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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6화 — 황제가 왜 여기 있습니까

별의 제국 · 36 / 29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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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자유항 시장 사건 뒤 황실경호국은 내 외출규정을 14페이지 늘렸다.

나는 읽지 않았다.

카시안이 읽어줬다.

“사전동선 확인.”

“싫어.”

“비상대피로 두 개 이상 확보.”

“좋아.”

“현장인원 밀도 상한.”

“싫어.”

“식품섭취 전 검역.”

“그건 지난번 과일 때문이지?”

“맞습니다.”

세라도 경호국 편이었다.

나는 황제였다.

제국 전체의 최종권력을 가진 사람.

그런데 과일 하나 내 마음대로 못 먹었다.

권력에는 이상한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는 벨로아 수도항을 방문했다.

공식방문이 아니었다.

보호국 행정점검.

그래도 황제가 움직이면 비공식이 공식처럼 됐다.

벨로아 정부는 내가 온다는 사실을 2시간 전에 통보받았다.

다렌 의장은 거의 뛰어왔다.

“폐하, 적어도 하루 전에는.”

“그러면 도시 청소하잖아.”

“청소가 나쁩니까?”

“평소 모습을 못 보지.”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시장으로 갔다.

벨로아 상업도시는 로하르와 완전히 달랐다.

간판.

광고.

가격비교 홀로그램.

거리마다 환전기.

심지어 보행로 옆 전광판에도 실시간 보험료가 떴다.

“저건 왜.”

다렌이 말했다.

“우주항 사고보험입니다.”

“걷다가 보험 드는 사람이 있어?”

“많습니다.”

상업국은 정말 달랐다.

광장 한쪽에서 학생들이 제국 보호조약 반대서명을 받고 있었다.

[외교권을 돌려달라.]

근위가 길을 바꾸려 했다.

나는 그대로 갔다.

학생 하나가 내 앞에 서류판을 내밀었다.

“서명하시겠습니까?”

내 얼굴을 못 알아봤다.

나는 질문했다.

“누구한테 외교권을 돌려달라는 건데?”

“아틀라스 제국.”

“황제한테?”

“정부 전체요.”

“황제가 여기서 서명하면 효력 있어?”

학생이 웃었다.

“당신이 황제면요.”

카시안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서류판을 받았다.

서명란에 썼다.

[아틀라스 황제 — 요구 접수.]

학생이 표정을 잃었다.

주변 사람들이 멈췄다.

다렌 의장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폐하.”

“뭐.”

학생이 거의 속삭였다.

“진짜입니까?”

“응.”

“왜 여기에.”

“그 말을 제일 많이 듣네.”

나는 서류판을 돌려줬다.

“서명했다고 돌려준다는 뜻은 아니야.”

학생이 정신을 차렸다.

“그럼 왜 서명하셨습니까?”

“읽었다는 뜻.”

“그럼 답변도 주십시오.”

“정식으로 보내.”

“보내면 읽습니까?”

“담당부처가.”

“폐하는요?”

“중요하면.”

정직한 답이었다.

황제가 수조 명의 청원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영상은 또 퍼졌다.

이번에는 벨로아 쪽에서 먼저.

[황제가 반제국 서명운동에 서명.]

제목만 보면 이상했다.

본토에서 6시간 만에 조회수 7,800억.

일부 상원의원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황제께서 보호국 내 반제국 운동의 정당성을 높였습니다.”

나는 답했다.

“원래 합법인데.”

“그래도 상징이.”

“그럼 불법으로 만들까?”

“그건 또 아닙니다.”

“그럼 됐네.”

황제가 너무 강한 나라에서는 황제가 반대의견을 직접 억압하지 않는다는 신호도 중요했다.

내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경찰이 움직인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체제는 이상하게 변한다.

다렌은 방문 마지막 날 내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제국에 반대하는 사람을 왜 놔두십니까?”

“법 안 어기면.”

“제국 질서를 부정하는데도?”

“말로?”

“예.”

“말이 함대를 침몰시켜?”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면 우리 정책이 더 설득력 있어야지.”

다렌이 웃었다.

“아르카디아인들이 귀국을 이상하게 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뭐래?”

“독재국처럼 강한데 시민사회는 자유롭다고.”

“둘이 왜 반대야?”

아틀라스는 역사적으로 다르게 발전했다.

국가의 전략방향은 황제가 강하게 잡는다.

개인의 삶은 가능한 한 건드리지 않는다.

국가가 강하다는 것과 시민의 일상까지 국가가 결정한다는 건 같은 뜻이 아니었다.

벨로아 상업학교에서 학생들과 짧은 질의응답도 했다.

첫 질문.

“황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황실에서 태어나.”

웃음.

“태어나기만 하면 됩니까?”

“아니.”

황위계승자는 현 황제가 지명한다.

황족이라고 자동으로 황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교육.

경력.

군사.

행정.

그리고 현 황제의 판단.

두 번째 질문.

“벨로아인이 황제가 될 수 있습니까?”

“현재 법으로는 안 돼.”

“시민권을 받아도요?”

“황실혈통 아니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왕정이 원래 그래.”

회의장이 웃었다.

굳이 민주주의인 척할 생각은 없었다.

세 번째 질문이 더 어려웠다.

“제국은 우리를 왜 보호국으로 만들었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우리가 지킬 수 있고.”

“……”

“너희가 우리 항로 안에 있고.”

“……”

“따로 있을 때보다 제국질서 안에 있을 때 우리한테도 너희한테도 이익이 크니까.”

학생이 물었다.

“우리를 위해서만은 아니군요.”

“당연하지.”

그 답이 오히려 박수를 받았다.

선의만 말하는 제국은 믿기 어렵다.

제국은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다만 그 이익과 현지인의 삶을 가능한 한 같은 방향으로 맞추려 했다.

그래야 오래 갔다.

복귀 전.

그날 서명판을 내밀었던 학생이 다시 찾아왔다.

이름은 마엘 코르.

상업법 전공.

“정식청원 넣었습니다.”

“그래.”

“외교권 반환 요구입니다.”

“봤어.”

“벌써요?”

“요약만.”

“답은?”

“안 돌려줘.”

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바로요?”

“그건 내 권한이니까.”

“그럼 청원 의미가 없잖습니까.”

“정책 바뀔 가능성 0이라고 누가 그래.”

“지금은 0 아닙니까?”

“지금은.”

그는 고개를 저었다.

“폐하가 싫습니다.”

“그래도 돼.”

“그 말도 싫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웃었다.

황실함으로 돌아가는 길.

세라가 말했다.

“마엘 코르. 학업성적 상위 0.3퍼센트. 상업법과 헌정법 복수전공.”

“왜 조사했어?”

“폐하에게 직접 두 번 접근한 사람입니다.”

“위험해?”

“아뇨.”

“그럼?”

“하원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어 기록했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벨로아 광장이 멀어지고 있었다.

보호국이 제국에 들어온다는 건.

제국을 좋아하는 사람만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제국을 비판하는 사람도 같이 들어온다.

그 사람들까지 제도 안에서 말하게 만드는 것.

그게 총보다 오래가는 편입일 수도 있었다.

벨로아 방문에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보호국 경찰의 권한을 실제로 확인하는 것.

시장 한쪽에서 아틀라스 상인이 주차규정을 어겼다.

현지 경찰이 벌금을 부과했다.

상인은 제국 시민이라고 항의했다.

경찰은 답했다.

“그래서요?”

나는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로하르에서 처음 들었던 질문과 비슷했다.

제국 시민은 보호국보다 높은 정치적 신분을 가졌지만, 현지 교통법까지 무시할 권리는 없었다.

다만 체포나 중범죄수사에서는 제국 영사·법무기관과 공동절차를 밟아야 했다.

권리는 크다.

면책특권은 아니다.

그 차이를 본토 사람들도 배워야 했다.

다렌은 벨로아 보호국의 첫 100일 통계를 보여줬다.

항로사고 감소.

밀수 감소.

외국인 방문 급증.

임금 상승.

임대료도 상승.

그리고 시민 여론.

보호국화 긍정 54퍼센트.

부정 38퍼센트.

나머지 유보.

“투표 때보다 찬성이 내려갔네.”

“생활이 시작됐으니까요.”

현명한 답이었다.

조약에 서명할 때는 미래를 상상한다.

100일이 지나면 월세와 세금과 취업으로 평가한다.

제국은 이제 상징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엘 코르의 청원에는 예상보다 많은 서명이 붙었다.

외교권 완전반환은 아니었다.

‘보호국 외교자문권 확대.’

현실적인 요구로 바뀌었다.

현지 정부가 주변국 문화·경제협상에 더 큰 의견을 낼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

마리안은 일부 수용을 제안했다.

“최종서명권은 중앙에 두고 협상대표단에 보호국 인원을 의무포함하면 됩니다.”

나는 승인했다.

마엘이 원한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도 제도 하나가 바뀌었다.

반대의견이 무조건 패배만 하는 구조라면 사람들은 언젠가 제도 밖으로 나간다.

조금씩 이길 수 있어야 안에 남는다.

벨로아 경찰청장은 나중에 시장 방문 보고서에 한 줄을 남겼다.

[황제의 비공식 방문 시에도 현지 치안지휘권은 현지 경찰에 유지되었다.]

사소해 보였지만 중요했다.

황실근위가 현지 경찰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보호국의 자치는 행사 때마다 무너진다.

카시안도 동의했다.

“폐하 안전과 현지 지휘권을 동시에 지킬 수 있습니다.”

“불편하지?”

“매우.”

“그래도?”

“법이니까요.”

근위대장이 그렇게 말해주는 나라라서 나는 마음 놓고 강한 황권을 쓸 수 있었다.

마엘 코르는 몇 달 뒤 벨로아 하원의원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반제국 청원으로 유명해진 학생이 제국 의회에 들어가려 한다.

본토 언론은 모순이라고 했다.

그는 답했다.

[싫어하는 체제라도 그 안에서 바꿀 수 있다면 들어가는 게 정치다.]

나는 그 인터뷰를 저장했다.

제국이 오래가려면 저런 사람도 필요했다.

벨로아 방문 마지막 날 나는 일부러 일반 여객선 터미널을 걸었다.

전용통로를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음엔 나를 보고 멈췄다가, 근위 표식을 확인한 뒤 길을 비켰다.

한 노점상은 얼어붙은 채 인사도 못 했다.

나는 그냥 지나갔다.

황제가 매번 말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 일을 계속하게 두는 게 더 어려웠다.

몇 분 뒤 터미널 방송이 나왔다.

[황실 방문 중이나 정상운영을 유지하십시오.]

사람들이 다시 움직였다.

그 장면이 좋았다.

황제가 있어도 도시가 멈추지 않는다.

그게 잘 굴러가는 국가였다.

복귀 뒤 경호국은 내 동선예측모델을 새로 만들었다.

문제는 내가 가끔 예정에 없는 골목으로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카시안은 말했다.

“폐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좋은 황제 조건은 아니지?”

“경호대 기준으로는 최악입니다.”

세라는 옆에서 웃었다.

황제도 제도 안에서는 누군가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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