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44화 — 개도령

별의 제국 · 44 / 290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라사드는 일반 보호국이 되지 않았다.

제국 행정원은 새 분류를 만들었다.

[문명개도보호국.]

마리안이 말했다.

“이름이 너무 깁니다.”

“줄여.”

“개도보호국?”

“그걸로.”

로하르와 벨로아는 현지제도가 이미 충분히 작동했다.

라사드는 아니었다.

제국은 외교·국방뿐 아니라 기초행정 개선에도 직접 관여해야 했다.

그렇다고 직할령으로 만들 가치도 없었다.

중간형태가 필요했다.

개도보호국의 핵심은 목표였다.

5년마다 개도지표 평가.

문해율.

영아사망률.

상하수도.

전력보급.

교육성별격차.

사법접근성.

행정투명성.

군사력은 오히려 후순위.

라사드 왕이 물었다.

[제국은 왜 군대보다 하수도를 먼저 평가하는가?]

마리안이 말했다.

“하수도가 없으면 군인도 병에 걸립니다.”

단순했다.

제국은 첫해에 거대한 발전소를 지어주지 않았다.

대신 현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소형융합로를 공급했다.

성능은 제국 기준으로 낡았다.

그래도 라사드에는 혁명이었다.

문제는 기술격차.

현지 기술자가 수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급조건이 붙었다.

발전소 한 기당 현지 기술학교 하나.

제국 기술자 20명.

라사드 수습생 400명.

10년 내 현지정비율 70퍼센트 목표.

“그냥 우리가 관리하면 더 싸지 않습니까?”

본토 기업이 물었다.

개도원장이 답했다.

“영원히 관리할 생각이면.”

제국의 목표는 의존국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통제 가능한 자립국을 만드는 것.

의존이 너무 크면 중앙비용이 늘어난다.

식량문제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됐다.

제국 농업기업은 수확량을 네 배 올릴 수 있는 개량종자를 제안했다.

오르테가가 반대했다.

“생태계 적응검증이 부족합니다.”

기업은 말했다.

“20년 검증했습니다.”

“제국 행성에서.”

라사드 토양은 달랐다.

결국 종자도입은 3개 시험지역만.

나머지는 관개시설과 저장시설부터.

첫해 수확량은 19퍼센트 증가.

기업이 약속한 300퍼센트보다 훨씬 작았다.

그래도 기근지역이 사라졌다.

제국은 광고보다 결과를 봤다.

가장 큰 변화는 신분등록이었다.

라사드 주민 상당수는 출생기록이 사원에만 있었다.

하층민은 기록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제국식 주민번호를 그대로 넣으면 문화충격이 컸다.

그래서 라사드 정부가 자체 시민등록망을 만들고 제국망과 연동했다.

사제단은 반발했다.

“영혼의 기록은 신전의 권리다.”

국왕은 말했다.

“세금과 병원은 정부가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왕권과 사제권의 균형이 바뀌었다.

제국은 직접 사제를 공격하지 않았다.

행정망 하나가 권력구조를 바꿨다.

개도정책은 본토에서도 인기가 갈렸다.

젊은 시민들은 흥미로워했다.

“행성 하나가 산업화되는 걸 실시간으로 본다.”

교육방송 시청률이 높았다.

반면 재정강경파는 비용을 문제 삼았다.

개도 첫해 예산.

제국 전체 예산의 0.003퍼센트.

국가 규모로 보면 미미했다.

라사드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

나는 말했다.

“우리한텐 오차인데 저쪽에선 문명이 바뀌네.”

재무장관이 답했다.

“그래서 비용효율이 높습니다.”

하위문명 개도는 생각보다 싸게 먹힐 수 있었다.

적어도 전쟁보다.

문제는 속도였다.

라사드 젊은 세대가 제국어를 배우고.

과학을 접하고.

본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전통사회와의 충돌이 빨리 왔다.

도시 청년들은 말했다.

[왜 사제가 혼인을 승인해야 하나.]

[왜 여성은 특정 직업을 못 가지나.]

[왜 귀족만 토지를 소유하나.]

제국은 직접 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라사드가 풀어야 했다.

하지만 질문할 도구를 준 건 제국이었다.

사제 강경파는 제국을 ‘영혼을 훔치는 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몇몇 지방사원은 공립학교를 공격했다.

교사 11명 사망.

학생 3명 사망.

나는 보고를 듣고 표정이 굳었다.

“범인은?”

“성전단이라는 비공식조직.”

“사제단 연계?”

“일부.”

“현지 정부가 잡을 수 있어?”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 주저합니다.”

나는 라사드 왕에게 직접 통보했다.

[72시간.]

[범죄자를 체포하지 않으면 제국이 한다.]

왕은 19시간 만에 움직였다.

성전단 지도자 83명 체포.

관련 사제 17명 직위정지.

제국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좋았다.

현지정부가 자기 나라에서 법을 집행했다.

하지만 강경파는 끝나지 않았다.

성전단 일부가 산악지역으로 도망갔다.

무기를 모았다.

외부자금도 들어왔다.

출처는 아직 불명.

에일린이 말했다.

“누군가 개도정책 실패를 원합니다.”

“아르카디아?”

“가능성 낮음.”

“카르디아?”

“더 낮음.”

“그럼?”

“조사 중입니다.”

라사드 문제는 단순한 종교갈등을 넘어갈 조짐을 보였다.

제국이 하위문명을 끌어올리는 걸.

싫어하는 누군가가 바깥에 있을 수도 있었다.

개도보호국 제도는 라사드 하나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행정원은 일반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IV급 이하 문명 발견 시.

즉시 최신기술 투입 금지.

생태·사회영향평가.

현지정부 존치 가능성 판단.

교육·의료·행정 기초부터.

군사기술은 가장 늦게.

라울이 불평했다.

“군은 항상 마지막이군요.”

“하위문명에 무기부터 주면?”

“문제가 됩니다.”

“그럼.”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라사드군이 제국제 소총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거절했다.

현지 치안에 기존무기로 충분했다.

대신 통신장비와 방탄복, 의료키트를 줬다.

장교는 실망했다.

몇 달 뒤 성전단 진압에서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다.

그제야 장비의 의미를 이해했다.

강한 총보다 살아남는 장비가 먼저였다.

세금개혁도 시작됐다.

라사드는 농산물 현물세 비중이 높았다.

곡물.

가축.

직물.

국가가 보관하고 운송하는 비용이 엄청났다.

제국은 화폐세 전환을 권고했다.

하지만 농촌에 현금경제가 없었다.

그래서 20년 혼합제.

지역은행.

모바일결제.

농산물 시장.

세금제도가 바뀌려면 경제부터 바뀌어야 했다.

한 번에 근대국가를 복사할 수는 없었다.

본토 기업들은 라사드에서 새로운 시장을 봤다.

저가 냉장고.

정수기.

교육단말.

농기계.

제국 본토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 구형제품이 라사드에서는 최첨단이었다.

기업들이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자 개도원이 개입했다.

“시장인데 왜 가격을 통제합니까?”

기업이 항의했다.

“개도보조금 받았잖아.”

지원받은 기술은 일정기간 가격상한.

원하면 보조금 없이 자유판매.

기업들은 계산했다.

대부분 상한을 받아들였다.

제국은 시장을 좋아했다.

보조금까지 자유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라사드 현지기업도 생겨났다.

제국 기술자의 부품을 수리하던 작은 공방.

3년 뒤 자체 정수펌프 생산.

5년 뒤 주변국 수출.

제국 제품보다 성능은 낮았다.

가격은 8분의 1.

오히려 다른 IV~V급 시장에 적합했다.

상무원은 흥미를 보였다.

“하위문명용 제품을 하위문명이 더 잘 만듭니다.”

당연할 수도 있었다.

제국은 너무 높은 기준에 익숙했다.

개도정책 5년차.

라사드 최초의 본토 유학생 412명이 아우렐리움에 도착했다.

대부분 준비학교.

일부 천재는 바로 대학 예비과정.

그들은 수도성계를 보고 말을 잃었다.

한 학생은 울었다.

“신의 도시 같다.”

인솔관이 말했다.

“신은 없습니다.”

학생이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5년 만에 농담을 이해할 정도로 문화가 변했다.

그중 수학천재 한 명이 과학원에서 눈에 띄었다.

이름은 나세르 이븐 하라.

나이 19.

공간기하 직관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오르테가가 말했다.

“종족 상위 10억분의 1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물었다.

“시민권?”

“너무 이릅니다.”

“맞아.”

천재라고 바로 시민권을 주면 희소성이 무너진다.

먼저 교육.

성과.

충성.

시간.

제국 시민권은 선물이 아니라 정치공동체의 가장 안쪽 문이었다.

나세르의 이름만 장기관찰명단에 올렸다.

100년 뒤.

어쩌면 다시 보게 될 이름이었다.

개도보호국에는 제국 관료 상한도 설정됐다.

라사드 중앙정부 공무원 대비 제국 파견관 비율 1퍼센트 미만.

“왜 상한을 둡니까?”

개도원장이 물었다.

“너무 많이 보내면 저쪽이 일을 안 하잖아.”

제국 관료가 일을 잘할수록 현지정부가 의존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제국인은 설계·감사·교육 중심.

실제 집행은 현지인이 한다.

실패도 현지정부가 경험하게 둔다.

완벽하게 대신 해주는 건 가장 비싼 식민통치였다.

첫 지방예산 편성에서 라사드 관리들이 제국식 회계를 제대로 못 썼다.

숫자가 맞지 않았다.

사업비와 인건비가 섞였다.

사원기부금도 정부예산처럼 잡혀 있었다.

제국 감사관은 밤새 고쳤다.

다음 날 또 틀렸다.

세 달 뒤 오류율이 절반.

1년 뒤 대부분 맞았다.

감사관은 말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작성했으면 하루면 끝났습니다.”

상관이 답했다.

“그럼 내년에도 우리가 써야 했겠지.”

교육은 느렸다.

그래서 남았다.

라사드 최초의 지방선거도 시험도시 세 곳에서 시작됐다.

시장직.

기존에는 왕실임명.

후보자 중 한 명은 사제.

한 명은 상인.

한 명은 여성 의사.

의사가 당선됐다.

국왕은 결과를 승인했다.

사제단 일부는 충격을 받았다.

제국은 선거를 전국에 즉시 강제하지 않았다.

세 도시가 잘 굴러가면 확대.

실패하면 조정.

제도도 시험운영이 가능했다.

본토에서는 ‘문명개도 자원봉사’가 유행했다.

교사.

의사.

기술자.

은퇴군인.

지원자가 너무 많아 오히려 선발해야 했다.

일부는 진심으로 돕고 싶어 했다.

일부는 모험.

일부는 경력.

일부는 우월감을 확인하러 왔다.

개도원은 마지막 부류를 특히 걸러냈다.

현지인을 사람보다 연구대상처럼 보는 태도.

기술은 뛰어나도 그런 사람은 보내지 않았다.

제국의 우월감은 이미 충분했다.

굳이 현장에서 모욕으로 바꿀 필요는 없었다.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