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7화 — 빈 대사관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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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대표단을 수도 아우렐리움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리에나는 즉시 수락했다.
“제국 수도를 볼 수 있다는 건 상인에게 최고의 정보입니다.”
“그걸 대놓고 말해?”
“숨긴다고 정보가 아닙니까?”
나는 점점 저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에일린은 아니었다.
“모든 동선을 제한해야 합니다.”
“외교사절인데.”
“그래서 더.”
“너는 누구든 의심하잖아.”
“제 업무입니다.”
그건 맞았다.
◆아르카디아 대표단이 처음 본 아우렐리움은 말이 없었다.
수도성 하나가 아니었다.
행성.
위성도시.
궤도환.
인공거주구.
조선소.
행정정거장.
황실구역.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수도권 전체가 하나의 문명처럼 보였다.
리에나는 창밖을 보며 물었다.
“이 성계에 몇 명이 삽니까?”
“상주인구 760억 정도.”
그녀가 나를 봤다.
“저희 수도권 전체보다 많습니다.”
“그래?”
“모르셨습니까?”
“자네 나라 인구표 아직 다 못 외웠어.”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는 이런 데서 드러났다.
한쪽에게 국가적 숫자.
다른 쪽에게는 아직 외우지 못한 자료.
◆대표단 숙소는 옛 외교지구에 잡았다.
대단절 이전.
수십 개 외계 보호국과 우호국의 공관이 모여 있던 곳.
27년 동안 대부분 비어 있었다.
정부는 철거하지 않았다.
휴면외교재산.
문이 잠긴 채 유지된 건물.
주인이 돌아올 가능성을 법적으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에나는 거리를 걸으며 물었다.
“이 건물들이 전부?”
“사라진 나라들.”
“멸망했습니까?”
“몰라.”
“27년 동안?”
“그래.”
그녀는 처음으로 상인다운 표정을 잃었다.
◆옛 카엘 보호왕국 대사관 앞에는 꽃이 놓여 있었다.
매년 같은 날.
누군가 가져다두는 꽃.
대사관 직원 중 한 명과 결혼했던 아틀라스인이 놓는다고 했다.
배우자는 대단절 때 사라졌다.
본인은 아직 430세.
아틀라스 기준으로는 앞으로 몇백 년 더 살 수 있다.
리에나는 물었다.
“사망선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특별법으로 안 해.”
“재혼은?”
“가능.”
“상속은?”
“신탁.”
“국적은?”
“그대로.”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제국법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사라짐’을 죽음과 구분하는 이유.
대단절은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외교지구 한가운데에는 ‘침묵의 광장’이 있었다.
매년 대단절 발생시각.
47초 동안 조명이 꺼진다.
그날은 기념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르카디아 대표단 방문 중 우연히 월례 추모시간과 겹쳤다.
사이렌도 없었다.
명령도 없었다.
광장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47초.
상점음악도 꺼졌다.
전광판도.
차량도 저속모드로 전환.
리에나도 말하지 않았다.
빛이 돌아온 뒤 그녀가 물었다.
“강제입니까?”
“아니.”
“그런데 전부 멈춥니다.”
“기억하니까.”
제국은 본토·정식 제국령만 약 7조 명이 사는 사회였다.
그 7조가 같은 47초를 기억한다.
대단절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설명하는 데 다른 숫자가 필요 없었다.
◆아르카디아 대표단은 빈 대사관 하나를 임시공관으로 쓰고 싶다고 요청했다.
외교원은 난감해했다.
휴면재산이었다.
주인이 따로 있다.
마리안이 말했다.
“새 건물을 제공하겠습니다.”
리에나는 물었다.
“27년 동안 비었는데도?”
“비었다고 주인이 없는 건 아닙니다.”
“돌아올 가능성을 진심으로 생각하시는군요.”
나는 덧붙였다.
“우린 아직 포기 안 했어.”
아르카디아는 결국 새 공관을 배정받았다.
옛 외교지구 끝.
27년 만에 처음 새로 켜지는 외국공관이었다.
그날 밤 건물 외벽에 아르카디아 문장이 올라갔다.
본토 시민 수십만 명이 직접 보러 왔다.
◆반응은 생각보다 감정적이었다.
한 시민이 인터뷰에서 울었다.
“예전엔 이 거리에 외계인들이 많았어요.”
그녀는 301세.
대단절 당시 274세.
성인이었다.
“친구도 있었고.”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는 이런 불빛을 못 볼 줄 알았습니다.”
아르카디아 공관 개관영상은 제국 전체에 방송됐다.
동시 시청자는 8,900억.
국가비상연설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수였다.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외국대사관.
나이 든 세대에게는 돌아온 일상의 일부.
같은 장면이 세대마다 다르게 보였다.
◆공관 개관식에서 리에나는 짧게 연설했다.
“우리는 이 거리에 처음 왔습니다.”
“그러나 이 거리가 처음 외국인을 맞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르카디아는 사라진 사람들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오늘부터 이곳에 다시 불을 하나 켤 수 있을 뿐입니다.”
좋은 연설이었다.
마리안이 나에게 속삭였다.
“외교관도 잘하네요.”
“상인은 말 잘해야지.”
리에나가 들었는지 우리 쪽을 잠깐 봤다.
◆행사가 끝난 뒤 나는 혼자 옛 대사관 구역을 조금 걸었다.
황제가 혼자라고 해도 근위는 50미터 뒤에 있었다.
카엘 대사관.
소르바 연방 공관.
메르탄 수중국 사절관.
기억 속 화면에서는 이름과 보너스뿐이었던 나라들도 있었다.
그게 실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나는 그중 한 건물 앞에 멈췄다.
문은 잠겨 있었다.
내 기억에는 그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에도 없다.
대단절은 우리를 살린 사건일 수도 있다.
납치한 사건일 수도 있다.
무언가에서 격리한 사건일 수도 있다.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카시안이 말했다.
“폐하, 일정이.”
“알아.”
“오늘은 제가 말하기 전에 가실 줄 알았습니다.”
“나도 성장하지.”
그때 옆 건물에서 아르카디아 직원들이 짐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
상자 끄는 소리.
번역기 안내음.
27년 동안 조용하던 거리에 다시 외국어가 들렸다.
찾고 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주가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했다.
◆옛 외교지구에는 식당도 남아 있었다.
간판은 켜지지 않았지만 내부시설은 보존됐다.
메르탄 수중국 요리점.
카엘 향신료점.
소르바 음악주점.
주인은 모두 대단절 때 사라졌다.
문화부는 27년 동안 폐업처리하지 않고 휴면문화시설로 관리했다.
아르카디아 대표단이 그중 하나를 보고 물었다.
“왜 박물관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문화관이 답했다.
“돌아오면 다시 영업할 수도 있으니까요.”
리에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국은 거대한 국가였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미련했다.
나는 그 미련이 싫지 않았다.
◆그날 오후 한 노인이 나를 찾아왔다.
전직 외교관.
811세.
대단절 전 카엘 보호왕국에서 90년 근무.
그는 아르카디아 공관 불빛을 직접 보고 싶어서 수도까지 왔다고 했다.
“폐하.”
“말해.”
“옛 나라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거짓말할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답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희망을 말해줄 수도 있는데.”
“황제의 희망보다 사실이 낫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황제라고 모든 불안을 끝내줄 수는 없다.
때로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통치였다.
◆아르카디아 직원들이 새 공관에 입주하자 주변 임대료가 올랐다.
27년 동안 침체됐던 외교지구 상권도 살아났다.
카페.
번역서비스.
외국인용 숙소.
문화가 돌아오자 돈도 따라왔다.
한 상인은 옛 카엘식 음료를 복원해 팔기 시작했다.
원래 주인이 돌아오면 레시피 권리를 어떻게 할지 논쟁이 생겼다.
법무원은 답했다.
[휴면저작권 우선.]
사람들은 웃었다.
대단절은 법률가들에게 27년짜리 숙제를 남겼다.
빈 외교지구를 보존하는 비용은 해마다 막대했다.
하원에서는 여러 번 철거안이 나왔다.
토지가 너무 비싸고.
건물은 낡고.
주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매번 부결됐다.
경제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대단절 실종자 가족들은 말했다.
[집을 없애는 순간 국가가 그들의 귀환 가능성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진다.]
제국은 계산적인 나라였다.
그래도 모든 걸 돈으로 계산하지는 않았다.
◆아르카디아 공관이 문을 연 뒤 가장 먼저 채용한 현지직원은 옛 외교지구 관리인이었다.
그는 340년 동안 외국공관을 관리한 경력이 있었다.
대단절 뒤 27년은 비어 있는 건물만 관리했다.
첫 출근 날 그가 말했다.
“오랜만에 민원 받을 사람이 생겼군요.”
리에나는 웃었다.
그 평범한 농담이 주변 사람들을 울렸다.
사람들은 외계인이 돌아왔다는 걸 거대한 함대보다 민원창구에서 더 실감했다.
외교지구 복원계획에는 ‘새 외국인 거리’ 조성안도 포함됐다.
기존 휴면공관은 건드리지 않고 그 바깥에 신규 부지를 만든다.
아르카디아 상점.
로하르 문화원.
벨로아 금융사무소.
세르마크 음식점.
보호국 주민들이 본토에 장기체류하려면 여전히 허가가 필요했지만, 외교·유학·업무목적의 방문은 빠르게 늘고 있었다.
본토 시민들은 환영과 불안을 동시에 보였다.
“외계문화가 돌아와 좋다.”
“대단절 전처럼 너무 많이 의존하면 안 된다.”
같은 사건에서 상반된 기억이 나왔다.
◆한 시민단체는 옛 외교지구를 성역처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단체는 도시가 살아 있으려면 새 상점과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문화부는 절충했다.
핵심 휴면공관은 보존.
주변 공공공간은 재활성화.
나는 승인했다.
기억을 지키는 가장 나쁜 방법 중 하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다시 걷고, 먹고, 떠들어야 거리도 살아남는다.
새 외국인 거리의 첫 공식 간판은 네 언어로 달렸다.
제국어.
아르카디아어.
로하르어.
세르마크어.
번역문 순서를 두고 또 논쟁이 있었지만, 이번엔 추첨으로 정했다.
누구도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도 불만은 간판 높이에서 끝났다.
27년 전처럼 사람이 사라지는 일에 비하면 사소한 싸움이었다.
◆외교지구 관리인은 아르카디아 공관에 열쇠를 넘기며 말했다.
“빈 건물만 지키다 사람이 들어오는 건 오랜만입니다.”
리에나는 답했다.
“이번엔 오래 있겠습니다.”
그 짧은 대화가 외교부 기록에 남았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