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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43화 — 신을 믿는 왕국

별의 제국 · 43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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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드 성왕국의 수도는 아름다웠다.

석조도시.

황금색 탑.

거대한 사원.

밤마다 별을 향해 켜지는 등불.

그리고.

하수처리율 41퍼센트.

영아사망률 8.7퍼센트.

평균수명 96년.

오르테가가 말했다.

“문화와 기술수준은 별개입니다.”

“알아.”

제국 조사단은 사원보다 하수관을 먼저 봤다.

라사드 사람들은 그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직접 가지 않았다.

아직 황제가 IV급 신정국에 나타나면 문제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대신 마리안을 보냈다.

그런데 라사드 왕은 실망했다.

[별의 황제는 왜 오지 않았는가.]

마리안이 답했다.

“황제는 수조 명을 다스립니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지 않았다.]

마리안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중요한 것과 황제가 직접 와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답이었다.

제국은 규모를 배워야 했다.

외부국가도.

라사드 사회는 왕보다 사제단의 힘이 강했다.

교육.

병원.

토지등기.

혼인.

장례.

사제들이 관리했다.

국왕은 군대와 세금.

둘이 서로 의존했다.

제국 조사단은 첫날부터 문제를 발견했다.

학교의 72퍼센트가 종교교육 중심.

자연과학 시간은 매우 적었다.

여성의 고등교육 제한.

일부 하층카스트는 학교 자체에 못 들어갔다.

의료도 신분에 따라 차이.

마리안이 물었다.

“이걸 전부 바꿀 생각이십니까?”

나는 답했다.

“한꺼번에 하면 나라 무너져.”

개혁은 필요했다.

속도가 문제였다.

제국 개도원은 50년 계획을 제시했다.

첫 5년.

상하수도.

감염병.

기초전력.

식량저장.

공교육 확대.

다음 15년.

산업화.

행정전산화.

고등교육.

여성·하층민 교육개방.

마지막 30년.

성간항법 기초.

제국시장 편입.

지역군 현대화.

라사드 국왕은 계획을 듣고 말했다.

[50년은 너무 길다.]

마리안이 대답했다.

“귀국 평균수명으로는 절반 생애입니다.”

[제국에게는?]

“짧습니다.”

종족마다 시간감각이 달랐다.

사제단은 교육개혁에 가장 크게 반발했다.

[별의 지식이 신앙을 파괴한다.]

제국은 강제로 사원을 닫지 않았다.

대신 공립학교를 무료로 세웠다.

급식.

의료.

기숙사.

학비 0.

아이들이 몰렸다.

사원학교는 경쟁해야 했다.

1년 안에 사원학교도 수학과 과학시간을 늘렸다.

세라가 보고 말했다.

“금지보다 경쟁이 빠르네요.”

“애들이 더 좋은 학교 가는 걸 막기 어렵지.”

제국은 종교를 공격하지 않았다.

더 좋은 서비스를 옆에 세웠다.

의료도 마찬가지였다.

제국 의료원은 수도에 첫 병원을 열었다.

치료비 무료.

첫날 환자 180만 명이 몰렸다.

질서가 무너질 뻔했다.

예약제가 도입됐다.

현지 의사들은 처음엔 제국 의학을 ‘신성모독’이라 비난했다.

그런데 자기 가족이 병에 걸리자 찾아왔다.

제국 의사는 치료했다.

신앙서약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뒤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사람은 논문보다 가족의 회복에서 더 빨리 설득되기도 했다.

라사드의 귀족제도는 또 다른 문제였다.

토지의 63퍼센트를 왕실·사원·귀족이 보유.

농민 다수는 세습임차.

법적으로 노예는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이동이 제한됐다.

제국은 즉시 해방령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새 법을 조건으로 걸었다.

[채무로 인한 세습구속 금지.]

[이주자유 보장.]

[임차계약 최대기간 제한.]

사제단과 귀족이 동시에 반발했다.

국왕은 계산했다.

제국 보호를 잃는 것보다 양보가 싸다고 판단했다.

법은 통과됐다.

본토에서는 비판도 나왔다.

[왜 미개한 신정국에 세금을 쓰나.]

[우리와 전략적 가치도 낮다.]

상원에서 같은 질문이 나왔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직할령으로 만들 생각 없어.”

“그런데 왜 개도합니까?”

“우리 보호권역 안에서 무너지는 나라 만들고 싶어?”

“라사드가 제국에 주는 건?”

“안정.”

그 자체가 가치였다.

해적.

난민.

전염병.

종교전쟁.

무너진 국가는 주변에 비용을 뿌린다.

안정된 보호국은 비용을 줄인다.

라사드의 전략가치는 높지 않았다.

희귀자원도 없다.

주요 관문도 아니다.

아틀라스 정착민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행정원에 못을 박았다.

“정식 제국령 전환 목표 잡지 마.”

“영구 보호국?”

“필요하면.”

“수백 년?”

“그래.”

라사드 왕실과 사제제도가 합리적으로 개혁되면 현지 손으로 다스리면 된다.

황실 관료를 수십억 명 사회에 쏟아부을 이유가 없었다.

라사드 왕은 마지막에 한 가지를 요구했다.

[우리 신앙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서약해달라.]

나는 직접 답신했다.

[개인의 신앙은 제국이 금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문장.

[그러나 신앙은 타인의 생명·교육·이동·제국법 위에 설 수 없다.]

왕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사제단은 갈렸다.

온건파는 수용.

강경파는 거부.

문제는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할 수는 있었다.

라사드는 제국의 새로운 실험이 됐다.

전쟁으로 이긴 나라가 아니라.

개도로 바꾸는 나라.

마리안은 라사드 왕궁에서 첫날부터 의전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왕 앞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사제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외국 여성은 왕실 내전 출입이 제한된다.

마리안은 마지막 규칙에서 멈췄다.

“저는 외교사절단장입니다.”

왕실 의전관이 당황했다.

[전통입니다.]

“그러면 회담을 밖에서 하죠.”

결국 규칙이 바뀌었다.

국가가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왕도 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래된 전통 중 일부는 누군가 처음 거절할 때까지 그냥 남아 있는 것뿐이었다.

라사드 도시를 직접 조사한 제국 관료들은 뜻밖의 장점도 찾았다.

사원 기반 구휼망.

지역 공동창고.

가족단위 돌봄.

재난 때 사제가 주민을 빠르게 조직하는 구조.

제국은 그걸 없애지 않았다.

공공복지망과 연결했다.

사제는 종교의식 외에도 지역사회복지사 역할을 맡았다.

“후진적 제도라고 전부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개도원 보고서에 적혔다.

사람을 살리는 기능은 남긴다.

차별과 강제만 걷어낸다.

농민의 이동자유 법안은 실제로 큰 혼란을 만들었다.

젊은 농민 수백만 명이 도시로 이동.

농촌 인력부족.

임금 상승.

식량가격 상승.

귀족들은 말했다.

[봐라. 자유가 농업을 망친다.]

제국 농업전문가는 기계화를 제안했다.

소형 농기계.

공동정비소.

협동조합.

5년 뒤 농촌인구는 줄었지만 생산량은 늘었다.

자유가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산성도 올랐다.

개혁은 직선이 아니었다.

라사드 여성교육 확대는 왕실 내부도 바꿨다.

국왕의 셋째 딸 세라핀 공주가 첫 기술학교 후원자가 됐다.

그녀는 제국 과학원 영상강의를 직접 듣기 시작했다.

사제단 강경파는 반발했다.

왕은 딸 편을 들었다.

[별을 건너온 사람들이 여성을 가르치는데 우리가 금지할 이유를 설명하라.]

아무도 설득력 있게 답하지 못했다.

몇 년 뒤 세라핀은 라사드 개도정책의 중요한 현지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제국은 기록만 해뒀다.

시민권 후보도.

귀족후보도.

아직 아니었다.

너무 빨랐다.

본토 관광객도 라사드에 몰리기 시작했다.

고대사원.

전통축제.

밤하늘.

문제는 일부 관광객의 태도였다.

“원시문명 체험”이라는 광고.

현지인 반발.

나는 즉시 해당 업체의 제국 관광허가를 정지시켰다.

“문명등급은 내부평가야.”

상무장관이 말했다.

“표현의 자유 문제도 있습니다.”

“말은 하게 둬. 제국 인증광고는 못 쓰게 해.”

국가가 모욕을 금지할 필요는 없다.

국가가 모욕을 장려할 필요도 없다.

라사드 왕은 나중에 마리안에게 물었다.

[제국은 우리를 열등하다고 보는가.]

마리안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기술과 행정의 여러 분야에서는 그렇습니다.”

왕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가 낮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제국도 매번 잘 구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답이 중요했다.

아틀라스 우월주의는 실제 격차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모든 제국인이 항상 현명한 건 아니다.

오만.

차별.

무례함.

그것도 관리해야 했다.

라사드 법무개혁에서 가장 오래 걸린 건 귀족재판권이었다.

귀족은 귀족법정.

농민은 지방법정.

사제는 종교법정.

같은 범죄도 신분에 따라 재판이 달랐다.

제국은 최소원칙을 요구했다.

[중범죄 동일절차.]

완전한 법통합은 뒤로 미뤘다.

살인, 강간, 중대폭력, 대형사기부터.

사제단은 결국 수용했다.

첫해.

귀족이 농민 폭행으로 실제 유죄판결을 받았다.

라사드 전역 뉴스가 됐다.

법 한 줄이 함대보다 사회를 크게 흔들 때도 있었다.

라사드 농촌에서는 제국을 보는 시선도 달랐다.

도시 청년은 제국을 기회라고 불렀다.

농민 노인은 세금조사단이라고 불렀다.

한 마을에서는 제국 의료차량이 도착하자 주민들이 숨었다.

과거 왕실 징세대가 마을에 올 때마다 가축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하루 종일 기다렸다.

첫 환자는 아이였다.

열병.

치료는 20분 걸렸다.

다음 날 환자가 4천 명 왔다.

제국 신뢰는 선언문보다 이런 식으로 쌓였다.

현지 시장에서는 제국산 소형정수기가 인기였다.

문제는 가짜제품.

겉모양만 비슷하고 내부필터는 현지 천.

상인이 ‘제국 인증’ 표시까지 위조했다.

첫 소비자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라사드 법에는 비슷한 죄목이 없었다.

법무원은 새 상법 조항을 만들었다.

위조상표.

제품안전.

환불.

상업법이 종교법보다 시민 일상에 더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명개도는 거대한 헌법보다 환불규정에서 체감될 때도 있었다.

왕궁 요리사들은 제국 식재료를 받아보고 가장 먼저 버터 비슷한 합성유제품을 거부했다.

[이건 음식이 아니다.]

제국 영양사가 말했다.

“성분은 더 좋습니다.”

[그래도 맛이 없다.]

결국 현지 조리법에 맞춘 새 제품이 개발됐다.

제국 개도원 보고서에는 진지하게 적혔다.

[식문화 적응 실패 시 보급정책 저항 가능.]

나는 읽다가 웃었다.

하수도와 헌법 사이에 맛 문제가 들어갔다.

그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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