못 하게 되는 비용을 감수한다면.”

제국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래서 번역했다.

기술이전에도 단계가 있었다.

제국 최신형을 주면 라사드는 고칠 수 없다.

너무 낡은 걸 주면 개도효과가 작다.

개도원은 ‘유지가능기술지수’를 만들었다.

성능보다 현지 수리 가능성.

부품 생산 가능성.

교육 난이도.

에너지 요구량.

라사드용 의료장비는 제국 병원 장비보다 성능이 낮았다.

대신 현지기술자가 5년 안에 부품 70퍼센트를 만들 수 있었다.

일부 본토 기업이 불평했다.

“저급제품을 제국 이름으로 공급하는 건 브랜드에 해롭습니다.”

나는 답했다.

“저급이 아니라 용도가 다른 거야.”

좋은 기술은 가장 높은 숫자를 가진 기술이 아니다.

쓰는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라사드 왕실은 철도를 원했다.

제국은 궤도엘리베이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안 만들었다.

먼저 도로.

항만.

지역철도.

전력망.

국왕이 물었다.

[왜 별을 여행하는 제국이 우리에게 길부터 닦는가.]

마리안이 답했다.

“행성 안에서 도시끼리 못 움직이는데 별부터 연결하면 무엇을 실어 나르겠습니까?”

개도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수관.

변전소.

교사.

회계사.

현지인은 처음에는 거대한 우주항을 기대했다.

1년 뒤에는 안정적인 전기와 깨끗한 물을 더 높게 평가했다.

제국 기업의 진출도 제한했다.

라사드 시장 전체를 본토기업이 순식간에 먹을 수 있었다.

자본격차가 너무 컸다.

그래서 20년 보호기간.

기초소매·농업·지역서비스업은 현지기업 우선.

대형 인프라는 합작법인.

전략산업은 제국감독.

상무원 일부가 반대했다.

“시장개방 원칙에 어긋납니다.”

나는 말했다.

“경쟁이 안 되는데 무슨 시장이야.”

제국기업과 IV급 현지기업의 자유경쟁은 사자와 토끼를 같은 경기장에 넣는 것과 비슷했다.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제국은 현지경제가 자랄 시간을 샀다.

라사드 젊은이들은 본토 콘텐츠에 빠르게 빠졌다.

음악.

드라마.

게임.

교육영상.

사제단이 제국문화를 금지하려 했다.

국왕이 막았다.

대신 연령등급과 현지문화쿼터를 만들었다.

나는 그 정책을 승인했다.

“검열 아닙니까?”

본토 기자가 물었다.

“보호국 자치영역이야.”

“본토 기준보다 강합니다.”

“라사드는 본토가 아니잖아.”

자치라는 건 현지가 우리와 같은 법을 만들 때만 인정하는 권리가 아니다.

싫어하는 선택을 할 권리까지 어느 정도 남겨줘야 진짜였다.

첫 3년이 지나자 라사드에 변화가 보였다.

도시 야간조명.

여성 기술자.

농촌 의료차량.

사원 옆 공립학교.

그리고 제국어 간판.

변화가 너무 빨라 옛 세대는 불안해했다.

한 노인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 손자는 내가 아는 세계보다 제국을 더 잘 안다.”

그 말에는 자랑과 두려움이 같이 있었다.

문명전파는 좋은 것만 주는 일이 아니다.

세대 사이 시간도 갈라놓는다.

나는 3년 보고서를 읽고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개도속도 10퍼센트 완화.]

개도원장이 의아해했다.

“지표가 좋습니다.”

“그래서.”

“왜 늦춥니까?”

“사람이 따라와야지.”

기술은 하루 만에 설치할 수 있다.

사회는 아니다.

제국은 천 년을 보는 나라였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기술전문학교의 첫 졸업식은 라사드 전역에 생중계됐다.

졸업생 11만 명.

전기.

수처리.

기계정비.

간호.

농업공학.

제국 기준으로는 초급기술자.

라사드에서는 나라를 바꾸는 인력.

국왕은 졸업식에서 말했다.

[나는 전사보다 기술자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첫 왕이 되었다.]

사제단도 박수를 쳤다.

몇 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졸업생 중 상당수는 농촌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도시가 더 재미있고 급여도 높았다.

농촌개도사업이 인력난을 맞았다.

제국은 강제배치 대신 급여보조와 주택지원.

5년 농촌근무 시 본토 유학 가산점.

지원자가 늘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데 명령보다 보상이 싸게 먹힐 때가 많았다.

라사드 회사들이 제국 특허를 무단복제하는 사건도 늘었다.

처음에는 현지기업들이 말했다.

[별의 지식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제국 특허청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즉시 거액벌금을 때리지 않았다.

기초특허제도 교육.

저가 라이선스.

현지 공동특허.

몇 년 뒤 라사드 기업도 자기 특허를 갖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태도가 바뀌었다.

남의 권리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기 권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본토 기업 한 곳은 라사드 기술을 역으로 샀다.

고온건조지역용 세라믹 펌프.

기술수준은 낮았지만 내구성이 뛰어났다.

제국 극한환경 개척지에서 쓸 가치가 있었다.

계약금이 라사드 회사 연매출의 40배.

현지 언론은 흥분했다.

[우리가 제국에 기술을 판다.]

그 자부심은 중요했다.

개도국이 영원히 배우기만 하면 열등감이 쌓인다.

하나라도 반대로 흐르는 기술이 있어야 관계가 덜 일방적이다.

나세르 이븐 하라는 본토 준비학교에서 사고를 쳤다.

교수의 공간기하 해법이 비효율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문제는 그가 맞았다는 점이었다.

교수는 화내지 않았다.

논문 공동저자로 넣었다.

라사드 언론은 그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천재 한 명이 국가 자존심이 됐다.

나는 보고서에 시민권 얘기가 또 나올까 봐 먼저 말했다.

“아직.”

오르테가가 웃었다.

“저도 아직 아무 말 안 했습니다.”

“표정이 그래.”

“관찰은 하겠습니다.”

천재는 자원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래도 제국은 뛰어난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

라사드 왕실은 나세르에게 귀족작위를 주려 했다.

본인이 거절했다.

[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그 선택도 현지사회에 충격이었다.

예전 라사드라면 천재가 신분상승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다른 길이 생겼다.

교육이 계급을 흔들고 있었다.

10년차 개도평가.

전력보급 81퍼센트.

기초문해율 92퍼센트.

영아사망률 1.9퍼센트.

여성 중등교육 74퍼센트.

현지기술 정비율 63퍼센트.

중앙보조금 의존도는 아직 높았다.

하지만 방향은 명확했다.

라사드는 아틀라스처럼 되지 않았다.

라사드인 채로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개도 12년차에는 처음으로 라사드 출신 기술자들이 다른 보호국으로 취업하기 시작했다.

로하르 수처리회사.

카르디아 구조기업.

벨로아 데이터센터.

예전에는 제국인이 라사드에 기술을 가르치러 갔다.

이제 라사드인이 다른 곳에 기술을 팔았다.

국왕은 출국인재를 걱정했다.

“두뇌유출 아닙니까?”

개도원은 순환정책을 만들었다.

해외취업 10년 후 귀국하면 세제혜택.

현지창업 지원.

완전히 막지 않았다.

사람을 가두면 인재가 안 나간다는 발상은 쉬웠다.

하지만 들어오지도 않는다.

라사드 최초의 민간기술기업이 벨로아 증시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기업가치는 예상의 세 배.

본토 투자자들이 몰렸다.

일부는 과열.

재무원은 경고만 했다.

투자는 위험을 포함한다.

황실이 모든 손실을 막아주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몇 달 뒤 주가는 반토막.

라사드 언론은 충격을 받았다.

제국 재무교육단은 말했다.

“이것도 배워야 합니다.”

성장은 성공만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다.

실패를 감당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학교에서는 세대갈등이 새로운 과목이 됐다.

할아버지는 사원학교만 다녔다.

아버지는 공립학교 1세대.

손자는 제국어로 우주공학을 배운다.

한 가족 안에 세 문명이 같이 살았다.

교사들은 학생에게 전통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부모와 대화하는 법을 가르쳤다.

개도원은 그 프로그램을 다른 하위문명용 표준안에 넣었다.

기술은 수입하면 된다.

세대갈등은 매번 새로 풀어야 했다.

나세르의 첫 논문이 제국 학술지에 실렸다.

공동저자 4명 중 세 번째.

아직 대단한 업적은 아니었다.

라사드에서는 국경일 수준으로 보도됐다.

나는 보고서를 보고 말했다.

“과장하네.”

오르테가가 답했다.

“첫 번째니까요.”

그 말은 이해됐다.

제국에는 매일 수천 편 논문이 나온다.

라사드에는 한 편이 문명사건이었다.

같은 성취의 무게도 위치에 따라 달랐다.

라사드 개도모델은 다른 IV급 국가에게도 알려졌다.

주변 소국 세 곳이 먼저 제국에 연락했다.

[우리도 학교와 의료를 받을 수 있는가.]

마리안이 물었다.

“보호국화를 조건으로 합니까?”

나는 답했다.

“상황부터 봐.”

개도지원은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제국질서와 책임관계가 없는 곳에 무제한으로 돈을 뿌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보호국이 되겠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받지도 않는다.

통치비용.

전략위치.

현지정부.

인구.

모두 봐야 했다.

문명전파도 제국의 행정능력 안에서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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