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9화 — 동급이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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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항법기술이 VIII급 경계라는 보고가 공개되자 본토 여론이 두 갈래로 갈렸다.
첫 번째.
[드디어 동급문명을 찾았다.]
두 번째.
[유물 쓰는 VI급일 뿐이다.]
둘 다 과장됐다.
제국 과학원은 공식설명을 냈다.
[문명등급은 총체평가다.]
[개별 기술등급과 동일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간단한 말을 좋아했다.
‘동급.’
‘하위.’
‘강국.’
‘약국.’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았다.
◆상원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의원은 아르카디아를 즉시 전략동맹국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보호국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둘 다 이르다고 봤다.
“왜 지금 결론 내야 하지?”
재상이 말했다.
“시장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시장은 기다리라 해.”
“그게 가능하면 시장이 아니죠.”
맞는 말이었다.
◆아르카디아의 실제 국력을 확인하기 위해 합동훈련을 제안했다.
명목은 항로구조훈련.
민간선 사고 시 공동대응.
리에나는 수락했다.
아르카디아 호위함 42척.
구조선 19척.
제국은 경순양함 3척과 구조선 8척.
규모부터 달랐다.
“함선을 더 보내시겠습니까?”
마리안이 물었다.
“훈련에 필요한 만큼이면 되지.”
“상징이.”
“상징 때문에 연료 쓰지 마.”
◆훈련 첫 단계.
가상 상선 120척이 항로이탈.
아르카디아가 빨랐다.
분산신용격자와 상업항법망을 이용해 민간선 소유자, 화물성격, 승무원 생체정보를 즉시 통합했다.
제국 구조AI보다 초기 데이터수집이 11초 빨랐다.
라울이 말했다.
“상업망을 군사구조에 연결했군.”
“좋네.”
두 번째 단계.
중력폭풍.
여기서는 제국이 압도했다.
아르카디아 호위함의 항법망이 흔들리는 동안 제국 순양함 세 척이 전체 구조함대를 다시 배치했다.
세 번째 단계.
적성함대 출현.
아르카디아는 훈련개시 4분 만에 철수를 제안했다.
제국 측은 37초 만에 가상적군을 전멸판정냈다.
리에나는 결과를 보고 말했다.
“분야가 다르군요.”
“그러네.”
동급기술 하나.
국가가 동급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훈련 뒤 아르카디아 군사대표가 제국 경순양함을 견학했다.
공개 가능한 구역만.
그는 주포보다 승조원 수에 놀랐다.
“이 함선에 620명뿐입니까?”
“응.”
“저희 동급체급이면 4,000명입니다.”
“자동화 차이.”
“AI가 그렇게 많은 권한을 가집니까?”
“전술보조까지.”
“사격결정은?”
“인간.”
“긴급방어는?”
“AI 예외권한.”
그는 계속 메모했다.
우리는 그들이 뭘 묻는지도 기록했다.
외교는 서로를 관찰하는 일이다.
◆아르카디아 쪽에서 가장 놀란 건 함선 수명이었다.
제국 경순양함 한 척이 173년 된 함선이라는 말을 듣고 대표가 말했다.
“박물관함입니까?”
함장이 웃었다.
“현역입니다.”
“173년?”
“이번 개수는 8년 전.”
아틀라스 함정은 선체와 핵심프레임을 오래 쓰고 내부시스템을 계속 교체했다.
장수명 종족의 산업철학이기도 했다.
승조원 중 함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많았다.
아르카디아는 함선을 30~40년 주기로 교체했다.
기술만 비교해서는 문명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반대로 제국은 아르카디아 상선의 모듈화를 배웠다.
선체 중앙부가 표준화돼 화물모듈을 6시간 안에 교체.
여객.
냉동.
위험물.
소형함 정비.
하나의 선체가 역할을 바꿨다.
제국 상선은 더 크고 성능도 좋았다.
그런데 과하게 전문화돼 있었다.
상무원이 보고했다.
“변경 개척권에서는 아르카디아식 모듈구조가 더 경제적일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공동설계사업을 승인했다.
몇몇 본토 조선기업이 반발했다.
“하위문명 설계를 제국표준에 반영하면 품질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답은 간단했다.
“좋은 부분만 써.”
제국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의 걸 거부하는 게 아니다.
가져와서 더 잘 만드는 것이다.
◆훈련 마지막 밤.
리에나와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
공식 만찬은 아니었다.
세라와 마리안은 옆방.
근위는 문 밖.
“아르카디아는 제국이 두렵습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
솔직했다.
“왜?”
“귀국은 저희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건 알 텐데.”
“강한 나라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
“귀국은 약한 국가의 독립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확했다.
“그래서?”
“저희도 언젠가 평가표의 한 줄이 될 수 있죠.”
“이미 됐는데.”
그녀가 웃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알았다.
보호국.
감독국.
자치령.
그 목록에 아르카디아가 들어갈 가능성.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가능해.”
“동맹이 아니라?”
“상황 따라.”
“그런 말을 듣고도 저희가 귀국과 거래해야 합니까?”
“안 해도 돼.”
“그런데 거래하고 싶습니다.”
“왜?”
“시장.”
이번에는 내가 웃었다.
“일관성 있네.”
◆리에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저희는 독립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
“당장 사겠다고도 안 했어.”
“당장.”
“그래.”
“그 단어가 마음에 안 듭니다.”
“나도 자네 항법기술 밀봉한 거 마음에 안 들어.”
서로 웃었다.
그 정도의 긴장은 나쁘지 않았다.
◆동급이 아니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제국보다 약하다고 해서 곧바로 정복할 필요도 없다.
정복은 수단.
보호국도 수단.
동맹도 수단.
통상도 수단.
제국에 필요한 건 가장 유리한 질서였다.
아르카디아는 현재로선 독립 상업국으로 두는 편이 더 유용했다.
그들의 항로.
정보망.
교역관계.
바깥세계로 이어지는 문.
그걸 부수기보다 이용하는 게 낫다.
언젠가 상황이 달라지면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그게 제국의 외교였다.
◆합동훈련 결과가 공개되자 아르카디아 내부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친통상파는 말했다.
[제국과 경쟁하지 말고 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안보파는 말했다.
[지금 거래망을 열면 경제의존이 정치종속으로 이어진다.]
리에나는 두 주장 모두 맞다고 했다.
나는 그 발언을 보고 마리안에게 물었다.
“저 사람 정치 잘하네.”
“상인공화국에서 살아남은 외교관입니다.”
◆제국 내부에서는 반대 방향의 논쟁이 있었다.
“아르카디아를 지금 보호국으로 만들면 항법기술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 군부 의원이 주장했다.
라울이 오히려 반대했다.
“전쟁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럼 왜.”
“항로망은 이길 수 없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아르카디아 상업망은 사람과 계약과 신뢰관계로 이루어졌다.
수도를 점령한다고 그대로 넘어오는 자산이 아니었다.
협력자가 적으로 바뀌면 지도만 얻고 길을 잃을 수 있다.
라울은 군인이었지만 정복의 한계를 정확히 알았다.
◆나는 전략회의에서 원칙을 하나 추가했다.
[흡수 가능한가]와 [흡수하는 편이 이익인가]를 구분할 것.
제국에게 중요한 기준이었다.
약한 나라를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복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다.
통치비용.
외교파장.
기술손실.
시장붕괴.
주민저항.
모두 계산해야 한다.
“이건 평화주의입니까?”
한 참모가 물었다.
“회계야.”
제국은 전쟁을 도덕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낭비를 싫어했다.
◆아르카디아 합동훈련에서 제국 장교들도 배운 게 있었다.
민간선 지휘.
상업항로 데이터.
항만 우선순위 결정.
군대는 전투에는 강했지만 수백만 상선을 동시에 살리는 일은 상업국가가 더 익숙했다.
아델라인은 훈련평가서에 직접 적었다.
[적 함대를 없애는 것과 경제권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기술이다.]
그 문장은 군사대학 교재에 들어갔다.
아르카디아는 제국보다 약했다.
그래도 제국군 교재 한 줄을 바꿨다.
그 정도면 이미 만날 가치가 있었다.
◆리에나는 식사자리에서 물었다.
“만약 저희가 언젠가 귀국과 비슷한 국력을 갖게 되면요?”
“동급으로 대하지.”
“정말?”
“왜 안 해.”
“지금까지 귀국 행동을 보면 모든 주변국을 결국 편입하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약하고 우리 전략권 안에 있으면.”
“그럼 강해져야겠군요.”
“그래.”
그녀가 웃었다.
“보통 제국은 속국에게 강해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네 아직 속국 아니야.”
“아직.”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그 단어를 썼다.
나는 웃었다.
아르카디아도 우리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아르카디아 군사대표는 귀국 전 내게 질문 하나를 남겼다.
“귀국은 저희가 강해지는 걸 정말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두려워할 수준까지 강해지면 그때 생각하지.”
“그 전에 막지 않고요?”
“우리한테 덤빌 이유가 없게 만드는 게 더 싸.”
대표는 웃지 않았다.
“그 자신감이 가장 무섭습니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제국의 억지력은 적을 약하게 만드는 데만 있지 않았다.
상대가 강해져도 전쟁을 선택할 이유가 없게 만드는 질서.
그게 더 오래갔다.
합동훈련 뒤 제국군 내부평가에서는 아르카디아를 ‘잠재적 적’으로 가정한 모의전도 돌렸다.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정규전에서는 제국 승리.
하지만 아르카디아가 상업망을 끊고 주변시장에 제국 보이콧을 조직하면 경제적 비용이 훨씬 커졌다.
라울이 말했다.
“전쟁에서 이겨도 시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 싸우는 거지.”
군사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사실과 국가전략에서 이긴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국은 그 차이를 잊지 않으려 했다.
리에나가 귀국길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짧았다.
[동급이 아니어도 협상은 가능한 것 같군요.]
나는 답했다.
[우리가 원하는 게 있으면.]
잠시 뒤 답이 왔다.
[그 말도 마음에 안 듭니다.]
[익숙해져.]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아마 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훈련평가서 마지막 줄에는 아르카디아 측 문장도 함께 실렸다.
[아틀라스는 우리보다 강하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장점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남기라고 했다.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제국의 우월감도 현실에 닿아 있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