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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8화 — 아르카디아의 숫자

별의 제국 · 38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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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가 수도에 공관을 연 다음 날.

우리는 그 나라를 정식으로 뜯어보기 시작했다.

보고서 분량 18,412페이지.

세라가 말했다.

“요약본은 217페이지입니다.”

“그게 요약이야?”

“원본의 1.1퍼센트입니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아르카디아 성간공화국.

직할성계 68.

연합회원권역 45.

총인구 약 2,900억.

명목상 공화국.

실제 구조는 지역정부, 상업조합, 은행연합, 운송길드가 권력을 나누는 복합체제.

군사력은 예상보다 약했다.

정규전투함 약 2만 1천 척.

대부분 경순양함 이하.

대형함은 적었다.

반면 민간 상선은 600만 척 이상.

항로정보망과 결제망은 군사력보다 훨씬 발달했다.

라울이 말했다.

“전쟁국가가 아니군요.”

마리안은 다르게 봤다.

“전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이 맞았다.

아르카디아는 필요할 때 용병함대와 동맹국 전력을 샀다.

돈으로 전쟁을 외주화했다.

기술평가는 더 재미있었다.

전체적으로 VI+.

일부 영역 VII.

그리고 한 가지.

공간항법 보정기술.

VIII급 경계선.

오르테가가 흥분했다.

“이건 이상합니다.”

“왜?”

“전체 기반기술과 안 맞습니다.”

아르카디아 상선은 초광속항행 자체는 제국보다 훨씬 느렸다.

그런데 특정 고정항로에서의 오차율이 제국 상용선보다 낮았다.

“가능해?”

“원리를 봐야 합니다.”

아르카디아는 핵심기술 공개를 거부했다.

당연했다.

나는 말했다.

“그럼 사.”

재무장관이 물었다.

“얼마에?”

“저쪽이 부르는 거 보고.”

오르테가는 싫어했다.

“연구하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

“몇 년?”

“10년 이내.”

“그럼 돈 주고 오늘 알아내는 게 싸면?”

과학자는 지식을 돈으로 사는 걸 가끔 싫어했다.

황제는 비용을 봐야 했다.

리에나와 두 번째 정상급 회담.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말했다.

“공간항법 기술에 관심이 있으시죠.”

“티 났나?”

“과학원장이 저희 장치를 세 시간 동안 봤습니다.”

오르테가가 말했다.

“두 시간 47분입니다.”

별 차이 없었다.

리에나는 조건을 내놓았다.

“기술 전체 이전은 불가.”

“그럼?”

“공동운용권.”

“싫어.”

“왜요?”

“자네가 끄면 못 쓰잖아.”

“그건 귀국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린 우리 기술 주면 전체설계도까지 줄 수 있어.”

리에나가 잠깐 멈췄다.

강대국의 기술거래와 약소국의 기술거래는 태도가 달랐다.

우리는 일부 비전략기술을 잃어도 국가안보가 흔들리지 않는다.

아르카디아는 몇 개의 특화기술이 국가의 협상력 자체였다.

결국 기술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공동시험이 허용됐다.

아르카디아 항로보정장치를 제국 시험선에 장착.

제국 과학자가 운용은 볼 수 있지만 핵심부는 밀봉.

에일린은 당연히 불평했다.

“열어보면 되는데.”

“그러면 절도지.”

“황실명령이면.”

“그래도 절도야.”

우리가 훨씬 강하다고 계약을 의미 없게 만들면 아무도 우리와 기술거래를 하지 않는다.

제국은 뺏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안 뺏는다는 신뢰가 더 중요했다.

시험 결과는 놀라웠다.

제국 표준항로보정 대비 오차율 17퍼센트 개선.

특정 중력교란구역에서는 31퍼센트.

오르테가가 말했다.

“동급입니다.”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진짜 VIII?”

“이 기술만.”

그 말이 중요했다.

전체 문명등급과 개별기술등급은 다르다.

아르카디아는 제국급 항로보정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제국급 국가가 된 건 아니다.

산업.

함대.

인구.

에너지.

AI.

생명공학.

행정망.

모든 걸 합치면 여전히 격차가 컸다.

원리는 며칠 뒤 일부 드러났다.

아르카디아가 직접 개발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들의 핵심항로마다 설치된 고대 ‘공명표식기’.

기원 불명.

아르카디아 건국 전부터 존재.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장치를 분석해 활용기술을 발전시켰다.

완전히 복제하지는 못했다.

오르테가의 표정이 복잡했다.

“기술 자체는 대단하지만 기반은 유물입니다.”

“그래도 쓰는 법 알아낸 것도 기술이지.”

“맞습니다.”

“낮춰보지 마.”

제국의 우월주의는 결과를 무시하는 핑계가 되면 안 됐다.

더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

공명표식기 일부는 현재 작동하지 않는다.

약 27년 전부터.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언제?”

리에나가 자료를 확인했다.

“아르카디아력 환산으로 26년 11개월 전부터 고장사례 급증.”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대단절.

시기와 거의 겹쳤다.

“위치는?”

고장난 표식기를 지도에 올렸다.

특정 방향으로 몰려 있었다.

아틀라스 본토권 방향.

오르테가의 눈빛이 변했다.

“이건.”

에일린이 말했다.

“우연일 수 있습니다.”

“알아.”

하지만 우연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대단절은 우리만 겪은 사건이 아닐 가능성이 생겼다.

아르카디아는 그 시기 현상을 ‘대항로 떨림’이라 불렀다.

며칠 동안 일부 장거리 항로 좌표가 어긋났다.

선박 812척 실종.

통신교란.

천문위치 미세오차.

그들은 지역적 공간재해로 결론내렸다.

우리는 27년 동안 원인을 찾고 있었다.

두 기록을 겹치자 처음으로 외부 관측자료가 생겼다.

대단절 순간.

바깥에서 우리 쪽을 본 기록.

나는 황제직속 대단절 진상조사원을 소집했다.

연구원 일부는 울 정도로 흥분했다.

27년 만의 외부증거.

“결론 내리지 마.”

내가 먼저 말했다.

“아직 자료 하나야.”

원장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르카디아에 더 있는 자료 전부 사.”

“가격이 높을 겁니다.”

“돈 있잖아.”

제국이 7조 인구에서 걷는 세금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리에나는 자료제공 대가로 세 가지를 요구했다.

제국시장 제한접근 확대.

아르카디아 상선의 보호권역 통항세 인하.

그리고 제국 의료기술 일부.

마리안이 말했다.

“비쌉니다.”

나는 달리 봤다.

“27년짜리 미스터리 첫 외부증거인데?”

거래는 성립했다.

그날 문명등급 평가표가 수정됐다.

아르카디아.

총체 VI+/VII-.

금융 VII.

상업정보 VII+.

항법응용 VIII-.

군사 VI+.

산업 VII-.

국가 전체 VIII 아님.

나는 표를 보며 말했다.

“이런 나라 많이 나오겠네.”

오르테가가 물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한두 기술 보고 동급인 줄 착각하는 거.”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동급은 드물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문명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게 더 재미있었다.

제국이 모든 걸 이미 최고로 알고 있다면.

우주에 나갈 이유가 줄어드니까.

대항로 떨림 자료는 단순한 항법기록만이 아니었다.

보험회사 손실기록.

민간선 구조통신.

항만 도착지연.

개인일지.

심지어 선원들이 남긴 술집 영상까지 모였다.

대단절 진상조사원은 모든 걸 샀다.

아르카디아 금융조합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사소한 자료까지 돈을 주십니까?”

조사원장이 답했다.

“우리에겐 사소하지 않습니다.”

27년 동안 내부데이터만 가지고 같은 벽을 두드렸다.

외부인의 평범한 영수증 한 장도 새로운 각도가 될 수 있었다.

자료 중 하나에서 이상한 장면이 발견됐다.

대항로 떨림 당일.

아르카디아 상선 하나가 먼 거리에서 아틀라스 방향을 촬영했다.

영상에는 별빛이 0.8초 동안 휘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렌즈오류로 분류됐던 기록.

제국 과학원은 즉시 재분석했다.

오르테가가 말했다.

“중력렌즈와 비슷하지만 규모가 맞지 않습니다.”

“공간이 접혔다는 뜻?”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본토가 이동한 흔적?”

“아직은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대단절이 바깥에서 ‘보였을’ 가능성이 생겼다.

상원 정보위원회는 자료를 기밀로 묶자는 의견을 냈다.

이유는 사회불안.

나는 일부만 동의했다.

정확한 좌표와 군사적 분석은 비공개.

현상 자체는 공개.

“왜 공개합니까?”

위원이 물었다.

“27년 동안 국민도 기다렸어.”

“불확실한 자료입니다.”

“그것도 같이 말하면 돼.”

제국 과학원은 발표했다.

[대단절 시기 외부 관측과 일치할 가능성이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

[현재 원인확정은 불가능하다.]

대중은 열광했다.

음모론도 늘었다.

그래도 숨기는 것보다 나았다.

아르카디아 쪽에서도 질문이 나왔다.

“귀국의 대단절이 저희 항로재해를 일으킨 겁니까?”

리에나가 물었다.

“몰라.”

“만약 그렇다면?”

“책임 따져봐야지.”

“귀국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뜻인데요.”

“증거 있으면.”

리에나는 한동안 나를 봤다.

강대국이 자기 책임 가능성을 입 밖으로 내는 게 의외였던 모양이다.

제국은 자존심이 강했다.

그래서 사실까지 바꿀 필요는 없었다.

대단절 외부자료는 황실기록원에 별도 등급으로 보존됐다.

원본은 아르카디아 소유.

제국은 복제권과 연구권을 샀다.

나는 계약서에 ‘원본 소유권 불변’ 조항을 직접 확인했다.

“이런 것까지 보십니까?”

마리안이 물었다.

“나중에 우리가 발견했다고 우길까 봐.”

강대국은 역사를 자기 공로로 만들기 쉽다.

첫 외부증거를 준 건 아르카디아였다.

그 사실도 기록에 남겨야 했다.

과학원 내부에서는 자료 해석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본토 전체의 공간전이를 주장했다.

다른 쪽은 관측오류라고 했다.

세 번째는 ‘보존권역’ 가설을 꺼냈다.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반론을 의무적으로 보고서에 붙이게 했다.

한 이론만 황실후원을 받기 시작하면 연구자들은 증거보다 예산을 따라갈 수 있다.

황제는 진실을 명령할 수 없었다.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권력이 강해도 우주가 내 명령을 듣지는 않는다.

대단절 조사원은 아르카디아 자료를 ‘외부증거군 1’로 명명했다.

1이라는 분류 하나에 연구원들이 웃었다.

27년 동안 외부증거군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처음으로 두 번째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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